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룩 업⟩, ‘눈 가리고 아웅’에 숨겨진 2가지 비밀

by 박병률

Editor’s Note

“출연진이 화려하네!” 하며 보기 시작했으나 자꾸 뇌리를 스치는 현실 세계와의 싱크로율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던 영화 ⟨돈 룩 업⟩. 실제 연출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현실과 밀착 비교하고, 코로나19 이후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던 경제 용어들을 영화 속에서 발견해 정리했습니다. 머니 인 무비, 오늘도 스트리밍 중!🎬

6개월 14일 후 에베레스트만 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인류 멸망의 순간에도 방법은 있다.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 그리고 히어로. 소수의 고귀한 희생으로 지구의 삶은 연장된다…는 시나리오는 정통한 공식과도 같았다. 1998년에는 그랬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을 희생해 지구를 지켜낸 것처럼.

그러나 아담 맥케이 감독은 2022년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뻔히 알아챘고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재앙을 막지 못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자본주의는 지구를 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돈 룩 업⟩이 보여준 세계관은 슬프지만 현실적인 블랙 코미디다.

“다들 못 본 척하는 거야?
저기 지구를 멸망시킬
기후 위기가 날아오고 있잖아.”

⟨돈 룩 업⟩에는 환경, 인권, 여성,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온, 이른바 개념 있는 배우들이 대거 출동했다.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며 환경과 멸종 위기 동물 보호를 위해 약 1억 달러(약 1200억 원)을 기부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천문학자 민디 박사 역을 맡았고, 할리우드에 만연한 성 차별에 반기를 들었던 제니퍼 로렌스는 혜성을 발견한 대학원생 케이트 역을 열연했다. 여성 시나리오 지원 펀드를 만든 메릴 스트립은 미국의 올린 대통령을, UN 난민기구 홍보 대사로 시리아 난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케이트 블란쳇은 TV쇼 진행자 브리를 연기했다.

영화는 또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영화 속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혜성은 현실의 기후 위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기후 위기라는 명백한 전 지구적 위기가 다가오지만 정치인, 언론, 기업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악용하려는 파멸적인 모습을 블랙 코미디로 엮어냈다는 것이다. 그는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계속되면 일어날 일에 관한 ⟪2050 거주불능 지구⟫라는 책을 읽고 크게 충격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심각한 문제로 인지할까, 여러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 누군가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직전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했고 그 말이 곧 영화가 됐다”고 덧붙였다.

Don't Look Up

사진=Reuters

현실 세계와 싱크로율 99%
⟨돈 룩 업⟩의 등장인물들은 대번에 현실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혜성을 발견한 대학원생 케이트는 스웨덴의 15세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한 그레타 툰베리와 닮았다. 케이트는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혜성 충돌의 심각성을 알리지만 진행자들이 이를 가벼운 농담으로 다루자 “우리 모두 100% 죽고 말 거다”라며 소리를 지른다. 또한 미국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툰베리는 국가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며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기후 위기를 부정한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위터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혜성의 존재를 부정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올린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딱 닮았다. 중간 선거 캠페인에서 야구 모자를 쓰고 손을 흔드는 올린의 모습 또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적힌 빨간 모자를 썼던 트럼프를 연상시킨다. 올린 대통령 옆을 지키는 아들 제이슨 올린 비서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녀였던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이방카 트럼트, 사위 재러드 쿠쉬너를 합친 인물이라는 분석도 있다. 관객들은 혜성의 광물에 욕심을 내는 배시 CEO 피터 이셔웰을 보며 화성 이주로 지구인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기도 한다.

‘잠재적 위험’의 느슨한 함정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확률은 100%. 게다가 남은 날짜까지 정확히 계산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히어로를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치인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지지율에 이용하고, 미디어는 시청률 상승에 써먹고, 거대 기업 CEO는 혜성에 있을 희귀 광물에 욕심을 낸다. 혜성은 결국 태평양에 떨어지고 거대한 해일이 지구를 휩쓴다. 이처럼 계속되는 경고로 모두가 인지했음에도 간과하고 있는 위험을 경제학에서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라고 부른다.

