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광고에 에러가 났어요

걸그룹이 더 이상 치킨 광고를 하지 않는 이유

by 유성운

걸그룹 이코노믹스 5화. K-걸그룹과 광고 산업

최근 4개월간 파파존스 피자를 두 번이나 시켜 먹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피자를 주문한 이유는 딱 하나. 아이브의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서다. “파파존스에서 주는 아이브 ‘포카’는 다른 데서 살 수 없다”고 조르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소녀시대 달력을 받으려고 야식으로 굽네치킨을 고수했던 16년 전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때는 걸그룹들이 각종 치킨 광고를 점령하다시피 했었다. 요즘은 르세라핌이 나오는 굽네치킨을 제외하면 걸그룹 치킨 광고가 드물어졌다. 치킨만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걸그룹은 많은 CF에 등장하지만, 최근 그들이 광고하는 브랜드는 과거와 미묘하게 달라졌다.

교복을 벗고 명품을 감싼 걸그룹

걸그룹을 보면서 가장 설렜던 기억 중 하나는 수지가 교복을 입고 나온 광고를 봤을 때였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칭호답게 싱그럽고 청순한 이미지는 뭇남성들이 동경하던 ‘이웃집 여학생’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이때는 많은 걸그룹 멤버들이 그런 이미지였던 것 같다.

예전에 <걸그룹 경제학>을 통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걸그룹을 모델로 쓴 CF를 분석했다. 걸그룹이 CF 모델로 나섰을 때 효과를 보는 제품군이 대략 정해져 있었다. 바로 외식산업, 교복, 워터파크 등이었다.

언급량 증가율은 (1)광고 게시 전후 6개월의 평균 언급량 증가율, (2) 광고 게시 월의 직전월 평균 증가율 값, (1), (2) 중 작은 값을 사용함. 아래 모든 그래프 동일.

당시 해당 제품군의 홍보 담당자들은 대개 “그룹의 밝고 건강한 이미지가 우리 제품에 잘 맞는다”고 했다.

그런데 4세대 걸그룹부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4세대 걸그룹의 활동이 본격화 된 2019년부터 2023년까지를 조사해보니 제품군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두 표를 비교해보면 걸그룹들의 CF 활동 분야가 교복, 식품 같은 내수 산업에서 금융, IT, 패션, 유통을 포함해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일일이 찾아보기 전에는 도무지 무슨 제품을 파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브랜드도 있었다.

이렇게 걸그룹을 내세운 광고 제품군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걸그룹에게 기대하는, 그리고 이들이 내뿜는 이미지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2세대부터 3세대까지 걸그룹 팬덤의 중심은 10~20대 남성이었다. 하지만 3세대 중반부터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와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팬덤의 중심도 점차 여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나 의상, 안무 등에서 여성 팬덤을 의식하는 경우가 확연해졌다.

익명의 한 치킨업계 관계자는 “걸그룹의 몸값이 최근 몇년간 2~3배 치솟은데다, 친근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면서 더이상 치킨 광고 모델로 선호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K-걸그룹에 꽂힌 명품 브랜드

지난 10년간 소셜 미디어에서 걸그룹과 연동되어 언급된 단어의 비중을 살펴봤다. 3세대 걸그룹이 주류였던 2010년대 중반에는 ‘친근하다'의 비중이 더 높았던 반면, 4세대로 올수록 ‘럭셔리'한 이미지가 강해졌다.

2022년 9월 영국 런던에서 12인조 걸그룹 ‘이달의 소녀’가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살던 집과 콘서트장이 가까워서 큰 부담 없이 출발했다. 영국에서 ‘이달의 소녀’ 인지도가 블랙핑크 정도는 아니니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공연장 주변 건물들을 포위하고 늘어선 입장 대기줄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줄이 너무 많으니 진행 요원들이 네 그룹으로 나누어 긴 줄을 통제하고 있었다. 한 치의 과장없이 그날 공연장 입구에 도달하는 데 딱 2시간이 걸렸다.

