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인간을 먹여 살린 고래들

by 박병률

고래 얘길 안 하기가 쉽지 않아요

2022년 10월 16일.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약 70일간의 야생적응 훈련을 마치고 17년 만에 고향인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5년 제주 한림읍 비양도 인근 해상에서 어업용 그물에 잡혔던 비봉이는 중문동에 있는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으로 옮겨졌고, 이곳에서 고된 훈련을 받은 뒤 공연에 투입됐다. 다행히 돌고래쇼에 관한 동물학대 논란이 커졌고, 대법원은 불법 포획된 남방큰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비봉이를 비롯해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이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언급되면서다. 4화 에피소드에서 우영우 변호사는 ‘썸’을 타는 송무팀 이준호와 강화도 해변가 녹조를 배경으로 대화를 나눈다.

우영우: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가 아기 돌고래들과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준호: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요? 우영우: 수족관에 붙잡혀 돌고래쇼를 하다가 대법원 판결에 의해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입니다. 언젠가는 꼭 보러 갈 겁니다.

삼팔이, 춘삼이는 2013년, 복순이는 2015년 제주 앞바다로 돌아갔다. 국내 수족관에는 8마리의 돌고래가 있었는데 2017년까지 7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고, 마지막 남은 남방큰돌고래가 비봉이였다. 비봉이는 방사 전 해상적응훈련을 받았는데, 빠른 조류와 높은 파도를 견디고 물고기를 직접 사냥하는 등 야생에 잘 적응했다고 한다.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2022년 가장 핫했던 K-콘텐츠 중 하나다. 넷플릭스에서는 28개국에서 주간 비영어권 시리즈 1위를 차지하며 총 시청 시간만 4억 시간이 넘었다. 우영우와 친구 동그라미가 나누던 “우 투더 영 투더 우”, “동 투더 그 투더 라미” 인사를 비롯해 드라마 속 명대사를 한동안 일상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 자폐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특징이 있는데 우영우가 좋아하는 것은 법이다. 우영우가 태어나서 처음 내뱉은 말은 “상해죄!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였다. 법대 출신인 아버지가 갖고 있던 법전을 야금야금 읽다 통째로 외워버린 것이다.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우영우는 대형 로펌 ‘한바다’에 들어가 활약하게 된다. 

그런 우영우가 좋아하는 게 또 있다. 고래다.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향고래부터 대왕고래, 혹등고래, 외뿔고래, 상괭이, 범고래에 양쯔강고래까지 모르는 고래가 없다.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상쾌한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고래가 나타난다. 한바다로 첫 출근하는 날, 아빠는 우영우에게 사람들과 어울릴 때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아빠: 특히 고래 얘기 하지 마.  우영우: 음… 고래 얘기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아빠: 수족관에서 일하냐? 고래 얘기가 꼭 필요한 상황이 어딨어. 우영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합니까? 아빠: 그럼 해야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된 고래,  인간을 먹여 살리다

고래는 오래 전부터 인류와 함께해온 포유류다. 고래 한 마리만 잡으면 많은 사람들의 먹을거리 걱정이 사라졌다. 선사시대 암각화 중에는 고래가 그려진 그림이 많다.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도 그중 하나로, 청동기, 혹은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반구대 암각화에는 범고래, 흰긴수염고래, 귀신고래 등으로 추정되는 여러 마리의 고래와 이 고래들을 잡기 위해 큰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는 어민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원시 포경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인류 최초의 기록 중 하나라서 국보로 지정됐고, 2021년에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 대상으로 선정됐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고래는 식량뿐 아니라 산업으로도 가치가 커졌다.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의 북극해 포경을 시작으로 19세기 미국에서는 포경 산업이 큰 산업을 이뤘다. 그도 그럴 것이 고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고래를 짜내 만든 기름은 가로등과 램프 기름으로 쓰이며 도심의 밤을 밝혔다. 고래 중에서도 향유고래는 단연 인기였다. 한 마리만 잡으면 많은 기름이 나오는 데다 기름은 향이나 화장품 재료로도 쓰였다. 고래에서 뽑아낸 기름은 커다란 술통인 캐스크에 담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영국으로 수출됐고, 맨체스터의 방적기를 돌리는 데 사용됐다.

