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 같은 걸그룹이 새로 탄생할 확률은?

by 유성운

걸그룹 이코노믹스 7화. 걸그룹 세계도 파레토 법칙이 지배한다

지난 2021년 ‘아째르'라는 걸그룹을 인터뷰했다. 호원대 케이팝학과 19학번 동기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케이팝학과장이자 유명 보컬 그룹 빅마마 멤버인 신연아 교수가 ‘아째르'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했다.

걸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멤버들의 일상생활은 여느 대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혹독한 단체 생활이나 엄격한 사생활 제한이 없었고, 학교 기숙사나 인근에서 자취했으며 휴대전화도 자유롭게 이용했다. 데뷔 후에도 멤버 이재인은 카페에서, 장주연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했다.

아째르의 첫 곡 ‘엘레강떼(Elegante)’는 유튜브 조회수 40만회를 기록했고 중앙 언론사와 인터뷰도 했다. 아니, 무슨 이런 걸그룹이 다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업계에선 나름 성공한 축에 속한다. 세상에는 이만큼도 관심받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걸그룹이 훨씬 많으니 말이다.

이들이 데뷔한 2021년, 우리나라에선 아이브를 비롯해 20개 걸그룹이 데뷔했다. 매년 우후죽순 걸그룹이 탄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걸그룹으로 성공할 확률은 정말 낮아요. 그런데 왜 매년 이렇게 데뷔하냐고요? 성공만 하면 투자한 돈의 100배 회수도 가능하거든요."

걸그룹이 성공할 확률

요즘 너무나 핫한 뉴진스를 보자. 데뷔와 동시에 톱스타가 된 뉴진스는 2개월 만에 음원 및 음반 판매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멤버들은 걸그룹 역사상 가장 빨리 정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어도어는 2023년 매출 1103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335억원을 기록했다. 어도어의 유일한 소속 그룹 뉴진스는 261억원을 정산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도어가 2022년 자본금 161억원으로 설립된 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뉴진스 멤버들의 평균 연령이 10대라는 점, 따라서 이들이 10년 이상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100배 회수' 언급은 꼭 과장만도 아닐 것이다. 최근 어도어와 하이브 간 경영권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업계에서 어도어의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오를 것으로 추정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걸그룹이 새로 론칭한다고 해서 모두가 뉴진스처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카라가 데뷔하며 걸그룹 2세대의 막을 연 2007년부터 지금까지 데뷔한 걸그룹은 총 376팀에 이른다. 최근 10년 사이에도 250개 걸그룹이 데뷔했다. 매년 20팀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대중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그룹은 몇 팀이나 될까?

지난 17년간 데뷔한 376개 걸그룹 목록을 살펴봤다. 소녀시대, 트와이스, 블랙핑크, 뉴진스 등 빅히트를 기록한 걸그룹부터 로켓펀치, 프리스틴, 라붐 등 이름을 들으면 ‘아!’하고 떠올릴 수 있는 그룹까지 모두 합쳐도 채 60개가 되지 않았다.

지난 2014년에는 무려 37개 걸그룹이 새로 데뷔했다. 그야말로 '걸드러시(걸그룹+골드러시)'의 시대였다. 이 해 데뷔한 걸그룹 중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팀은 마마무, 레드벨벳, 러블리즈 정도다. 이 원고를 읽는 독자 대부분은 같은 해에 데뷔한 원피스, 풍뎅이(걸그룹 이름 맞다), 스칼렛, 베리굿 같은 걸그룹은 몰랐을 것이다.

20:8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파레토 법칙(Pareto's Law)이 걸그룹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20:80의 법칙

파레토 법칙은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평등한 경제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상위 20%가 전체 생산의 80%를 해낸다’ 혹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로 활용되는 파레토 법칙은 일반 사회 현상을 설명할 때도 종종 유용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프로 야구 리그 전체 연봉의 80%를 상위 20% 선수들이 받아간다든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 중 실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백화점의 VIP 고객 마케팅도 파레토 법칙을 응용한 사례다. 상위 20% 우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므로, 이들에게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계산이다.

왼쪽 세로축의 파란색 막대는 각 그룹이 멜론 차트에 진입한 총 횟수, 오른쪽 세로축의 빨간색 선 그래프는 1위부터 차트의 누적 점유율. 멜론 차트에 진입한 걸그룹 중 상위 20%가 전체 차트 진입 횟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걸그룹 시장에서도 파레토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376개 걸그룹 중 음원이 멜론차트에 유의미하게 차트인(chart-in)한 적이 있는 194개의 걸그룹을 추린 것이다. 소녀시대가 가장 많은 596회, 트와이스가 594회 차트에 누적 진입했고, 아이즈원·스테이씨·I.O.I(122회), 써니힐(121회)까지 총 34개의 걸그룹이 전체 누적 차트인 횟수의 80%를 차지했다.

