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F, 우리 모두의 은퇴 준비 필수품
ㆍby 영주 닐슨
은퇴 준비를 위한 자산 배분 이해하기
은퇴 준비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적은 금액이라도 퇴직연금 계좌에 꾸준하게 모으는 것, 두 번째는 자산 배분이다. 만약 이미 은퇴에 가까운 나이라면 힘들게 모은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가져가야 한다. 위험자산보다는 안전자산의 비중을 높여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투자와 관리를 지속하는 것이다. 시장 분위기가 좋을 때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위험자산은 언제나 유혹적이지만, 최근처럼 한국 주식이 급락해버리면 열심히 모아온 은퇴 자금이 위태로워지고 만다.
반대로 아직 은퇴까지 20~30년의 시간이 있다면 위험자산을 이용해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물론 자신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성향인지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험자산의 비중을 조정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20대와 30대일 때는 전체 자산에서 위험자산의 비중이 중년기보다 많아도 된다고 말한다. 일시적으로 시장이 급락할지라도 은퇴 시점까지 회복할 시간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한 가지는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면서 모두가 점차 은퇴 시점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은퇴 시점에 가까워지면 자산 배분도 그에 맞게 변경되어야 한다. 30대의 주식과 채권 배분 비율과 50대의 비율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시기에 따라 적절히 주식과 채권 상품을 사고 팔며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매번 그걸 체크하고 바꾸나요?” “배분 비율을 어떻게 바꿔야 하죠? 기준이 있나요?”
투자에 관심이 많고 늘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리밸런싱하고,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율을 조정하라'는 건 사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그래서 등장한 은퇴용 투자상품이 바로 TDF(Target Date Fund)이다.
은퇴를 위해 태어났어요, TDF
TDF는 은퇴 시점을 정하고 투자하면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가 해당 시점에 맞춰 자산 배분을 알아서 관리해주는 상품이다. 따라서 보통 TDF 상품에는 숫자가 들어 있는데, 이 숫자가 바로 은퇴 연도를 뜻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은퇴하고자 하는 시점이 2040년이라면 상품명에 2040이 들어간 TDF를 고르면 된다.(이 숫자를 빈티지(vintage)라고 부른다.) 보통 TDF에 들어 있는 숫자는 2030, 2035, 2040처럼 5년 단위로 설정된다. 따라서 자신의 은퇴 희망 시점과 가장 가까운 숫자를 선택하면 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TDF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무분별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IRP 계좌를 보유한 한 30대를 인터뷰해보니 TDF2035 상품과 TDF2050 상품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자신의 은퇴 희망 시점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상품을 권유한 판매자의 말대로 여러 TDF를 구매한 탓이었다. TDF가 만들어진 취지와 맞지 않을 뿐더러, 투자자가 투자 상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돈을 넣어버린 잘못된 투자였다.
한국 시장에서 TDF 상품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유는 바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때문이다. 4화 ‘자꾸 디폴트옵션 설정하라고 알림이 와요’에서 말했듯이 오랫동안 저조했던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디폴트옵션에는 TDF 상품이 매우 많이 포진되어 있다. 심지어 주식 배분이 80% 가까이 올라가도 TDF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특징이 있다. 시간 흐름에 따라 은퇴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 비중이 높아지면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은퇴 준비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TDF 상품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TDF의 핵심은 바로 글라이드 패스
시간 흐름에 따라 알아서 자산을 배분해주는 TDF의 특징을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로 설명하곤 한다. 글라이드 패스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 그리는 경로를 뜻하는 말로, 하늘에서 땅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착륙하는 모습이 은퇴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은 사회 초년기에는 주식 비중이 크고, 은퇴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주식 비중이 줄어드는 흐름과 매우 닮아 있다. 따라서 TDF에서의 글라이드 패스를 쉽게 설명하자면, 가입 시점부터 은퇴 시점까지 시간 흐름에 따라 주식과 채권의 배분을 조정하는 방법이다. 시기에 따른 배분율은 사전에 정해져 있으며, 그 비율에 따라 은퇴 시점이 가까워지면 TDF는 포트폴리오의 주식 보유량을 줄이고 채권 보유량을 늘려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채권이 주식에 비해 위험이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음 그래프는 미국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 Rock)의 2040 TDF 자산 배분 현황이다. 가로축에서 0은 은퇴 시점이고 5는 은퇴 시점 5년 전, 10은 10년 전을 나타낸다. 해당 포트폴리오의 2023년 상태, 즉 약 8년 정도 남은 상태를 보면 주식 비중은 약 55%이고, 은퇴 시점에는 40%로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은퇴를 기점으로 달라지는 블랙록의 2040 TDF 자산 배분 현황
그래프처럼 주식 배분이 점점 줄어드는 스케줄이 바로 글라이드 패스다. 글라이드 패스의 높낮이는 TDF를 만드는 회사마다 다르다. 어떤 방식의 글라이드 패스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글라이드 패스를 만들 때 공통적으로 고려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주식보다 채권의 비중이 높아진다.
둘째,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해외주식보다 자국 주식의 비중이 높아진다. 은퇴에 가까울수록 외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자국 주식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이 미국에서는 정석으로 통용된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주식시장의 저조한 실적을 고려하면 한국 TDF에도 맞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셋째,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수익률이 높고 만기가 긴 채권의 비중이 줄고 수익률이 좀 낮더라도 만기가 짧은 채권의 비중이 높아진다.
넷째, 은퇴 시점부터는 물가연동채권(미국에서는 TIPS), 원자재, 부동산 등의 자산이 많이 포함된다.
