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디폴트옵션 설정하라고 알림이 와요
ㆍby 영주 닐슨
무심코 선택한 디폴트옵션에서 다섯 배 이상 수익률 차이가 난다고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도 1분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주요 현황 공시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디폴트옵션고위험BF1'은 1년 수익률이 22.87%로 전 사업자의 전체 상품 수익률 중 1위를 기록했다. 1년에 22%가 넘는 수익률이라니, 디폴트옵션의 취지가 ‘너무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하기’였던 점을 생각하면 이런 성과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디폴트옵션은 DC형 퇴직연금이나 IRP 계좌를 만들고 나서 첫 번째로 만나는 단계이다. 2023년 7월 이후 둘 중 하나의 계좌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디폴트옵션에 대해 들어봤거나 직접 선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제 막 취업에 성공한 사회초년생이라면 가입 과정에서 디폴트옵션에 가입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대체 디폴트옵션이 뭐야? 퇴직연금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왜 자꾸 디폴트옵션을 선택하라고 하는 거지?’ 그러고는 설명을 읽어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서 대충 원리금이 보장된다는 저위험 상품을 골라두기도 한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원리금 보장형이 예금을 통해 연 3~4% 수익률을 내는 동안 22%가 넘는 수익률을 올리는 상품도 있다. 무조건 고위험을 고르자는 뜻은 아니다. 이제부터 잘 이해하고 골라야겠다는 마음, 그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1. 이게 다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다니까요? 디폴트옵션의 탄생
‘디폴트옵션(default option, 사전지정운용제도)’은 쉽게 말하면 퇴직연금 계좌에 들어있는 돈을 가입자가 사전에 정한 방법으로 돈을 운용하는 제도이다. 퇴직연금에 넣은 돈은 활발히 투자해 노후 연금 형태로 쓸 수 있도록 불려야 하는데, 가입자가 주기적으로 돈을 어떻게 운용할지 지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결국 가입자의 손해로 이어지므로, 퇴직연금이 투자한 상품이 만기가 됐는데도 일정 기간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지정해둔 방법으로 운용해주는 것이다.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미국, 영국, 호주 등 연금 선진국에서는 가입자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여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하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이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고 운영해 왔으며, 연평균 6%에서 8%대의 안정적인 수익률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 디폴트옵션은 2022년 7월 도입되었고, 1년간의 사전 준비 등 유예기간을 거쳐 2023년 7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시행 목적은 물론 매우 저조한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활용해 운용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2021년 기준 5년간 퇴직연금 수익률은 2.4%에 불과했고 직전 해까지 기준으로는 1%대였다.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되거나 아예 현금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연 1~2%의 수익률은 물가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숫자인데, 그렇다는 건 돈을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거두는 것이다. 이렇게 노후를 위해 마련하는 퇴직연금을 몇십 년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안타깝게도 빈곤한 연금 잔액이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잠자고 있는 퇴직연금을 투자하게 만드는 데에 국가가 발벗고 나선 것이다.
2. 누가 디폴트옵션을 지정해야 할까?
개인이 운용 책임을 지는 DC형 퇴직연금과 IRP 계좌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두 해당한다. 만약 디폴트옵션을 끝내 지정하지 않으면 퇴직연금 운용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DB형 퇴직연금은 회사가 운용 책임을 가지기 때문에 DB형 가입자들은 디폴트옵션을 직접 선택하지 않는다.
3. 지정해두면 언제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될까?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퇴직연금 계좌에 있는 적립금을 일정기간 동안 어떻게 운용할지 지시하지 않을 때 작동한다. 이 시기에는 2가지 경우가 해당한다. 첫째, DC형 퇴직연금이나 IRP에 가입 후 적립금이 이체되고 나서 2주 동안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디폴트옵션이 작동한다.