‘양키 포경’으로 불린 미국 포경산업의 중심은 매사추세츠 주였다. 미국의 포경선은 700척이 넘었고, 포경선을 타는 사람만 1만 8000명에 달했다. 수익성이 워낙 크다 보니 고래는 이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됐다. 대서양의 포경선들은 때로 남태평양까지도 떠났고, 귀항까지는 길면 3년씩이나 걸렸다. 잡으면 잡을수록 고래는 점점 귀해졌고,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기름 수요는 점점 많아졌다. 

사진=로이터

우영우: 향고래는 향유고래라고도 하는데 크고 네모난 머릿속에 경랍 기관이 있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경랍 기관 안에는 향고래가 소리를 내는 데 활용하는 밀랍 같은 액체가 들어있습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읽어 보셨습니까? 그 소설에 나오는 고래가 바로 향고래입니다.

1819년 포경선 에식스호는 미국 매사추세츠 낸터킷 섬에서 출발해 고래잡이에 나선다. 하지만 15개월 뒤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길이 30m, 무게 80톤의 향고래의 공격을 받으면서 10분 만에 침몰한다. 21명의 선원이 남아메리카 서쪽 7200㎞에서 표류한다. 음식도 물도 떨어진 상태에서 이들은 무려 94일을 버틴다. 최종 생존자는 8명. 22년 뒤인 1841년 포경선을 탄 허먼 멜빌은 에식스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쓴 소설이 ⟪모비딕⟫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에서 가장 알려진 건 1등 항해사 스타벅이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여기서 유래됐다. 소설 출간 130년 후인 1971년 두 명의 교사와 한 명의 작가는 항구도시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에서 자그마한 커피전문점을 열면서 상호를 ‘스타벅스’로 붙였다. 일각에는 소설 속 스타벅이 커피를 좋아해서 ‘스타벅스’라는 상호가 착안됐다고 하지만 소설 속에는 스타벅의 취향에 대한 얘기가 없다. 스타벅스는 홈페이지에서 여신 사이렌을 자사의 로고로 정하고, 상호를 ‘스타벅스’로 정한 데 대해 “초기 커피 무역상들의 항해 전통과 열정 그리고 로맨스를 연상시키고자 했다”고 밝혔다. 

1850년대 미주 대륙 연안에서 향고래는 거의 사라졌고, 1900년대 초에는 북극에서도 북극고래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고래를 살린 것은 석유였다. 육지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더는 고래기름이 필요치 않게 됐다. 선원들은 배에서 내려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떠났다. 양키 포경은 1925년 막을 내린다. (*참고 자료: ‘콜 미 이슈마엘 – 최명애의 고래 탐험기’, 경향신문)

한국에는 고래 뼈조차 남지 않았다

우영우는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가 아기 돌고래들과 함께 헤엄치고 있는 제주도를 좋아하지만, 국내에서 고래로 유명한 도시는 울산이다. 선사시대 포경기록인 반구대 암각화를 차치하고도 울산에는 근대 포경산업의 중심지 장생포가 있다. 한국의 포경역사는 장생포에서 시작해 장생포로 끝난다. 1899년 러시아 포경업자들은 장생포에 포경기지를 건설했고, 1985년 마지막 포경선이 장생포로 들어온다. 장생포는 한국의 낸터킷이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 포경을 독점했다. 장생포 등 6곳에 포경기지를 세워 고래들을 잡아들였다. 해방이 되자 일제시대 어깨너머로 고래 잡는 법을 배웠던 사람들이 포경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기 시작했다. 귀신고래, 참고래, 밍크고래가 주로 잡혔다. 일본으로는 질 좋은 살코기를 수출했고, 남은 고래고기는 울산, 부산 등의 식당에 팔았다. 고래 껍질로 만든 기름은 공장이나 가정에서 썼고, 고래 뼈를 갈아서 만든 비료는 밭에 뿌려졌다. 어려웠던 시절, 고래는 뭐 한 점 버릴 게 없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래서 장생포에는 외국의 포경항과 달리 남아 있는 고래 뼈가 많지 않다.

1970년대가 되자 한반도 주변에서 고래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 1986년 국제적으로 상업포경 금지를 앞두고 1985년 국내 포경은 끝이 난다. 이들 일부는 원양어선으로 옮겨 다시 배를 탔다. 당시 참치를 잡던 한국의 원양어업이 절정기였다.

