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거 비용을 아시나요?
ㆍby 김열매
전세, 월세, 자가. 주거 점유 형태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고, 셋 다 주거 비용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주거비 부담을 가장 크게 느끼는 유형은 월세다. 매월 소득의 상당 금액을 또박또박 집세로 지불해야 하며 이 돈은 사라지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장 저렴하다고 인식되는 건 전세다. 일정 규모의 목돈을 보증금으로 집주인에게 맡기고 거주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일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대체로 전세가격은 매매가격보다 싸고 세금도 없다.
전세를 영어로 뭐라 할까? ‘Jeonse’다. 한국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지만 한국만큼 전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없다. 오죽하면 영어로도 ‘Jeonse’라고 하겠는가.
한국의 전세 제도를 처음 듣는 외국인은 매우 놀라워하며 어떻게 시작된 제도인지 기원을 묻는다. 전세 제도는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원은 확인하지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전세(傳貰)는 이미 조선시대에 꽤 일반적인 주거 점유 형태인 걸로 보인다.
건설, 부동산, 리츠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에게 주거 고민을 듣는다. 전세가격이 너무 올라 이제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사람, 집값이 너무 올랐으니 하락할 때까지 전세로 버티겠다는 사람, 대출이 나오지 않으니 전세보증금을 빼서 갭 투자로 집을 사고 월세로 거주해야겠다는 사람… 등등. 예전에는 집을 살까 말까 묻는 고민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
전세, 월세, 자가의 주거 비용, 사람마다 다르다
전세, 월세, 자가는 각기 장단점이 있고 필요한 돈도 다르다. 누군가는 집을 사라 하고 누군가는 전세로 살라 하는데 각자의 사정이 다르다. 또한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전세에서 자가로, 자가에서 전월세로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면 각각의 주거 비용과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현재 내 상황에 맞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공짜 주거는 없다. 모두에게 정답이 같은 것도 아니다.
전세의 가장 큰 장점은 매월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가장 낮다는 점이다. 보증금을 대출 없이 순수 현금으로 조달할 때,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은 관리비뿐이다. 월세로 사는 많은 사람들이 전세를 꿈꾼다.
그렇다고 전세가 좋고 월세가 나쁜 건 아니다. 집수리나 도배 비용을 예로 들면, 통상 전세의 경우 임차인이 부담하고 월세는 집주인이 부담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물론 수리 항목에 따라 차이가 있고 요즘은 이를 임대차 계약 시점에 세부적으로 협의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중개수수료* 차이도 적지 않다. 이사 때마다 내야 하는 중개수수료는 지난 몇 년 사이 전세가격이 오르면서 무시 못할 부담이 되고 있다. * 2021년 10월 19일부터 부동산 중개수수료, 일명 복비가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자세한 내용은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내려가요> 토스피드 아티클 참고. – 편집자 주
중개 보수 한도는 전세의 경우 전세보증금에 상한 요율을 적용해 산출하는데 보증금 구간에 따라 상한 요율이 다르다. 월세의 경우 보증금에 월차임의 100배수를 더한 금액을 기준으로 중개수수료를 산출한다. 비슷한 조건의 집을 임대차 계약할 경우, 월세 계약의 중개수수료가 전세보다 저렴하다. 월세의 경우, 소득과 주택 규모 등 몇 가지 조건에 부합하면 세액공제도 받을 수 있다.
전세가 가장 저렴한 주거 유형일까? 매월 지불해야 하는 고정지출만 비교하면 전세가 월세보다 싸지만, 전세보증보험, 중개수수료와 수선비 등을 감안하면 꼭 그렇다고만 할 수 없다. 현금이 부족해 전세대출을 많이 받아야 하거나 최근처럼 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이자 비용까지 감안하면 다시 계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거 비용이 모두에게 같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각자 활용할 수 있는 금융, 즉 대출 한도와 이자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일정 조건을 갖추면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같은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1%대 금리의 정책지원 대출을 활용한다면 전세는 월세보다 확실히 저렴하다.
