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그것은 심리야

by 이영균

우린 정말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집값이 올랐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집을 산 걸까? 

물건이 많다. 옷이 가득하다. 신발도 빼곡하다. 읽지 않는 책이 산더미다. 식료품도 탑처럼 쌓여있다. 강아지 장난감과 종류도 다양하다. 더군다나 강아지는 집을 두 채 가진 2주택자다. 여기에 일할 때 쓰는 노트북과 맥북, 아이패드까지 가졌다. 생활에 필요한 건 다 갖췄다. 한데 왜 나는 계속 새로운 걸 찾아 헤맬까.

며칠 전엔 인스타그램을 하다 흠칫 놀랐다. 집에서 뒹굴 때 편히 입을 티셔츠를 검색했더니 그때부터 무인양품 광고가 나를 쫓았다. 검색 패턴을 파악한 알고리즘이었는데, 무인양품씩이나 되는 글로벌 브랜드가 내 취향을 몰래 추적한 사실에 몹시 분개한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고 즉각 ‘구매’ 버튼을 눌러 티셔츠를 주문했다.

물질만능주의자라고? 그저 ‘시대정신’을 따랐을 뿐이다. 무슨 거창한 소리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시대정신은 어느 시대 많은 이가 추구하는 보통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퍼진 ‘부자 되기’라는 흔한 가치를 따랐다. 이에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내 존재를 확인해 줄 수 있는 물건을 몽땅 사 모았다. 아마 당신도 이 목소리를 기억할 거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어젯밤 나는 우연히 한 기사를 읽고 흥분했다. 기사 제목은 이랬다. ‘바보야, 부동산은 심리야’. 무슨 얘긴가 하니, 사람들이 심리적 요인에 휩쓸려 물건을 사는 것처럼 부동산시장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멋진 걸 고르는 내 고결한 취향이 군중심리의 산물이라고? 거대한 부동산시장이 겨우 주변인에 휩쓸려 작동한다고? 그럴 리가! 이참에 부동산 뉴스레터를 만드는 내가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복잡다단하게 결정되는가 증명해 주지. 암 그런 건 문제없지!

문제가 없기는커녕, 문제투성이였다. 현시점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건 ‘심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지금 부동산 기사가 가장 빈번히 다루는 세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수도권 아파트 매수심리, 왜 계속 오르나?
  2. ‘고점’ 경고에도 최고치 찍은 아파트 매수심리
  3. 이번에 못 사면 나중에 어떤 일이?

많은 부동산 기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심리에 대해 말한다. 마치 여름이 끝나기 전 수많은 공포 영화가 서둘러 개봉하듯이, 부동산시장이 가장 뜨거운 시점에 다다르자 기사 장르를 죄다 심리물로 바꾼 것이다. 부동산에서 말하는 심리? 대단한 건 아니다. 집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내적 특성과 정신, 정서적 행위에 집중한다는 건데, 쉽게 말해 이런 거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집값이 올랐다는 소식에 복장이 터질 것 같아 너도나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동산시장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서울 부동산시장은 2014년부터 상승했다. 사람들은 집값이 오를 때마다 집을 샀다. 남이 누리는 기회를 놓치기 싫은 FOMO(Fear of missing out)가 발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매수 심리를 이야기하는 기사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부동산에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긴 상승장은 다양한 성공담을 만들었고, 주변 성공담에 혹해 뛰어든 이들은 또 다른 성공담을 만들었다. 상승장이 계속될수록 우리는 점점 폭락의 두려움을 잊었고, 부동산시장에서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뭐든 사야 한다’는 불안 또는 ‘나도 집으로 돈 좀 벌어보자’ 같은 욕망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심리는 더욱 공고해졌고, 이 심리를 공유하는 ‘군중’에 속한 나는 더는 내가 아니었다. 그저 집단의 심리에 휩쓸려 달리는 KTX에 올라탄 잃어버린 ‘나’일뿐.

이 글을 쓰는 2021년 8월 23일 현재, 수도권 아파트값은 7개월째 오르며 누적 상승률 11%를 넘겼다. 2003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1~7월 누적 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지난 7월 수도권 부동산시장 소비심리지수다. 소비심리지수는 0~200 범위로 나오는데, 100이 넘으면 지난달보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응답자가 많았음을, 100 미만이면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응답자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7월, 아파트값이 오르고 있음에도 소비심리지수는 여전히 130(정확히는 130.9)을 넘어섰다. 지금도 많은 이가 ‘아파트값 상승’에 배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도 부동산시장에서 심리가 분출된 게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부동산시장에서 심리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의 쌍곡선에서 이뤄지는 결정체다. 나는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반나절 간 구글을 뒤져 찾아냈다. 바로 ‘선택지지편향(Choice-supportive bias)’과 ‘후회 회피 성향(Regret Aversion)’이다. 전자는 어떤 행동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게 옳았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 걸 말한다. 부동산시장에서라면 ‘영끌’해 산 집이 폭락해 집이 망해가고 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케이스다. 후자는 나중에 후회하는 게 두려워 에라 모르겠다며 추격 매수하는 케이스다. 2014년 이후 우리 부동산시장에서 이 두 가지 심리의 지분은 이성의 그것보다 많았다. 심지어 이는 한번 불붙기 시작하면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의 심야 데이트처럼 브레이크도 없었다.

하나 덧붙여, 나는 ‘지금 당장’ 이익이 되는 특성을 좇는 인간 습성이 우리 부동산시장을 움직이고 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집을 살지 말지 고민하면서 ‘아, 이 아파트를 사면 나중에 손자뻘 되는 녀석이 장가갈 때쯤 도움이 되겠군, 좋아 이걸로 하자’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미래를 구상하고 각종 수치나 그래프를 연구한다든지 하는 것도 당연히 없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익이 되는 가치를 무조건 따른다. 고심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잠깐. 나는 지금 집값이 오르는 원인이 군중심리에 있으니 다들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냥 부동산시장이 돌아가는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인간은 원래부터 어처구니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거다.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심리학자인 그는 인간이 이성보다 감성에 따라 판단하고 소비한다는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탔다. 실은 어젯밤 나를 흥분시킨 서두의 기사도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Gustav Le Bon)의 <군중심리>를 예로 들었다. 대략 125년 전에 쓰인 이 책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군중은 고립된 개인으로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이 심리를 대체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 글쎄, 그런 환상적인 방법이 있다면 누군가 제발 내게 메일로 알려주길 바란다. 다만 한 가지 진리는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붐과 폭락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 붐 없이 폭락 없고 폭락으로 끝나지 않는 붐도 없다. 그러니 집값이 폭락하고 집을 산다는 계획은 빨리 던져버리자. 내가 산 집은 폭락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새로 배달된 무인양품 티셔츠를 입고 이 글을 쓴다. 실은 같은 티셔츠를 이미 여섯 장이나 가졌다. 그럼에도 다시 글로벌 브랜드가 구현한 알고리즘의 노예가 됐다. 모양과 색이 같은 티셔츠가 일곱 장이나 옷장에 걸려 있는 멍청한 시추에이션을 미리 떠올리지 못했다. 정녕 이렇게 살아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왜 계속 새로운 걸 찾아 헤맬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 새롭긴 한 걸까.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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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균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이자 뉴스레터 부딩 대표. Noblesse, artnow, GEEK 등을 거쳐 현재 부딩에서 밀레니얼을 위한 부동산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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