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부동산 계약을 앞둔 당신에게 하고픈 이야기

by 김얀

은행과 부동산을 갈 땐 최대한 차려입고 가라

돈 관련 책에서는 이것을 불문율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생애 첫 집’을 보러 다닐 때만 해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부동산을 가기 위해 굳이 차려입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가진 돈은 적었고, 예산에 맞는 작은 집을 찾고 있었다. 있어 보이는 척을 한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었다.

대신 산책하듯 편한 차림으로 하루 한 번, 동네 부동산을 방문했다. 도서관을 다니며 글을 쓰고 있던 때라 시간 내기가 자유로웠고, 남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트레이닝복 차림의 30대 후반 여자 혼자, 5천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집을 찾고 있으니 대놓고 무시하는 중개사도 있었지만, 그런 태도 때문에 쉽게 상처 받는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을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은 바로 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유치한 방식으로 영업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분명 에어비앤비를 염두하고 큰 캐리어를 든 손님이 올 수 있다고 말했는데도 산비탈 오르막에 있는 집을 자꾸 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내 표정을 보면서도 당장 가계약금으로 100만 원을 걸고 가라고 종용하는 중개사도 있었다.

세상에 부동산 중개인은 많고, 그중 나와 맞는 사람이 분명 한 명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부동산에 갈 땐 최대한 차려입고 가라’는 말보다 ‘부동산은 결국 인연’이라는 말을 더 믿는다.

그때 살고 있던 집의 계약이 6개월 남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크게 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애 첫 거래였기 때문에 신중하고 싶었다. 나로서는 인생 처음으로 가장 큰 금액의 쇼핑을 하는 중이었다.

부동산에 집을 보러 갈 때는 명확한 기준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좋다. 당시 내가 원하는 집의 기준은 명확했다.

본인이 찾고자 하는 집과 현재 가진 돈, 어디까지 절충할 수 있는지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공인중개사와 나의 시간을 확실히 아낄 수 있다.

부동산은 발품

이 말도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발품을 팔러 갈 때 가장 필요한 세 가지를 알려드리겠다. 일단 집을 보게 되면 적어도 세 군데 정도는 보기 때문에,

1. 신고 벗기 편한 신발, 걷기 편한 신발을 신고 가자. 

2. 남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니 예의상 깨끗한 양말을 신자. 

3. 줄 자와 수첩, 펜 등을 준비해서 대략적인 치수를 재 보자.

나는 위 세 가지를 모두 지키며 열 곳이 넘는 부동산을 통해 부천역 1호선 기준, 반경 500미터 내에 있는 1억 초반대 빌라는 거의 다 둘러본 것 같다. 사실 1억 초반대 빌라라면 구조가 비슷하다.

하지만 집마다 느낌이 달랐다. 가령, 정리가 안 되어 있거나 물건이 마구 쌓여있고 관리가 안 된 집은 조건이 맞다 하더라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집을 빨리 빼야 한다면 제일 먼저 집 정리를 하자. 쌓아둔 잡동사니를 버리면 집이 넓어 보인다. 깨끗하고 정리된 집은 매수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도움이 된다.

부동산도 결국 인연

두세 달 열심히 집 구경을 다녔더니, 이미 나와 있는 물건의 위치나 가격은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다. 어딘가 조금씩 아쉬워서 아침이 되면 또 새로운 매물이 없을까 네이버 부동산을 확인했다. 새로운 매물이 뜨면 부동산에 연락해서 집을 보러 가는 약속을 잡았다.

