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래빗⟩, 전쟁을 동경한 소년의 착각

by 박병률

Editor’s Note

나치를 동경하는 열 살 아이의 눈으로 참혹한 전쟁을 들여다보는 영화 ⟨조조 래빗⟩. 겁쟁이 조조가 수류탄을 던지고, 해맑은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운 과정에는 어떤 경제 현상이 숨어 있을까요? 영화 속 경제학 코드, 오늘도 스트리밍 중 🎬

“내 모든 힘을 독일의 구원자 히틀러에게 바치기로 한다. 히틀러를 위해서는 내 목숨도 아깝지 않다. 하일 히틀러.”

이제 열 살이 된 조조 베츨러의 우상은 아돌프 히틀러다. 또래 독일 아이들이 그랬듯 조조에게도 히틀러는 위대한 아리아인의 조국인 독일의 영웅이다. 동경하는 히틀러는 상상 속의 친구로 나타나 조조 곁을 지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히틀러 소년단(유겐트) 주말 훈련 캠프에 참가하는 날, 충성스러운 꼬마 나치의 눈에는 군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최고로 멋지다. 비록 신발끈은 혼자 못 매더라도 말이다. 언젠가 머리에 뿔 달린 유대인 한 명을 잡아 히틀러의 개인 경호원이 되는 꿈을 꾼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이다. 조조는 엄마 로지와 단둘이 산다. 아빠는 전쟁통에 사라졌고, 누나 잉거는 죽었다. 뭐 상관없다. 나는 위대한 나치가 될 거니까. 조조의 눈에 나치의 광기는 멋있기만 하다. 하지만 전쟁은 어떤 순간에도 멋있을 수 없다. 조조는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며 조금씩 생각이 바뀐다. 영화는 군국주의의 무모함을 유머러스하고도 신랄하게 풍자한다.

사진=Reuters

소속감에 대한 열망, 소비를 부르다

우리의 주인공 조조는, 실은 토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할 정도로 여리다. 그래서 얻게 된 별명이 ‘조조 래빗’. 겁쟁이 조조라는 뜻이다. 유겐트 캠프에서 그는 용맹함을 증명하기 위해 멋지게 수류탄을 투척하지만 발밑에서 터지고 만다. 조조는 큰 부상을 입고 캠프에서 쫓겨난다. 그러고도 전쟁과 정치 얘기만 하는 조조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건 엄마 로지다. 놀기 좋아하고, 천둥 치면 무섭다고 달려오던 열 살짜리 꼬마가 나치에 미쳤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로지는 하나 남은 자식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조조는 자신이 나치가 됐다고 생각한다. 유대인과 어울려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단속한다. 하지만 조조의 집에 우연히 숨어든 유대인 소녀 엘사는 반박한다.

“넌 나치가 아냐 조조. 나치 상징과 군복을 좋아하고 무리에 속하고 싶은 꼬마일 뿐이야.”

엘사는 안다. 조조는 그저 ‘파노플리 효과’에 빠져 있는 철부지라는 것을.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란 어떤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이 특정 집단에 속해 있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어릴 때 플라스틱으로 만든 청진기와 주사기로 역할극을 하며 놀다 보면 마치 의사가 된 기분이 들지 않던가? 이런 장난감 세트를 프랑스어로 ‘파노플리(panoplie)’라고 부른다. 장 보드리야르가 1980년대에 제기한 개념이다. 그는 저서 ⟪소비자 사회⟫에서 소비의 대상인 상품이 단순히 사용가치(use value)나 교환가치(exchange value)뿐만 아니라, 신호가치(sign value)를 갖는다고 봤다. 즉 무엇을 구입했는지가 자신의 스타일, 품격, 사치, 권력 등의 가치를 나타내거나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계급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상류 계급에 속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명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명품 브랜드가 새로운 계급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노플리 효과는 과시적 소비 심리를 잘 설명한다. 명품을 사면 나도 이 명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같은 계층의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명절에는 특정 백화점 로고가 있는 쇼핑백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그 백화점에서 상품을 살 만큼 돈이 있는 사람과 같은 그룹에 속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유명 야구팀이나 축구팀 유니폼을 입는 것에도 파노플리 효과가 발동한다.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 옷을 입으면 홈런을 빵빵 때릴 것 같다. 사회인 야구팀에 한때 ‘이승엽’이 넘쳐났던 이유다. 사회인 축구팀에서는 마라도나의 등번호인 10번과 호날두의 등번호인 7번도 많이 입었는데, 마침 손흥민의 등번호도 7번이다. 마이클 조던의 번호인 23번은 농구팬들이 영원히 애정하는 숫자다.

