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들에게 약속했어요. ‘돈 벌게 해줄게’

by My Money Story

ADOY 리더 오주환의 머니 스토리

 

ADOY는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만든 밴드예요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 오주환입니다. ‘ADOY’라는 밴드에서는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어요. ADOY가 소속된 레이블 ‘엔젤하우스’ 공동 대표이기도 해요. ADOY는 음악을 그만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만든 밴드예요. 

예전에 ‘스몰 오’, ‘이스턴 사이드킥’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는데요. 밴드가 해체되고 나서 ADOY를 준비하던 시기가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어요. 삼십 대 중반이었는데 돈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먹고 살 길이 막막했어요. 음악 말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요. 예전에는 밴드 생활을 하면서 모델 일을 병행했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후배 모델들이 치고 올라오고 나중에는 저를 써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때 아는 동생이 국카스텐 굿즈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친구 일 도와주러 국카스텐의 반팔 티셔츠를 갠 기억도 있어요. 4,000~5,000장 접고 아르바이트비를 받았었네요. 정말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곡을 썼고 밴드 멤버를 모았어요. 밴드 이름은 갑자기 정해졌는데요. 반려묘 이름이 요다(YODA)거든요. 요다 이름을 거꾸로 읽어보니 ‘ADOY’가 되더라고요. 우리만의 유니크한 이름을 찾고 있었는데, ‘ADOY’는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름이더라고요. 만약 밴드 이름이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는 단어면 눈에 띄기 힘들잖아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유사한 단어도 같이 딸려 나오고… 그래서 ADOY로 결정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재산이 0원이었어요. 돈 벌기 시작한지 이제 2년이 좀 넘었네요.

2017년 5월에 ADOY 첫 앨범이 나왔는데, 첫 5개월은 반응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ADOY가 앨범을 내자마자 바로 인기를 얻었다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앨범 발매 후 6개월이 지난 11월부터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고 그전까지는 많은 부침이 있었어요. 음악적으로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멤버도 교체하고…

‘고작 6개월 가지고 부침이 있었다고?’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음반 업계도 스타트업처럼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흘러요. 전 세계에서 앨범이 하루에도 몇 백 개씩 쏟아지거든요. 한 달만 지나도 잊혀지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초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부담이 굉장히 컸어요. ADOY 앨범은 발매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치 새 앨범처럼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굉장히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어요. 제가 세금을 걱정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절세를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웃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전 재산은 0원이었어요. 그러다가 2018년 11월부터 제대로 된 수입이 생겼으니, 돈을 벌기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었네요.

그런데 작년에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2020년은 ADOY 같은 뮤지션들에게는 몹시 힘들고 아쉬웠던 한 해였죠. 저희가 2019년 11월에 정규 1집 ‘비비드’를 발매했거든요. 2020년 1월부터 단독 공연에 아시아 투어까지 잡아 놓고 전부 매진시켰는데… 다 취소가 됐어요. 모두 처음 겪는 일이기에 저희도 초반엔 우왕좌왕했는데요. 그럼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려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공연은 할 수 없으니 온라인 비대면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하고, 굿즈와 후드티를 제작하고, 예전에 발매되었던 카세트 테이프, 바이닐도 재생산을 해서 수입을 보존하려고 했죠. 

다양한 ‘수익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음악가 같지 않아서 말하기가 되게 조심스럽네요. 굉장히 변수가 많은 시즌이었지만 기민하게 대응한 덕분에 ADOY는 최소한의 타격만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인터뷰 끝나고 저녁에도 멤버들과 작전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요. 2021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짜보려 합니다.

돈 잘 버는 일보다 행복한 일을 택했어요.

