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안에는 코카잎이 들었다?

by 장하준

“코카콜라가 진출한 영토는 200개가 넘어 유엔 회원국 수를 능가한다. 이 음료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제품이고, ‘코카콜라’는 ‘오케이’ 다음으로 널리 이해되는 단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톰 스탠디지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코카콜라만큼 세계적으로 상징성이 큰 식료품이 또 있을까요? 코카콜라는 자본주의의 명암을 상징합니다. 개인적・경제적・정치적 자유의 심벌인 한편, 소비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그릇된 미국식 자본주의의 본보기로 여겨지기도 해요.

2차 세계 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구소련의 승리를 이끌어 낸 게오르기 주코프는 코카콜라의 상징성 지뢰밭을 기술적으로 잘 피해간 사람입니다.

그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아이젠하워 장군이 전쟁 중 건넨 코카콜라를 맛본 후 사랑에 빠졌다고 해요. 전후 유럽의 소련 점령군 지휘관이 된 주코프는 코카콜라사에 투명한 콜라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어요. 미국 자본주의의 정수를 좋아한다는 이미지를 피하려는 것이었지요. 캐러멜 색소를 뺀 투명한 콜라는 브뤼셀에서 제조돼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병에 담겨 장군의 유럽 사령부로 배달됐습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 전략가에 걸맞은 묘책이었죠.

코카잎과 콜라 열매의 역할

전세계인의 입맛을 장악한 코카콜라는 언제 어디서 발명되었을까요? 사실 코카잎과 알코올을 섞은 음료는 19세기 말 이미 여럿 있었어요. 특히 코카잎을 포도주에 6개월 간 담갔다 마시는 뱅 마리아니가 인기를 끌었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토머스 에디슨도 이 음료의 팬이었다고 해요.

뱅 마리아니에 콜라 열매를 첨가한 게 미국 애틀랜타의 존 펨버턴이라는 사람이었어요. 그걸 ‘프렌치 와인 코카’라고 불렀죠. 이어 1886년 애틀랜타에 금주령이 내려지자, 펨버턴은 프렌치 와인 코카에 알코올 대신 설탕과 시트러스 오일을 넣었어요. 그렇게 만든 무알코올 음료에 ‘코카콜라’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1910년대 중반 코카콜라의 인기가 너무 높은 나머지 위조품이 나올 정도였어요. 1920년대부터 해외 수출이 시작됐고, 1930년대 코카콜라는 미국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어요. ‘미국의 본질이 승화된 음료’라는 칭송을 받았죠.

코카콜라라는 이름은 이 음료의 주재료인 코카잎과 콜라 열매에서 따온 거예요. 콜라 나무 원산지는 서아프리카로 열매에는 카페인과 테오브로민(theobromine) 같은 각성 성분이 들어있어요.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피로나 갈증 없이 오랜 시간 육체 활동을 하기 위해 콜라 열매를 씹었어요. 콜라 열매를 씹는 것은 공동체 회합, 통과 의례, 계약과 조약을 확고히 하는 의식 등에 빠지지 않는 요소로서 아프리카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요.

코카콜라에 사용되던 콜라 열매는 2016년부터 인공 화합물로 대체됩니다. 그런 면에서 코카콜라는 오래된 록 밴드를 연상시켜요. 세월이 흐르면 멤버를 계속 교체한 끝에 창단 멤버는 한 명도 남지 않은 록 밴드요. 또 다른 원년 멤버 코카잎은 진작 떠났어요. 20세기 초 코카인의 중독성이 명백해지자, 코카콜라사가 무코카인 코카잎을 사용해 맛만 내기로 했거든요. 아직 밴드의 일원이긴 하지만 유령 멤버라고 해야 할까요?

