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적을 우리는 ‘기술’이라고 부른다
ㆍby 정경화
토스코멘터리 5화. 한국의 첫 페이테크 기업, 토스페이먼츠
어느덧 온라인 결제는 소비자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배달의 민족에서 저녁을 시켜먹고, 주말 먹거리는 마켓컬리에서 주문하며, 카카오택시를 불렀든 타다를 불렀든 내릴 땐 앱에 등록해 둔 카드에서 자동 결제된다. 새 옷 장만할 때도, 출퇴근길 들을 음악 스트리밍도, 늦은 여름 휴가 예약도 마찬가지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10년 전을 돌아보면 기적 같은 변화다.
그 기적을 우리는 기술(technology)라고 부른다. 새롭고 더 나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모두 기술이다.
미국의 지불・결제 기업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에서 이렇게 썼다. 온라인 결제는 10년 전에도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의 결제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IT 기술은 훨씬 빠르고 간편한 결제를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글로벌 온라인 결제 시장이 급성장 했고, 토스페이먼츠와 같은 페이테크 기업은 그 뒤를 단단히 떠받치고 있다.
토스가 대기업 사업부를 인수한다고?
토스는 지난 2019년 12월 시장에 매물로 나온 LG U+의 결제사업부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의 업계 점유율 Top 3에 속하는 업체였다. 인수합병 작업을 마친 2020년 8월, 드디어 토스페이먼츠가 탄생했다.
토스가 전자결제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결제는 소비자의 일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행위라는 점에서 송금만큼이나 주요한 금융 활동이었고, 종합 금융 플랫폼을 꿈꿔온 토스로서는 더없이 자연스러운 확장이었다.
더구나 온라인 결제 산업에는 수십년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덩치 큰 결제 기업들은 기술력보다는 영업력을 주무기로 삼아왔다. 백화점에서는 옷을 골라 신용카드만 내밀면 신분증이나 비밀번호를 제시하지 않아도 결제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쇼핑 한 번 하려면 느리고 불편한 결제창이 뜨고, 카드 번호 16자리를 직접 입력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카드사의 앱을 띄워 본인 인증 하고, 다시 원 결제창으로 돌아와서 ‘확인’ 버튼까지 누르는 모든 귀찮음을 고객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그러니 오류가 한번 나면 고객은 종종 구매를 포기했다. 치명적인 결함이 결제 과정 여기저기에 돌부리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온라인 결제 경험을 오프라인에서처럼 간단히.’토스가 혁신하고자 하는 대상과 이유는 분명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인 토스가 대기업의 사업부 하나를 통째로 인수한다고?’ 하는 의구심이 시장에 존재했다. 일각에서는 ‘토스가 충분한 자금력이 있겠냐’ ‘토스가 진출하더라도 업계에 위협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토스에서 ‘안될거야’ 라는 말은 ‘위대한 도전’이라는 신호였다.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터져나올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수년전 토스가 간편송금 서비스를 선보일 때, 십중팔구는 ‘그게 되겠냐’ ‘포기하라’고 했다. 토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한국에서 공인인증서 없는 간편송금을 새로운 표준으로 만들었다.
한편으로 결제 분야의 탑 플레이어를 인수한 것은 곧 시간을 사들이는 결정이었다. 규모가 큰 고객사일수록 결제 시스템을 위탁할 회사를 바꾸는 의사결정은 중요한 일이고, 그만큼 더딜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토스가 결제 회사를 새로 차려 바닥부터 다지려 했다면, 현재의 고객사 규모를 확보하는데 최소 5년 이상은 걸릴 터였다. 아예 시장에 자리잡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인수 후 통합 과정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다. 인수합병은 기업이 새로운 분야에서 성장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절약하는 동시에, 피인수 기업의 모든 레거시(Legacy)가 함께 따라오는 일이었다.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된 낡고 복잡한 제품을 모두 해체해, 온라인 사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재조립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기존 고객사의 불편과 고충을 듣는 일도 중요했다.
