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과부하

무조건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좋은 것일까?

by 김경곤

교수 K (이하 K): 팬데믹이 한창일 때, 우리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공급망 교란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원하는 자동차 모델을 1년 넘게 기다려야 살 수 있었고, 그나마도 일부 옵션이 제외된 모델을 울며 겨자먹기로 구입해야 했습니다. '선택의 자유'가 줄어들면서, 사람들의 불편함도 증가하게 되었고요.

에디터 G (이하 G): 맞아요. 팬데믹이 끝난 후 시간이 꽤 흘러서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그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정도로 선택지가 적었던 것 같아요.

K: 에디터 님도 선택지가 적은 환경보다 선택지가 많은 환경이 더 낫다고 생각하시듯, 우리는 보통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더 많은 옵션이 있으면, 내게 딱 맞는 최적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선택의 다양성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예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때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만족도가 낮아질 수 있거든요.

G: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점심 시간에 더 선호하게 되는 식당은 메뉴가 너무 다양한 곳보다 1~2개에 주력하는 곳이거든요.

K: 맞아요.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기 위해 컬럼비아 대학교의 쉬나 아이엔가(Sheena Iyengar) 교수와 스탠포드대학교의 마크 래퍼(Mark Lepper) 교수는 세 가지 실험을 실시합니다.

1. 소비자들은 선택지가 적을 때 지갑을 열까, 선택지가 많을 때 지갑을 열까?

첫 번째 실험은 슈퍼마켓에서 6가지(제한된 선택지)의 잼을 시식할 수 있는 부스와 24가지(광범위한 선택지) 종류의 잼을 시식할 수 있는 부스를 운영하며, 소비자들의 행동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관찰 결과, 24가지의 잼을 시식할 수 있는 부스에는 60%의 고객이 관심을 가진 반면, 6가지의 잼을 시식할 수 있는 부스에는 40%의 고객만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G: 오호 그렇군요. 절반 넘는 사람들이 제한된 선택지보다 광범위한 선택지에 더 매력을 느꼈나 보네요.

K: 그렇죠, 하지만 재미있게도 고객들의 최종 구매 결정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옵니다. 6가지 잼이 있는 부스에서는 시식한 고객들의 30%가 실제로 잼을 구매했지만, 24가지 잼이 있는 부스에서 시식한 고객들 중에서는 오직 3%만이 잼의 구매로 이어졌습니다.

G: 헉! 그렇게나 차이가 많이 난다구요?

K: 네, 재미있죠. 처음엔 다양한 종류의 잼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 성공했지만, 실제 제품 구입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잼의 종류가 적은 것이 더 효과적이었던 거죠.

2. 학생들은 선택지가 적을 때 더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일까, 선택지가 많을 때 더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일까?

K: 두 번째 실험은 같은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 대상으로 진행됐어요. 2장 분량의 에세이 과제를 제출하면,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게 되는데요. A 그룹은 6개의 주제(제한된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에세이 주제로 정하고, B 그룹은 30개의 주제(광범위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G: 음… 다양한 주제 중에서 고를 수 있었던 B 그룹 대학생들의 에세이가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주제가 다양한 만큼 생각의 폭도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K: 좋은 추측이에요.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먼저, 두 그룹의 과제 제출 비율을 비교해보죠. A 그룹(제한된 선택지)에 배정된 학생들 중 74%가 과제를 제출했던 반면, B 그룹(광범위한 선택지)에 배정된 학생들 중에서는 60%만이 과제를 제출했습니다.

G: 오호, 첫 번째 실험과 비슷한 결과네요. 잼 실험에서도 제한된 선택지를 마주한 사람들의 결제율이 더 높았으니까요.

K: 맞아요. 제출된 에세이의 퀄리티에서도 두 그룹 간 차이가 보였답니다. 에디터 님은 B 그룹(광범위한 선택지)에 배정된 학생들 에세이가 더 좋았을거라 예상하셨지만, A 그룹(제한된 선택지)에 배정된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B 그룹(광범위한 선택지)에 배정된 학생들의 평균 점수보다 더 높게 나왔답니다.

G: 오, 제한된 선택지에 배정된 학생들의 과제 제출률도 높았고, 평균 점수도 더 높게 나오다니! 두 번째 실험에서는, 오히려 선택지가 제한된 상황에서 선택하는 것이 더 선호될 뿐 아니라 더 나은 성과도 만들어낸 다는 것을 보여준 거네요.

K: 맞아요. 첫 번째 실험과는 살짝 다르게, 모든 면에서 제한된 선택지가 더 낫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3. 사람들은 선택지가 적을 때 더 만족감을 느낄까? 선택지가 많을 때 더 만족감을 느낄까?

K: 세 번째 실험에는 초콜릿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도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어요. A 그룹에서는 6개의 초콜릿(제한된 선택지)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맛볼 수 있게 한 반면, B 그룹에서는 30개의 초콜릿(광범위한 선택지)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를 수 있게 했습니다.

세 번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어요. 두 그룹의 초콜릿 맛에 대한 만족도를 비교해 본 결과, A 그룹(제한된 선택지)의 참가자들이 B 그룹(광범위한 선택지)의 참가자들보다 초콜릿 맛에 대해 더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발견되는데요. B 그룹의 참가자들은 30개 초콜릿 중 하나를 고르는 과정 자체는 즐겼지만, “30개 가운데 가장 맛있는 1개를 고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더 맛있는 것을 골랐어야 했는데…’ 라며 자신이 내린 선택에 후회를 하거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는 모습도 나타났고요.

