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제이크가 전쟁 대신 나비족을 설득했던 이유

by 박병률

아바타 1편에서 기억할 것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2: 물의 길⟩이 개봉과 함께 글로벌 박스오피스를 강타하고 있다. 3시간 12분이나 되는 긴 러닝타임과 화려한 비주얼에 비해 서사가 약하다는 평도 있지만, 아바타는 아바타였다. 코로나19를 틈타 기세등등해진 OTT에 밀려 움츠러들었던 극장가도 아바타 상영과 함께 기지개를 켜고 있다. 3D 기반으로 만든 ⟨아바타⟩는 역시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제맛이다.

세계가 ⟨아바타2⟩에 열광하는 것은 13년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2009년 마주한 영화 ⟨아바타⟩는 경이로웠다. 감정까지도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모션 캡처’는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매혹적인 영상미를 선보였다. 덕분에 ⟨아바타⟩는 아직도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자리를 내어주기 전까지 역대 외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였다. 

영화 ⟨아바타⟩의 무대는 판도라 행성이다. 이 행성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자원, 언옵타늄이 묻혀 있다. 자원개발사인 RDA는 언옵타늄을 채굴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에 기지를 만든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판도라 행성의 대기는 독성이 많아 사람이 호흡하기 힘들다는 것. 또 하나는 판도라 행성에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원활하게 채굴을 하기 위해서는 나비족을 이주시켜야 한다.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낸 게 아바타다. 아바타는 나비족의 DNA와 인간을 섞어 만든 새로운 생명체로, 인간이 뇌파로 조종할 수 있다.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는 아바타 ‘제이크’를 조정해 나비족에게 접근한다.

언옵타늄은 나비족의 신성한 나무인 홈트리 밑에 묻혀 있다. RDA사는 무력으로 홈트리를 쓰러뜨려 단숨에 언옵타늄을 채굴하려 한다. 이들에게 시간은 돈이다. “원주민들을 죽이면 비난 여론이 일겠지만, 그보다 주주들이 더 싫어하는 건 회사 수익이 줄어드는 거야.”

하지만 제이크가 이를 막아선다. 나비족이 이주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RDA사는 마뜩잖지만, 일단 제이크에게 기회를 준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다. 

나비족이 이끌어낸 승자의 저주

제이크는 왜 나비족을 끝까지 설득해보려 했을까. 나비족의 공동체를 지키고 싶은 것이 첫째 이유겠지만 나비족이 사생결단으로 나온다면 RDA사 동료들의 피해가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제이크는 말했다. “그들은 굴복 안 할 거야. 협상도 안 하고.” RDA사 역시 마지막까지 나비족을 설득하려 했다는 명분이 필요했다. 행여 희쟁자가 많이 나온다면 강제 진압에 따른 비난 여론이 크게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RDA사가 일방적인 무력으로 언옵타늄을 손에 얻으려 하면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가 될까 걱정이다. 피로스의 승리란 많은 희생이나 비용을 대가로 치르며 이긴 승리를 뜻하는 것으로 이기긴 이겼지만 실제로는 이긴 게 없는 상처뿐인 승리를 말한다.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의 지방인 에피로스의 왕 피로스 1세로부터 유래됐다. 

알렉산더 대왕이래 최고의 전략, 전술가로 알려진 피로스 1세는 2만 5000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앞세워 로마를 침공했다. 이름값을 하듯 그는 두 번의 전투를 연달아 승리로 이끌지만, 그러는 동안 많은 병력을 잃는다. 피로스 1세는 승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런 승리를 한 번 더 거뒀다가는 우리는 망하고 만다”고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로마는 계속해서 후속 군대를 파병했고, 피로스의 군대는 계속해서 전력을 잃어갔다. 결국 피로스 1세는 아르고스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그리하여 1885년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피로스의 승리’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RDA사는 결국 물리력을 택했다. 미사일과 레이저 등 앞선 과학 기술력을 앞세우면 활을 들고 대적하는 나비족 따위는 쉽게 섬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쉽게 내어줄 생명체는 없다. 겁을 먹고 도망가리라고 생각했던 나비족은 목숨을 걸고 결사 항전을 택한다. 그러자 RDA사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상황히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피로스의 승리를 경제용어로 바꾸면 ‘승자의 저주’가 된다. 승자의 저주란 기업간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출혈이 너무 심해 오히려 경영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을 뜻한다. 과도한 인수합병(M&A) 혹은 기업간 치킨 게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승자의 저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조 원을 제시해 M&A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인수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그룹이 공중분해됐다. 대우건설은 다시 토해냈고, 그룹 주력사였던 아사이나항공, 금호생명, 대한통운은 매각됐다.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상태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다가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아무리 쉬운 상대라도 상대가 결사 항전으로 나오면 강자도 피해가 커진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렇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는 당초 일주일이면 우크라니아의 항복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전쟁은 10개월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주권을 수호하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은 푸틴 대통령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고전한 것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의 늪에 빠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파비우스의 승리를 명심할 것 

피로스의 승리와 대비되는 용어로 ‘파비우스의 승리’가 있다.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혹은 피해를 보았더라도 결과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고대 로마의 장군인 파비우스는 알프스를 넘어온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에 로마가 대패하자 전쟁에 투입됐다. 파비우스는 연전연승하는 한니발과 정면대결을 벌이기보다 뒤를 쫓아다니며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정정당당한 전쟁을 명예롭게 여기던 로마인들은 파비우스를 ‘한니발의 머슴’이라고 조롱하며 쫓아냈지만 로마군이 한니발에 대패하자 다시 불러들였다. 파비우스는 철저하게 한니발과의 전투를 피하고 카르타고 본국과 동맹을 공격하는 지구전을 10여 년 간 펼친 끝에 승리했다. 한반도 역사에서는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한 서희의 외교술이 파비우스의 승리로 기억할 만하다.

