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사회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by 박병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일까? 의지가 나약하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일까?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달리해야 한다는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때로 ‘결과’가 ‘과정’을 결정짓는다. 하지만 살아보면 안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도 때론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는 것을. 그것이 인생이다. 

평생을 성실한 목수로 살아왔지만 심장병을 앓으면서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된 노년의 남자가 수당을 받기 위해 정부에 도움을 구한다. 묵묵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떳떳이 살아왔기에 당당하다. 그래서 요구한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가난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관료화된 복지제도 속에 살아가는 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평생 시민의 의무를 다하면 살아왔다면 노동력을 상실한 지금, 그는 사회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것이 시민의 권리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잉태한 작은 정부는 위기에 빠진 시민을 구제하는 데 인색하다.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미룬다. 그러면서 수치심과 굴욕을 안긴다. 수당과 보조금을 받기 위해 과연 시민들은 굴욕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 헐거운 복지제도는 도처에 사각지대를 만든다. 

수당을 받기 위해서라면, 굴욕을 견뎌야 하는가

주치의는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된 블레이크에게 일을 그만둘 것을 권고한다. 마땅한 연금도 없는 터라 일을 그만두면 당장 수입이 없어진다. 질병으로 일을 그만둔다면 질병수당 대상이 된다. 비의료인인 상담사는 수급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매뉴얼로 따진다. 매뉴얼이 주목하는 것은 사지를 쓸 수 있는지 여부다. 주치의의 소견은 반영하지 않는다. 상담사는 별다른 외상이 없는 그를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판정한다. 질병수당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임대료와 전기료, 가스료를 내지 못할 상황. 구직수당이라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구직수당에도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의무적으로 취업교육을 받아야 하고,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빙을 해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신청은 온라인에서만 가능하다. 연필세대인 블레이크에게 온라인은 어렵다. 커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화면 스크롤을 어떻게 조작하는지 모른다. 힘들게 기입을 했더니 이번에는 에러가 난다. 직접 서류 신청을 하는 것은 안 된단다. 답답한 행정은 비단 블레이크만 겪는 게 아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싱글맘 케이티도 마찬가지다. 직원과 약속한 시간 몇 분을 늦었다는 이유로 수당 심사에서 탈락한다. 싱글맘에게 수당은 생명줄이다. 런던에서 뉴캐슬로 갓 이사 온 그녀가 버스를 잘못 타서 늦었다는 해명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블레이크와 케이트는 심적으로 서로를 의지하지만 주머니가 텅 빈 현실 앞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사회의 급성장과 개인의 안위 사이

영국의 복지가 강퍅하게 된 것은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수상이 집권하면서다. 1979년 총선거에서 보수당 승리로 집권한 대처는 복지를 위한 공공지출 삭감, 세금 인하, 노동조합 규제, 국영기업의 민영화, 긴축을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 금융규제 완화, 작은 정부 등을 단행한다. 대처의 이같은 정책을 ‘대처리즘’이라 부른다. 대처리즘은 너무 강한 노조와 복지 의존으로 무기력에 빠진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이었다.

그리하여 영국 경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성장을 시작한다. 그녀의 11년 재임기간 중 연평균 성장률은 6.6%에 달했다. 집권 초기 마이너스 성장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결과였다. 하지만 대처리즘은 부작용도 컸다. 집권 기간 중 48개 공기업을 민영화시키고 비효율이 감지되는 공공부문을 폐쇄하면서 1980년 178만 명이던 공기업 종사자 수가 1992년 47만 명까지 줄었다.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새 일자리를 곧바로 찾을 수 없었다. 대처 집권 기간 중 실업률은 3배나 뛰었다. 법질서를 세우겠다며 노조의 시위를 힘으로 누르면서 유혈 사태도 일어났다. 빈부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

대처 총리 집권 시절 10대를 보낸 영국인들은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을 겪으며 각자도생해야 했다. 고착화된 빈부 격차에 무기력감이 커졌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술, 담배, 마약 의존으로 이어졌다. 개인주의적이고 퇴폐적인 성향도 한층 커졌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도 심해졌다. 때문에 생겨난 신조어가 ‘대처세대’ 혹은 ‘대처의 아이들’이다. 