코카잎도 각성 효과와 식욕 억제 효능을 갖고 있어요. 고도가 높은 남미 안데스 지역 원주민은 코카잎에서 산소가 부족한 환경을 견딜 힘을 얻었어요. 코카잎을 씹거나 차로 우려 마시는 것은 중독성이 없었죠. 중남미 원주민 공동체에서 코카잎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왔어요.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코카나무를 직접 기르지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vs 핑크 타이드(Pink Tide)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전 볼리비아 대통령도 코카나무를 기르던 농부였습니다. 그는 코카나무 농업을 강제로 근절하려던 볼리비아 정부에 항거하면서 정치적 명성을 얻었어요. 모랄레스는 긴축 재정, 무역 자유화, 규제 완화, 민영화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물결을 타고 2005년 대통령으로 선출되기에 이릅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3대 경제 기구, 즉 미국 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이 적극 주장하는 정책들을 일컫습니다. 대부분 자유 시장을 촉진하는 방안들인데,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강요해 온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모델을 가리키는 용어로 의미가 확장되었지요.

대통령이 된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주요 수출 부문인 천연가스 산업을 국영화합니다. 이후 수도, 전기, 철도 등 공공 부문을 국유화하고, 대부분 외국 자본인 광산 회사들이 정부에 지불하는 로열티를 인상했어요. 한편으로는 복지 지출을 늘렸고요. 경제학자들은 이런 개혁이 심각한 경제 파탄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측했죠.

그러나 볼리비아의 경제 성적은 회의론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복지 정책을 폈으니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죠. 그런데 동시에 경제 성장세가 눈에 띄게 빨라진 거예요.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랐던 1982년~2005년 사이 연 0.5% 수준이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모랄레스 재임 기간 중 연 3%로 치솟았어요.

볼리비아 만의 일이 아닙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우루과이 등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르지 않고 경제 성적을 향상시켰어요. 이런 흐름을 이른바 ‘핑크 타이드'라고 불러요. 이 정부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 지출을 늘리고 최저 임금을 높여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국민 소득의 비율을 높였어요.

핑크 타이드 국가들에서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불평등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국제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높았어요. 게다가 이들 정부는 광업이나 농업 등 천연 자원을 기반으로 한 전통 산업, 즉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제한적인 산업을 대체할 고생산성 산업을 키우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기초를 다지지 못했던 거예요.

이런 면에서 가장 크게 실패한 나라는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의 핑크 타이드 정부는 한때 강력했던 제조업 분야가 몰락하도록 방치했어요. 핑크 타이드 기간이 끝날 무렵 브라질은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보다 천연자원 수출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지요.

중국의 초고속 성장에 따른 전세계적 물가 상승기가 끝나자, 1차 상품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 실패한 핑크 타이드 국가들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핑크 타이드 집권 세력은 2010년대 후반기 선거에서 대부분 패배했고, 볼리비아는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됐어요.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의 구체제로 돌아가지는 않았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에서는 핑크 타이드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요. 브라질에서도 핑크 타이드를 이끌었던 룰라 대통령이 최근 정치에 복귀했어요. 처음엔 핑크 타이드에 가담하지 않았던 멕시코와 페루, 콜롬비아 등도 좌파로 기울기 시작했어요.

2021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학생 운동가 출신의 35세 청년 가브리엘 보리치가 당선된 일은 의미심장합니다. 칠레는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에 서있었거든요.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던 칠레가 이제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보리치가 칠레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미국인이 코카콜라를 금지하자는 투표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신자유주의는 과연 성공했을까

사실 부자 나라들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부자 나라들에서는 시장의 힘을 제어하고 규제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혼합 경제 시대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기간에 성장률이 더 낮아지고 불평등은 더 늘어났어요. 금융위기도 더 자주 발생했고요.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에서 운용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이 정책들이 그들의 필요에 특히 더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개발도상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보호무역, 보조금, 외국인 투자 규제 등 정부의 지원과 보호 아래 자국의 생산자들이 생산성이 더 높은 산업 부문에 진출해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이 이를 막았기 때문이에요.

설상가상 1980~1990년대 워싱턴이 개발도상국에 제시한 정책 권고 사항들은 같은 틀로 찍어낸 쿠키 같다는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었어요. 나라마다 다른 경제 상황이나 정치사회적 환경과 상관 없이 똑같은 정책을 제시했던 거예요.

전세계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은 코카콜라와 달리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한 워싱턴 컨센서스 정책들은 이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Edit 정경화 Graphic 조수희

– 해당 콘텐츠는 2023.07.21.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3년 03월 출간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발췌해 토스피드에서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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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임용됐고, 2022년 SOAS 런던대로 옮겼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다. 전세계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비롯해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책 17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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