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파업의 진짜 이유
ㆍby 커피팟
할리우드 작가들과 배우들의 공동 파업은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가장 큰 이슈예요. 지난 5월부터 이미 진행 중인 작가 조합 파업에 7월 중순 배우 조합이 합류하면서 할리우드가 거의 멈춰있고, 공동 파업이 언제 끝날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근 60년 만에 작가와 배우들이 함께 파업에 나선 이유는 뭘까요? 물론 임금 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미래 직업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할 만큼 제작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제작 환경의 변화는 콘텐츠 업계가 모두 스트리밍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어져 오기도 했어요. 이들은 이제 AI라는 기술을 활용해 더욱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도 하죠.
이번 글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변화가 특정 직업에 벌써 존재의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봅니다. 할리우드의 ‘넷플릭스화’에서 시작된 콘텐츠 제작 및 배급의 구조적 변화는 작가와 배우들에 대한 보상 체계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이제는 AI까지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이들을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는 점을 짚으면서요.
할리우드는 한 가지 예인데요. 결국 할리우드를 넘어 현재 AI가 발전하는 상황 그리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기업들의 상황을 살펴봐야 해요. 오늘 이야기는 변화가 내 주변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넷플릭스화가 만든 새로운 현실
어느 날, 내가 어제 한 행동을 그대로 재연한 드라마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방송된다. 주연은 내가 아닌, 다른 유명 배우다. 어제 팀원을 해고하고 옛 연인과 키스한 나의 행동이 방송된 후 나는 직장에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항의했지만 내 행동을 샅샅이 수집하여 콘텐츠로 쓸 수 있다는 스트리밍 서비스 약관에 내가 동의했음을 알고 망연자실해진다. 내 행동을 재연하는 배우 또한 본인이 직접 연기한 게 아니다. 무명 배우의 몸에 유명 배우의 얼굴을 AI로 합성한 것이다.
<블랙 미러(Black Mirror)>는 미디어와 IT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윤리관을 앞서 나갈 때의 부작용을 다룬 SF 옴니버스 드라마 시리즈다. 위는 시즌 6 에피소드인 ‘존은 끔찍해(Joan is Awful)’의 한 장면.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방송됐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AI로 무명 배우 얼굴에 유명 배우 얼굴을 합성하는 기술은 더 이상 ‘드라마가 아닌 다큐’가 될 수 있고, 바로 그 점에 항의하여 미국 작가와 배우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TV쇼, 영화 작가의 노조인 미국 작가 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이 AI로 인한 고용 불안정과 임금 조정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시점은 지난 5월 2일이다. 이후 7월 14일부터는 16만 명이 가입되어 있는 미국 영화배우조합-텔레비전-라디오 예술가 연맹(SAG-AFTRA, The Screen Actors Guild and 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이 파업에 나섰다.
NBC 유니버설, 파라마운트와 같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및 제작사는 물론 아마존, 애플, 유튜브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포함된 영화-텔레비전 프로듀서 조합(AMPTP, American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과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다. 작가, 배우 조합은 모두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 연맹에 가입되어 있으면서 몇 년에 한 번씩 AMPTP와 협상하는데, 이렇게 두 조합이 동시에 파업에 돌입한 건 1960년 이후 처음이다.
이들이 파업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 전통적으로 이들 노조가 요구해 왔던 인플레이션에 연동한 최저임금 인상
-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및 배급 구조가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위주로 전면적으로 변화하며 작가나 배우들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것
- 콘텐츠 제작 시 AI 도입으로 생기는 창작자들의 권리침해 보호를 명시화해 달라는 것
첫 번째는 그리 새로운 이유가 아니다. 다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는 스트리밍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새롭게 떠오른 사항이다.
넷플릭스 거대 히트작이라 해도
스트리밍이 어떻게 배우들의 실질 임금을 줄였는지 살펴보자. 넷플릭스도 처음 출범했을 때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그랬듯 스타 파워에 기대었다. 스트리밍이란 신개념 서비스의 구독자를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케빈 스페이시를 비롯한 A급 배우들을 기용한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가 넷플릭스의 초기 오리지널 히트작이다. 이어서 제작한 작품이 2013년 히트 드라마인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이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다양한 여성 수감자들이 등장한 코미디 드라마로, 당시 스타 파워 없이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의 캐스팅만으로도 성공했다. 무려 1억 500만 명이 보며, 스트리밍 서비스의 콘텐츠 다양성과 잠재력을 시장에 알리기도 했다. 한편 이 드라마에 등장한 배우들은 정작 돈을 많이 받지 못했다는 게 최근에서야 밝혀졌다.