“요리로 치면 엄청나게 싱싱하고 귀한 재료를 구한 셈이에요. 우리가 가진 힘이 100이라면,지금 그 중 70은 재료를 먹기 좋게 다듬는데 쏟아붓고 있죠. 성공적으로 레거시를 해체하고 나면,고객사에 10X 뛰어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테크기업으로 거듭날 거에요. 산업의 근간부터 뒤흔드는 혁신을 이뤄낼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 김민표 토스페이먼츠 팀 리더
/dev/payments
토스페이먼츠는 미국의 결제 기술 기업 스트라이프(Stripe)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한다. 이 회사는 2010년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 존 콜리슨 형제가 창업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패트릭은 여덟 살 꼬마 시절 대학에서 전산학 강의를 들었고, 존은 열여섯에 아일랜드의 대학입학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이미 이베이 판매자를 위한 거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500만 달러에 매각한 경험이 있던 콜리슨 형제는 각각 MIT와 하버드를 중퇴하고 실리콘밸리로 갔다.
콜리슨 형제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온라인 경제를 위한 결제 인프라를 닦는 일에 쓰고 싶었다. 그런 의미를 담아 새로 회사를 창업하면서 이름을 /dev/payments 라고 지었다. 사업자등록 중 ‘/’ 와 같은 기호를 회사명에 넣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스트라이프로 바꿨다. 두 사람은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을 찾아갔다. 페이팔은 당시 미국 온라인 결제 시장의 최강자였다.
“우리의 미션은 인터넷의 GDP를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Our mission is to increase the GDP of the internet.
콜리슨 형제의 비전에 감동한 틸은 공동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와 글로벌 VC 세콰이어캐피털을 설득해 스트라이프에 투자했다. 스트라이프는 이후 공교롭게도 페이팔이 가지고 있던 불편을 하나씩 해소해 나가면서 성장했다.
온라인 사업자가 자신의 웹사이트에 페이팔의 결제 툴을 적용하려면 9단계의 연동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스트라이프는 단 일곱 줄 짜리 코드를 복사해 붙여 넣으면 바로 결제 툴이 연동되도록 만들었다. 사업자들이 쇼핑몰, 웹사이트, 스마트폰 앱 등에 결제 모듈을 연동할 때 ‘아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가치를 제공했다. 그것도 카드사 수수료 반값에!
구매자 입장에서도 스트라이프가 페이팔보다 더 편리했다. 스트라이프 결제가 붙은 쇼핑몰에서는 화면을 벗어날 필요 없이 단숨에 결제가 이뤄졌다. 구매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단축은 곧 구매 성공률 증가,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온라인 사업자들이 결제 파트너로 스트라이프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장가도를 달려온 스트라이프는 현재 구독형 서비스, 오픈 마켓, 공유 경제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결제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이에 더해 사업자 등록부터 세금 관리, 법인 카드 발급, 부정 결제 방지 프로그램까지 사업 운영을 위한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스트라이프는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비싼 비상장사다. 2021년 3월 투자금 6억 달러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950억 달러(107조원)로 평가받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전세계 46개국에서 스트라이프를 거쳐 일어나는 거래는 초당 5000건에 이른다. 아마존, 우버, 줌, 슬랙, 부킹닷컴, 도어대시, 세일즈포스 등 글로벌 온라인 기업들이 스트라이프의 고객이다.
“요컨대, 스트라이프는 기업에 ‘생산성’을 파는 회사에요. 온라인 사업자가 결제 과정 만큼은 스트라이프에 마음 놓고 맡기고 자신의 생산성을 비즈니스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토스페이먼츠 역시 결제 경험을 더 빠르게 더 쉽게 만드는 데에 몰두하고 있죠. 나라에서 도로를 닦으면 그 위에 민간이 도시를 건설하는 것처럼, 토스페이먼츠가 결제 인프라를 반짝반짝 닦아 놓으면 그 기반 위에서 세상에 꼭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할 거예요.” - 김민표 Leader
전자상거래의 ‘끝점’을 장악한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은 생활의 중심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옮겨놓았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세와 함께 온라인 결제 산업의 잠재력 또한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한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미국, 중국, 영국, 일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크다. 2020년 국내 이커머스 매출은 전년 대비 19.5% 증가한 1041억 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이 팽창하는 사이, 토스페이먼츠 역시 1년간 성장과 도전을 거듭해왔다. 현재 토스페이먼츠가 만든 결제창을 거쳐 일어나는 거래는 월 2조원 규모다. 매달 한국에서 일어나는 전자상거래의 10~15%를 차지한다. 구글, 마켓컬리, 무신사, 배달의민족, 이베이, 위메프, 티몬 등이 결제 파트너로 토스페이먼츠의 손을 잡았다. 출범 직후 20명 안팎이었던 토스페이먼츠 팀은 160명 규모로 확대됐다.