17살 때 학교 그만두고 다양한 일을 해왔어요. 나이트클럽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고요. 동대문에서 의류 도소매 사업도 했죠. 모델 에이전시 가르텐 소속 패션모델로 잡지와 광고일을 7년 정도 했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거나 책을 내기도 했어요. 천연 향초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는 KBS <생생정보통> 리포터로 활동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라는 여행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죠. 기타 레슨도 오랫동안 했어요. 하루에 3, 4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지금도 제 핸드폰에는 ‘기타 레슨 누구누구’라는 이름으로 몇백 명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대박 터트릴 거야’, ‘돈을 많이 벌 거야’라는 식으로 접근한 적은 없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면 옷 만드는 일을 계속했을 거예요. 이 일을 했을 때 수입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뮤지션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 의류 사업을 접고 홍대로 넘어와 음악에 매진했어요. 사업이 잘되다 보니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음악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 저는 ‘행복의 효용 가치’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옷 만드는 일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좋은 차를 탈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크기가 음악을 하는 것만큼 크진 않다고 본 거죠. 음악은 제가 사랑하는 일이자, 끝까지 놓지 못하는 일이거든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음악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이것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것 같아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느낄 만큼요. 

사실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몇 년 하다가 ‘이 일로는 생활이 안 되겠다’면서 다른 직업을 구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 결정도 존중은 하지만, 음악을 덜 사랑하는 거라 생각해요. 전 조금 불편하고 힘들지라도 더 행복한 일, 진짜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일을 해본 경험은 ADOY 활동을 하면서도 큰 도움이 돼요. 동대문에서 옷을 만들어봤으니 ADOY 굿즈 만들 때도 어떤 원단 쓸지, 날염 어떻게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었거든요. 일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요. 무료로 기타를 가르쳐 주었던 ‘aokizy’ 옥승철 작가는 ADOY 앨범 커버 이미지를 만들어줬어요. 저와 ‘월든’이라는 향초 회사를 공동 창업했던 전채리라는 친구는 지금은 CFC라는 굉장히 유명한 디자인 회사의 대표가 됐는데, ADOY 로고를 만들어줬고요. 두 사람 덕분에 ADOY만의 유니크한 비주얼 아이덴티티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17살 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살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렇다 할 것 같아요. 그때는 그게 베스트였어요. 후회도 없고요. 계속 학교를 다니고 대학에 갔으면 오히려 엄청 후회했을 것 같아요. 물론 생활 전선에 일찍 나선 후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잘 살아온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있었고요. 주체적인 삶을 살아왔다 생각해요.

ADOY 멤버들에게 약속했어요. ‘돈 벌게 해줄게’

ADOY는 ‘커머셜 인디밴드’를 표방하고 있어요. 사실 말장난 같은 건데요. ‘커머셜’과 ‘인디’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잖아요. 보통 ‘인디밴드’라 하면 고집센 느낌, 하고 싶은 실험적 음악을 하는 느낌이 강해요.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고요. 반면 ‘커머셜’은 대중성을 확보한다는 뜻이죠. 저희는 둘 다 잡고 싶었어요. ADOY는 인디밴드가 맞지만, 우리 음악을 좀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ADOY를 하기 전까지 멋있다고 생각했던 음악들은 대중의 외면을 받았어요. 어찌 보면 실패했다 볼 수도 있죠. 이런 음악을 똑같이 답습하는 게 뚝심있고 멋있다 볼 수도 있겠지만, 전 음악적으로든 비주얼적으로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새로운 팀을 꾸리고 리뉴얼을 했으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바꾸지 않을 거라면 뭐 하러 새로운 팀을 만들지?’라는 생각이었던 거죠. 

일단 제가 하던 록 음악으로는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ADOY 멤버들과도 만드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합의점이 있었고요. 그래서 팝 음악을 지향점으로 삼았습니다. 음악을 좀더 쉽고 심플하게 만들고, 기타 사운드도 많이 뺐죠. 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인디밴드로서는 드물게 음향 엔지니어를 고용했어요. 당시 저희가 부담하기에 엄청나게 큰 비용이었지만 과감히 투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활동 무대를 ‘홍대’가 아닌 ‘아시아’로 정했어요. 가사도 전부 영어로만 썼고요. 이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데뷔 후에도 계속해서 빠르게 진로를 변경해서 더 멋진 팀이 될 수 있도록 세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니까 되더라고요.