넷플릭스는 TV처럼 시청률을 공개하는 구조가 아니다. 로열티 책정 기준이 베일에 싸여 있다. 출연진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나눠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일부 배우들을 제외한 나머지 단역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다. 배우들에겐 의문이 생겼다. 다수의 출연 배우들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배우조합상(SAG) 시상식 전, 넷플릭스에서 캐스트들을 초대해 축하 파티를 열어준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당시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인 테드 사란도스(이후 CEO가 됨)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 <왕좌의 게임>보다 시청자 수가 더 많다고 자랑했는데, 그 자리에서 의문을 가졌다. <왕좌의 게임> 출연진들은 수백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인기가 많았다는 우리 드라마의 로열티는 어떻게 된 거지?
배우들의 로열티 계산은 어떻게?
스트리밍이 없던 시절, TV 드라마는 시즌제로 제작되며 작가, 배우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시즌제로 제작되는 미국 드라마는 출연료 이외에도 드라마 재방송, 외부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이 발생할 때 출연진들에게 일종의 로열티(residuals)*를 지급한다. * 연기자나 제작자들에게 특정 계약에 따라 재상영 및 재방영이 될 때마다 추가로 지급하는 소득.
예를 들어 10억 달러(약 1조 2,780억 원)의 수익을 거둔 인기 드라마 <프렌즈(Friends)>의 주요 캐스트 6명은 각각 외부 판매 수익의 2%, 2,000만 달러(약 255억 원)의 로열티를 매년 지급받았다. 여러 에피소드에 출연한 단역들도 작품 시청률, 외부 판매 수익과 연동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배우는 촬영이 있을 때만 비정기적으로 일이 있기 때문에 이런 로열티 수입이 있어야 어느 정도의 안정적 수입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혹시 단역 배우들만 이런 파업에 찬성하는 걸까? 아니다. 주연급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디스 이즈 어스(This Is Us)>란 NBC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한 맨디 무어는 자신도 불과 81센트짜리 로열티를 받은 적이 있다고 공개한 후 파업 시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바비>의 마고 로비와 <오펜하이머>의 주연 배우들을 비롯해 현재 개봉한 영화에 출연하는 정상급 배우들도 파업 지지 의사를 밝히며 파업 시작 이후에는 홍보활동 자체를 중단하고 있다.
스트리밍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
배우들의 이런 대동단결은 그만큼 제작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전체 제작 시스템으로 확대되면서 배우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넷플릭스를 필두로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애플TV 등 다른 빅테크들의 콘텐츠로 확대되고 전통적인 드라마 및 영화 프로덕션이 앞다퉈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하며 그동안 시청률을 기반으로 하던 수익배분 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 디즈니 플러스, 훌루, 파라마운트 플러스, HBO 맥스 등.
“제작 환경이 바뀌면서 드라마 편수 자체가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한 편당 20개의 에피소드를 제작하는 등 어느 정도의 직업 안정성이 보장됐는데 스트리밍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편당 에피소드 숫자도 줄어들고 시즌 하나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많아져서 직업 안정성 측면에서는 불안정해졌다.” SAG-AFTRA 회장의 말이다.
실제로 스트리밍 서비스는 한 작품당 8~10편의 에피소드를 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재판매 등을 포함한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기존의 로열티 배분 대신 사전 출연료를 많이 주는 형식으로 창작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의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해외의 능력 있는 창작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오징어 게임>의 모든 권리가 넷플릭스에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눈앞에 다가온 AI라는 진짜 유혹
파업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작품 제작에 AI를 사용할 때 작가들이나 배우들이 알아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특히 배우들은 AI가 활발하게 도입되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미 출연에 영향을 받고 있다. AI 기술은 노장 배우의 주름을 없애고 스턴트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블랙 미러> 에피소드에서처럼 AI를 통한 이미지 합성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지 합성은 긍정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가령 영화를 외국어로 더빙하면 배우의 입 모양이 어색한데, AI 기술을 통해 입 모양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식이다.
