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굽이쳤던 최근 10년의 세계경제

by 김동길

강가에 앉아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강가에 갔습니다.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살을 보았습니다*.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만 흘러가지 않아요. 물살은 굽이치거나, 돌에 부딪힐 때 오히려 역류하기도 하더군요. 갈 지자(之)를 그리며 횡보하는 잔물살을 보기도 했습니다.

*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의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의 표현을 차용했습니다. – 저자 주

앞이 아니라 옆으로 쏘다니다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물살의 흐름은 제 삶 같더군요. 그렇지만 위에서 아래로, 큰 방향을 찾아가는 강물을 보며 저 역시 결국은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이 있는 잔물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큰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맞추자고, 여러 발짝 물러서서 먼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람 일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내 일과 사업, 나라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가늠하기 힘들다면, 눈앞의 잔물살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닌지 살펴봅시다. 현업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서 나, 국가, 세계의 큰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먼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좁아진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요즘처럼 경제의 큰 방향이 바뀔 것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번 글에는 최근 10여 년 간의 경제, 금융시장의 큰 흐름을 짚어 보았습니다. 큰 흐름을 볼 수 있다면, 내 앞날을 계획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일들*

최근 10여 년의 경제 흐름을 결정한 가장 큰 사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이 위기로 인해 진원지인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1930년대에 겪은 대공황이라는 블랙홀 문턱까지 다시 끌려들어 갔다가 겨우 튕겨져 나왔습니다. * 주요 참고자료로 애덤 투즈의 《붕괴: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읽고, 책에서 서술한 순서와 동일하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전개, 미국의 대응, 유럽의 대응 순서로 글을 썼습니다. 책의 내용 외 다양한 참고자료를 활용하였습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영국 대처 행정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규제 완화 및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작은 정부 기조가 규제 강화와 큰 정부 지향으로 일시에 바뀌었죠.

또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엄청난 양의 돈(유동성)을 풀어 금융시장에 돈이 계속 돌도록 하는, 양적완화와 같은 적극적 통화정책이 위기 대응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금리가 크게 하락하여 0과 1 사이를 오가는 제로 금리 시대가 열렸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주식과 주택가격 상승을 초래했습니다. 집과 주식 등 자산을 가진 사람들만 더 부자가 되니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요.

위기의 명암은 국가별로 엇갈렸습니다. 망할 것 같았던 미국은 완화적 통화정책 등을 통해 가장 빨리 경제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한편 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2012년 유럽 재정위기까지 겪으며, 경제 회복도 매우 더뎠습니다.

중국에게는 이 위기가 국력을 키울 절호의 기회였죠. 참고로 1970년대의 소련, 1980년대의 일본은 모두 미국 GDP의 40% 수준까지 왔을 때 미국 견제를 받아, 세계 1강에서 2강 체제로 가는 길을 저지당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딱 그 시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이 한참이던 2010년이었어요. 미국이 위기 때문에 정신없는 틈을 타서 중국은 견제와 간섭을 덜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2020년 기준 미국 GDP의 70%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거죠.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 정치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경기침체와 실업, 심화된 자산 불평등에 시달리게 된 국민들은 그들의 불행이 외국인, 이민자 등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선동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같은 이들이 집권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악의 근원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이쯤 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악의 근원으로 불러도 되겠죠. 금융위기는 왜 발생했을까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주택가격은 지속적으로 올랐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자, 많은 이들이 빚(주택담보대출)을 내어 집을 사들였어요.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여러 채를 매입하며 가격 상승을 즐겼습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발달한 금융공학을 바탕으로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팔았습니다. 이러한 금융상품의 신용도는 미국 국채와 비슷하지만, 국채보다 수익률이 더 높았습니다. 안정성과 수익성을 겸비했으니,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죠.** * 대표적인 상품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가지고 있을 경우 받게 되는 대출 상환 원금과 이자를 바탕으로 만든 채권인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와, MBS를 모아서 다시 채권을 만들어 판매한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등이 있습니다. – 저자 주 **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여러 금융기관들이 미국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보유했었습니다. – 저자 주

