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언제부터 일하기 시작했을까?
ㆍby 사소한 질문들
전업주부와 워킹맘. 일하지 않는 여성과 일하는 여성. 여성의 노동은 쉽게 분류된다. 그러나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업’으로 가정주부인 여성은 극히 드물다. 과외 교사, 보험 설계사, 5인 이하 사업장의 서비스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많은 기혼 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 그들의 수입은 ‘반찬값’ 정도로 치부됐다.
‘생계 부양자 남성, 가사 노동자 여성’은 생물학적 사실과 무관한 역사적 산물이다. ‘모성’이나 ‘아동기’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 초기에 만들어진 말이고,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체제였다. 자본주의 이전의 토지・농업 중심의 봉건제는 많은 이들의 노동이 필요했다. 때문에 대가족 가구(household)가 경제 단위를 이루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공장 중심 시스템에서는 개별 노동자가 경제 주체가 되었다. 문제는 노동자 모델의 성별이 ‘남성’으로 당연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남성들은 실제 노동 여부와 관계 없이 가장으로서 가족을 대표하게 되었다. 즉 남성이 버는 돈은 ‘생계부양’으로, 여성이 버는 돈은 ‘용돈’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보조적인 개념으로 간주됐다.* 동시에 ‘남성 노동자 모델’은 여성에게 노동 시장에서 남성보다 적은 임금*과 갖가지 불평등을 감수하도록 만들었다. *참조 : 아이린 파드빅・바버라 레스킨, 《유리 천장 아래 여자들 – 여성의 노동은 왜 차별받는가》, 아날로그, 2021
그러나 모든 남성이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초기, 남성 노동자의 임금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충분치 않았고, 여성(심지어 아동까지도)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뛰어들어야 했다. 모든 남성이 충분한 생계 부양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통념은 실현 불가능한 신화(myth)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남성의 수입만으로는 가정 경제 유지가 힘들다. 때문에 과거 여성들은 일터와 가정에서 이중, 삼중의 노동을 하며 슈퍼우먼 증후군*을 ‘극복’해 왔다. 그러나, 오늘의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슈퍼우먼 증후군 (superwoman syndrome) : 주부의 역할과 직장에서의 역할을 모두 잘 해내려고 하는 여성에게 나타나는 스트레스 증후군. 현기증·호흡곤란·허탈감 등의 여러 증세로 나타난다. – 편집자 주
여성들은 불평등한 구조를 간파했다. 노동 시장의 차별과 남성 중심적 결혼 제도의 억압-독박 육아, 전업 주부에 대한 무시, 임신/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각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체제는 전 지구적 상황이 되었다. 기술 발전에 의한 고실업 위기가 대표적이다. 소수의 노동자만이 필요한 시스템에서 개인의 능력은 더욱 중요시된다. 이익 창출이 목표인 자본의 입장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성 편견이 완화되면, 남성과 여성은 성별을 떠나 개인의 능력으로 승부하게 된다. 여성들은 비혼을 선택하고, 커리어를 쌓고, 자신의 시간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비혼(非婚)은 미혼(未婚)에 저항하는 의미였다. 비혼은 결혼을 안 하겠다는 선택이고, 미혼은 ‘언젠가는 해야 하는데 아직 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즉 미혼은 여성의 의사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가 반영된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결혼은 선택이다. 적어도 20년 전부터 현모양처나 취집(취직으로서 결혼)을 진로라고 말하는 여성은 사라졌다.
그런데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에게 특히 강조되는 것이 있다. 바로 ‘경제력’이다. ‘결혼을 안 할 거면 경제력이 좋아야 한다(돈이 많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여성 노동의 역사를 은폐한다. 여성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노동과 경제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기혼이든 미혼이든 비혼이든, 경제력이 필요한 것은 남녀 모두 똑같다.
다만, 비혼 시대에는 개인으로서 임금화된 형태의 안정적인, 가족과 무관한 독립적인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돈이 많을 필요는 없다. 싱글인 필자의 경우, 환경주의자로서 최소한의 소비를 한다. 풍족한 삶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건강과 좋은 인간관계 역시 경제력이다. 내가 가진 ‘총체적 자원’을 잘 보듬고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으로서 사람의 인생은 누구나 자기 계발과 성장의 시간이어야 한다. 물론, 타인과의 교류와 나눔도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문제는 성별 불문, 인생에는 ‘자기 중심’ 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제 여성은 자율적 노동자로서 ‘일과 여가’의 양립을 고민한다. 수많은 드라마가 말하던 일과 사랑의 양립과 비교하면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연애보다 반려동물과의 삶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여전히 부부에게 주어지는 각종 금융 혜택은 남녀 모두에게 결혼에 대한 사회의 요구, 압박을 상징한다.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역할을 출산과 가족 제도에서의 무노동 임금으로 한정하려고 한다. 환자, 장애인, 노인, 건강 약자, 어린이에 대한 돌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노동이지만, 여성 전담이 아니라 사회화되어야 할 노동이다. 지금은 성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성차별은 여전히 만연해 있다. 남성이 비혼을 선택하면,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외로움이나 돌봄에 대해 걱정한다.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남자는 타인의 돌봄, 사실상 가사 노동이 필요한가? 남녀 모두 둘 다 필요하고, 자신의 힘으로 두 가지 모두를 해결해야 한다.
결론. 인류 역사 이래 여성은 일하지 않은 적이 없고 우리의 편견과 달리 남성이 ‘여성을 먹여 살린 경우’는 절대적이지 않다. 다만 결혼 제도로의 진입을 거부했을 때, 경제권 개념은 뚜렷한 정립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어렵게 하는 실업 사회에서는 여성운동이나 대안적 경제 공동체가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여성 스스로 모색해야 하는 시대다. 개별적 모색도 지혜를 모으면, 하나의 체제가 될 수 있을까. 비혼, 싱글 여성만의 생활 방식이 반영된 현대식 계(契), 금융 상품의 등장도 반가울 것 같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이홍유진 Writer 정희진 여성학/평화학 연구자이자 문학박사, 여성주의 상담가. 《페미니즘의 도전》《아주 친밀한 폭력》《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등 10여권의 단독 저서와 다수의 편저, 공저서가 있다. 현재 한겨레신문에 <정희진의 융합>, 경향신문에 <정희진의 낯선 사이>를 연재 중이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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