구직센터 벽면에 항의글을 쓴 블레이크가 경찰에 체포되자 한 행인이 소리친다. “저택에 살면서 보조금 깎은 놈들, 당신들(경찰)도 곧 실업자가 될 거다. 빌어먹을 민영화. 망할 보수당놈들. 저희들끼리만 잘났지. 엘리트라 이거야?” 그의 외침에 길 가던 다른 행인들은 박수로 무언의 동의를 보낸다. 

‘블루칼라의 시인’으로 불리는 켄 로치 감독은 대처리즘을 끊임없이 비판하며 노동자, 실직자, 홈리스,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담은 묵직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는 “‘빈민층은 자신들의 빈곤 자체를 탓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층을 지켜주는 핵심”이라며 “그같은 의도적인 잔인함에 대한 분노가 이 영화를 만들게 했다”고 말했다. 2016년 칸 영화제는 이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빈곤의 문제가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지구촌에서 주요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처한 난제다.

한국 노인 빈곤율은 세계 1위

블레이크의 빈곤은 의료비 지출과도 관련이 깊다. 아내 몰리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았고, 블레이크는 많은 치료비와 간병비를 써야 했다. 부양해줄 자식도 없다. 비단 영국 노인 블레이크뿐 아니다. 한국의 처지도 비슷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 노인들의 상대적 소득빈곤율은 43.8%로 OECD 38개국 중 가장 높고, OECD 평균치인 13.5%보다 3배 이상 높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소득자의 비율을 말한다. 중위소득은 사람들을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이 되는 소득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한국 노인 10명 중 4명은 중간소득을 버는 사람의 절반도 못 벌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노인이 유독 빈곤한 이유는 연금제도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정규 일자리를 그만두는 순간 수입은 끊긴다. 이때는 연금으로 살아야 하는데, 국민연금은 받는 사람도 적고, 받아도 액수가 적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중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40%밖에 안 된다. 사학연금,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수령자를 다 합쳐도 50%다. 그러니까 노인 10명 중 5명은 연금을 못 받는다.

국민연금을 받더라도 수급액이 적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연금 수급자 1인 연금수령액은 평균 52만 원에 불과하다. 연금 수급자의 49%는 월 40만 원 미만을 받는다. 월 100만 원 이상을 받는 사람은 8%뿐이다. 물론 200만 원 이상 받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3000명이 안 된다. 국민연금이 이렇게 취약한 것은 도입이 늦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1988년에 도입됐다. 영국(1908년), 미국(1935년), 일본(1944년)에 비해 훨씬 늦다.

다만 앞으로는 연금 수급자도, 지급액도 지금보다는 늘어난다. 1988년 이후 40년을 가입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속속 연금 수급자가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1966년생은 만 65세가 되는 2031년부터 수급자가 된다. 문제는 이들이 아직 연금을 받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국민연금 고갈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더 내기도, 적게 받기도 싫다

1988년 도입 이후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계속 적립됐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받아가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매년 40조 원가량 쌓인다. 2022년 5월 말 현재 국민연금 적립액은 912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들이 연금을 받는 시점부터는 연금지급액이 보험료 납입액보다 많아진다. 이때부터 급격하게 줄기 시작하는 기금은 2055년쯤 되면 소진된다. 이때가 1990년생이 65세가 되는 때다. 때문에 19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자기소득의 9%를 납부하고 40%를 받도록 설계됐다. 개인에게는 엄청난 수익률이 보장된 것이지만 기금 입장에서는 무조건 고갈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연금 고갈을 미루기 위해서는 연금 개혁이 필요한데, 연금 개혁은 둘 중 하나다. 연금을 최대한 늦게, 적게 받거나, 연금보험료를 많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쉽지 않다. 연금을 늦게, 적게 받을수록 사각지대가 늘어난다. 국민연금은 도입 당시에는 만 60세부터 받도록 설계됐다. 이게 61세, 62세로 늦춰지더니 지금은 65세부터 받는다. 이제는 70세부터 받도록 하자는 논의가 나온다. 늦게 받을수록 일을 더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62세에 정년퇴직을 했는데 70세부터 연금이 나온다면 8년간은 무엇이든 일을 해야 한다. 

