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주택보급률 100%가 넘어도 집이 부족한 이유
ㆍby 박병률
전 세계를 단숨에 이해시킨 빈부 격차가 사는 곳
“행주 삶을 때 나는 냄새 있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고…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그런 거랑 비슷해.”박 사장이 투덜대며 말한다. 자신의 운전기사에게서 나는 불쾌한 냄새는 ‘선’을 넘어 뒷좌석에 앉은 자신에게까지 미친다.
지하층에서는 특유의 곰팡내가 난다. 누구인들 눅눅하고 퀴퀴한 이 냄새가 좋을까. 하지만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서민들은 그곳에 산다. 봉준호 감독은 그들을 주목했고, 세계의 영화인들과 관객들은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를 주목했다. 영화제를 휩쓴 ⟨기생충⟩ 이야기다. 아카데미가 외국어 영화에 4개의 상을 몰아준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허들을 뛰어넘은 성과에 찬사를 보내다가도 문득 세계인이 ‘빈부 격차’를 이해하는 데도 허들이 없었음을 떠올리면 목뒤가 서늘해지곤 했다.
영화는 반지하 방에 걸린 양말에서 시작한다. 햇살 한 줌 제대로 들지 않아 세탁물이 잘 마를 리 없는 곳. 기택네 4인 가족은 누구 하나 변변한 벌이가 없다. 피자 포장박스를 접고 받는 푼돈이 생활비의 전부다. 재수를 거듭하던 아들은 가계가 어려우니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재능 많은 딸도 미대 진학을 포기했다. 가난의 악순환이다.
그런 기택네에도 반전의 기회가 왔으니, 아들 기우에게 들어온 부잣집 과외 자리다. 명문대에 다니는 기우의 친구가 자신이 해외연수를 가 있는 동안 박 사장의 딸 영어 과외를 맡아 달라고 부탁해온 것이었다. 기우의 학력이 걸림돌이지만 방법은 있다.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면 된다. 기우가, 그리고 그 가족들이 차례차례 찾게 된 박 사장네 집은 살짝 열린 문틈으로도 푸르른 댓잎이 넘실댄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니 햇살이 쏟아진다. 탁 트인 마당에 깔린 잔디는 보드랍다. 어떤 사람은 이런 곳에 산다.
⟨기생충⟩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주택의 대비다. 박 사장 가족이 사는 단독 주택과 기택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은 서로 전혀 다른 세상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분리된 세계는 아니다. 박 사장네 집에 또 한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하에 사는 전 가정부 문광의 남편 근세다. 그가 ‘지하남’이 된 것은 벌써 4년째.
우연히 지하 공간을 알게 된 기택은 깜짝 놀라 말한다.“아니 어떻게, 이게 살면 또 살아지나 이런 데서도?”근세가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한다.“뭐 땅 밑에 사는 사람이 한둘인가? 반지하까지 치면 더 많지.”
주택보급률은 높은데 자가보유율, 자가점유율이 낮은 상황 우리나라의 전국 주택보급률은 103.6%에 달한다. 주택보급률은 전체 일반가구 수 대비 전체 주택 수를 뜻하므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다는 건 가구보다 주택이 더 많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통계에 의하면 전국 가구 수는 2,092만 7,000가구, 주택 수는 2,167만 4,000호다. 그러면 주택이 74만 7000호 남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집이 없어서 아우성이고, 집값은 날로 올라간다. 땅 밑에서도 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먼저 자가보유율과 자가점유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가보유율이란 전체 가구 중 집을 소유한 가구의 비율이며, 2020년 기준으로 60.6%에 불과하다. 열 가구 중 네 가구는 자신(이 포함된 가구)의 명의로 된 집이 없다는 뜻이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데도 자가보유율이 60%에 불과한 것은 한 가구가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주택 공급으로 전국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긴 지 10년이 넘었지만, 자가보유율은 60% 전후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갭투자 열풍이 불면서부터는 다주택자가 더 빠르게 늘어났다.
자가점유율은 더 낮다. 자가점유율이란 전체 가구 중 자신(이 포함된 가구)의 명의로 된 집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비율이다. 만약 내 집이 있어도 이를 전세로 빌려주고 나는 다른 집에 세 들어 산다면 자가점유율은 낮아진다. 2020년 기준 자가점유율은 57.9%로, 자가보유율보다 더 낮다. 소위 ‘똑똑한 한 채’ 영향으로 내 집은 집값이 오를 것 같은 지역에 사지만, 그 집을 세 준 뒤 자신은 학교나 직장을 오가기 편한 지역에 거주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자가점유율은 더 떨어지는 추세다. 똑똑한 한 채는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부담이 커지자 많은 주택을 보유하는 대신 부동산 투자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지역의 한 채 보유를 선호하는 현상에서 비롯됐다. 설사 전 국민이 전부 내 집을 갖고 있는 시대가 열리더라도 임대 제도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1000명당 주택 수도 갈 길이 멀다 가구의 개념이 모호하다며 요즘은 사람 수를 기준으로 통계를 내기도 한다. 국제 기준으로도 많이 쓰이는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다. 2020년 한국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418.2호다. 2000년 248.7호, 2010년 356.8호로 꾸준히 주택 수가 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아직 적은 편이다. 미국은 2019년 기준 425호, 영국은 434호, 일본은 2018년 기준 494호를 기록했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 국가는 500호 이상이다.