토스페이먼츠는 페이테크 기업으로 스스로를 정의 내린다. 전자상거래의 끝점이자 일상 생활의 필수 도구가 된 온라인 ‘지불 payment’ 과정을 ‘기술 technology’ 로 혁신하는 것이 미션이다.
먼저 토스페이먼츠는 고객사가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복잡한 서류를 제출하고 검수하느라 3주 이상 걸렸던 온라인 사업자와의 계약 절차는 ‘전자계약’ 절차를 도입하면서 평균 3일로 단축됐다. 계약 완료 후 서비스 연동은 직관적인 API를 활용해 하루만에 끝낸다. 정산주기는 평균 15일에서 단 3일로 줄였다. 매출 및 정산 내역을 관리하는 ‘상점 관리자’ 시스템에서 결제 내역 10만건을 한번에 조회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52초에서 1초 이내로 당겼다.
이전까지 많은 고객사들은 ‘결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1) 결제 프로세스가 빠르고 간편할 수록 고객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면 매출 증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2) 왜냐하면 기존 PG사가 제공해온 결제창이 모두 엇비슷해 더 빠르고 간편한 결제 경험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그래서 고객사들에게 PG사의 존재는 영업을 위한 필수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매년 갱신하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토스페이먼츠는 온라인 사업자들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컨설턴트가 되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전 PG사와 가맹점 사이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어떤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있나요? 사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결제 기능이 필요한가요? 질문을 던집니다. 예약 결제, 후불 결제, 정기 결제 등 어떤 결제 구조가 고객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가장 적합한지 함께 가설을 세우고 토스페이먼츠의 경험을 나눠요. 그동안 막혀있던 지점이 있다면 뚫어낼 방법을 찾고요. - 손현욱 Sales Team Leader
그리고 드디어, 천편일률적인 결제창을 벗어나 고객사마다 원하는 방식의 결제 프로세스를 구현하는 ‘브랜드페이’가 가능해졌다. 브랜드페이는 결제가 간편해지면 매출이 늘어난다는 명제를 증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타사의 결제창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구매를 결정하면 결제할 카드사를 선택하고, 카드번호를 수기로 입력한 뒤, 비밀번호를 넣거나 스마트폰에 깔린 앱카드 화면으로 넘어가 본인인증을 한다. 시간이 초과되면 오류가 나기 때문에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 정도는 참을만 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지만, 결제 전환율은 75% 이내다. 구매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불편을 참지 않고 결제를 그만두는 고객이 25% 라는 의미다.
토스페이먼츠가 만든 브랜드페이에서는 95% 이상이 결제를 정상적으로 마친다. 한번 인증 과정을 거친 뒤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으면, 이후로는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된다. 결제액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에는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결제할 수 있다. 카드사 앱을 불러와 인증하는 몇십 초도 토스페이먼츠는 그냥 흘러가게 두지 않는다. 브랜드페이를 도입한 고객사에서는 사용자 1인당 월 결제횟수가 18% 늘었다.
구매 전환율을 1% 더 높이기 위한 기술을 찾아내는 것이 페이테크 기업이 하는 일입니다. 토스페이먼츠의 고객사는 더이상 ‘결제’에 관한 한 어떤 고민도 하지 않게 될 거에요. 한정된 자원을 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토스페이먼츠가 지원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