둘째, 적립금이 들어가 있던 금융상품이 만기 되고 4주가 지났는데도 운용 지시를 별도로 하지 않으면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 2주 안에 운용 지시를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게 된다. 이때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 총 6주 동안 방치하면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된다. 디폴트옵션 미지정 시 기존 상품의 만기가 도래했는데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현금성 자산으로 남아 낮은 금리로 운용된다.
4. 디폴트옵션에는 어떤 상품이 있을까?
디폴트옵션을 설정하러 들어가면 보통 네 가지 중에 고르라는 문항을 만나게 된다. 바로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이다. 초저위험은 말 그대로 위험이 매우 낮아 원리금을 잃을 가능성이 없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은행의 예금, 보험사의 GIC(이율보증형 보험계약)* 등이 주를 이룬다. 최근 1~2년 동안 금리 상승 효과로 초저위험 디폴트옵션의 수익률이 3% 이상으로 올라가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은행의 정기예금과 유사한 금융상품으로 보험사가 판매하는 원리금보장 보험계약(특별계정, 예금자보호 대상)이다.
저위험부터는 원리금 보장형인 정기예금부터 투자 성향이 들어가는 TDF, BF펀드까지 상품군이 다양해진다. 물론 저위험의 성향에 맞게 원리금 보장형의 배분이 더 높고 투자형 상품의 배분은 더 낮은 편이다. 중위험으로 갈수록 투자형 상품의 배분이 더 높아진다. 그렇다면 디폴트옵션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TDF나 BF펀드는 무엇일까?
먼저 TDF는 타깃 데이트 펀드(Target Date Fund)의 줄임말로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운용되는 은퇴 상품이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점에 맞춰 은퇴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 때는 주식 비중이 높고 은퇴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인 채권의 비중이 높아지도록 배분을 조정한다. 즉 은퇴 시점에 맞춰 펀드 안에 있는 자산의 편입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준다는 특징이 있다.
만약 디폴트옵션에서 TDF를 선택하고 싶다면 목표 시점을 확인해야 한다. TDF 상품 이름에 들어간 네 자리 숫자가 목표 시점을 나타낸다. 2030, 2040 등이 붙은 상품 이름은 해당 시점 무렵에 은퇴할 예정인 투자자를 위한 상품이다. 네 자리 숫자를 빈티지(vintage)라고 부른다.
디폴트옵션 안에는 BF펀드(Balance Fund, 밸런스펀드)도 들어 있다. 이는 투자위험이 다른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하고, 금융시장 상황과 가치 변동 등에 맞춰 주기적으로 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펀드다. TDF와 BF펀드는 모두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자산배분펀드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BF펀드는 자산배분 비중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식과 채권의 비중이 달라지는 TDF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에 최대 얼마나 투자할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만약 위험비중을 조정하고 싶다면 투자자가 직접 상품을 변경하는 등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5. 그럼 나는 어디에 투자하는 게 좋을까?
실제로 승인받은 퇴직연금사업자가 지금까지 300개가 넘는 디폴트옵션 상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해야 할까? 이 역시 투자자의 위험 감수 성향과 은퇴까지 남은 시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네 가지 분류에 대해서는 아래의 질문을 따라가면서 나에게 맞는 카테고리를 골라보자.
우선 가장 첫 번째 기준은 내가 받고 싶은 수익률이다. 만약 정기예금 금리 수준의 수익에 만족하며 원금 손실을 원하지 않는다면 초저위험을 선택하면 된다. 정기예금 금리보다는 높은 수준을 원한다면 다음 질문을 살펴보자. 원금 손실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저위험으로,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며 그에 따르는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마지막 질문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너무 높은 위험을 피하고 싶다면 중위험으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면 고위험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2024년 2월에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전체 적립금 가운데 84%가 은행권에 몰려 있다. 적립금 상위 10개 기관을 살펴보면 상위 5위까지를 모두 은행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과 미래에셋증권을 제외하면 8개가 모두 은행권이다.