조조는 군복을 입으면 멋있는 장군이 된 것처럼 용기가 샘솟는다. 유겐트의 훈련이 매우 힘들더라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 최면을 걸곤 했다. 조조에게 나치 군복은 자신을 멋진 독일 남자로 만들어주는 과시적 소비 대상이다. 그래서 수류탄 사고로 군복을 벗게 됐을 때 조조는 침울해진다. 여전히 군복을 입은 친구 요키가 너무 부럽다. 요키의 군복을 손으로 쓸어본다. “이거 너무 얇네. 종이로 만든 거니?” 요키는 덤덤하게 말한다. “아니 독일의 특수 신소재로 만든 거야.”

미국 성인의 50%가 시달리는 것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자신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있다. 세상의 흐름을 자신만 놓치고 있다거나 혹은 제외되고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것을 ‘포모 증후군(FOMO Syndrome)’이라고 부른다. 포모란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소외불안증후군이나 고립공포증이라고도 한다. 원래 포모는 제품의 공급량을 줄여 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드는 마케팅 기법을 의미했다. 홈쇼핑 채널에서 쇼 호스트가 상품을 설명하는 동안 ‘곧 매진’ ‘선착순 한정 판매’ 등의 경고 문구를 화면에 계속 띄우면, 지켜보던 소비자가 초조해져 주문 전화를 거는 바로 그 현상이다.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은 포모를 사회 병리 현상의 하나로 주목했다. 미국에서는 50%가 넘는 성인이 포모 증세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토끼를 죽이지 못해 소년단을 이탈했던 조조는 용기를 내 훈련장으로 돌아온다. ‘조조 래빗’이라 불리며 또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수류탄은 무섭지만, 이걸 던지지 못해 왕따가 되는 게 더 무섭다. 조조는 눈을 꾹 감고 “돌격 앞으로”를 외친다.

세상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은 ‘양떼 효과(Herd Effect)’를 불러 일으킨다. 양떼 효과란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을 따라 하는 심리를 말한다. 포모 증후군이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양떼 효과는 두려움 때문에 무리지어 추종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조조는 더 이상 전투요원이 될 수 없지만, 팸플릿을 붙이고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일을 해가며 소년단에 복귀한다. 이런 식으로라도 함께해야 또래 무리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처로운 조조의 군복을 보며 몇해 전 우리나라 학생들 사이에 일었던 고가 패딩 열풍이 떠오른다. 패딩의 가격에 따라 계급이 생겼고, 너 나 할 것 없이 비싼 패딩을 사입었다. 패딩이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다면서 ‘등골브레이커’라고도 불렸다. 양떼 효과는 다 큰 어른들의 주식 시장에서도 종종 관찰된다. 2020년 주식 시장이 뜨겁게 상승하자 많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가격이 치솟은 부동산 시장에도 ‘패닉 바잉’이 일어났다. 자산이 불어나는 시대에 자신만 뒤처질까 두려워진 사람들이 ‘영끌’을 해서라도 시장에 참여한 것이다.