AI 활용이 더 자연스러운 사례도 있다.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을 떠올리는 장면, 전작에 나온 빌런을 딱 한 장면에서만 써야 하는 경우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사망한 배우를 AI로 합성해 넣을 수도 있다.
배우들이 정말 우려하는 것도, 몇십 년 만에 대규모 파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배우가 자신의 얼굴과 몸, 목소리가 작품에서 쓰일 때 소위 ‘자기 결정권’이 없어질 수 있다. 사실 배우들이 요구하는 것은 “AI 도입의 전면적 금지”가 아니다. AI를 활용하되, 배우 자신들이 알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얼핏 매우 상식적인 것처럼 보이는 데도 제작사들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AI가 곧 제작비의 절감으로 이어져서다. 적자투성이인 제작사들에게 강력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규모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도 하루 촬영비가 평균 10만 달러(1억 2,800만 원)에 달한다.
산업이 넷플릭스화된 이후의 문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제작사들과 작가, 배우 조합과의 협상은 (8월 21일 기준) 결렬되어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들이 제시한 ‘로열티 협상에서 있어서 참고가 될 만한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조건과 AI 관련 조건도 제작사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작가와 배우들은 지금이 아니면 3년 후에나 다시 단체협상이 가능한데 그 시점의 AI 기술은 지금과 훨씬 다를 것이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작가 파업 때와는 달리 유명한 배우들이 동조 파업, 지지선언을 하면서 7월부터는 제작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됐지만 제작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협상에 달린 게 너무 많아서다.
이미 콘텐츠 제작환경은 치킨게임이 됐다. 아마존, 애플 등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수익을 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고객을 모으거나 붙잡아 두기 위해 운영된다. 이런 환경에서 TV 및 영화 관련 기업들이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를 낼 정도로 시장은 이미 ‘넷플릭스화’되었지만, 이들 전통 TV 및 영화 기업 중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익을 내고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수의 기업들이 자산 매각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디즈니의 CEO 밥 아이거는 은퇴했다가 다시 복귀했고, 최근 임기를 재연장했다. 디즈니의 수익이 계속 나빠지면서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을 받자 재차 소방수로 나선 것이다. 아이거는 디즈니의 일부 자산 매각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작가, 배우들의 조건을 들어주는 것은 매각과 수익에 악영향이 된다는 판단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의 원조 격인 넷플릭스는 주가가 오히려 오르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전통 스튜디오보다 좀 더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제작하고 있다. 신작 라인업 여유가 있는 데다가 기존에 축적된 콘텐츠들이 자사 콘텐츠를 주력으로 하는 전통 스튜디오나 TV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비해 훨씬 더 많아서다.
요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많은 미디어에서는 작가, 배우들의 힘든 싸움을 예측하고 있다. 어차피 2024년 여름 성수기 영화 시즌에 작품을 내놓으려면 올 하반기에는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파업이 더 길어지면, 생계가 달려 있는 작가와 배우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물론 기존 로열티 분배 방식 대신, 사전 출연료를 상향 조정하는 식으로 조삼모사를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작가, 배우들은 스튜디오들이 어떤 패(배분에 필요한 수익구조 데이터, AI 기술의 발전 가능성)를 가졌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협상에 임하고 있는 셈이다.