또한 최근 5월에 발표된 금융감독원 자료를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비중이 원리금 보장형으로 몰려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은행의 적립금 비중을 살펴보면 원리금 보장형 90.1%, 실적배당형 9.9%이다. 90%가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운용 성과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디폴트옵션의 취지에 무색하게 대다수가 원리금 보장형을 선택하는 상황이다. 1년 22%의 수익률을 기록한 디폴트옵션 상품도 있으나 실제로 80%가 넘는 적립금이 초저위험으로 몰려 있는 것을 보면 가입자들의 이해도나 기대치와 디폴트옵션의 취지 사이에는 갭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퇴직연금이 가야 할 길은 멀다.
6. 분기별로 수익률을 체크하자
300개가 넘는 디폴트옵션 상품은 그 숫자만큼 다양한 수익률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확하게 수익률을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다. 금융감독원이 2023년 7월에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실적배당형의 수익률은 13.25%이고, 원리금 보장형은 4.08%으로 세 배 이상의 수익률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내 적립금이 들어가 있는 상품의 수익률과 다른 선택지들의 수익률을 비교해보거나, 글라이드 등 수많은 상품별 수익률 정보를 리포트해주는 곳을 활용해 주기적으로 수익률을 체크하고 다시 지정할 필요가 있다.
7. 상품 만기가 끝났다면 언제든 운용 지시도 가능! 옵트인과 옵트아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가입자가 디폴트옵션이 발동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적립금을 운용하고 싶다면 대기 기간 없이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를 옵트인(opt-in, 직접 운용)이라고 한다. 퇴직연금사업자가 제공하는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퇴직연금 계좌의 돈을 직접 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동일한 유형의 일반 퇴직연금 상품과 비교했을 때 디폴트옵션 상품은 금리가 조금 더 높거나 수수료가 조금 더 싼 편이다. 따라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수익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옵트인으로는 디폴트옵션 상품 하나만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반대로 디폴트옵션이 적용된 뒤에도 가입자가 희망하면 언제든지 다른 금융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다. 이것을 옵트아웃(opt-out)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글을 따라오면서 자신이 어떤 디폴트옵션을 선택했는지 기억났는가? 만약 제대로 따져보고 고르지 않았다면, 어떤 상품을 골랐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정리한 정보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골라보면 어떨까?
가입자는 퇴직연금사업자(은행, 보험, 증권사)가 제시하는 디폴트옵션 상품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이미 퇴직연금 적립금을 디폴트옵션 상품에 투자하고 있다면 다른 디폴트옵션 상품에 적립금을 투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기를 희망해 다시 지정하면 기존에 운용하고 있는 디폴트옵션 상품은 그대로 유지되고, 이후에 새롭게 납부된 금액부터 새롭게 지정한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된다.
만약 이 개념이 헷갈린다면 직접 고르고 변경해보면서 알아가도 좋다. 중요한 점은 한번 골랐다고 그대로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분기별 수익률도 점검해보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조금 더 나은 수익률을 얻고 싶다면 다시 한번 비교하고 고르는 수고로움도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이번 글을 읽은 투자자들은 반드시 자신이 가입한 디폴트옵션 상품이 무엇인지, 수익률을 얼마나 되는지 꼭 점검하길 바란다.
다음 편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은퇴상품 TDF를 어떻게 고르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는지 실제 투자 노하우를 알아보자.
*디폴트옵션 상품 구성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글라이드의 포스트 혹은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dit 주소은, 김현미(아이랩) Graphic 조수희, 이서영
모두가 인생 설계를 통해 안정적인 은퇴를 맞이하도록 투자, 관리, 인출 플랜을 돕는 아이랩을 설립하고 '글라이드(www.glide-path.org)'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인공지능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월가의 JP모건, 시티그룹 등에서 15년 이상 알고리즘 트레이딩 헤드와 헤지펀드 최고투자책임자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글로벌 경영전문대학원의 재무 분야 교수이자, AI MBA 학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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