혐오 확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독일 나치는 어린 아이들을 소년단에 넣어 단체 훈련을 시켰다. 소년단에서 세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진짜 나치로 변해갔다. 철부지 조조도 달라졌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은 금속이고, 다이너마이트고, 근육이라고 믿는다. 평범한 사람도 주어진 상황이나 시스템에 의해서 악해질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고 한다. 루시퍼는 악마를 뜻한다. 그러니까 ‘악마 효과’다. 스탠퍼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1971년에 범죄나 약물 남용 이력이 없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남자 대학생 24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모두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좋은 교육도 받았다. 그는 지원한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교도관 역할을, 또한 집단은 죄수 역할을 맡겨 감옥 생활을 재연하도록 했다. 당초 실험은 2주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6일 만에 중단됐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의 행동이 너무 잔인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죄수 역할을 한 학생들에게 기합과 체벌을 가했고, 성적 모욕도 줬다. 죄수 역할을 한 대학생들이 견디다 못해 폭동을 일으키자 잔혹하게 진압했다. 평소 인격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타인을 학대해도 되는 위치에 놓이자 이들은 돌변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결과는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겼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일본의 난징 학살,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병사가 아부그라드 교도소에서 벌인 잔악함을 설명해준다. 집단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괴물이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이들이 전쟁이라는 집단적 광기에 노출되자 양심과 이성, 감성이 마비되고 만 것이다.

썩은 사과는 상자 안에 같이 들어 있는 사과도 썩게 만든다. 폭력과 사기, 불법이 판 치는 곳에서는 경제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건강한 사회라야 건강한 기업과 건강한 가계가 생겨나고 정의로운 경제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사회적 신뢰도가 높고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환경이 좋은 곳일 수록 경제활동이 활발하다는 사실에 주목해봐야 한다. OECD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정부에 대한 신뢰도, 사회적 지원제도, 환경평가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이 1인당 국민소득 또한 4만 달러가 넘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대로 소득 수준이 낮은 멕시코, 그리스, 콜롬비아 등은 앞선 항목에서도 하위권에 속해 있다.

기업에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ESG 경영은 사회를 더 건강하고 정의롭게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공정한 가치가 사회에 바로서게 될 때 결과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므로. 소비자와 생산자, 경영진과 노동자가 서로 믿고 신뢰할 때 경제는 발전한다.

엄마 로지는 광기의 시대가 아들 조조를 꼬마 히틀러로 만드는 것을 그냥 두지 않는다. 그는 한때 연인들의 로맨스로 북적했던 강둑으로 아들을 데려간다.

“총통이 그러는데 승전하면 우리 청년들이 세상을 지배할 거래요.”
“제국은 망하고 있어. 삶은 신의 선물이야. 즐겨야지. 축복에 감사하기 위해 춤추자.”
“춤은 실업자들이나 추는 거예요.”
“춤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추는 거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거든.”

비단 조조가 살았던 그때뿐일까. 혐오가 되살아난다는 우려가 많은 시대다. 유튜브처럼 많은 사람이 쉽게 자주 접근하는 채널을 통해 장애인, 노인,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확산되고 있다. 유튜브의 슈퍼챗(아프리카tv의 별풍선처럼 실시간 채팅하면서 후원금을 보내는 서비스)은 콘텐츠가 자극적일수록 돈이 된다. 반동의 시대에서는 평범한 사람도 괴물이 될 수 있다. 혐오의 시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엄마 로지는 말한다. 그것은 로맨스라고. 로맨스가 넘쳐나는 세상에는 혐오가 발붙일 공간이 없다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사랑이야.”
조조에게 이 말은 결국 엄마가 준 최고의 유산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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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웃으면서 운다는 바로 그 영화.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도 하고 주연도 했다. 나치의 살 떨리는 홀로코스트 수용소에서도 아빠 귀도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가족은 어떠한 경우에도 위대하다.
  • 영화 ⟨피아니스트⟩: 어둠과 추위, 공포 속 폐건물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독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으로,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저서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도 예술은 살아남는다.
  •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소셜 미디어(SNS)가 어떻게 중독을 강화시키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과 정부를 이용하고 음모론이나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지에 대해 파헤친 다큐로, 소셜 미디어가 정신 건강에 주는 영향도 탐구했다.
  • 책 ⟨포모 사피엔스⟩: 포모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만든 패트릭 맥기니스의 저서. 수백억 달러로 성장한 포모 시장을 꼬집으며 현대인의 질병 포모 극복을 도모한다.

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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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공학 전공 후 경제부 기자가 되었을 때의 좌충우돌이 쉬운 정보 전달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경제라는 쓴 커피에 영화라는 연유를 넣어 달콤한 연유라떼를 내어놓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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