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자 H씨
ㆍby 김얀
H는 흰 셔츠와 회색 정장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이제는 누가 봐도 전형적인 30대 중반 직장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7년 전을 떠올려보면, 그는 조던 운동화와 청바지, 야구모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20대 학생의 모습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퍼스의 어느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키친 핸즈* 아르바이트를 하던 휴학생 워홀러였다. * 셰프를 도와 설거지부터 주방 보조 업무를 책임지는 일.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 지금, 그때를 상상해보니 더욱 꿈만 같다. 그는 33세 늦깎이 워홀러였던 나와 같은 한인 셰어하우스에 살았고, 나보다 6개월 먼저 호주 생활을 했던 터라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다.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 위치부터 퍼스 출신 배우 히스 레저가 사랑했다는 코테슬로 비치, 퍼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하는 밀 포인트 등, 퍼스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 것도 다름 아닌 H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H가 물었다. 나는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고, 여러모로 많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그리고 작년에 출간한 나의 책 《오늘부터 돈독하게》를 조용히 내밀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돈알못’이던 내가 480만 원이라고 적힌 연 소득 증명서 때문에 은행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돈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라고 덧붙이며, 나의 지난 2년을 대강 설명했다.
38살이라는 나이에 또 한 번 늦깎이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20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 이야기, 에어비앤비를 열고, 매일 아침 경제 신문을 읽고, 주말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며 책 한 권을 완성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식으로 2,000만 원이던 시드머니를 두 배 정도 불렸다는 사실도 빼먹지 않았다.
보통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라면 이 정도쯤에서,
“우와, 누나 정말 대단하다. 주식, 뭐가 괜찮아? 나도 추천 하나 해 줘.”
하는 말이 나와야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태연하게 자신은 주식에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주식은 생각보다 수익률이 높지 않고 위험한 자산이라는 말과 함께.
‘아니, 작년 같은 경우엔 솔직히 눈 감고 아무 종목이나 찍었어도 다 먹던 시장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 ‘얘가 지금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생각하고 한 수 가르쳐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역시 주식보다는 부동산이 훨씬 나은 투자처라고, 내게도 주식 말고 부동산을 하라는 조언을 했다.
오호라, 부동산. 그래, 나도 또 할 얘기가 있지.
나는 전셋집에서 에어비앤비를 시작으로 1억 초반에 나온 급매 빌라를 사서 연 이익 10%에 빛나는 셰어하우스를 현재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어필했다.
보통 부동산의 임대 수익률을 연 5%로 잡는다고 한다. 공실 없이 꾸준히 연 5%의 이익을 주는 것만 해도 꽤나 성공적인 부동산 임대 수익인데,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연 10%의 수익을 낸다?
이쯤이면 부동산 임대업을 좀 안다는 사람은 동공이 확장되고 그 비법을 알려달라며 밥이라도 한 끼 사겠다는 말이 나와야 정상이다. 이 비법으로 나는 부동산 중개소 사장님들에게 “꾀돌이”라고 불리며 박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H는 역시나 내 이야기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 역시 이쪽 세계를 아직 잘 모르는구나’, ‘내가 MZ 세대의 공유 주택 산업에 대해서 한마디 해 줘야겠다’ 생각했을 때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4년 전 내가 나고 자란 안양 평촌 지역 아파트에 갭투자를 해 뒀어. 5,000만 원으로.”
가만 보자. 안양 평촌은 내가 살고 있는 부천 중동과 마찬가지로 1기 신도시 지역. 하지만 강남과의 접근성과 좋은 학군으로 부천 지역보다 확실히 집값이 오른 동네. 게다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세 글자, 아.파.트.가 모여 있는 지역. 당시 매매가 4억 정도이던 아파트의 현재 가격은 13~14억 수준이다.
흠… 그가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을 법도 했다. 일단 나는 최대한 표정 관리에 신경을 기울이며 그동안 수많은 돈 관련 책에서 읽었던 부자의 행동법 중 하나(타인의 성공에 기쁘게 화답하라)를 기억해 내고는 축하를 해 주었다.
“타이밍을 잘 잡았구나. 축하해. 진짜 대박.”
하지만 시간과 노력 대비 어마한 투자 수익에 씁쓸함이 밀려오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순간 2년 동안 풀 액셀을 밟으며 미친 듯이 달려온 노력이 어딘가 모르게 안쓰럽기도 했다.
하루 수면 시간 4시간, 정신없이 돈 생각만 하고 친구들도 멀리하며 달려왔는데, 돈을 버는 사람들은 결국 또 이렇게 버는구나. 물론 그는 나름대로 공부와 준비를 하고 투자를 했던 것은 맞다. 그 방법은 부동산 투자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투자 성공법이었다.
- 잘 아는 동네부터 시작하라: 그는 어릴 때부터 살던 곳에 투자했다.
- 레버리지를 이용하되, 절대 무리하지 말 것: 그는 투자 개념보다 본인이 직접 거주할 생각으로 매수를 했다고 한다.
- 늘 시세를 확인하고 전체 흐름을 읽어라: 그의 가족 중에는 안양 지역 부동산 중개사가 있고 지금도 스스로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다.
나 역시 돈 공부를 시작할 때 부동산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부동산도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꼭 큰돈이 아니더라도 시작할 수 있고, 나름 소액으로도 다양한 방법의 투자가 가능하다.
일례로 ‘대지 지분’으로 평가받는 재건축을 노린 구축 반지하 빌라 경매나, ‘경매보단 급매’라고 중소도시에 급매로 나온 주택을 1억 원에 사서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파티룸 임대업으로 연 30%가 넘는 임대 수익을 얻는 사람도 내 주변에 있다. 현재 내가 운영 중인 셰어하우스도 그렇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빌라를 사서 셰어하우스로 임대 수익을 얻다가 나중에는 시세 차익까지 얻는 등 돈을 버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역시 부동산은 발품이고, 매번 바뀌는 부동산 법과 세금 문제, 세입자 관리와 집 관리 등을 생각하면 나처럼 하는 일이 많고 시드머니가 적은 사람은 주식 쪽이 훨씬 간편하게 느껴진다.
결국 투자도 개인 성향을 반영해 관심 분야를 정하고,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라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래서 이런 투자를 쉽게 ‘불로소득’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 급격히 오른 부동산 가격을 고려하면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주식과 코인은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부동산은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결국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H는 나름대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젊은 인구수가 줄고 어쩌고 한다고 해도 결국 서울 부동산은 불패’일 것이다, 틈날 때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체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이미 부천의 조그만 빌라가 있는 1주택자라고 하니,
- 비수도권의 경우, 60제곱미터 + 공시지가 8,000만 원 이하
- 수도권의 경우, 60제곱미터 이하 + 1.3억 원 이하인 경우
무주택자로 보고, 민영주택 청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청약 통장을 없애버렸는데 어쩌지? 그는 마침 청약 통장 없이도 신청 가능한 ‘수지구청역 L캐슬 청약 페이지’를 카카오톡으로 바로 보내줬다.
역시 뛰어난 정보력과 빠른 행동력, 그리고 포기를 모르는 포지티브 마인드까지. 이제는 그를 확실히 성공한 투자자 H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Edit 손현 Graphic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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