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인 나의 단가는 어떻게 책정해야 할까?
ㆍby 사소한 질문들
자유를 찾아 세상에 홀로서기로 한 프리랜서가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과제는 적정한 단가를 책정하고 견적서를 쓰는 일일 것입니다. 업계 단가와 관행이 있기는 하지만 무작정 그에 맞춰 일하다가는 클라이언트가 전화할 때 왠지 화가 나고, 일은 열심히 하는데 두꺼비가 없는 콩쥐가 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따뜻한 월급의 품을 떠나 홀로 선 지 어언 7년, ‘돈 돈’ 거리는 디자이너로 불리면서도 통장에 돈이 없던 신비로운 시간을 지나 이제 조금 안정을 찾은 경험을 토대로, 미리 알았었다면 좋았을 것들 몇 가지를 공유해드리고자 합니다.
마음가짐 1: 나는 프리랜서가 아니다, 회사다
프리랜서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클라이언트가 제안하는 금액을 듣고는 ‘오호? 이것 봐라? 쏠쏠한데?’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월급을 받을 때 보다 들어오는 돈의 액수가 크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회사가 제공하던 제반 시설을 이제 우리가 스스로 구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인 저를 기준으로 말해보자면, 쾌적한 작업환경을 위한 사무실 임대료부터 작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컴퓨터 및 기타 전자기기, ‘척추 수술 3,000만 원’을 예방하기 위한 질 좋은 의자와 책상, 정신적 지지를 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모니터를 오래 봐 침침해져 가는 눈에 맞춘 렌즈나 안경 등을 필요로 합니다. 이전에는 회사가 많은 것을 지급해주었다면, 프리랜서가 된 지금부터는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모두 준비해야 합니다. 거기에 내가 받고 싶은 연봉도 벌 수 있어야 하죠. 이렇게 따져보면 클라이언트가 제안하는 디자인 예산이 처음만큼 많아 보이진 않을 수 있습니다.
단가 책정의 첫 번째 단계는 ‘나’라는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A)을 리스트업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벌 수 있는 금액과는 상관없이, 일단 1년 동안 내가 벌어야 하는 금액을 책정해 보자는 겁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항목을 작성해본 예제입니다.
마음가짐 2: 나는 나의 사랑하는 유일한 직원, 나를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 프리랜싱을 시작하며 흔히들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제일 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덜 먹고, 덜 쓰고, 덜 자고, 더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초반인 만큼 투자개념으로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 나의 단가를 조금 낮게 책정하고, 클라이언트 풀을 늘리는 것도 흔히들 선택하는 전략이고요.
*이 말은 언젠가 유튜브에서 김미경 강사가 강연중 한 말입니다. ‘나다운 돈이란 무엇인가’ 강연이었던 것 같은데 심심하시다면 너무 웃기니 한 번 보세요.
하지만 내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를 알고 단가 협상을 하는 것과, 모르고 ‘후려쳐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전자는 앞으로 내가 이 일을 하며 얻게 될 홍보 효과를 고려하며 단가를 조율할 수 있고 후자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설령 홍보 효과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할인한 금액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는지 책정할 수 없죠. 또 스스로 가치를 낮게 책정했을 때, 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마지막으로 단가를 낮게 책정하게 되면 나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단가 책정의 두 번째 단계로 내가 받아야 하는 희망 연봉(B)을 책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다시금 서울에 사는 1인 가구인 저를 기준으로 항목을 짜 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개인별 상황에 따라 상이할 것이니 자신에게 맞는 목록을 구축해보세요.
지금까지 소중한 나의 회사와 나 자신을 위해 1년에 필요한 금액(A+B)을 책정해 보았습니다. 어떤가요? 많은가요? 이제 여기에 내가 내고 싶은 수익률(C)을 더해봅시다. 예를 들어 내가 1년에 필요한 비용이 6,000만 원이라서 6,000만 원만 벌면 내 회사의 1년 순수익은 0원이 되겠죠. 이것은 문제입니다. 얼만큼의 수익을 내고 싶은지는 앞으로 들어갈 비용, 노후 대비 등등을 고려하여 그려보세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바라는 단가를 드디어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 3: 자유를 선택한 만큼 내 시간은 소중하다
단가 책정의 마지막 관문은 내가 일할 시간(D)을 계산해 보는 것입니다. 나는 나를 착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 4일만 일할 것이라고 정해봐도 좋겠습니다. 여기에 휴가도 떠나야 하겠고요. 갑자기 아파서 쉬는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연차도 줍시다. 자유롭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택했으니 그냥 일하기 싫어서 안 하는 날도 따져봅시다. (여기서는 노동법을 참고해보아도 좋겠습니다. 자유를 선택했으니 최소한 회사를 다닐 때 보다는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1년에 일하는 최종 시간이 계산됩니다. 그럼 이제 시급을 계산해 봅시다.
당신의 시급은 얼마로 책정되었나요? 혹시 생각보다 높아서 조금 놀라셨나요? (고) 조양호 회장의 시급은 2018년 기준 607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최저시급이 매년 5~10%는 오르니 2021년 기준으로 생각하면 더 높겠죠? ‘내가 아무리 못났어도 같은 인간인데 그렇게 못한 게 무엇이 있는가…?’ 생각해 보고 자신을 가집시다!
마음가짐 4: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인에겐 당연히 더 많이 받자.
이제 나의 시급을 알았으니 견적서를 작성해봅시다. 견적서는 업계마다 관행으로 굳어진 형식이 있기는 하나 그전에 우선 나의 기준으로 써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노동을 단계별로 나누고, 그에 드는 시간에 나의 시급을 적용해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얼마만큼 시간이 드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면 일단 대강 예상해서 써보세요. 지금 쓰는 것과 별개로 자신이 일하는 시간을 기록해보는 것도 고려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의 ‘Timesheet’ 플러그인을 이용하여 어떤 일을 했는지 클라이언트별로 나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드디어 당신의 업무별/프로젝트별 단가가 계산되었습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지인이 부탁한 일을 할 경우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인과 나 사이의 이후 관계를 생각하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고, 그에 따라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어야 하니 할인을 해도 보통의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보다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프로젝트별로 어느 정도의 금액을 받아야 하는지 틀이 서면 한 달에 내가 작업 가능한 프로젝트의 수와 최소 금액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년 나 자신과 연봉협상을 하자
이렇게 나의 단가와 시급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업계 평균 단가를 파악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군요. 내 단가가 너무 적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고, 너무 많다면 업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겠고요. 저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FDSC)’이라는 업계 커뮤니티를 만들어 공감대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나의 업무 시간과 수익률을 트래킹하며 이 단가와 시급이 적정한지 1년 단위로 체크해 보는 것입니다. 나 자신과 연봉협상을 진행해 볼 수도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나는 점점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에 능숙해질 것이고, 업계 노하우도 습득할 것이며, 더 빨리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와의 연봉협상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매년 원하는 수익률을 몇 %씩 올릴 수도 있겠고, X백만 원 이하의 일은 받으면 안 되겠다는 프로젝트 특성에 따른 마지노선을 조금씩 올릴 수도 있습니다. 매년 초는 기존 클라이언트들에게 202X 년을 맞이하여 단가가 X% 오르게 되었다고 알리기 좋은 때라는 점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Writer 신인아
신인아는 서울에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오늘의풍경’과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을 운영한다. 시민으로서의 디자이너의 역할을 고민하고, 동시대 한국의 ‘고유’ 문화를 반영하는 시각 언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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