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고 싶은 후보가 없어서 한숨만 내쉬는 당신에게

by 이영균

대선을 앞두고 꼭 등장하는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우리 대선 유세는 위 장면을 전통처럼 지켜오고 있다. 마치 모든 후보가 대선 출정식에 나서기 전 이 세 가지를 마스터하는 과정이라도 밟는 듯하다. 아니면 대선 후보로 등록한 직후 청학동 김봉곤 훈장님께 단체로 예절 교육이라도 받는 것 같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다. 어묵을 먹고 다 함께 큰절을 올리자 기업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실로 간명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은 특히 전보다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하는 것 같다. 나만 이렇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주변엔 투표하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한 친구도 있다. 이유? 선택지의 질이 기대 이하라는 거다. 다들 막상막하로 나쁘다는 거다. 도리도리 고개를 돌려봐도, 확 찢듯 눈을 뜨고 찾아봐도 뽑을 사람이 없다는 거다.

최근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투표하러 가지 않겠다는 친구 말이 이해된다. 주요 대선 후보에 대한 평가는 호감보다 비호감이 더 높다. 이재명 후보 비호감도는 59.5%, 윤석열 후보는 56.1%로 두 후보 모두 60%에 육박한다. 5년 만에 맞는 대선인데 이래도 될까 싶지만 현실이다. 마치 줄 서서 들어간 김치찌개 맛집에서 김치찌개를 시켰는데, 라면 국물 맛이 나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받은 것 같다.

물론 누구는 벌써 투표근이 근질근질할지도 모른다.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 불만이 있다. 유력한 대선 후보 두 사람이 낸 부동산 공약 때문이다.

이재명과 윤석열 두 후보는 경쟁하듯 부동산 공약을 내놨다. 이재명 후보는 임기 중에 250만 가구를 공급하고 이 중에 100만 가구는 기본주택으로 내놓겠다고 했다. 기본주택이라는 게 참 흥미로운데 이는 ‘중산층을 포함한’,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건설원가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역세권 500m 이내’에서 ‘30년 이상 살 수 있는’, ‘100만 가구에 달하는’ 아파트다. 윤석열 후보도 뒤지지 않는다. 그도 기본주택에 맞서는 청년원가주택을 포함한 250만 가구 공급책을 내놨다. 청년원가주택이란 ‘시세보다 싼 원가로’, ‘분양 후 5년 이상 살면’, ‘팔 땐 차익의 70% 이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30만 가구에 달하는 아파트’다. 

나는 두 후보의 부동산 공약을 머릿속에 스케치하려다가 포기해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팅커벨이 요술봉을 휘두르고, 꿈과 행복의 상징인 디즈니랜드 성이 나타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오프닝이다.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두 후보에게 묻고 싶다. 저 많은 아파트를 지을 돈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이다. 모두가 그럴싸한 말 잘하기 경쟁은 언제 끝나는지 말이다. 일례로 집을 많이 지어 ‘집통령’이라고 불린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임기 내 총 200만 가구를 짓겠다고 공약했다. 수도권에 90만 가구, 지방에 110만 가구 등이었다. 그가 공약을 이행했을까? 못했다. 분당과 일산, 산본 등 1기 신도시에 총 29만2000가구가 들어섰으니 ‘수도권 90만 가구’라는 목표치의 3분의 1 정도밖에 이행하지 못했다. 무려 ‘군사 독재’로 사업을 밀어붙였음에도 말이다. 

혹자는 마음만 먹으면 30만 가구쯤은 짓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1970년대부터 강남구에 지은 집이 2020년 기준 23만4000가구다. 허허벌판이던 성남시 분당구에 지난 30여 년 간 지은 아파트가 10만 가구다. LH가 돕는다고? LH는 분양주택으로 돈을 벌어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다. 근데 적자가 140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두 후보 공약처럼 수십, 수백만 가구에 달하는 아파트를 ‘원가’로 짓는다면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돈이 남아날까?

나는 부동산에 대해 결코 밝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20·30대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도 잘 안다. 벌써 ‘기권’을 선언한 내 친구가 싫어하는 것도 안다. 허무맹랑한 공약이다. 하지만 유력한 두 후보는 포퓰리즘에 대한 문제의식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후보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정책을 많이 성공시켜서 내가 인정받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그냥 포퓰리즘 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는 “청년원가주택이 포퓰리즘이라는 건 가짜 뉴스”라고 했다. 

잠깐, 포퓰리즘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다고? 포퓰리즘(Populism)이란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활동’이라고 캠브리지 사전에 적혀 있다고 위키백과에 나온다. 포퓰리즘이라고 하니 유명한 두 사람이 떠오르는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슈퍼스타 마이클 센델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와 두테르테는 ‘포퓰리즘적 권위주의자’다. 영어와 한자가 요상하게 섞인 이 말이 대체 무슨 뜻인가 하면, 대중을 선동하고 인기에 영합하여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실은 민주적 의사 결정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그 위에 군림해 제멋대로 정치하는 이들을 말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왕년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한 나라를 가지게 될 것이다” 같은 단순한 말을 반복해 유권자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두테르테는 “독일엔 히틀러가 있지만 필리핀엔 누가 있죠?”라며 지지자들을 범죄와 마약으로부터 안심시켰다. 트럼프와 두테르테 그리고 내년에 새롭게 임기를 시작할 우리나라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되는 권력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재명과 윤석열 두 후보가 트럼프나 두테르테가 되진 않을 것이다. 두 후보가 훗날 ‘아시아의 트럼프’나 ‘한국의 두테르테’라고 불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두 후보가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고 믿는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자신들의 테크닉 이면에 트럼프·두테르테와 거의 흡사한 무엇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오늘 여기에 당신도 투표하지 말라고 쓰려 했다. 인간의 행복은 역설적으로 포기할 줄 아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령 내 집 마련을 하면 외제차를 포기해야 하는 대신,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혼하면 다른 이성과의 연애를 포기해야 하는 대신, 안정적인 가정의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즉 ‘덜’ 나쁜 후보를 고르는 걸 포기하면 정신적 안위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바뀌었다. 우리 대선의 작동방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내가 투표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지난 시간 우리 사회가 저지른 과오를 떨쳐내고,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의 길을 모색하고, 현재 이 나라 부동산시장의 위치를 점검해보기 위해서, 라는 건 당연히 거짓말이고 순전히 ‘더’ 나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선거는 표로써 대표자가 ‘되게’ 하는 절차다. 그런 의미에서 ‘못 되게’ 하는 것도 선거의 순기능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지난날 나쁜 지도자의 해악 속에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지 당신은 알고 있다.

※ 노파심에 말하지만 부디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의 가족, 친구, 정당, 지지자들은 제 글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제 애정 표현 방식입니다. 한국 정치와 부동산 공약에 대한 사랑 방식입니다.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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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균

프리랜서 피처 에디터이자 뉴스레터 부딩 대표. Noblesse, artnow, GEEK 등을 거쳐 현재 부딩에서 밀레니얼을 위한 부동산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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