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은행은 어떻게 돈을 만들어낼까?

by 김경곤

에디터 G (이하 G): 박사님, 오늘도 뉴스 기사로 시작하게 됐네요. 최근 기사에서 일부 새마을금고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 있었다는 내용을 봤어요.

박사 K (이하 K): 맞아요. 기사에 나왔던 해당 새마을금고가 부동산 사업에 거액을 대출해 줬는데, 부동산 경기 악화로 해당 대출에 문제가 생기자, 이곳에 돈을 예금한 사람들이 혹시라도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돼서 아침부터 줄을 서게 된 것이죠.

G: 아하...! 은행에 맡겨둔 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던 거군요.

K: 네, 현재의 은행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예금자들의 대량 인출 사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요. 오늘은 은행이 통화를 창출하는 원리와 함께 이런 사태가 촉발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통화량의 개념부터 알아보죠. ‘통화’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뭐죠?

G: 돈이요! 물건을 사고팔 때 꼭 주고받는 것이니까요.

K: 맞습니다. 즉 현금이죠. 여러분 지갑과 주머니에 들어있는 동전과 지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현금 기준으로 통화량을 측정한다면, 시중에 1억 원의 현금이 있는 경우 통화량은 얼마가 될까요?

G: 1억 원이 되겠죠?

K: 그렇죠. 자, 이제 통화량을 계산할 때 현금 뿐 아니라 ‘은행의 예금’까지 함께 고려해보도록 하죠.

이 1억 원의 현금을 가진 주인공은 A라는 사람이에요. A가 1억 원을 가가은행에 예금한다 가정해 볼게요. 이제 가가은행 금고에는 A가 예금한 1억 원이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G: 은행은 예금으로 맡겨진 돈을 금고에 그냥 가만히 보관만 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어요.

K: 맞아요. 가가은행은 A가 이 돈을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어떻게 할까요? A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빌려줍니다. A가 예금한 1억 원 중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 돈은 돈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거예요. 1억 원 중 10%인 1,000만 원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중앙은행의 금고에 보관하고, 나머지 90%인 9,000만 원을 B라는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것이죠.

G: 이럴 수가! 금세 B에게 9,000만 원이 생겼네요?

K: 네, 통화량은 이렇게 변하는 겁니다. 원래는 현금 1억 원이 전부였죠? 이제 A의 가가은행 통장에 찍혀 있는 1억 원의 잔고에 B가 빌린 9,000만 원을 합하니 통화량이 1억 9,000만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G: 신기하네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돈 복사'군요... 그런데 은행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10%를 보관해 둔다 하셨잖아요. 이 비율은 항상 지켜져야 하는건가요?

K: 좋은 질문이에요. 예금액 중 대출 용도로 쓰이지 않고 중앙은행에 보관해야 하는 돈을 ‘지급준비금(reserves)’라 해요. 예금액 대비 지급준비금의 비율은 ‘지급준비율'이라 하고요. 이 지급준비율에 따라 은행이 대출해줄 수 있는 돈의 크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급준비율이 5%가 되면 은행은 1억원 중 5%인 500만 원만 남겨두고, 나머지 9,500만 원을 빌려줄 수 있고요. 지급준비율이 20%가 되면 2,000만 원은 남겨두고, 나머지 8,000만 원만 빌려줄 수 있겠지요.

즉, 이 비율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모든 은행은 이 비율만큼의 돈은 건들지 않고 중앙은행에 반드시 보관해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율을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어요.

G: 자세히 설명해주신 덕분에 잘 이해됐어요! 그럼 9,000만 원을 빌린 B는 그 돈을 어떻게 쓰려나요?

K: B가 대출로 빌린 9,000만 원은 그대로 나나은행에 예금한다 가정해보죠. 나나은행도 B가 예금한 9,000만 원의 10%인 900만 원을 지불준비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8,100만 원을 C라는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통화량은 또 늘어나겠죠. A의 가가은행 통장에 있는 1억 원, B의 나나은행 통장에 있는 9,000만 원, 그리고 C가 빌린 8,100만 원을 다 합해서 2억 7,900만 원이 됩니다.

G: 놀랍네요. 첫 시작은 1억 원이었는데… 거의 3배로 늘었어요.

K: 벌써 놀라면 안 될텐데요. 돈 복사는 반복 또 반복됩니다. C가 대출금 8,100만 원을 다다은행에 예금하면 10%인 810만 원을 지불준비금으로 남기고, 나머지 7,290만 원을 D에게 또 빌려줄 수 있겠죠.

최초에는 1억 원에 불과했던 통화량은 은행의 대출 시스템을 통해 점점 증가하게 됩니다. 이렇게 은행이 예금액 중 지불준비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대출해줌으로써 새로운 통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가리켜 ‘신용 창출(credit creation)’이라 불러요.

G: 돈 복사가 반복된다 하셨는데… 최초 1억 원이었던 통화량은 은행의 신용 창출을 통해 얼마나 증가할 수 있나요?

K: 먼저, 앞에서 살펴본 은행을 통한 예금과 대출 과정을 정리해보죠.

이것을 다 더해주면 다음과 같아집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배웠던 무한급수의 합에 대한 공식을 기억하시나요?

통화량 식에 이 공식을 적용해보죠.

G: 와, 은행의 신용 창출을 통해 통화량이 10억 원이 됐네요. 무려 10배나 증가했어요. 실제 돈은 1억 원인데… 시장에 풀려있는 돈은 10억 원이 된 셈이군요.