2000년대 중반까지 주택가격은 계속 올랐고, 주택 관련 금융상품의 인기가 좋다 보니, 금융기관은 주택담보대출을 계속 공급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금융기관들은 그동안 집값 상승으로 인한 부자 행렬에 끼지 못했던, 신용도가 낮고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만들어 공급했고, 이를 모아 금융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 금융기관과 펀드 등에게 팔았습니다. 높은 대출금리 등 상대적으로 조건이 나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곳곳으로 퍼진 셈이죠.

주택가격이 계속 오를 순 없습니다. 2006년을 정점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대출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이용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부터 연체가 늘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가지고 만든 금융상품 투자자들, 주로 금융기관 및 펀드 등에게 투자 원금과 이자를 제때 지급하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주택가격은 그 후에도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어요. 이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뿐 아니라 다른 주택담보대출도 원금과 이자 연체가 발생했죠. 이들 상품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의 손실 발표가 이어졌고, 심지어 파산하는 기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1990~2009년 케이스-실러 미국 주택가격 지수 (출처: FRED)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손실과 파산이 늘었다는 점이 아니라, 어디서 문제가 발생할지 알기 어렵다는 데에 불안을 느꼈거든요.

전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 등이 미국 주택담보대출 기반 금융상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손실과 파산이 미국 외 어느 나라, 어느 금융기관에서 발생할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들 상품은 구조가 너무 복잡해, 상품 보유액 중 손실이 얼마나 발생할지 추정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정확한 손실액을 알 수 있다면 그에 근거해서 매수, 매도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실액을 알 수 없으니 ‘헐값에라도 일단 팔고 보자’로 귀결됐습니다.

요약하면 누가, 얼마를 손해 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금융시장을 마비시켰고, 전 세계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투자심리가 거의 동시에 얼어버렸다는 점, 이게 진짜 문제였습니다. 팔 사람만 넘치고 살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불안은 정상적인 금융거래까지 중단시켰습니다. 금융위기 전 금융기관들은 매우 싼 수수료(이자)를 주고 다른 금융기관에게 돈을 빌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확산되자, 30일 이내의 매우 짧은 만기로 돈을 빌리려고 해도 과거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줘야 했습니다. 거래 상대방의 상환능력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릴 때 금융기관이 보유한 금융상품을 상대방에게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오는 레포(Repo) 거래도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에는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상대에게 맡기면 싼 이자를 주고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으나, 이제는 담보로 인정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주택 관련 금융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금융기관들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이들은 장기는 물론 단기 자금조차 조달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가 증가했으니 받아야 할 원금과 이자도 들어오지 않았고요. 게다가 보유 금융상품을 담보로 돈을 빌리려 해도 담보 인정이 안되니 빌릴 수도 없었죠.

결국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갚지 못한 곳부터 파산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곳이 당시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였어요. 리먼이 파산신청을 한 날짜는 2008년 9월 15일입니다. 보통 이날을 기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었다고 봅니다. 대공황이라는 괴물이 다시 세계를 삼키려고 입을 쩍 벌렸습니다. * 나머지 투자은행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메릴린치(Merrill Lynch). – 저자 주

과감하고도 엄청난 유동성으로 위기를 모면한 미국

리먼 파산 이후, 대공황 시즌2를 염려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이하 연준)와 재무부는 더 이상의 초대형 금융기관 파산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또 다른 금융기관이 파산할 경우, 극도로 불안해진 시민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모두 인출하고(뱅크런), 돈을 빌려 주려는 금융기관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자금이 부족해진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도 높아지면서 경제는 심각한 침체 상황에 빠질 겁니다.

