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 가는 폐가를 4,500만 원에 구입했어요

by My Money Story

오느른 PD 최별의 머니 스토리

쓰러져 가는 폐가를 4,500만 원에 구입했어요.

저는 9년 차 방송국 PD입니다. 지금은 전북 김제의 한 시골 동네에서 살고 있어요. 여기서 시골에서의 생활을 콘텐츠로 만들어 올리는 ‘오느른’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거든요. 도시에서 일하는 방송국 PD가 시골에 살면서 일을 하다니… 사실 올해 초에 ‘오느른’을 기획했을 때 동료들은 다들 믿지 못하는 눈치였어요. 시골에 있는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사서 고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보겠다고 하니, “할 수 있겠냐”라는 말부터 “사실이냐”라는 말까지 다양하게 나왔죠. 

반대라기보다는 당황에 가까웠는데요. 방송국 센터장님도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밀어줄 테니까 해보라고 하시더니 막상 시골집 계약서를 들고 가니까 많이 당황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당시에 코로나 때문에 제가 하던 여러 프로젝트가 중단된 상태였거든요. 힘든 모습이 회사에서도 티가 났었는지 일단 한번 시켜보자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래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죠.

집에 대한 관심이 ‘오느른’의 기획으로 이어졌어요. 제가 월세로 살다가 재작년에 전세로 가게 되었는데요. 전세금의 80% 정도는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집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는데, 계속 빚을 지고 살기보다는 집을 사서 빚을 갚아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제가 가진 돈으로 서울에서 살 수 있는 낡은 빌라를 하나 찾았어요. 제가 오래된 집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회사에 소문이 난 거예요. 부장급 선배들이 절대 그 집을 사면 안 된다고 말리기 시작했고… 결국 작년에 집 사는 걸 실패했죠. 

그러다가 문득 ‘시골집을 알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늘 시골집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누구나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기면 시골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그 여유가 계속 안 생길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실행에 옮기기로 한 거죠. 처음엔 강화도 쪽으로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집값이 비쌌어요. 차가 막히면 가는데 3시간이나 걸리더라고요. 이럴바에야 서울에서 좀더 멀어져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점점 싼 집을 찾다가 전북 김제까지 오게 되었죠. 그리고 ‘오느른’이 탄생했습니다.

원래 제가 지었던 제목은 ‘오늘은’이에요. 매일 무계획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는 의미에서 지었죠. 오늘은 카페 했다가, 내일은 뭐 다른 일 하다가… 그런데 같이 일하는 PD분이 ‘콘텐츠에 좀 느린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대신 ‘오느른’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시더라고요. 듣자마자 괜찮더라고요. 바로 오케이 했죠.

‘오느른’ 채널을 운영하다 보니 ‘오늘은’에 ‘어른’의 의미가 더해진 것 같아요. ‘오느른’ 채널을 시청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자신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어른’들이거든요. 저도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특히 이 동네에서 함께 생활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어른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이분들을 보면 상황에 대처하시는 능력이 지혜로와요. 나이가 들수록 무기력해지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지내시더라고요. 본인보다 어린 사람에게 늘 베푸시고요. 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았던 순간들이 모여서 좋은 어른을 완성시킨다고 믿는데요. 장기적으로는 ‘오느른’ 채널이 ‘어른’들의 커뮤니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송과 유튜브의 히트 공식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외주제작사 조연출로 방송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 맡은 일은 국회방송의 10부작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는데요. 각 편이 60분짜리로 구성되어서 처음 맡은 프로그램치고 긴 시간의 프로그램이었어요. 보통 방송국에서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맡게 되는 프로그램의 길이가 길어지는데요. 나중에 선배들이 저보고 경력을 거꾸로 쌓았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긴 호흡의 프로그램을 맡다 보니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아요.