저는 뮤지션이면서 ‘엔젤하우스’라는 레이블의 경영자이기도 해요. ‘잘 파는 것’에 대해 늘 생각을 해야하죠. 앨범 발매 타이밍, 포지셔닝, 손익분기점(BEP)과 매출에 관한 생각, 시장에서의 공급과 수요… 음악을 아무리 잘 만들어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매출이 안 나오면, 그동안 노력했던 게 흐지부지되고 용두사미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제가 ADOY 멤버들한테 “돈 벌게 해준다”고 약속했거든요. 이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어요. 본업은 뮤지션이니 음악적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도 맞아요. 그럼에도 제가 지금 하는 일을 밴드 구성원 중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했어요. 이를 위해 음악적인 비중을 좀 내려놓아야 할지라도요.

엔젤하우스는 아직 굉장히 작은 회사예요.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봤을 때는 ‘쟤네는 예산이 저 정도밖에 안 되는데 뭐 저렇게 열심히 활동하냐?’라는 말을 할 법도 하고요. 그런데 저희는 팬분들이 저희만의 힘으로 하나씩 성취해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봐주시고 응원해 주신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ADOY는 거대 엔터 회사랑 견주어도 모자람 없는 음악을 하는 게 목표예요. 제대로 된 앨범과 공연을 선보이고 싶고요. ADOY가 잘 되기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는데요. 앞으로 5년, 10년을 더 이어 나가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엔젤하우스에서는 아무도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제가 사는 이 집은 엔젤하우스라고 불려요. 일종의 아지트인데요. 예전에 모델 활동 하면서 친구를 이 집으로 데려온 게 엔젤하우스의 시작이었어요. 그 친구는 지방에서 올라온 애였는데,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서 혼자 살고 있더라고요. 그게 짠해서 ‘야, 우리 집에서 같이 살래?’ 했던 거죠. 원래는 이 집에 저 포함 3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엔젤 멤버로 합류하게 됐어요. 이후 그 친구가 또 아는 동생을 데려오면서부터 엔젤 멤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요. ‘형 제 친구 동생이에요’, ‘형 제가 아는 동생인데 옷 관련된 일을 해요.’ ‘형 제가 아는 동생이 있는데 이번에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예요.’ ‘형 얘는 타투하는 친구예요.’… 

저희 집이 홍대 부근에 있다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고요. 친구들이 홍대에 왔다가 여기에 와서 술 먹고, 다른 사람을 소개받고, 자고, 서로 고민을 이야기하고… 엔젤하우스는 ‘살롱’이었습니다. 그동안 엔젤하우스를 거쳐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이 집을 거쳐 갔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한두번 인사한 사이도 있고, 굉장히 친했던 친구들도 있고…저도 기억 못 하는 친구인데 ‘형, 저 예전에 여기서 잤었는데.’라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20대 피 끓는 청춘들이 모여 있다 보니 엔젤하우스는 청춘 집합소 같은 느낌이 강했어요. 온종일 위닝 일레븐 하고, 축구팀 만들어서 축구 하고, 스쿠터 타고 한강 가서 수영하고, 여름엔 맥주 마시고… 거실에서 기타 레슨 할 때는 저 방에 5~10명씩 들어가 숨 죽이면서 위닝 일레븐을 했어요. 나머지는 반대 방에서 책을 읽었고요. 그러다 레슨이 끝나면 바퀴벌레처럼 우르르 나와서 2시간 동안 참았던 소변을 보러 가고는 했죠. 다들 꿈만 있고 돈은 없는 그런 청춘들이었습니다. 아주 행복하고, 재미난 시절이었는데…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로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요.