K: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은행은 고객들이 예금한 돈의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대출 시스템을 통해 빌려주는데요. 이 과정에서 은행은 예금 금리(수신 금리)와 대출 금리(여신 금리)의 차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금 금리가 3%, 대출 금리가 5%라면 은행은 둘의 차이인 2% 포인트 만큼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죠.

G: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은행의 ‘예대마진'이군요.

K: 맞아요. 그런데 이렇게 대출을 통한 신용 창출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어요. 혹시 무엇인지 알겠어요?

G: 통화량은 10억 원인데, ‘실제' 돈은 1억 원이라는 점 아닐까요? 만약 돈을 맡겨둔 사람들 중 여러 명이 다시 찾아가겠다고 해서 실제 돈인 1억 원 이상을 돌려줘야 하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걸까요?

K: 아주 잘 찾아냈어요. 은행들은 예금액의 일부만 지급준비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빌려준다 했잖아요. 이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전액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맡긴 돈을 다시 찾으려 할 때 지급준비금과 신규 고객들의 예금액만으로도 별 문제 없이 돈을 돌려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만약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돈을 찾아가겠다고 한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G: 그러게요. 당장 돌려줄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은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맡겨둔 돈을 돌려달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K: 아까 설명드렸던 ‘지급준비율' 기억하시죠? 지급준비율이 10%라는 건, 은행이 지금 되돌려줄 수 있는 돈은 전체 예금액의 10%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90%는 지금 당장 돌려줄 여력이 안 될 거예요.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줬을테니까요.

그리고 예금은 일반적으로 기간이 짧아서 예금자가 원할 때면 언제든 인출할 수 있지만, 대출은 보통 긴 기간에 걸쳐 이뤄집니다. 그 결과, 예금자들은 단기간 내에 은행에게 내 돈을 돌려달라 요구할 수 있지만, 은행은 대출 만기가 남은 고객들에게 지금 당장 돈을 갚으라 요구할 수 없는 것이죠.

이와 같이 평상 시에는 지급준비금 만으로도 은행 시스템이 별 문제 없이 돌아가지만, 뱅크 런(bank-run)이라 불리는 단기간의 대규모 집단 인출이 발생하면 돈을 다 돌려줄 수 없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G: 그렇군요. 최근에 뱅크 런 사태에 대해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져서 궁금했는데, 은행의 시스템과 원리를 알고 나니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네요. 그런데 은행에는 예금과 대출 말고도 또 다양한 금융 상품이 있지 않나요? 뱅크런을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K: 대차대조표를 통해 은행의 자산과 부채, 자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죠.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어요.

왼쪽 ‘자산(Assets)’에는 현금,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y) 등의 유가증권, 그리고 고객들에게 빌려준 대출금으로 구성됩니다. 오른쪽 ‘부채(Liabilities) 및 자본(Equity)’에는 고객들의 예금, 은행이 차입한 채무, 그리고 주식 소유주들로부터 조달한 자본이 위치하고요.

G: 대차대조표는 뭐예요? 어떻게 사용되나요?

K: 에디터님도 가계부 쓰시죠? 기업도 가계부를 쓰는데요. 기업의 가계부는 개인의 것보다 아무래도 좀더 복잡하겠죠.

기업의 가계부라 할 수 있는 ‘재무제표’의 한 종류가 대차대조표예요. 대차대조표는 일정 시점 그 기업의 재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장부예요.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 얼마나 투자했고, 빚(부채)을 갚기 위해 현금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산은 얼마나 있고, 주주들은 얼마 정도 자본을 투자했고… 이런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G: 오, 되게 많은 정보를 품고 있군요. 그런데 보여주신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생각보다 심플하네요?

K: 네, 대차대조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오늘은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봤어요. 대차대조표는 오른쪽과 왼쪽의 합이 항상 같아야 하는데요. 만약 왼쪽에 있는 자산의 가치가 줄어들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얼마 전 파산한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ilicon Valley Bank)이 그 사례인데요. 고객들로부터 많은 예금을 유치해서 이 돈으로 미국의 장기 국채에 대규모로 투자를 했어요.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자, 보유하고 있는 장기 국채의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 채권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이유는 김경곤 (2022),『경제의 질문들』의 10장을 참고하세요.

국채 가격 하락은 이 은행의 자산 감소로 이어졌고, 이에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돈을 돌려주기 위해 실리콘밸리은행은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처분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 주가는 급락했고, 그 결과 더 거대한 규모의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하게 되어 결국에는 파산에 이르게 됐어요.

G: 워낙 많이 다뤄졌던 뉴스라 기억이 나네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관심을 많이 가졌던 주제였던 것 같아요.

K: 최근 우리나라도 부동산 시장의 경색으로 일부 부동산 사업과 관련된 대출 채권의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대출의 부실화가 금융 기관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불안함을 느낀 예금자들의 대량 인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요.

오늘은 은행이 대출을 통해 어떻게 통화를 만들어 내는지, 이런 대출 시스템은 어떤 구조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 경제 뉴스를 볼 때 이런 점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Edit 금혜원 Graphic 조수희 엄선희

해당 콘텐츠는 2023.7.19.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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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곤

동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이며, 거시경제와 국제금융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돈, 경제, 세상의 흐름에 대한 책 ≪경제의 질문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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