파비우스는 ‘페이비어니즘(Fabianism)’의 유래가 됐다. 페이비어니즘은 1884년 영국서 설립된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의 이념으로 급진적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사회주의로 변해가자는 주장이다. 페이비어니즘은 복지국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줬고, 영국 노동당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학자 케인스도 페이비언협회의 회원이었다.

파비우스의 승리는 투자나 경영에 있어서도 시사점을 준다. 언제나 강 대 강 대결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치킨 게임은 리스크가 크다. 패하면 모든 것을 다 잃을 뿐더러 승자가 되더라도 피해가 과도하게 컸다면 누릴 것이 별로 없다. 때문에 쉬어가기 투자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병법의 ‘부전이승(不戰而勝)’과도 맥락이 같다.

아바타에 비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그림자 

영화 ⟨아바타⟩는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의 이루지 못한 꿈을 담은 영화, 혹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속죄의 영화라는 해석도 있다. 황금과 동식물이 넘쳐나던 아메리카에서 자연과 벗삼아 살던 원주민들은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말 타고 활을 쏴서는 총포로 무장한 유럽인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아바타⟩는 1876년 ‘리틀 빅혼’ 전투를 재현한 것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언옵타늄을 채굴하기 위해 나비족을 강제 이주시키려던 RDA사처럼, 당시 미국 정부는 라코타(수우)족이 살던 블랙힐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평화협정을 깨고 이들을 쫓아내려 했다. 블랙힐스는 라코타족이 신성히 여기는 장소이자 사냥 지역으로,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곳이었다. 라코타 추장인 ‘크레이지 호스’가 이끄는 정예군과 인근 부족인 샤이엔족은 힘을 합쳤다. 남북전쟁의 영웅인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제7기병연대가 이들을 섬멸하려 진격했지만 협곡에서 포위 당해 전멸한다. 이 전투는 인디언들이 백인들과 싸워 거둔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됐다.

영화 ⟨아바타2⟩의 실사 촬영이 종료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2019년 11월이었다. 1년간 후반작업을 거쳐 곧 개봉될 것 같았지만,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기약 없이 미뤄졌다. 아바타는 앞으로 2년에 한 편씩 새 시리즈를 개봉해 2029년 ⟨아바타5⟩에서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손을 떠나 엉망이 됐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달리 ⟨아바타⟩는 제임스 카메론이 끝까지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지만, 변수는 있다. 1954년생인 제임스 카메론은 이미 69세다. 2029년이면 75세가 된다. ⟨아바타⟩ 완성의 키는 그의 건강이 쥐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제임스 카메론이 남긴 또 하나의 역작을 온전히 감상할 행운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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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늑대와 춤을⟩(1990): 아메리카 원주민인 수우족에 매료돼 그들이 되고자 했던 미국 독립전쟁 영웅 던바 중위의 이야기. 원주민은 그에게 ‘늑대와 춤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백인 기병대는 원주민의 땅을 빼앗기 위해 진군하고, ‘늑대와 춤을’은 이에 맞선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과 감독을 맡았고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케빈 코스터는 실제 체로키족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 영화 ⟨디스트릭트9⟩(2009): ‘디스트릭트9’은 지구에 온 외계인 ‘프런’이 사는 거주지역이다. 정부는 프런들을 신거주구역으로 이주시키려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법적동의가 ‘자의로 혹은 타의로’ 필요하다. 우리랑 다른 형태의 생물체가 지구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공존할 수 있을까. 아메리카에 도착한 유럽 백인들은 끝내 원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독차지했다. 닐 블롬캠프 감독은 속편인 ⟨디스트릭트10⟩ 각본을 쓰고 있다고 최근 트위터에서 언급했다.
  •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 하면 생각나는 역작.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 라퓨타는 ⟨아바타⟩의 ‘할렐루야 아일랜드’와 닮아 표절 논쟁까지 나왔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하야오 감독과 나는 꿈속에서 비슷한 영감을 얻은 것 같다”는 알 듯 말 듯한 해명을 하며 “할렐루야 아일랜드의 모델은 중국의 황산”이라는 말을 남겼다.

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 해당 콘텐츠는 2022. 12. 22.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 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토스팀 브랜드 미디어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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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공학 전공 후 경제부 기자가 되었을 때의 좌충우돌이 쉬운 정보 전달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경제라는 쓴 커피에 영화라는 연유를 넣어 달콤한 연유라떼를 내어놓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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