회색 코뿔소는 세계정책연구소의 미셸 부커 소장이 2013년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제기한 개념이다. 2톤 무게의 코뿔소가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엄청난 몸집은 눈에 쉽게 띄고 육중한 무게 탓에 발밑으로 진동이 느껴진다. 덩치가 클수록 그 위험 신호는 더 강하지만 이를 무시하다 코뿔소와의 충돌을 피하지 못해 큰 사고를 당하는 것에 사회・경제 현상을 빗댔다.

미셸은 저서 ⟪회색 코뿔소가 온다⟫에서 “사람들이 뻔히 예측되는 위기를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심리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리적 문제로는 인간의 본성과 조직·사회 제도를 꼽는다. 인간의 본성과 조직·사회 제도는 현 상태를 유지하며 밝은 미래를 그리는 방향을 선호하도록 설계돼 있어,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미적거리며 문제를 회피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슨 큰일 있겠어?”라며 근거 없는 낙관론도 펴게 된다.

⟨돈 룩 업⟩ 속 올린 대통령은 에베레스트만 한 혜성이 태평양에 떨어질 거라는 민디 박사의 경고에 되묻는다. “그럼 파도 쳐요?”
“충돌 확률이 100%”라는 말에는 이렇게 되묻는다.
“그냥 잠재적 중대 사건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해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진=연합뉴스

보다 못한 민디 박사와 케이트가 ‘룩 업(Look up)’ 캠페인을 펼친다. “그냥 하늘을 봐요.”
그러자 올린 대통령은 ‘돈 룩 업(Don’t look up)’ 캠페인으로 맞선다.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길만 보란다. 그러면서 외친다. “여러분들이 두려움에 떨도록 해 자유를 빼앗으려 하려는 것”이라고. 대통령의 자신 있는 메시지에 “혜성이 없다”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진다. 그사이 회색 코뿔소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회색 코뿔소의 외부적 요인으로는 단기적 성과 선호 현상을 꼽는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면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 이 대목에서 올린 대통령의 판단이 자연히 겹쳐진다. 그저 내 임기에만 터지지 않으면 되는 것. 혜성 충돌이라는 나쁜 소식은 중간 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으니 그저 말이 퍼지지 않게 하는 것.

우리 코앞까지 달려온
회색 코뿔소는 몇 마리?

미셸은 회색 코뿔소가 돌진해올 때 들이받히지 않는 방법으로 코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코뿔소의 성격을 규정하며, 실행 가능한 작은 변화를 단계적으로 시도할 것을 제시했다. 또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멀리 보이는 위협 요소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문제를 책임지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회색 코뿔소라는 용어는 2018년 미국과 중국의 언론이 중국의 부채 문제를 경고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향후 중국은 성장률이 아니라 신용 위기라는 회색 코뿔소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중국의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워낙 그 규모가 크고 연루된 곳이 많아 대처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8년 6조 달러였던 중국의 비금융 부문 총 부채는 2016년 말 28조 달러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부채 비율도 같은 기간 140%에서 260%로 두 배가량 상승했다. 중국 기업들의 회계 처리는 상대적으로 부실해 민간 영역의 부채 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 경제에도 회색 코뿔소가 존재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2022년을 맞아 열린 경제금융전문가 간담회에서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바짝 다가오고 있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 가속화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중국 경기 둔화, 미·중 갈등 등의 이슈가 한국 경제와 금융 시장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회색 코뿔소는 한 마리가 더 늘어났다. 전쟁으로 인한 유가·원자재·곡물가 상승과 공급망 붕괴는 수출 중심의 국내 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급증하는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도 한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다. GDP 대비 50%를 넘어가는 국가 부채와 GDP 대비 100%를 넘긴 가계 부채는 자칫 한국 경제를 뒤흔들 뇌관이 될 수 있다. 부채가 많을수록 리스크도 커진다.

