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먼저 보면 더 좋은 경제경영서

영화로 먼저 보면 더 좋은 경제경영서

by 김얀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무너졌던 한국 주식 시장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회복하기 시작했다. 미국 중앙은행에서 시작한 ‘무제한 양적 완화’와 ‘위기는 기회’라는 역사의 가르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속한 밀레니얼 세대는 IT에 익숙한 세대답게 발 빠른 정보력을 바탕으로 ‘동학 개미’, ‘서학 개미’란 이름으로 야심 차게 주식 시장에 입성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주식 계좌를 확인해 본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렇다.

“분명 돈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나는 다행히 투자금이 크지 않았고 하루 커피값 벌기를 목표로 소소하게 주식을 시작했던 터라 큰 슬픔과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눈 감고 아무거나 찍어도 오르던’ 한창때의 유혹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영화의 영향이 컸다.

애덤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다. 브래드 피트,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찬 베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같은 이름의 경제경영서가 원작이다. 마이클 루이스 작가가 쓴 경제경영서 ⟪빅숏⟫은 2007~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측한 괴짜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빅쇼트>와 책 ⟪빅숏⟫

실제 인물들과 사건을 기반으로 한 원작과 영화를 보며 나는 “복잡한 경제”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금융 시장은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상품 등으로 일반인들의 접근을 어렵게 했고, 금융권 책임자들은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결국 스스로를 보호할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식 투자와 함께 이 영화를 본 것이 정말로 다행이었다. 영화 초반부를 보면 한창 경기가 좋았을 때 모습이 2020년 코로나 이후 주식부터 코인, 부동산에서 미술품까지 모든 것이 호황이던 사회 분위기와 겹치는 부분이 꽤 많았다. 자산 시장 상승기에도 항상 위기관리에 신경을 쓰고 ‘양방향 베팅’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깨달았다.

<빅쇼트> 속 브래드 피트가 경제 용어를 말할 때의 효과

책 ⟪빅숏⟫과 영화 <빅쇼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뒤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했는데 늘 영화로 먼저 보길 권했다.

문학 작품이라면 언제나 영상보다는 책을 선호하지만, 신기하게도 영화로 나온 경제 경영서가 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엔 영화로 먼저 보거나 영화만 봐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책을 통해 이해하는 쪽이 훨씬 더 상세하고 깊이가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부분들을 접하다 보면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책장을 덮어버릴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영화로 나온 경제경영서가 있는 경우, 무조건 ‘영화’ 쪽을 택하는 이유다. 실제로 영화 <빅쇼트>가 청소년 관람 불가인 이유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리먼브러더스, CDO(부채담보부증권) 등 어려운 경제 용어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영화 <빅쇼트>의 명대사 중 하나를 보자.

넌 지금 미국 경제가 무너진다에 돈을 걸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직장을 잃고 퇴직금을 잃어, 연금도 잃는다는 뜻이야. You just bet against the American economy. Which means if we're right, If we're right, people lose homes. People lose jobs. People lose retirement savings. People lose pensions.

브래드 피트의 대사 중 하나인데, 이런 대사에 실린 분위기나 상황 등에 이끌려가다 보면 어려운 경제 용어는 귓등으로 흘려듣더라도 최악의 금융 위기 사건에 대해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 알아보고 싶어서 다른 경제경영서를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머니볼⟫이 있다. 이 책 역시 영화 <빅쇼트>와 마찬가지로 브래드 피트가 제작, 출연까지 맡아 남우주연상부터 각본상까지 받았던 유명한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 제목도 책과 동일하다.

<머니볼> 또한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데 적은 돈으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아주 쉽게 말하자면 ‘가성비’에 관한 영화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팀 중 하나였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야구팀에 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경영 방식에 대해 뛰어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야구계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는 금융계와 비즈니스계를 사로잡았고, 미국 최고경영자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이 영화를 통해 작은 시드머니로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자본주의에 적응해나가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잠재력과 가치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겉모습과 남들이 높이 사는 학력과 같은 기준에서 벗어나 판단하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길고 긴 창업자 일대기를 2시간 짜리 영화로 봤을 때의 즐거움

영화 <파운더>는 맥도날드를 전 세계로 퍼뜨린 주인공 ‘레이 크록’의 이야기다. 소프트뱅크 창업주 손정의와 일본 부호 1위 유니클로 CEO 야나이 다다시가 인생 책으로 꼽는 레이 크록의 자서전 ⟪사업을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 볼 수 있다.

종이컵을 파는 영업 사원으로 시작해 밀크쉐이크용 믹서를 팔던 52세의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를 전 세계 푸드 체인으로 만들겠다 결심하고, 당뇨와 관절염 초기 증상을 겪으면서도 사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이야기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경제경영서를 말할 때 빼놓지 않았던 것이 이 책, ⟪사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사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던 터라 내가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가 쓴 자서전 ⟪슈독⟫을 읽었을 때에도 비슷했는데,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파운더>와 책 ⟪사업을 한다는 것⟫

“큰 회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가 있다. 그 자리에 도달하는 동안 많은 친구를 잃게 된다” 라는 레이 크록의 말처럼 맥도널드 형제들과의 진흙탕 싸움 외에도 온갖 위기와 골치 아픈 싸움들을 활자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그만 1인 콘텐츠 기업을 운영 중인 나는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 <파운더>는 사업 이야기보다는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라 확실히 보기에 편했고 사업에 관련해서도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영화로 한 번 더 도전해 본 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를 이야기할 때 늘 회자되는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레이 크록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라는 그의 말처럼 어떤 분야든  호기심을 잃지 않고 방법을 찾아 나간다면 위기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만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으로만 접했다면 그저 ‘대단한 도전가’ 정도로 남아있을 법한 레이 크록이었겠지만, 영화를 통해 2시간 넘게 그의 인생에 푹 빠져든 덕에 나는 여전히 그의 인생과 표정, 그리고 명언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됐다.


Edit 이지현 Graphic 조수희 함영범

– 해당 콘텐츠는 2023.3.27.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전문가 및 필진이 작성한 글로 토스피드 독자분들께 유용한 금융 팁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명한 금융 생활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토스피드의 외부 기고는 토스팀 브랜드 미디어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성되며, 토스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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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얀

작가이자 경기도 부천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얀집'의 호스트. 쉽고 재미있는 재테크 입문서 《오늘부터 돈독하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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