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트의 화살이 주가 하락 그래프 모양을 띄고 있어요

카리나의 열애설로 본 걸그룹 연애와 주가의 상관관계

by 유성운

걸그룹 이코노믹스 6화. 아이돌 연애에 얽힌 복잡한 수지타산

에스파의 카리나가 모 배우와 연애 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올 것이 왔다'였다. 그리고 내 손가락은 바로 주식창으로 향했다. SM엔터테인먼트 -3.47%. 파란 화살표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모두 처분했기 때문이다.

카리나가 공개 연애를 선언하자 팬들은 ‘우리의 사랑이 부족한 것이냐'며 분노했고, 소속사의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카리나는 결국 팬덤에 구구절절 사과하는 편지글을 올려야 했다. 물론 그것으로도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다. ‘연애 판타지'마저 상품으로 삼는 한국 아이돌 산업의 특징이 불러온 파장이었다.

걸그룹이 연애하면 언제나 주가가 떨어질까?

우리나라에서 걸그룹의 열애설이 소속사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진 것은 카리나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지난해 7월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수장인 베르나르 아르노의 아들 프레데릭 아르노와 열애중이라는 기사가 나오자 전날 7만8,900원(종가 기준)이었던 YG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7만4,300원으로 5.83% 하락했다. 여러 걸그룹 열애설 중 가장 큰 폭으로 소속사 주가를 떨어뜨린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걸그룹의 연애는 소속사의 주가에 언제나 영향을 줄까? 최근 10여 년간 주요 걸그룹 멤버의 연애를 통해 상관관계를 알아봤다. 열애설 발표 전날 종가와 발표 당일 종가를 비교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평균 1.27% 하락. 모수가 작아 통계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걸그룹 멤버의 연애와 해당 소속사의 주가는 대체로 음의 상관관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가 감소 폭은 블랙핑크 리사, 에스파의 카리나, 소녀시대의 유리, 트와이스 지효 순으로 컸다. 각 그룹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만큼 시장의 충격도 컸다.

열애설과 음반 판매량, 소속사 주가의 향방

K-POP에서 아이돌 그룹은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가수의 영역을 넘는 존재다. 이들은 팬들의 친구와 연인 같은 존재인 동시에 팬덤이 육성 보호해줘야 하는 피보호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팬덤은 이들에 대해 갖는 감정은 복잡하다.

걸그룹 멤버가 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 연인이 한눈판 것 같은 감정을 느끼는 팬덤도 있지만, 연애 상대가 격이 맞는지를 따지는 팬덤도 있고, 일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태도를 질타하는 팬덤도 있다.

그러므로 카리나가 남자친구의 존재를 인정했을 때 이들의 분노는 ①(나 말고) 다른 이성과 연애를? ②이재욱이랑?(그게 누군데?) ③데뷔 4년차에 연애? 같은 세 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갔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카리나의 연애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2020년 이후 데뷔한 4세대 걸그룹의 대표주자는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다. 애당초 선두주자로 꼽혔던 것은 단연 에스파였다.

에스파는 2021~2023년까지 3년 연속 이들 빅4 걸그룹 중에서 음반 초동 판매량 1위였고, 지금도 누적 음반 판매량은 유일하게 600만장을 넘기고 있다. 2021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는 역대 최초로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2023년 상반기 214만2000장으로 정점을 찍은 음반 판매량은 하반기 127만7000장으로 거의 반토막 났다. 반면 경쟁 그룹 아이브는 167만9000장에서 198만1000장으로 되려 성장했다. 뉴진스나 르세라핌과 비교해도 하락폭이 워낙 컸기에 에스파에게는 ‘빨간불’이 켜졌던 상황.

후속 음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기대했을 팬덤에게 도착한 새 소식이 열애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4개 걸그룹 중 첫 열애설이었다. 이런 시기에! 그러니 에스파를 가상 연인으로 생각하는 팬덤이든 최고의 걸그룹으로 키우고자 하는 팬덤이든 카리나의 교제에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나타낸 것이다.

투자자가 보는 열애설

투자자 입장에서 팬덤의 약화나 이탈 우려는 곧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진다. 엔터 산업의 주요 수입원이 음반 및 음원 판매와 콘서트 수입이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도 이들 분야가 수입의 절반(49%)에 육박한다. CD플레이어도 갖고 있지 않은 팬들이 CD 음반을 구매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아티스트에 대한 충성도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이 실망하고 돌아서는 것만큼 소속사의 수입 전망에 큰 위기도 없다.