초기 서구의 산업을 포경산업이 이끌었다면 초기 한국의 산업을 이끈 것은 원양어업이었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 아무것도 없던 한국인들은 이역만리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기회를 찾아야 했다. 1958년 1월 22일 지남호는 남태평양 참치 시범조업을 위해 부산을 출발해 한 달 만에 사모아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건조한 수산시험선을 개조한 지남호는 워낙 노후해 항해하는 동안 수시로 고장난 기관과 발전기를 고쳐야 했다. 사모아 해역에는 53척의 일본 배가 조업하고 있었다. 첫 조업에 나선 3월 1일 지남호 선원들은 선상에서 3·1절 기념식을 갖고 “고기를 잡는 것은 나 개인만이 아니고 조국을 위한 길이다. 많은 고기를 잡아 귀한 외화를 획득하자”고 결의했다. 하지만 참치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낚시를 달아야 하는지, 수심을 어떻게 맞출지, 미끼는 제대로 달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3일을 허탕친 3월 4일 새벽 낚싯줄에 길이 150㎝의 날개다랑어가 걸려 올라왔다. 한국 원양어선이 남태평양에서 처음으로 고기를 잡은 순간이었다.

지남호가 1년 3개월간 시험조업을 마친 뒤 한국 원양어선이 줄줄이 투입됐다. 미국의 원조자금을 받아 일본에서 건조한 배들이었다. 실습항해사로 지남호에 승선했던 20대의 김재철씨는 3년 뒤 지남 2호의 선장으로 사모아를 다시 찾았다. 그는 많은 어획량을 올려 ‘캡틴 제이씨 킴(Captain J C Kim)’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국내 최대 수산물가공회사인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이다.

1971년 원양어업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의 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이렇게 벌어온 달러는 중화학공업에 투자됐고, 한국의 근대산업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는 대형고래 13종의 상업적포경을 금지했다. 예외적으로 아이슬란드 포경, 일본의 과학적 포경, 원주민 포경은 허용되는데 포경 규모는 매우 제한적이다. 예컨대 알래스카 마을 한 곳이 연간 잡을 수 있는 고래의 수는 10마리 정도다.

고래는 이제  ‘잡는’ 대상이 아니라 ‘보는’ 대상이 됐다. 국제동물복지기금(IFAW) 자료를 보면 2009년 기준으로 119개국에서 연간 1300만 명이 고래 관광에 참여한다. 하지만 고래관광보트가 고래에 스트레스를 줘 이상행동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선박 관광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주도에 간 우영우가 이준호랑 해안가에서 쌍안경으로 남방돌고래를 관찰하려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고래가 있는 곳에는 상어가 없다고 한다. 고래는 해양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다. 상어가 나타나면 남방큰고래들은 무리를 지어 다가가 쫓아낸다. 그래서 제주도 해녀들은 맘놓고 물질을 할 수 있다.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는 제주 앞바다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우영우 변호사는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변호사는 분명 아니다. 산만한 시선, 불편해 보이는 몸짓, 종종 옆길로 새는 대화는 한눈에도 ‘평범해’ 보이지 않다. 하지만 자폐는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불릴 정도로 증상이 다양하다. 소수지만 비장애인보다도 더 뛰어난 자폐인도 있다.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중 한사람인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에 긍정적 요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든것이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니지요. 자폐아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경험으로 훗날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3회 에피소드에서 우영우 변호사는 이같은 독백을 한다. 실제로 세상에 큰 기여를 한 빌게이츠, 아인슈타인, 고흐 같은 위인들도 자폐와 유사한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평범 이상의 성과를 냈다. 다른 변호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우영우 변호사처럼 말이다.

“길 잃은 외뿔고래가 흰 고래 무리에 속해 함께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요. 저는 그 외뿔고래와 같습니다. 낯선 바다에서 낯선 흰고래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는 다른 걸 틀리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자폐인 우영우 변호사를 사랑하는 이준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가족처럼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은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에피소드가 반복될수록 우영우를 통해, 사건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우영우와 함께 ‘뿌듯함’이라는 감정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은 이유다.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 해당 콘텐츠는 2022. 10. 31.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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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률 에디터 이미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공학 전공 후 경제부 기자가 되었을 때의 좌충우돌이 쉬운 정보 전달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경제라는 쓴 커피에 영화라는 연유를 넣어 달콤한 연유라떼를 내어놓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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