SF 소설가이자 IT 정책 컨설턴트인 매들린 애슈비(Madeline Ashby)는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에 기고한 ‘할리우드의 미래는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속한다’를 통해 빅테크식 스트리밍 운영이 할리우드에 가져온 변화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미국의 수익 배분 체계가 무너지면서 능력 있는 창작자들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할 유인 요소는 높고, 분배 시스템을 투명하게 만들 유인 요소는 낮아 전통적인 할리우드 창작 시스템을 파괴하고 창작자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경고한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처럼 배우들에게 실질적 피해가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예전 TV시리즈를 만들었을 때처럼 시청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다음 시즌을 만드는 방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팀워크와 창작 의욕이 사그라들 수 있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해당한다. 작품의 모든 요소가 데이터 포인트가 되면 스트리밍 서비스 입장에선 단역 배우들을 AI로 대체하는 등 수익 위주의 제작환경으로 전환할 유인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 프로젝트를 마치면 은퇴하겠다”며 “(스트리밍 환경은) 시대정신(Zeitgeist)에 맞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창작 요소의 고갈’을 주장하는 이들은 슈퍼히어로물, 연작 시리즈 외에는 볼 영화가 거의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코로나로 극장에 못 가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할리우드의 경향을 보면 과거 캐릭터가 계속 변주되어 등장하고 있으며 이런 시리즈물에서는 컴퓨터 그래픽(CG)이 과다하게 많이 쓰이고 있다. AI와 딥페이크 기술도 계속 진화 중이다. 창조성은 저하되고 인간의 개입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제는 완전히 바뀐 콘텐츠판 구조
최근 픽사가 제작한 <엘리멘탈>의 흥행 참패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흥행 캐릭터를 새로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마블 시리즈 외에 다른 종류의 새로운 시리즈물 등장이 씨가 마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작 <바비>가 모처럼 흥행몰이하는 이유도 누구나 다 알아볼 수 있는 오래된 캐릭터라는 데 있다. <인디아나 존스> 신작에서 노쇠한 해리슨 포드에 CG를 잔뜩 입혀 액션물을 만든 것도 예전 캐릭터를 기억하는 극장팬들을 끌어내려는 전략이었다.
<탑 건>이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CG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직접 스턴트를 하는 톰 크루즈를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무비 스타’라고 부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CG 투성이의 히어로물에 우리 눈이 익숙해졌음을 뜻한다. 마블 배우들이 굳이 CG의 도움 없이 하늘을 날고 자동차 추격전을 할 이유가 없다. 언젠가는 그나마도 AI로 대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큰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진짜 액션’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한 관객도, 극장도 줄어들고 있다. 영화와 콘텐츠 산업의 디지털화는 이처럼 기존 수익 분배 구조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기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생산 구조를 파괴했으며, 그 과정에서 산업 참여자들을 소외시켰다.
물론 반박도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대형 스튜디오에 의존하던 기존 영화 드라마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훨씬 더 다양한 콘텐츠가 나올 수 있게끔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같은 드라마의 경우에도 기존 공중파라면 편성이 어려웠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도 기존 한국 제작사들이 투자를 꺼려해 묵혀놨던 시나리오였으며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AI와 인간 공존의 첫 시험대이기도
이번 파업을 통해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필요하냐?”란 인터넷 여론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중요한 건 창작자들이 등장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창작자들이 요구하지 않는 한 계속 척박해질 거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파업의 결과로 소규모 제작사 A24*가 배우들의 일부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약속해 배우조합에서 A24 작업은 계속할 수 있도록 조합원들에게 공고하기도 했다. 창작자의 요구가 작은 성과를 낸 사례다. 일련의 과정은 앞으로 AI 도입과 수익 배분을 놓고 벌이는 다른 산업의 노사협상에서도 참고 사례가 될 것이다. * <문라이트>,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의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를 배급하고 있는 미국의 중소 영화사. A24는 제작자 조합에 속해 있지 않다.
데이빗 건켈 노던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과 교수는 “배우와 작가는 탄광 안의 카나리아와 같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가 예상하듯 전 세계 3억 개 직업이 AI로 대체될 수 있기에, 이번 배우, 작가 파업과 그 협상 결과는 향후 AI와 직업에 대한 협상에서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블랙미러>와 같이 가짜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사람들은 실제로 보고 싶어 할까? AI 도입과 노동의 소외를 막을 수 있는 1차적 방어는 이 안에서 직접 싸우는 배우들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콘텐츠를 접하는 우리도 의식적으로 콘텐츠 산업의 디지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Writer 키티 커피팟에 [키티의 빅테크 읽기]를 쓰고 있다. 키티의 한글 이름은 홍윤희이다. 대표적인 이커머스 기업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리드했고, 소셜임팩트를 담당했다. 딸의 장애를 계기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 무의(Muui)를 운영하며 2021년 초 카카오임팩트 펠로우로 선정됐다. IT, 미국 정치, 장애, 다양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주제를 넘나들며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쓴다. 한국일보에 정기 기고 중이며, 장애, 유니버설 디자인, ESG, 사회혁신 등의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한다.
Edit 손현 Graphic 이은호
본 글은 2023년 7월 31일에 발행된 커피팟 뉴스레터에 기반해 2023년 8월 22일(화) 기준으로 재편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