194개 걸그룹 중 34개(17.5%) 걸그룹이 80%를 차지하고 있으니 파레토 법칙보다 더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차트에 진입한 적 없는 걸그룹까지 포함하면 9%(34/376)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어쩌면 이것은 걸그룹 데뷔 후 성공 가능성인지도 모르겠다.

걸그룹 시장은 진입하기에 좋은 시장일까 나쁜 시장일까?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 아니 인류 역사가 보여준 만고의 법칙이기도 하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20%가 80%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20%가 얼마나 자주 바뀌느냐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가 얼마나 독점하느냐보다는 얼마나 자주 바뀌느냐를 기준으로 시장의 건강성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그래프는 2019년과 2022년 인스타그램에서의 걸그룹 언급량을 비교한 표다. 상위 1~5위 걸그룹의 순위가 모두 바뀌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 시장의 독과점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대표적 방법인 허핀달-허쉬만 지수(HHI, Herfindahl-Hirschman Index)를 이용해 살펴보자.

HHI 지수는 특정 분야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을 제곱한 합으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A사와 B사의 시장 점유율이 각각 25%와 10%라면 제곱의 합은 735가 된다. 숫자가 클수록 시장 집중도가 높아 진입이 어렵다는 뜻이다. 반대로 숫자가 낮으면 경쟁이 활발하니 진입해볼만한 시장이라는 의미가 된다. 어떤 경우든 점유율의 총합은 100%이기 때문에 HHI 지수의 최대값도 1만이다.

일반적으로 100 이하면 경쟁이 심하지 않은 시장, 100~1500은 덜 집중화된 시장, 1500~2500은 어느 정도 집중화된 시장, 2500 초과는 독과점이 심하니 진입을 단념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HHI 지수를 국내 빅4(SM, JYP, YG, 하이브) 기획사에 대입해보자. 참고로 어도어처럼 1개 걸그룹만으로 꾸려진 경우라면 정확한 매출액을 알 수 있으나, SM이나 JYP처럼 여러 그룹이 속한 경우는 각 걸그룹의 매출액을 구분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 언급량으로 대체해보고자 한다. 언급량이 바로 인기의 척도이자 매출의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2010년 YG가 2ne1을 데뷔시킨 지 1년이 지났을 때 주요 걸그룹의 온라인 언급량은 다음과 같았다. 소녀시대 26%, 카라 11%, 티아라 11%, 2ne1 8.5%, 포미닛 6.8%, f(x) 6.6%, 애프터스쿨 5.5%, miss A 4.8% 순이다.

여기서 빅 4 기획사 소속은 소녀시대와 f(x), miss A, 2ne1이고, 이들 점유율의 제곱을 모두 더하면 814.85였다. 그런데 5년 뒤인 2015년 걸그룹 시장의 HHI 지수는 234.83 으로 매우 낮아진다. 중소 신규 기획사가 진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장이었던 셈이다. 바로 직전 해인 2014년 37개나 되는 걸그룹이 데뷔했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이어 2019년은 트와이스 17.5%), 블랙핑크(16.0%), 소녀시대(6.3%), 레드벨벳(4.2%), ITZY(2.6%) 등 626.34로 늘어났고, 2022년은 블랙핑크(18.9%), 뉴진스(15.3%), 소녀시대(9.3%), 에스파(7.8%), 트와이스(6.8%), 르세라핌(5.4%), 레드벨벳(4.3%), ITZY(2.1%)를 합쳐보니 786.28로 집계됐다.

2015년과 비교하면 HHI 지수가 다소 오르긴 했지만, 걸그룹 시장은 지금도 여전히 도전해 볼만한 시장, 기회의 땅이라는 의미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걸그룹이 탄생할 것이다. 어떤 전략과 매력을 가진 걸그룹이 미래의 시장을 지배하게 될까. K팝 덕후의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이유다.


Data 바이브컴퍼니 김종민 님

Edit 정경화 Graphic 이은호・함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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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1997년 11월, TV에서 본 SES의 I'm your girl 데뷔 무대는 강렬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후 25년간 줄곧 K걸그룹을 좋아했으며, 걸그룹과 경제학의 관계를 데이터로 들여다보는 글을 썼다. 2017년 책 '걸그룹 경제학'을 공저했다.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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