리더가 신뢰를 잃으면 벌어지는 일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안타깝게도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이 떠오른다. 타키투스의 함정은 정부 혹은 조직이 신뢰를 잃으면 사람들이 어떤 정보든 모두 거짓으로만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로마의 인기 없는 군주인 갈바에게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좋은 정책이든 나쁜 정책이든 그 자체로 정부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를 처음 거론한 판 지창 난징대 교수는 중국 왕조가 반복적인 쇠퇴를 겪은 것은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시진핑 주석 또한 중국이 향후 빠질 수 있는 3대 위기 중 하나로 타키투스의 함정을 들었다. 그는 “인민이 믿지 않으면 당의 기조가 흔들린다”라며 민심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올린 대통령을 따르던 지지자들은 마침내 하늘에서 긴 꼬리를 드리우며 다가오는 혜성을 목격한다. 누군가 외친다. “이제 보니 순 거짓말이네!”
올린 대통령은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사람들은 이제 대통령 말을 믿지 않는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폭동과 혼란, 자살로 이어진다. 리더가 신뢰를 잃으면 권위나 권한도 함께 사라진다.

민디 박사는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한다. 정부는 혜성을 조각 내기 위해 배시사의 로켓을 발사하지만 그 장면을 아예 보지도 않는다. 정부에 대한 기대 같은 건 이제 없다. 같이 우주로 탈출하자는 대통령의 제안도 거부한다. TV도 껐다. 민디 박사는 술잔을 들며 담담하게 말한다.

“내가 감사하는 건 우리가 노력했다는 겁니다.”

용어 하나 더 정리✍️

회색 코뿔소 외에도 미래 발생할 리스크를 동물에 빗대는 경제 용어들이 많다. 미국 뉴욕대 나심 탈레브 교수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블랙 스완(검은 백조)’ 개념을 제기한 뒤 여러 용어가 파생됐다.

  • 블랙 스완: 우리가 실제로 보게 될 거라고 예상치 못했던 검은 백조처럼, 예측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야 마는 리스크를 뜻한다. 예상 범위 안에 없었던 만큼 일어났을 때 충격도 크다. 미국의 9・11 사태, 영국의 EU 탈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코로나19 이후 뉴스에 자주 등장한 용어이기도 하다.
  • 화이트 스완: 흰 백조는 자주 나타난다.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제때 대응하지 못해 발생해버린 리스크를 말한다.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 금융 위기가 그 예다.
  • 그레이 스완: 화이트 스완처럼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 충격이 얼마나 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미지수라 대응하기 힘든 리스크를 뜻한다. 국가 부채, 유가 폭등, 인구 감소 등이 있다.
함께 보면 재밌는 콘텐츠
  • 애니메이션 ⟨월-E⟩: 픽사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앤드류 스탠튼 감독의 2008년 작. 쓰레기로 뒤덮인 미래의 지구, 인류가 떠나버린 텅 빈 행성에 남겨진 청소부 로봇 월-E 앞에 어느 날 탐사 로봇 이브가 나타난다.
  • 영화 ⟨문폴⟩: 혜성도 끔찍한데 달이라면? 할리우드의 파괴지왕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달과 지구의 충돌 30일 전’을 다뤘다. 해일과 지진, 화산 폭발 등 초대형 재난에 직면한 제대로 된 인류의 제대로 된 분투기.
  • 책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다음 세대의 일이 아니라 당장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부터 앞으로의 30년이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용적 환경주의자이기도 한 빌 게이츠가 제안하는 목표와 해결책.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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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공학 전공 후 경제부 기자가 되었을 때의 좌충우돌이 쉬운 정보 전달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경제라는 쓴 커피에 영화라는 연유를 넣어 달콤한 연유라떼를 내어놓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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