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딜레마에 빠진 중앙은행들

by 피델리티자산운용㈜

요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너무나 큰 비극이지만,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특히 원자재 시장의 심각한 차질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쇼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이에 대한 대응으로 신중한 정책 접근을 시사한 바 있고, 미 연준은 당분간 ‘매파(통화긴축 선호)’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결국 금리 인상 횟수는 시장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돼요.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줄어든 금리 인상 기대 / 출처: Refinitiv,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2022년 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은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원자재 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이 심각할 걸로 보여요.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은 상승하고 성장률은 저하될 거예요. 이는 특히 유럽의 전면적 경기침체 위험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해요. 향후 며칠 또는 몇 주 이내 러시아로부터 원자재의 물리적 흐름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경우 리스크가 큽니다.

달갑지 않은 선택

전부터 이미 연준, ECB, 영란은행(BoE)은 인플레이션 상승 및 성장 둔화로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펀더멘털이 바뀌진 않지만, 두 가지 모두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어요. 각국 정책당국들은 성장을 저해하는 리스크를 무릅쓰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매파’ 조치를 취할지, 아니면 가능한 한 성장세를 보호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둘지 사이에서 달갑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죠.

미국의 경우 충격은 주로 공급 부문*에 기인하며 기대 인플레이션에 파급효과를 미칠 걸로 보여요. 전쟁은 주로 유가를 통해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인플레이션은 1분기보다는 2분기 중에 정점을 지날 수 있고요. * 공급 충격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토스피드 아티클 ‘경제변동이 뭐지?’를 참고해 주세요. – 편집자 주

아직까지는 연준이 올해 금리를 서너 차례 인상할 걸로 예상하지만, 다가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으로 인해 정책당국은 더욱 신중해질 거예요.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시장은 2022년 중 연준이 금리를 6~7회 인상한다고 봤어요. 하지만 빠른 긴축이 야기할 수 있는 경기침체 리스크가 커졌고 매우 심각한 채무 부담까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요. * 실업률이 올라가고 경기가 침체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 – 편집자 주

ECB의 경우 상황은 한층 더 복잡해요. 가스 공급 차질이 유럽 대륙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임에 따라 ECB는 작은 계기만 있어도 완화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요. 정책당국이 성장을 우선시할 경우, 양적완화는 3월 또는 6월에 종료되기보다는 연장될 가능성도 높고요. 러시아와 맺고 있는 수많은 금융 관계를 단절하더라도 유럽 은행들은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고 완충자본을 통해 금융파탄 가능성을 낮출 수 있어요. 그러나 유로존이 직면한 심각한 성장 리스크는 현실이며, 분쟁이 시작된 이후 ECB의 기대 금리는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되었어요.

이전에는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는 ‘역 드라기 모먼트’*를 예상했어요. 유럽 주변국의 부채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2년,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당시 ECB 총재는 ECB가 유로화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whatever it takes)”라고 선언한 적이 있거든요. 시장 참가자들은 결국 ECB가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드라기 총재의 확고한 의지를 믿었어요. * 이 글을 쓴 살만 아흐메드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글로벌 매크로 및 전략적 자산배분 헤드는 지난 2월 라가르드 ECB 총재의 통화정책회의 때 발표한 내용을 ‘역 드라기 모먼트(reverse Draghi moment)’라고 부르고 있다. – 편집자 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시장은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걸로 믿고 있어요. 정책당국들은 시장이 금융 여건을 긴축할 거라는 희망으로 ‘매파’ 전망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데 만족하는 걸로 보였고요. 연준은 당분간 ‘역 드라기 모먼트’ 계획을 고수하겠지만, ECB는 한층 더 완화 기조로 돌아설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 살만 아흐메드(Salman Ahmed),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글로벌 매크로 및 전략적 자산배분 헤드

Edit 손현 Graphic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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