G: 선택지가 많은 상황에서 고른 1개가 최선이 아닐까봐, 잘못된 선택일까봐, 오히려 불만족을 느끼는 거군요.

K: 맞습니다. 이 세 번의 실험 결과는 ‘더 많은 선택지가 항상 유익하다’는 기존의 믿음을 뒤엎었습니다. 우리는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최종 선택에 쉽게 만족할 수 있는거죠.

반면 선택지가 많아지면 그 가운데 가장 완벽한 선택이 있을 것이라 믿고, 그것을 찾아내려 합니다. 만약 이때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다면, 더 좋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후회하겠죠. 설령 좋은 대안들을 추려냈다고 하더라도, 그중 무엇이 가장 나은지 골라야 하고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 그때 다른 것을 선택했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선택의 과부하(choice overload)’라고 하는데요. 너무 광범위한 선택지는 오히려 사람들의 결정을 힘들게 하고,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최선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기대를 만들어냅니다. 결과적으로는 더 큰 후회를 초래하고 만족도를 낮추게 되는 것이죠.

G: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책 종류가 엄청 많은 대형 서점에서 고르고 고른 책보다, 책 종류는 적지만 책방 주인의 취향에 맞게 큐레이션 되어있는 동네 작은 책방에서 고른 책이 더 재미있을 때가 있었거든요.

K: 그렇죠. 이 실험 연구는 경제적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하는데요. 너무 많은 선택지는 소비자들의 구매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겁니다. 결정에 대한 피로가 따르기 때문이에요. 기업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선택지보다, 오히려 적절한 수의 선택지를 선보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결정해야 하는 피로도를 줄여주니 소비자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더 나은 구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떤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100개의 요리가 적혀 있다 가정해보죠. 아마 고객들은 어떤 음식을 주문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고 최종 선택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우선 음식 개수를 줄여야 하고요. 가장 인기 있는 10개 정도의 요리 중심으로 메뉴를 구성하거나, 계절별 특별 메뉴 혹은 오늘의 추천 메뉴를 제공하여 고객의 선택을 단순화할 수 있겠죠.

우리에게 친숙한 스트리밍 서비스도 비슷합니다. 수천 개의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면서, ‘어떤 걸 봐야하나…’ 고르는 데만 상당한 시간을 쓴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G: 저요! 메인 화면에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뭐 볼지 고민하다가 결국 꺼버리게 돼요.

K: 너무 많은 콘텐츠는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그리고 힘들게 고른 콘텐츠가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일 때 불만족을 느낄 가능성이 높고, 결국엔 에디터 님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개인화된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되는 건데요. 고객이 선호할 만한 콘텐츠를 얼마나 잘 추천하는지, 인기 콘텐츠와 평가 좋은 콘텐츠를 얼마나 잘 강조해서 보여주는지에 따라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만족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G: 혹시 ‘선택의 과부하’가 정부 정책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K: 물론입니다. 스웨덴은 2000년에 새로운 퇴직연금제도를 시행했는데요. 처음 시작할 땐 자유롭게 자신들이 원하는 펀드들로 연금 포트폴리오 구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제도 시행 초기에 가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펀드의 개수는 무려 456개에 달했어요.

물론 펀드를 직접 고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기본 설정(default) 펀드도 있었지만, 스웨덴 정부는 적극적인 광고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이 기본설정 펀드보다는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 가입자의 3분의 2가 포트폴리오를 직접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기본 설정 펀드를 선택했어요. 자, 결과는 어땠을까요?

G: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포트폴리오를 직접 선택한 사람들의 성과가 더 안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본인 선택을 후회하거나요.

K: 맞아요. 포트폴리오를 직접 선택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수많은 펀드 중 ‘예상 수익은 비교적 낮은데 위험은 큰 펀드’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직접 선택한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기본설정 펀드에 비해 낮았고, 그 격차는 점점 벌어졌어요.

이후 스웨덴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펀드의 개수는 900개 정도로 늘어났는데요. 이렇게 많은 펀드 중 뭐가 좋을지 직접 선택해야 한다고 상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지 않으세요?

G: 네…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연금 상품들도 언제 공부하고 선택하나 싶은데, 어질어질하네요.

K: 이 사례도 많은 선택지가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수백 개에 달하는 펀드 중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낮고 위험이 적절하게 분산된 기본설정 펀드를 선택하는 쪽으로 ‘넛지(nudge)’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선택일 수 있었던 것이죠. 정부가 정책을 만들 때, 과도하게 많은 선택지가 주는 부정적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선택지가 많은 상황과 적은 상황에 대한 실험 결과들과 실생활 사례들을 살펴봤어요. 선택지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고, 너무 많은 선택은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이해하셨지요?

여러분은 일상 생활에서 선택지가 늘어나서 행복했던 경험이 많나요, 아니면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경험이 많나요? 쇼핑을 하거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오늘 소개해드린 연구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참고자료

Edit 금혜원 Graphic 조수희 이동건

김경곤 에디터 이미지
김경곤

동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이며, 거시경제와 국제금융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돈, 경제, 세상의 흐름에 대한 책 ≪경제의 질문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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