이처럼 글라이드 패스는 주식과 채권의 분배 비율을 담고 있기 때문에 TDF의 수익률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TDF 상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이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투자상품 설명서를 읽어야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투자자에게 제일 전달되지 않는 정보이기도 하다.
배분 비율에 따른 수익률 차이는?
TDF 상품별로 얼마나 주식에 투자되고, 채권에 투자되는지에 따라 매년 수익률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2024년 1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의 수익률을 살펴보자. 물론 장기간 투자를 위해 만들어진 상품을 이렇게 단기간 수익률로 분석하는 방법은 상품의 본래 취지에 어긋날 순 있지만, 투자자들이 수익률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출처=아이랩 글라이드
2040 빈티지인 TDF 상품들의 2024년 동안의 수익률을 보면 가장 좋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한국투자TDF알아서ETF포커스’로 7개월 수익률이 13.19%이다. 수익률이 가장 낮은 상품과 비교하면 무려 8% 넘게 차이가 난다. 2040년을 은퇴 시점으로 타깃하는 경우에는 주식 배분율 차이가 최대 77%에서 최소 57%로 다양하기 때문에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이해한다면 같은 빈티지 안에서도 왜 이렇게 수익률이 다른지 이해할 수 있고, TDF를 고를 때 내가 주식에 더 많이 투자하고 싶다면 주식 배분율을 기준으로 상품을 고르는 방법도 가능하다.(하위 개념인 어떤 종목을 보유했느냐 또한 중요한 요소이지만, 수익률 차이를 가르는 데는 상위 개념인 어떤 자산을 얼마나 보유했느냐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TDF를 고르는 6가지 기준
만약 내가 은퇴자금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싶다면 상품별로 주식-채권 배분율을 확인해보고, 주식 배분율이 높은 TDF를 고르면 된다. 이 배분율 차이는 곧 수익률, 변동성과 직결된다는 점,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수익률 순위는 2024년 상반기 한정이며, 투자 기간 전체의 수익률이 아니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출처=아이랩 글라이드
또한 나에게 맞는 TDF를 고르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아래 6가지 기준을 소개한다.
첫째가 앞서 말한 나의 은퇴 시점, 둘째가 주식 배분의 정도이다. 예를 들어 2045년 은퇴를 목표로 한다면 TDF 2045 빈티지 안에서 주식 배분율을 최소 57%에서 최대 79%까지 고를 수 있다.
셋째는 미국 주식에 어느 정도 투자하고 싶은가다. 한국 TDF 상품은 미국 주식에 많이 투자하는데 역시 배분율이 조금씩 다르다. 만약 미국 주식에 많이 투자하고 싶다면 최대치를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수수료 차이를 고려해 패시브 펀드와 액티브 펀드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지수를 따라가는 패시브 펀드는 액티브 펀드보다 수수료가 저렴하다. 또한 패시브 펀드로 구성된 TDF는 펀드 매니저가 종목을 골라 넣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 환경에 따른 수익률 예측이 가능하다.
다섯째, 위험도 선택이다. 상품설명서를 보면 펀드운용자가 정한 위험등급을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높은 위험의 1부터 매우 낮은 위험의 6까지 구분된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지를 고려한다.
여섯째, 은퇴 시점의 주식 배분율을 고른다. 같은 빈티지 안에서도 은퇴 시점에 주식 배분이 조금 더 높은 상품이 있고 낮은 상품이 있다. 은퇴가 다가왔을 때 예상치 못한 시장 상황에 의한 갑작스러운 손실을 낮추고 싶다면 더 낮은 상품을 고르면 된다.
위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계획에 맞는 TDF 상품을 찾아갈 수 있다. 단순히 수익률만으로 상품을 고르기보다는 나의 성향에 맞춰 고르는 심층적인 방법이다.
과거 수익률은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단서
상품을 고르는 데 있어서 과거 수익률은 중요한 정보다. 과거의 수익률이 미래 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얼마나 잘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므로, 광고만 보고 고르는 것보다는 낫다. 수익률을 잘 비교하기 위해서는 내 펀드의 수익률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빈티지의 다른 상품이 동일한 기간에 얼마나 수익을 올렸는지 살필 것을 권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똑같은 2040 타깃의 TDF여도 최소 5%에서 최대 13%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기를 채우지 않은 채 수시로 상품을 갈아타는 것을 추천할 수는 없지만, 만약 꾸준히 더 좋은 수익률을 내고 나에게 잘 맞는 상품이 있다면 당연히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TDF는 한국 금융시장에서 은퇴 준비에 있어서 점점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품이므로, 이번 시간을 통해 TDF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나에게 맞는 TDF를 골라서 투자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퇴직연금 계좌에는 보통 다른 계좌보다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ETF, 자산 배분 펀드 등 다양한 상품이 존재한다. 이를 이용해서 장기투자와 단기투자를 섞거나, 투자에 더 익숙한 투자자라면 ETF를 이용해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해볼 수 있다. 다음 화에서는 퇴직연금으로 투자하는 ETF에 대해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노후 준비 액션플랜> 시리즈는 국내 159개 대표 운용펀드의 TDF 글라이드 패스와 수익률을 한눈에 보기 쉽도록 전달하는 아이랩 글라이드와 함께 만듭니다.
Edit 주소은, 김현미(아이랩) Graphic 조수희, 윤여진
모두가 인생 설계를 통해 안정적인 은퇴를 맞이하도록 투자, 관리, 인출 플랜을 돕는 아이랩을 설립하고 '글라이드(www.glide-path.org)'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인공지능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월가의 JP모건, 시티그룹 등에서 15년 이상 알고리즘 트레이딩 헤드와 헤지펀드 최고투자책임자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글로벌 경영전문대학원의 재무 분야 교수이자, AI MBA 학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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