연금지급액을 줄이면 생활 보장이 안 된다. 국민연금은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 70%를 약속했다. 소득대체율 70%란 납입자의 일생 평균 소득의 70% 수준을 연금으로 준다는 뜻이다. 이게 60%를 지나 40%까지 낮아졌다. 일생 평균 소득이 200만 원인 사람은 당초 140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80만 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지급 시기를 늦추고 지급액을 줄인 만큼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시점은 지연되겠지만 그만큼 노인 빈곤 문제는 커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적인 복지제도를 만들어 재정을 투입해야 하니 결국은 ‘조삼모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초연금이 그렇게 도입됐다. 기초연금은 2014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면서 노인빈곤 문제가 제기되자 보조수단으로 마련됐다. 기초연금은 빈곤층 노인에게 최대 월 30만 원을 준다. 재원은 전부 정부 재정으로 마련된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받는 국민연금과 달리 기초연금은 한푼도 내지 않고 연금을 받는다. 2022년에만 20조 원이 투입됐고, 수급자는 628만 명으로 국민연금 수급자보다 많다. 그러다 보니 국민연금 수급자와 기초노령연금 수급자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연금지급액을 줄일 수 없다면 매년 납입하는 보험료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보험료를 높이는 것은 저항이 더 크다. 당장 주머니가 빈곤해지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소득의 9%를 내는데, 직장인의 경우 절반(4.5%)을 기업이 댄다. 보험료를 높이면 개인부담도 늘어나지만 기업의 부담도 늘어난다. 때문에 기업주들도 반대한다. 그래서 국민연금 개혁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한다. 연금지급액을 줄이거나, 연금보험료를 많이 내도록 하는 것, 둘 다 어렵다. 

19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못 받는다? 진실은

여기서 질문 하나. 만약 2055년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1990년생부터는 정말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국민연금공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국가가 최종적으로 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에 국가가 존속하는 한 반드시 지급된다”며 “설령 적립된 기금이 모두 소진된다 하더라도 그해 연금 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그해에 걷어 지급하는 이른바 ‘부과 방식’으로 전환해서라도 연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해 걷은 연금보험료에다 재정을 보태 약속한 금액만큼 연금을 지급한다는 뜻이다.

대처 이후 영국사회는 수당 지급에 깐깐해졌다. 관료화된 복지 체계와 높아진 수당 지급 조건들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사지로 내몬다. 케이트는 블레이크의 장례식에서 “국가가 너무 빨리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절규한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시민의 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블레이크가 질병수당 심사 항고에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낭독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그는 끝내 낭독하지 못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개인이 이룬 부는 자신의 능력뿐 아니라 운도 따라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한경쟁에서 이겼다고 승자가 오만해질 이유도, 졌다고 패자가 굴욕을 느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나의 성공에 고맙게도 운이 따라줬던 만큼, 성공의 일정 부분을 운이 따라주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이것이 언젠가 내게 불운이 닥쳤을 때 나를 지켜줄 보호막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이냐’는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진다. 저부담·저복지로 갈 것이냐, 중부담·중복지로 갈 것이냐, 고부담·고복지로 갈 것이냐.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김예솔

– 해당 콘텐츠는 2022. 8. 17.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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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공학 전공 후 경제부 기자가 되었을 때의 좌충우돌이 쉬운 정보 전달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경제라는 쓴 커피에 영화라는 연유를 넣어 달콤한 연유라떼를 내어놓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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