제 관심사를 반영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 경험이 많은데요. 이십 대 중반에는 ‘다이어트’와 ‘물’이었고, 스물여덟 즈음에는 ‘결혼’이었고, 재작년부터는 ‘집’이었어요. SBS스페셜 <물 한 잔의 기적>, MBC <우리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최근의 ‘오느른’이 그러한 연유로 탄생하게 되었죠.

유튜브 채널에 대한 관심은 100부작 미니 다큐 <기억록>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부터 생겼어요. <기억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서 한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조망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TV에서도 방영되고 유튜브에도 업로드되는 ‘크로스 미디어’의 형태였어요. 그런데 배두나, 신혜선 씨 같은 유명 배우분들이 출연하고, 당시 MBC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가 700만 명이었는데도 영상 조회 수가 고작 2~3,000 정도 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연말에 상도 많이 받은 프로젝트였는데…. 그 경험이 저한테 유튜브라는 하나의 숙제를 남겨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실버 버튼도 받았고 구독자도 20만이 넘었지만, 오느른도 처음 두 달 정도는 구독자 수가 몇 천 명 정도 수준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방송국 센터장님도 저한테 구독자 수가 너무 적은 것 같다고 많이 말씀하셔서 저도 나름 압박을 많이 받았죠. 직접 여러 커뮤니티에 가서 “구독해달라”, “콘텐츠를 주변에 좀 알려달라”는 글도 남기고… 다른 회사와도 협업을 했어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다행히도 구독자 수가 많이 늘더라고요.

지금은 방송국에서도 잘 봐주시고 김제 근처에 사무실을 내주시는 등 일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해주시고 있어요. ‘오느른’이 인기를 얻게 된 후에 ‘이런 형식도 콘텐츠가 되는구나’라는 인식이 방송국 안에서 생긴 것 같고요. 앞으로도 ‘오느른’을 계속 잘 키워서 새로운 가능성을 더 보여드리고 싶어요.

1억은 어른이 되기 위한 투자였어요.

전북 김제의 폐가를 구입하는데 4,500만 원, 집을 꾸미는데 5,000만 원 정도를 들여 총 1억 원 정도를 집에 썼어요. 이 돈이 저에게 하는 투자였다고 생각해요. 이제 30대 초반인데 곧 중반이 될 거고, 중반이 넘어가면 인생의 많은 것들이 굳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나중에 누가 봐도 어른인 나이가 되었을 때는 고치려야 고칠 수 없는 것들이 생기겠다 싶어서, 지금 한번 나를 되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간적, 물질적인 투자를 단행한 거죠.

‘오느른’ 채널에 가끔 “왜 서울이나 시골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어요?” 같은 댓글들이 달려요. 왜 도시의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애매하게 시골에서 살고 있냐는 지적이죠. 사실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생각도 일종의 편견인 것 같았어요. 회사원은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편견. 꼭 프리랜서이거나 자영업을 해야만 자기 주도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편견.

저도 도시에 있을 때는 회사에 불만이 많은 회사원 중 한 명이었고, 도시와 시골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불만이 있었어요. 그런데 용기가 있고 어른스럽다는 것이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단순히 퇴사하고 싶어서, 도시가 싫어서 시골에 오게 된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그때그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용기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보다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만일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에 왔거나, 서울이 복잡하고 지겨우니까 여기에서 단순하게 살겠다 생각하고 왔으면 금방 힘들어졌을 것 같아요. 도망치는 마음과 다른 걸 선택하고 싶은 마음을 잘 구분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돈이 없다고 해서 어른이 아닌 건 아니지만, 경제적인 자립은 어른으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고요. 동네에 있는 어르신분들을 보면서 이 점을 많이 생각하는데요. 보통 서울에서는 직업을 선택해서 살다가 그 직업에서 은퇴를 하면 다시 잉여인간이 되는 사이클이잖아요. 그런데 이곳의 어르신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살아가시는 느낌이에요. 항상 부지런하시고요. 이분들을 보면서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되지?’라는 질문에 대한 방향성이 잡혀가는 것 같아요.