미 연준과 정부는 미국 최대 보험사 AIG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시작으로, 대형 은행 및 증권사(투자은행)들에게 추가 자본금을 투입하며 넘어지려는 금융기관 등 뒤에 버팀목을 세웁니다. * 미 연준은 AIG에 1,820억 달러(약 193조 원)의 구제금융을 공급했어요. 참고로 한국의 2021년 예산 규모는 558조 원으로, 당시 AIG 구제금융 규모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5%에 달합니다. – 저자 주

또한 기준금리를 이미 0% 수준으로 내린 데 이어, 금융기관이 보유한 국채, 심지어는 주택 관련 금융상품까지 사들이며 이들 상품의 금리를 낮추고, 금융기관이 예금과 대출, 투자활동 등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를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라고 합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과 통화스왑 계약도 맺었어요. 자국 외환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등 전 세계로 확산된 금융위기가 국가 파산 등으로 더 심화되지 않도록 지원했죠. 일련의 조치를 비유하자면, 물이 말라버려 모래 바닥에 처박혀 있는 배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물은 돈을, 배는 금융기관을 의미해요.

양적완화에만 투입된 달러 규모는 약 4.5조 달러였어요. 한화로 약 5,400조 원,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10배에 이릅니다. 통화스왑 등 다른 조치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더 컸고요.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죠.

이처럼 과감하고도 엄청난 규모의 통화공급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미국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달러를 보유한 기축통화국입니다. 한국의 원화는 거의 국내에서만 통용되고 해외에서는 사용되지 않아요. 따라서 양적완화를 통해 원화공급을 크게 늘린다면 그 돈이 거의 국내에 머물게 되므로,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자산과 물가만 크게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겠죠.

반면 미국 달러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므로 이럴 가능성이 낮습니다. 전 세계적인 위기상황에서는 달러 수요가 늘어나는 점 또한 달러 가치 하락 우려를 덜어주고요. 

둘째, 미 연준은 1930년대 대공황의 교훈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연준은 시중에 통화공급이 충분치 않았는데도 금리를 올린다거나, 통화공급을 줄여버리는 등 긴축을 실시했고, 이로 인해 공황을 지속시켰다는 비판*을 받았죠. *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지된 금본위제 때문인데요. 금리를 인상하여 미국이 보유한 금이 다른 나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했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상세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 저자 주

따라서 미국은 경제위기 때의 통화정책은 부족하기(too little)보다는,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too much) 많은 유동성을 경제회복이 완연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 역시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통화를 충분히, 지속적으로 공급하지 않고 경기회복 기미가 보이면 줄였다가, 침체되는 것 같으면 늘리는 행태를 반복했던 점을 원인 중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2008년에 시작된 양적완화는 미국 경제가 회복세가 완연해진 2015년 12월 말에서야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미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과감하고 일관되게 추진된 점이 오늘날의 미국 경제 회복의 한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 0~0.25%에서 0.25~0.5%로 기준금리 범위를 인상했습니다. – 저자 주

보다 빠른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경기를 부양하는 정부지출 확대, 즉 확장적 재정정책이 뒷받침돼야 했습니다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이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미 의회를 장악하는 바람에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확장적 재정정책이 과감하게 집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여야의 초당적 합의가 어려운 건 미국 역시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한 발 물러나면서 위기를 더 키운 유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고,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가 미국 금융기관이므로 얼핏 미국에 한정된, ‘미국의 위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유럽 금융기관들이 다수의 미국 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도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거나 파산 위기를 겪었습니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금융기관뿐 아니라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유럽 내 취약국가가 국제통화기금(이하 IMF), 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미국의 위기는 유럽 전체로 전이됐습니다. 유럽재정위기의 시작이었죠.

유럽은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스왑, 미 연준의 유럽 금융기관 보유 채권 매입 등 미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의 도움을 받아, 미국발 충격을 어느 정도 막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속으로 곪아가던 유럽 내부 문제가 터져 나오고 말았어요. 화폐만 합치고, 재정과 정치는 따로따로인 EU의 한계가 드러났죠.