1000명당 주택 수가 418.2호라는 숫자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지는데, 심지어 이조차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주장이 많다.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으로 보기 힘든 집까지 포함시킨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통계상으로는 한 가구가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면 집으로 인정된다. 상가나 공장 안에 딸린 방, 고시원, 임시 막사, 비닐하우스 등도 집으로 친다. 또 옥탑방, 반지하, 부엌이나 목욕 시설이 없는 집도 주택 수에 포함된다. 하나의 방을 불법으로 나눠 여러 개의 쪽방으로 만들어도 각각 ‘1호’가 된다. 2020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최소한의 주거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4.6%, 96만 가구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시골 빈집이나 폐가, 준공됐지만 아직 분양이 안 된 미분양 주택도 주택 수에 포함되어 있다.
반면 가구 수는 축소됐다는 지적이 있다. 가구 수를 산정할 때 상당수의 외국인 가구와 비혈연 가구가 제외되기 때문이다. 주택보급률 통계에 사용하는 일반가구 수는 일정 기간 이상 주거 안정을 누려야 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불법 체류 외국인이나 1~2개월 단기 체류 외국인은 제외된다. 이들이 약 50만 가구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은 높아만 가고 이처럼 통계와 괴리된 체감 주택난이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할 지표는 PIR이다. PIR(Price to Income Ratio)이란 가구의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의 비율’을 말한다. 주로 중위 소득 가구가 중간 가격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으며, PIR이 10이면 연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모아야 중간 가격 주택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KB부동산의 월간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2021년 12월 서울의 PIR은 19.0배로 나타났다. 서울에 거주하는 중위 소득자가 중간 가격대의 집을 사려면 버는 돈을 전부 모아도 19년이 걸리는 것이다. 최근 집값이 급상승한 것은 코로나19로 많은 돈을 푼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금리 인하, 양적 완화,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풀려나온 돈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치를 올라가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국 사회가 깔고 앉아 있던 만성적인 주택난이 불안 심리를 부추기면서 패닉 바잉까지 이어진 것이다.
RIR이라는 용어도 함께 알아두면 현황을 가늠하기 좋다. RIR(Rent to Income Ratio)은 ‘월소득 대비 주택 월임대료 비중’을 뜻한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RIR은 16.6%로 전년(16.1%)보다 높아졌다. 월 100만 원을 벌면 그중 16만 6000원을 임대료로 내고 있다는 뜻이다.
비가 무지 쏟아지는 날, 박 사장네 아이는 앞마당에 방수텐트를 치고 놀지만, 기택네는 물에 잠긴다
거주의 질 차이는 삶의 질뿐 아니라 거주자의 생명과 재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반지하 방은 세계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구조다. 여기에는 한국의 정치・경제적 배경이 녹아 있다. 1968년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남북 간 긴장감이 치솟자 정부는 건축법을 개정해 국가 비상사태 시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그게 1970년이었고, 처음에는 반지하 공간을 거주지로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주택난이 심해지자 충분한 주택을 공급할 능력이 없던 정부는 반지하 임대를 묵인했다. 1984년 주택법 개정과 함께 반지하 임대가 합법화되면서 반지하 주택은 급속히 확산됐다.
영화 ⟨기생충⟩이 흥행하며 ‘반지하(banjiha)’는 한국어를 음독한 철자 그대로 외국에 소개됐다. BBC코리아는 ‘기생충: 반지하에 사는 청년들’이라는 제목으로 반지하에 사는 한국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참고: BBC News 코리아, ‘기생충: 반지하에 사는 청년들’)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1.6%가 지하·반지하·옥탑방에 산다. 약 33만 가구다. 특히 청년의 상황은 더 나빠서 청년 가구의 2.0%가 지하·반지하·옥탑방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 사장네가 집을 비우자 기우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앞마당 잔디에 드러누워 책을 읽는다. 기택의 아내 충숙이 아들에게 소리친다. “밖에 누워서 왜 그러고 있니!”기우가 답한다. “이게 집에 누워서 하늘 보는 거거든. 되게 좋아.”
상류 인생에 기생충처럼 스며든 하류 인생. 주택 보급을 둘러싼 통계치가 어떤 숫자를 찍어야 우리는 성공적인 동행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함께 보면 재밌는 콘텐츠
- 영화 ⟨숨바꼭질⟩: (허정 감독의 2013년작.) ⟨기생충⟩에서 지하 공간이 드러나던 장면의 놀라움을 더 극대화된 쫄깃함으로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초인종 옆에서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살지도 모른다는 암호를 발견한다면…?
- 책, 영화 ⟨노마드랜드(노매드랜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경제가 무너진 한 공업 도시. 이후 떠돌아 다니며 살게 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원작인 논픽션 도서를, 광활한 자연 속 낯선 길에 사는 이의 내면에 공감하고 싶다면 영화를 권한다.
-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꿈과 동심이 가득한 디즈니월드 건너편에는 빈민들이 사는 모텔이 있다. 이름하여 매직 캐슬. 그리고 그곳에 가깝고도 먼 동화 속 세상을 바라보는 여섯 살 꼬마 무니가 산다.
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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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제부장. 공학 전공 후 경제부 기자가 되었을 때의 좌충우돌이 쉬운 정보 전달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경제라는 쓴 커피에 영화라는 연유를 넣어 달콤한 연유라떼를 내어놓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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