네이버 부동산을 보다 보면, 간혹 시세에 비해 2~3천만 원가량 싸게 나온 빌라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것은 99% ‘근생빌라’로 주의가 필요하다. ‘근생빌라’란 상가 또는 업무시설로 나온 ‘근린생활시설’의 일부 층을 주거용으로 변경해서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곳*을 말한다. 이런 집은 주차가 어렵고 건물 중에 누군가 신고라도 한다면 이행 강제금을 물고 원상 복귀를 시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나의 첫 주택으로는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 관련 기사: ‘“힘겹게 마련한 내 집인데…웬 날벼락” 이행강제금에 속 끓는 근생빌라 매수자’ (매일경제, 2021.6.27)

많은 부동산을 돌다 보면 꼭 말끔한 차림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와 잘 맞는 중개사를 만날 수 있다. 나 역시 열 곳이 넘는 부동산을 돌아다가 마침내 신뢰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들을 만났다. 그때만 해도 집을 보러 다니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뿐이지, 부동산 관련 법률 지식이 전무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운 질문도 많이 했지만, 그분들은 언제나 잘 대답해 주셨다.  

집을 볼수록 점점 부동산에 관심이 생겼고, 그에 따라 다양한 질문들도 생겼다. 생애 첫 집이니 이 집, 저 집, 따져가며 결정하는 데도 굉장히 시간이 걸렸지만, 그분들은 단 한 번도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으며 내 고민을 이해해 주셨다. 집과 가까운 곳이라 조금이라도 궁금한 게 생기면 찾아가서 묻고, 심심할 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다른 손님들 계약하는 모습을 보며 동네 소식도 들었다.

그렇게 동네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새로운 물건, 좋은 물건이 올라오면 당연히 내게 먼저 연락이 왔다. 내게 꼭 맞는 조건의 ‘생애 첫 집’을 그 부동산을 통해 계약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부동산도 결국 인연이라는 말은 단순히 집뿐 아니라 집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좋은 집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가격도, 위치도, 내가 원하는 집에서 무엇 하나 빠질 게 없다는 ‘급매’ 빌라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바로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매도자의 집에 가서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 수압 체크. 싱크대와 욕실에 물을 동시에 틀어보기도 한다. 당연히 변기 물도 내려 본다.
  • 베란다 쪽 벽의 누수 확인
  • 방 벽이나 천장에 곰팡이 흔적은 없는지 확인
  • 보일러 연식 확인
  • 도배, 장판, 부엌 싱크대 상태 확인. 도배, 장판, 부엌 싱크대 상태에 따라 교체 비용이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줄자로 방과 거실 크기를 재고, 방마다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낮에 다시 방문해도 되는지 물었다. 낮에 해가 어디서, 어느 정도 들어오는지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해도 집을 보는 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10만 원짜리 옷을 한 벌 사는데도 이것저것 입어보고 비교한 다음 사는데, 1억짜리 집을 사는데 이 정도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고 다행히 매도자와 공인중개사들도 내가 꼼꼼하게 체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약속대로 다음 날 오전, 집을 다시 본 다음 계약금을 걸었다. 

그 뒤로 이어진 은행 대출. 난생처음 받아 본 은행 대출에서 나의 정확한 연소득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각성의 계기가 되어 돈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몇 달 뒤 잔금 치르던 날. 매수인의 이름으로 부동산에 도착한 나와, 매도인, 법무사 사무소 직원, 은행 직원, 공인 중개사 두 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내 생애 첫 주택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이건 정말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전자 계약서를 사용해서 디딤돌 대출 0.1% 포인트 금리 우대를 받고 야무지게 사인했다. 이제껏 헷갈리기만 했던 매수인, 매도인, 법무사, 부동산 등기 같은 단어들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대출과 나쁜 대출의 개념을 배우게 된 계기도, 대출 때문에 고생했던 터라 고정 수입이 나오는 직장에 들어간 계기도 부동산 거래를 통해서였다. 

생애 첫 주택을 산 뒤 1년이 되기 전에, 나는 지인들과 집 근처 ‘급매’ 오피스텔 계약을 위해 다시 뭉쳤다. 지금 그 오피스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퇴근길에는 박카스 한 박스를 사서 나의 동네 친구들이 있는 부동산에 들러야겠다.


Edit 손현 Graphic 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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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얀

작가이자 경기도 부천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얀집'의 호스트. 쉽고 재미있는 재테크 입문서 《오늘부터 돈독하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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