쓸데없는 백일홍 나무를 100만 원 주고서 샀어요.

시골에 살면서 가장 기뻤던 소비는 백일홍 나무를 구입한 거예요. 저 백일홍 나무를 100만 원 주고서 샀는데요. 사실 백일홍 나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잖아요? 쓸데없는 것에다가 이렇게 큰돈을 쓴 것은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스스로의 소비에 대해 아주 엄격한 편은 아니지만, 백일홍 구입처럼 용도가 명확하지 않은 소비는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요? 일종의 사치라고 할 수 있는 소비의 단계까지 온 것 같아서, ‘이 정도는 내가 살 수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어서 기뻤던 소비였어요.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풍경을 돈 주고 샀다’는 생각도 들고요.

시골에 살면서 소비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집 주변으로 전방 4km까지는 가게와 식당이 없거든요. 집 오는 길에 간판도 없고, 뭘 파는 곳이 하나도 없죠. 도시에 있으면 집에 가는 길목에 어떤 선택지가 항상 기다리고 있잖아요. 이걸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무의식적으로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시골에 살면서 그 피로도가 굉장히 줄어들었어요.

돈이 목적인 인생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느른’은 그런 면에서 주객전도가 되기 쉬운 콘텐츠더라고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을 사서 이곳까지 왔는데, 여기서 또 콘텐츠를 만들면서 일하고 있으니 얼마나 모순적이에요. 그래서 항상 ‘주객전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콘텐츠에도 이 점이 잘 드러나면 좋을 거 같아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요. 채널 협찬을 받을 때도 돈의 액수보다는 ‘오느른’이 지향하는 여유와 분위기와 부합하는지, 그리고 공익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보고 있어요. ‘오느른’으로도 돈을 벌긴 벌어야 하거든요. 요즘에는 좋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도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

재테크를 따로 하지 않고 있어요. 방송국에서 일하는 주변 동료분들이 그런 데에 관심을 많이 안 가져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랑 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우리 큰일났다”예요. 그럴 때 있잖아요. 당장 시험을 봐야 하는데 주변 친구들이 시험 기간에 공부 안 했다고 해서 정말 공부 안 한 줄 알았더니 사실 그 친구들은 공부를 했고… 진짜 공부 안 한 사람은 저랑 제 친구밖에 없을때… 부모님 세대는 정직하고 돈만 벌면 부자가 되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돈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런 것을 보았을 때 ‘이러다 경제적으로 소외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에 대한 큰 욕심은 없지만, 자급자족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글을 쓰시는 분이셨고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셨는데, 부모님 모두 어느 순간에 벌이가 위태로워지셨어요. 나름 전문직으로 일하시던 분들이었는데… 한순간에 돈을 벌기가 힘들게 되셨죠. 저도 지금은 PD로 일하고 있지만 나중에 이 일을 그만둬도 내 한 몸 먹고 살 정도의 일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집에 오고 나서는 어떠한 안정감이 생긴 것 같아요. ‘내가 직업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도 여기서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지금 저한테는 ‘공간’이 중요해요. 직업이 없어지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공간…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바로 그런 공간인 것 같고요.

돈보다 소중한 것을 굳이 꼽자면 저 자신인 것 같아요. 제가 없으면 돈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요.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도 돈이 아니에요.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이 회사와 맞는지가 중요하지, 돈을 많이 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계속 쌓여간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요. 제가 선택한 것으로 경험이 결정되고, 그 경험의 총량이 지금 제 자신이라고 믿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번 태어난 거 이왕이면 이것저것 해보면서 재미있게 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지금은 책을 하나 쓰고 있는데 그 책이 얼마나 팔릴지 너무 궁금해요. 책을 쓰기로 한 것도 제가 내린 선택이었고, 그 책이 얼마만큼 팔려나가는지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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