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계약

월세 계약, 길게 하면 왜 깎아줘요?

by 김경곤

에디터 G (이하 G): 교수님,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뉴스를 봤는데요.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그 결과 2023년 4분기 기준 미국 주요 도시들의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20%에 육박했다 하더라고요.* 워싱턴에 있는 한 건물은 사무실로는 임대가 잘 안 되어서 주거용 아파트로 바뀌었다 하고요.**

* Offices Around America Hit a New Vacancy Record. (The Wall Street Journal) ** 드넓은 땅 미국에 고층 아파트가 늘어나는 까닭은? (한국일보)

사무실 공실이 많아 보이는 샌프란시스코 도심 내 건물들 (사진 = Reuters)

교수 K (이하 K): 사무실 공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건물주 입장에서 반갑지 않을 거예요. 만약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면 매월 이자를 내야 하는데요. 세입자들의 월세로 이자를 내고 있던 건물주라면 공실로 인해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세가 끊길 것이고, 다른 곳에서 돈을 조달해야 할 겁니다. 요즘처럼 시중 금리가 높을 때는 그 부담이 더욱 커지겠죠.

G: 그렇겠군요. 건물주에게 부담스러운 소식일 수밖에 없겠어요.

K: 그래서 건물주는 건물을 그냥 비워 두는 선택을 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해요. 다양한 방법으로 장기 계약을 맺을 임차인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월세를 깎아주거나, 특정 기간 동안 월세를 면제해주거나, 내부 인테리어를 보수하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거예요.

실제로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월세는 그대로 유지하되 특정 기간 동안 월세를 면제해주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G: 건물주 입장에서 월세 면제 조건을 가장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K: 월세는 상업용(수익형) 건물의 가치를 계산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연간 임대 수익과 부동산의 가치는 정비례합니다. 월세가 올라가면 건물 가치가 올라가고, 월세가 떨어지면 건물 가치도 떨어지는 것이죠. 따라서 건물주 입장에서는 월세를 깎아주면 나중에 해당 건물을 매각하는 상황이 올 때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공실률이 높아지더라도 월세를 깎아주는 경우를 잘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G: 아하! 어떤 건물의 월세가 200만 원이고 첫 달 월세를 면제해주는 조건이라면, 1년 빌리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연간 2,400만 원이 아니라 2,200만 원만 내면 되는 거겠네요.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저렴한 가격에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고,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시된 월세를 지키면서 부동산 가격도 지키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겠군요.

K: 맞아요. 더 길게 계약할 수록 월세 면제 혜택이 커질 수 있어요. 최근 기사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건물은 15년 동안 장기 계약을 할 경우, 3년 6개월에 해당하는 월세를 빼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건물의 월세가 1,000만 원이라 한다면, 15년 동안 내야하는 월세 합계 18억 원(=1,000만 원*180개월) 중 3년 6개월에 해당하는 4억 2,000만 원(=1,000만 원*42개월) 만큼의 월세를 면제해주는 것이죠.

G: 이 경우 역시 월세 할인은 건물 가치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월세 면제라는 조건을 선택한 것이군요.

K: 주거용 부동산을 가진 집주인들도 비슷한 선택을 해요. 다만, 상업용 건물 대비 집을 매도하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월세를 할인해주는 조건이 꽤 많습니다.

G: 집주인 입장에서도 현금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이겠죠?

K: 그렇죠. 집주인 입장에서는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 이외에도 (단기 계약에 비해) 장기 계약이 주는 여러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단기로 계약을 하면 임차인이 나갈 때마다 임대 광고를 해야 하고, 집에 문제가 없는지도 자주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줄 때마다 약속을 잡고 시간을 써야 하죠. 중개인을 통해 거래를 한다면 중개비도 계약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고요.

이와 같이 집을 실제로 빌려주는 데까지 수반되는 여러 비용들을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라 하는데요.* 장기 계약을 맺으면 이러한 거래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으니, 그만큼 월세를 할인해 줄 이유가 생기는 겁니다.

* Williamson, Oliver E. "Transaction cost economics: The natural progression." American Economic Review 100.3 (2010): 673-690.

G: 집주인, 상업용 건물 임대인은 무조건 단기 계약보다 장기 계약을 선호할까요?

K: 그렇지만은 않아요. 장기 계약이 단기 계약보다 항상 좋지는 않거든요.

만약 장기 계약을 맺은 임차인에게 문제가 있어도,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퇴거를 요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주변 지역의 월세 시세가 오른다 해도, 계약 기간 동안에는 월세를 올리기가 힘들어요. 장기 계약을 맺었다면 다른 집 월세가 오르는 동안 기존 가격을 유지해야 하죠. (단기 계약일 경우 임대인은 더 쉽게 월세를 올릴 수 있겠죠)

무엇보다 그 집이 정말 좋은 집이라면, 임차인에게 장기 계약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면 자발적으로 갱신하려 할 거예요. 꼭 장기 계약을 고집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죠.

임차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요. 장기 계약을 하면 나중에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사를 가야할 때, 그동안 받은 월세 할인액보다 더 많은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G: 비슷한 예로 인터넷 장기 계약 할인의 슬픈 상황이 떠오르네요. 인터넷 계약을 3년짜리로 하면서 할인을 받았는데, 더 좋은 요금제가 생겨서 갈아타려고 하니 ‘중간에 해지하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유지해야 했거든요.

K: 맞아요. 이런 점들을 종합해보면, 장기 계약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월세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임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다면 월세는 오르게 됩니다. 이런 때엔 장기 계약이라 해도 굳이 할인해 줄 이유가 없겠죠. 할인을 안 해도 임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반대로 최근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을 때는 월세는 (앞에서 살펴본 면제 조건 등 간접적으로) 내려가게 되고요.

지난번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비싼 가격도 영원할까?” 아티클에서 살펴본 것처럼, 월세도 결국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요. ‘시장 가격’의 향방은 늘 일정하지 않고, 시장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존재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Edit 금혜원 Graphic 조수희

해당 콘텐츠는 2024.3.26.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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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곤

동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이며, 거시경제와 국제금융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돈, 경제, 세상의 흐름에 대한 책 ≪경제의 질문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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