게다가 올해 들어 엔터테인먼트주는 일제히 하락세를 타고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해 9월 13만원대 후반이었던 주가가 약 40% 빠졌다.

카리나의 열애설은 하필 주가가 바닥을 찍던 시점에 터졌다. 투자자들에게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시점에 소속 그룹의 멤버가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부각됐을 수 있다. 이날 SM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은 660억원 증발했다.

첨언하자면, 카리나의 열애설이 터진 뒤 SM 본사 앞에서 한 중국 팬이 보낸 것으로 알려진 트럭 시위가 벌어졌다. 카리나의 팬덤을 국가별로 볼 때 가장 큰 나라가 중국이다. 에스파의 미니앨범 3집 ‘My World’의 총 판매량 214만장 중 47만장을 카리나의 중국 팬카페 '카리나바'가 공동구매했다.

팬덤의 분노가 에스파의 음반 판매량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괜한 걱정으로만 흘리기 어려운 이유다. 아마도 다음 음반 판매량이 이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다.

타이밍이 더 나빴던 블랙핑크의 리사

주가 하락률이 더 컸던 블랙핑크의 리사는 프레데릭 아르노와의 교제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물론 부인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열애가 파장이 컸던 이유는 당시 블랙핑크가 처한 미묘한 상황 때문이다. 블랙핑크 멤버들의 재계약 여부에 팬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시기였던 것이다.

YG가 보유한 아티스트는 블랙핑크, 트레저, 위너, 악동뮤지션 등인데 현재 수입의 70% 이상이 블랙핑크로부터 나온다. 블랙핑크 멤버는 골고루 인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전세계적으로 리사의 팬덤이 가장 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근거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다. 블랙핑크 채널의 전체 구독자 수는 9320만명이다. 그리고 멤버 4인은 각자 유튜브 채널을 갖고 있는데 리사의 'Lilifilm'은 1160만명, 제니의 'Jennierubyjane'는 1040만명, 로제의 'Rosesarerosie'는 694만명, 지수의 '행복지수 103%'는 500만명 순이다.

리사의 열애설이 터진 날 YG의 시가총액은 859억원 줄었다. 단순 비교하면, 카리나보다 200억원 더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리사가 세계적 부호인 루이비통 가문의 후계자와 연애를 한다는 소식은 팬들에게 연예계 은퇴나 활동 중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카리나의 연애는 에스파의 활동 중단이나 해체로 이어지지 않겠지만, 리사의 연애는 블랙핑크라는 그룹의 존속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로 확대된 것이다.  그것도 팬덤 파워가 매우 강력한 리사가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멤버 4인 중 1명의 이탈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복잡한 수지타산

이제 걸그룹의 연애는 걸그룹과 팬덤 사이의 문제를 넘어 자본에 의해 더 복잡한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걸그룹 연애→팬덤 약화 및 이탈→음반 및 콘서트 수익 저하→기대 수익 하락→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따라 붙는다.

한편에선 걸그룹에게 연애를 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팬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연애를 묶어둔다는 것은, 회사가 일에 집중하라며 직원의 연애를 금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연인'으로서의 감정을 느끼며 음반과 굿즈를 사들이는 팬덤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며, 이들은 소속사의 수익뿐 아니라 걸그룹 멤버 자신의 수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사이에서 바람직한 아티스트-팬덤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감정의 문제인지라 적절한 균형을 잡기가 쉽지만은 않다. 데뷔 4~5년차에는 연애를 허하는 쪽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 어떠냐는 얘기도 나온다. 개인의 일을 계약서 조항으로 정해둔다는 것이 비인간적일 수 있지만, 역으로 아티스트의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팬덤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얼마 전 어느 기획사 관계자에게 넌지시 했더니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에이~ 그런다고 해결되겠어요?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는 '버추얼 아이돌' 쪽으로 가려고 준비 중이에요. 그럼 연애를 아예 안 하잖아요."

아, 그렇구나! 역시 시장이 가장 빠르다.


Data 바이브컴퍼니 김종민 님

Edit 정경화 Graphic 이은호 함영범

유성운 에디터 이미지
유성운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1997년 11월, TV에서 본 SES의 I'm your girl 데뷔 무대는 강렬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후 25년간 줄곧 K걸그룹을 좋아했으며, 걸그룹과 경제학의 관계를 데이터로 들여다보는 글을 썼다. 2017년 책 '걸그룹 경제학'을 공저했다.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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