지금도 단톡방에서 엔젤 멤버들끼리 연락을 하면서 지내요. 결혼한 친구들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친구들도 많죠. 예전엔 다들 이곳까지 걸어 오거나 지하철 타고 왔는데, 요즘엔 벤츠나 BMW를 타고 와요. 되게 멋있어요.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우리 사이에 돈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그땐 다들 돈이 없었으니 제가 기타 레슨비 받는 날에 치킨이나 족발을 사 먹었어요. 모델 촬영료로 100만 원, 200만 원을 받으면 ‘야, 이걸로 이번 달 월세 해결했다’ 이런 식이었어요. 지금도 만나서 누가 돈을 내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많이 버는 친구가 내기도 하고, 어떤 친구가 1차에서 내면 2차는 제가 내고, 3차는 다른 친구가 또 내고… 그런 식이에요. 서로 어떻게든 돈을 더 내려 하지 안 내려 하는 사람이 없어요. 가족 같은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특별한 관계죠.

재미있는 건 ADOY 연습 공간도 여기였어요. 첫 번째 앨범 ‘CATNIP’이 나오기 전까지 1년 6개월을 여기서 연습을 했는데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모여 곡을 만들고 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작업을 했어요. 밴드가 어떻게 집에서 연습할 수 있었냐고요? 드럼 치지 않고 앰프도 적정량 볼륨으로만 맞추면 할 만했어요. 그리고 그땐 거실에 책상이 없었고 컴퓨터와 악기들만 있었거든요. 좁지 않았죠.

15년째 이 집에서 사는 것도 여기가 ‘최후의 보루’ 같아서예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고, 아직도 많이들 놀러 오거든요. ‘형, 홍대 왔는데 한 번 봬요.’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제가 이곳을 떠나면 엔젤하우스의 문화도 사라질까 봐 웬만하면 여길 떠나지 않고 파수꾼처럼 지키고 있었던 거에요. 요즘엔 슬슬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월세여서 매달 많은 돈이 빠져나가고 있거든요. 아, 그리고 청약도 넣고 있는데요. 당첨되는 단꿈에 잠깐 빠졌다가 발표 나면 조금 시무룩해지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비굴해지지 않으려고 돈을 벌어요.

ADOY 하기 전에 밴드 생활 할 땐 여러모로 편했어요. ‘플럭서스’라는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어서 돈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었거든요. 정산 담당 과장님이 정산해주시면 저희는 받기만 하면 됐죠. 그런데 회사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신경을 써야 하더라고요. 레코드 회사에는 A&R (Artists and Repertoire)이라는 직무가 있는데, 엔젤하우스에서는 제가 그 일을 다 했어요. 멤버들 정산 하고, 세무사 알아보고, 유통사와 협상하고, 굿즈와 앨범 커버 제작 업체 알아보고, 계약서 쓰고, 미수금에 대한 내용증명 보내고… 정말 열심히 일했죠. 

그래도 ADOY가 잘 되고 난 후부터는 종합소득세 구간이 24~35%를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통장을 볼 때마다 뿌듯해요. 물건 살 때도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요. 예전에는 ‘나한테 꼭 필요한 건가? ‘이거 없어도 괜찮겠는데?’ 하면서 사지 못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사고 싶으면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쁩니다. 방안이 습하면 제습기를 사고, 청소할 때 필요하면 로봇 청소기를 사고, 멤버가 악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음악 하는데 당연히 사야지” 하면서 사고… 그렇다고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쓰진 않아요. 

전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 돈을 버는 것 같아요. 돈이 없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굉장히 비참했거든요. 서러웠던 기억들이 많아서 그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돈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요. 예전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념일에 7,000원짜리 케이크를 구입한 적이 있어요. 가게 안에 있는 5만 원짜리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여러 케이크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작은 케이크를 샀던 거죠. 그땐 하루종일 일하고서 7만 원을 벌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5만 원이란 거금을 선뜻 못 쓰겠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 없어도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때 조금 비싸더라도 그걸로 살걸… 그런 선택을 한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엄청나게 울었어요. 깊은 한으로 남았고요. 

돈보다 소중한 건 ‘사랑’인 것 같아요. 연인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사랑, 반려견에 대한 사랑, 취미에 대한 사랑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중요도로 따지면 사랑이 선행되어야 하고, 돈은 저 밑에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돈 때문에 사랑처럼 중요한 걸 잃어버리면 주객전도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들 인생이 짧다 하잖아요.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날이 더 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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