미국과 달리 수천 년을 다른 나라로 존재해왔고, 작게는 서로 간의 전쟁, 크게는 1~2차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는 돈을 통일하고 나아가 정치, 경제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1993년 EU(European Union) 출범 이후, 유럽은 이 엄청난 일을 차근차근 추진하여 1999년 단일화폐 유로(Euro)를 도입하고, 각국의 통화정책 주권을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에 넘기는 등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반면 재정정책은 여전히 각국 재량이었고, 정치통합도 어려웠죠. EU 내 부국(독일 등)과 빈국(그리스 등)의 경제력, 서로를 향한 국민들의 인식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재정위기의 도화선이 된 그리스를 중점적으로 살펴봅시다. 그리스는 EU 가입 후 유로를 사용하면서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자국 화폐(드라크마)를 사용하지 않으니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늘릴 필요가 없어졌고, 그리스 국채 금리도 유로 사용 이후 하락했습니다. 예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셈이죠. 그리스의 정부부채는 GDP의 100%를 초과한 채로 계속 유지됐습니다. 원래 유로 사용 국가는 정부부채를 GDP의 60%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데, 그리스는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최 등 재정적자 확대, EU 가입 당시 그리스 재정적자 과소추정(분식회계)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009년 이후 그리스의 국가신용도는 크게 하락했고, 그리스 국채금리는 폭등했죠.

결국 그리스는 2010년 5월 IMF와 EU에 1차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아일랜드도 그해 11월 구제금융을 받았고, 국가 재정이 취약했던 포르투갈**, 스페인, 이태리에도 비슷한 일을 겪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됐습니다. 또 한 번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이었어요. * 그리스는 2차(2012년 3월), 3차(2015년 8월)에 걸쳐 총 2,890억 유로(약 370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2018년 8월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습니다. – 저자 주 ** 포르투갈은 실제로 2011년 4월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 저자 주

유럽은 미국처럼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재정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미 연준과 달리, 유럽중앙은행(ECB)은 회원국 국채를 자유롭게 매입할 수 없었고요*. 회원국 간 합의와 지원 없이는 적극적 통화공급이 어렵다고 오히려 한 발 물러섭니다.

* ECB는 회원국의 신규 발행(발행 시장) 국채를 매입할 수 없었고, 이미 발행된(유통시장) 국채만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ECB의 국채 매입행위가 시장 유동성 공급을 넘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데요. 이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극심한 피해를 겪은 독일의 입김이 작용한 조치로 보여요. ECB가 신규 국채를 계속 사주는 행위는 회원국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하는 걸로,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죠. – 저자 주

EU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형성된 재원으로 그리스처럼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한 나라를 구제하는 데 부정적이었고, 이런 여론을 메르켈 총리도 거스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EU나 ECB 차원에서 그리스나 아일랜드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통화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었어요.

ECB는 뒷짐을 지고 있고, 인플레이션과 재정지원에 부정적인 독일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각국이 적극적인 통화, 재정정책을 추진하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국가부도가 코 앞에 다다른 정말 긴급한 상황까지 가서야 찔끔찔끔 내놓는 대책으로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까지 전이되는 위기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죠. 

개별 국가 입장에서도 자율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ECB에 일임한 것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져 수출경쟁력이 생기는 등 경제의 자동조절 기능을 기대할 수 없어 정부 지출(부채)만 더 늘리는 악순환으로 작용했거든요.

이런 혼란은 새로운 ECB 총재로 부임한 마리오 드라기가 나서서 2012년 9월, 위기에 빠진 회원국 채권을 무제한으로 매입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금융시장은 차차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그 후에도 2015년 8월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등 여진은 계속됐어요.