관객 대부분이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인 아니었냐고? 정반대였다. 인파의 대다수가 비아시아계였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피카딜리 서커스나 소호 거리에 블랙핑크 리사나 에스파의 카리나의 광고가 걸려 있던 이유 말이다.

K-POP 걸그룹이 브랜드에 불어 넣어주는 4가지 가치

광고업계에서 국내 10대에게 어필하는 가성비 좋은 모델 정도였던 K-POP 걸그룹은 이제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이 손을 내미는 글로벌 셀럽이 됐다. 이런 배경에는 크게 4가지 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①글로벌 인기

세계적으로 거대 팬덤을 보유한 K-POP 걸그룹의 인기는 매력적인 마케팅 기회로 작용한다. 걸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는 자신을 알릴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K-POP 스타들은 패션 아이콘으로 여겨지며, 그들이 걸치는 의상이나 액세서리가 트렌드를 선도한다.

②타깃 오디언스

K-POP 팬들은 주로 젊은 세대다. 브랜드는 K-POP 걸그룹을 모델로 삼아 이 젊은 오디언스와 연결되며, 장기적 고객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브랜드 충성도를 얻는 것은 덤이다.

③디지털 마케팅 강화

K-POP 걸그룹과 팬덤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소통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을 모델로 기용하는 것은 브랜드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에도 도움이 된다.

④브랜드 이미지의 현대화

유서 깊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종종 자신들의 이미지를 현대화해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K-POP 걸그룹과의 협업은 전통적인 럭셔리 이미지에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요소를 추가하여 브랜드 가치를 재정립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뉴진스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애플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애플은 한국에서의 아이폰 판매량을 따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통신업계에 따르면 10~20대들의 아이폰 선호 현상으로 역대급 판매량을 경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갤럽의 ‘스마트폰 사용률&브랜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가운데 18세~29세 연령대의 65%가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갤럭시를 사용하는 비율은 32% 수준에 그쳤다. 애플은 뉴진스 등 인기 아이돌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미래 소비자인 10대와 20대를 잡고 있다. 뉴진스는 4세대 걸그룹의 선두주자로, 젊은 층 사이에서 ‘대세 아이돌’로 꼽힌다. 이들이 어떤 브랜드와 함께 노출되느냐가 ‘젊은 팬’들의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비싼 아이폰 타령만 하더니” 애플, 한국서 역대 최대 실적…영업익 500% 늘었다’ 헤럴드경제, 2024년 1월 13일자>

자, 그렇다면 지난 5년간 어느 걸그룹을 CF 모델로 기용했을 때 가장 많은 효과를 봤을까.

데이터로 볼 때, 광고비만 넉넉하다면 광고주로서는 일단 블랙핑크부터 고려해보는 게 합리적이다.

참고로 이것은 판매량이 아니라 브랜드 ‘언급량'의 평균 증가율이다. 즉, 대중이 제품에 더 많이 관심을 갖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 지갑을 열게 만들었는지 여부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십여 년 이상 걸그룹을 좋아해온 삼촌 팬들 사이에서는 최근 걸그룹의 럭셔리한 이미지에 다소 서운한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소녀시대와 트와이스의 시대를, 또는 수지가 교복을 입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요즘 걸그룹 노래는 도통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적잖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법. 또 누가 알겠는가. 걸크러쉬의 시대를 지나 다시 청순발랄의 시대가 찾아와, 걸그룹 멤버들이 명품 대신 교복을 입는 날이 올지.


Data 바이브컴퍼니 김종민 님

Edit 정경화 Graphic 이은호 윤여진

유성운 에디터 이미지
유성운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1997년 11월, TV에서 본 SES의 I'm your girl 데뷔 무대는 강렬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후 25년간 줄곧 K걸그룹을 좋아했으며, 걸그룹과 경제학의 관계를 데이터로 들여다보는 글을 썼다. 2017년 책 '걸그룹 경제학'을 공저했다.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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