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로빈슨 크루소에는 코코넛이 등장하지 않는다

by 장하준

하늘에서 코코넛이 떨어지는 세계

과거 열대 지방을 지나는 선박들은 비상 식수 공급원으로 덜 익은 코코넛을 싣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어요. 덜 익은 코코넛에서 비교적 쉽게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코코넛 오일은 요리할 때도 널리 쓰일 뿐 아니라 비누와 화장품의 중요한 원료이기도 해요. 석유 기반 윤활제가 나오기 전에는 공장에서 윤활제로도 쓰였고, 다이너마이트 제조에도 사용되었어요. 단단한 코코넛 껍질은 연료로도 써요.

말 그대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열매지요. 활용도가 매우 높고 유용한 코코넛은 열대 지방 천혜의 풍부한 자원을 상징하게 됐어요. ‘풍요로움'을 뜻하는 바운티(Bounty)라는 이름의 초콜릿이 있는데요. 이 초콜릿 포장지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코코야자와 땅에 떨어져 쪼개진 코코넛이 그려져 있어요.

‘코코넛' 하면 곧바로 열대 지방이 연상되는 나머지, 이 열매는 경제학 원론 수업에 나오는 ‘로빈슨 크루소 경제(Robinson Crusoe Economy)’ 모델에도 등장하죠. 이 모델은 단일 상품만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하는데 바로 코코넛이 그 단일 상품입니다.

정작 소설 《로빈슨크루소》에는 코코넛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데 말이에요. 로빈슨 크루소는 난파한 섬에서 자라는 라임, 레몬, 포도, 멜론을 따 먹지만 코코넛은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코코넛은 풍부한 자원을 상징하는 동시에, 빈곤을 설명하는 데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품입니다. 가난한 나라 중 많은 수가 열대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일까요?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라고 추정하곤 해요. 그리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이유는, 열대 지방의 자원이 풍부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어서라고 상상하지요.

이 상상의 세계에서는 바나나, 코코넛, 망고 등이 사방에서 자라고, 춥지 않으니 튼튼한 집을 지을 필요도,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어요. 따라서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고, 그 결과 덜 부지런하게 되었다는 논리로 이어져요. 야자나무 아래 누워 코코넛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거지요.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습니다.  무엇보다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게으른 원주민'이라고 한들 야자나무 아래에 누워서 공짜 코코넛이 떨어지길 기다리지는 않을 거에요. 그랬다가는 떨어지는 코코넛 열매에 맞아 머리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곳에서 기다리다가 가끔 코코넛이 떨어졌는지 가서 확인하는 편이 현명하지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게으를까

열대 지방에 모여있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근로 윤리가 부족하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합니다. 사실 그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열심히 일하거든요.

가난한 나라에서는 노동 연령 인구 중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부자 나라보다 훨씬 높아요. 세계은행에서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 활동 참가율*은 탄자니아 83%, 베트남 77%, 자메이카 67%인데 반해 독일은 60%, 미국은 61%, 심지어 워커홀릭으로 알려진 한국조차 63%에 불과했어요. *경제활동 참가율(labour force participation rate) : 유급으로 고용되었거나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의 수를 총 노동 연령 인구수로 나눈 숫자다. 노동참여율이라고도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학교 대신 일하러 가는 어린이 비율도 높습니다. 유엔아동기금은 2010년부터 2018년 사이 최저 개발국(Least Developed Countries)**의 어린이 중 일을 하는 어린이 비율이 29%라고 집계했어요. 집안일을 돕거나 동생을 돌보거나 신문 배달 등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예요. 에티오피아에서는 어린이 인구의 49%가 일을 해요. **최저개발국은 대략 1인당 소득이 1000달러 이하인 나라를 말하지만 정확한 정의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또 가난한 나라에서는 은퇴(60~67세) 이후까지 생존하는 사람 수가 부자 나라에 비해 적어요. 그러나 살아남아도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이 들 때까지 일을 계속해요. 은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노쇠해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까지 자영농이나 가게 점원, 무보수 가사 노동, 돌봄 노동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매우 높고요.

게다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일하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 가난하고 더운 나라 사람들은 독일인, 덴마크인, 프랑스인보다 60~80%, 미국인이나 일본인보다 25~40%가량 근로 시간이 더 길어요. 그들의 빈곤은 근면성 부족 때문이 아니에요.

가난의 근본적 원인

문제는 생산성입니다. 이들이 부자 나라 국민보다 인생의 훨씬 더 긴 기간, 훨씬 더 오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많이 생산해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처럼 생산성이 낮은 것은 교육 수준, 건강 등 노동자 개인의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어요.

물론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노동자 개인의 질이 생산성의 차이를 낼 거에요. 하지만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아요.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이민 온 사람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죠. 이민을 왔다고 갑자기 없던 기술이 생기거나 건강이 급격히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에요.

그들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더 나은 사회 인프라(전기, 교통)와 체계(법과 정책)를 기반으로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공장, 가게)에서 더 나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당나귀를 타고 애를 쓰던 기수가 갑자기 좋은 혈통의 경주마를 타게 된 것처럼요. 기수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누가 경주에서 이기는가는 많은 부분 기수가 탄 말 또는 당나귀가 결정하니까요.

가난한 나라들이 왜 덜 생산적인 테크놀로지와 사회 체제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낮은 생산성 밖에 달성하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굵직한 몇 가지 요인을 예로 들자면 저부가가치 상품 생산에 특화된 산업 구조를 가지게 만든 식민주의 역사의 잔재, 만성적 정치 분열 등이 있겠고요. 비생산적인 지주, 역동적이지 못한 자본가, 부패한 정치 지도자 등 엘리트 계층의 무능력, 부자 나라에 유리하게 편성된 국제 경제 체제도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역사적・정치적・테크놀로지적 문제 때문이고, 이는 그들이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열심히 일할 마음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었어요.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는 코코넛이 서로 상반된 풍요와 빈곤을 동시에 상징하게 만들었어요. 이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빈곤의 책임을 돌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한 몫 했고요.

어쩌면 코코넛에 관한 이야기부터 바로 잡고 나면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엘리트들에게 역사적 불의와 그에 대한 배상, 국제적 힘의 불균형, 국가의 경제적・정치적 개혁에 관한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에 답하도록 압력을 넣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Edit 정경화 Graphic 조수희

– 해당 콘텐츠는 2023.07.07.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3년 03월 출간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발췌해 토스피드에서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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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임용됐고, 2022년 SOAS 런던대로 옮겼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다. 전세계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비롯해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책 17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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