결국 미국과 달리 유럽의 대책은 유럽과 세계를 구하기에는 역부족(too little)이었던 것이죠. EU 개별 회원국의 입장과 사정이 모두 달랐던 걸 감안하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감함의 승리, 그런데 지금은?

미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완화적 통화정책을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위기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약, 과감한 재정지출 확대까지 할 수 있었다면 회복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반면 유럽은 EU 회원국의 엇갈리는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위기 초기에 통화정책을 신속하고 과감히 집행하지 못했고, 재정정책도 긴축으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미국보다 경제회복 또한 늦어졌죠. 따라서 ‘위기상황에서는 과감하고 지속적인 통화,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위기 대응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전 세계의 대응은 신속하고 과감했습니다. 미 연준은 금리 인하, 국채 매입 등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빠르게 시행했고, 경기부양책을 쏟아냈습니다. 유럽도, 한국도 비슷한 조치를 신속히 취했죠. 그 덕분인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우려는 금세 진화됐어요.

이에 대해,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냈던 박복영 교수는 ‘팬데믹 경제위기는 다른 위기와 다르다’는 칼럼을 통해 정책 여력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컸다기 보기는 이런 정책을 추진해도 국민들이 수용할 만했기 때문으로 진단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돌이켜볼까요? 돈을 더 벌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위험 채권에 투자한 금융기관이, 구제금융을 받자 자기 보너스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데* 이들을 왜 구제해야 하냐며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했었죠. 유럽 재정위기 때는 그리스에 대한 독일 국민의 불만이 컸고요. 돈은 그리스가 펑펑 쓰고 그걸 해결하는 데 왜 독일 돈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 미국 AIG가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거액의 보너스를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미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오바마 행정부도 궁지에 몰렸습니다. – 저자 주

하지만 바이러스에게 화풀이를 할 순 없겠죠. 박복영 교수는 국민 저항이 크지 않았던 점이 재정, 통화정책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이유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더해, 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2008년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재정위기를 거치며 얻은 교훈 또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위기에는 넘칠 정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교훈이죠. 덕분에 코로나19가 또 다른 대규모 경제위기로 비화(飛火)하는 걸 막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가오는 위험, 인플레이션

이제 백신에 이어 치료제도 개발되고, 국민 상당수가 백신 접종을 받아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그간 잊었던 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사실 그동안 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는가는 오랜 의문 중 하나였습니다. 과거 10여 년간 돈을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이 풀었는데 왜 물가가 오르지 않았을까요? 누군가는 중국을 원인으로 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금융기관들이 돈을 쌓아놓고 풀지 않아서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고, 원자재, 전기요금은 물론 각종 서비스 요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오르는 추세죠. 그간 인플레이션 우려를 기우라고 하던 연준도 이제는 이를 경고하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 나을 텐데, 경제가 침체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 중 최대 사건이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럽으로 흘러들어 서로 다른 큰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위기 대응은 ‘투머치’가 답이라는 걸 알려줬죠.

이번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을 통해 우리는 ‘투머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확인했어요. 동시에 잊힌 고대의 악마*, 인플레이션을 다시 불러내는 건 아니냐는 새로운 우려를 갖게 합니다. 아직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만약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계경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리스크 깜빡이를 넣고 움직일 때입니다. * J.R.R 톨킨 원작의 영화 <반지의 제왕> 1편에 나오는 발록(Barlog)에 대한 묘사를 차용했습니다. – 저자 주

Edit 손현 Graphic 이은호, 엄선희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외부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 외부 기고는 토스팀의 블로그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피드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동길 에디터 이미지
김동길

위기를 겪었고 위기를 다루며 위기를 공부하는 사람. 성균관대 경제학부와 KDI 국제정책대학원을 졸업했고, 기획재정부 영 프로페셔널(YP)을 거쳐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문에 학업을 접어두고 취업했고, 입사 첫 달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겪으며 경제위기 원인과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필진 글 더보기
0
0

추천 콘텐츠

지금 인기있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