임차보증금의 70%에서 최대 80%까지도 대출한도가 지원되는 만큼 목돈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들은 이를 적극 활용할 만하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저금리 전세대출이나 역세권 청년주택 같은 특정 주거유형에 입주하는 경우 제공되는 무이자 대출 지원도 있다.
1%대 또는 무이자 대출을 활용할 수 있느냐, 4~5%대 대출을 받아야 하느냐에 따라 전세는 월세보다 아주 저렴한 주거가 될 수도 있고 비싼 주거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전세와 월세만 비교해도 장단점과 비용 차이가 크다. 전월세를 자가와 비교하면 비용함수는 좀더 복잡해지고 개개인의 비용 차이도 커진다.
자가점유의 가장 큰 장점은 주거 안정이다. 번거롭게 이사 다닐 필요가 없고 원하는 대로 고쳐 살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도 자가는 전세보증금보다 더 큰돈을 필요로 했다.
내 집 마련을 자신이 갖고 있는 현금만으로 이뤄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로 어느 정도는 대출을 필요로 한다. 생애 최초로 내 집을 마련할 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대부분은 살면서 가장 큰 규모의 대출을 경험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금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주거비 부담은 커지고 자산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주택을 매입하면 전월세보다 높은 중개수수료뿐 아니라 취득세부터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이 발생한다. A주택을 매입해서 2년 또는 4년 동안 거주한다고 가정할 때, 주택가격 변동이 없다면 매매는 가장 비싼 점유 형태다.
전세가 가장 저렴한 주거일까?
주거 비용 항목을 정리해보자.
임대차법으로 4년을 거주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같은 유형의 집이라면 전세 < 월세 < 자가 순이다. 즉, 전세가 가장 저렴하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이 무리해서 집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값이 계속 오르니까? 물론 최근 추세를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지 않던 시기도 있었고, 그때에도 살 사람은 샀다. 모든 사람에게 전세가 반드시 가장 싼 주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월세 계약은 2년, 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경우 4년을 가정해도 집을 옮겨야 할 때마다 지불하는 비용이 적지 않다. 중개수수료와 이사비용, 보증보험료뿐 아니라 4년간 상승한 전세보증금 차액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를 20년, 30년쯤 반복한다고 상상해보자. 전세와 월세의 주거 비용은 아래와 같이 바뀐다. 보증금이 늘어나면서 중개수수료와 이사비용을 수년마다 반복해서 지출해야 한다.
한편, 자가로 거주하는 경우 초기 취득세와 중개수수료, 자금 부담은 전세보다 많이 들지만 오래 거주할수록 추가비용 부담이 줄어든다. 2년 또는 4년마다 발생하는 중개수수료와 이사비용, 보증보험료 등의 부담도 사라진다. 내 집에 거주한다는 안정감은 물론이다.
2년 또는 4년 후 거주지를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면 전월세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오래 거주하고자 할수록 자가 거주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 될 확률은 높아진다. 집값이 상승하지 않더라도 주거 비용 측면에서 비교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장기적으로 주택가격은 상승해왔다. 전세로 거주하면 계약 만료가 도래할 때마다 전세보증금 인상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주택을 매입하면 거주와 동시에 자산 가격이 상승할수록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다. 팔기 전까지는 평가이익일뿐 실현이익은 아니지만 평가이익도 이익은 이익이다. 어떤 주택을 어느 시점에 매입했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이 추세는 더욱 공고해진 상황이다.
물론 무리한 대출을 일으켜 주택을 매입한 후 가격이 하락했을 때, 이자 지불이 어려워진다면 상당한 고충을 겪을 수 있다.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대출 받아야 한다. 이는 참으로 어렵지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기본 원칙이다.
‘영끌’ 대출을 받아야 집을 살 수 있는 시대, 그 한도가 어디까지인지는 본 시리즈 중 따로 한 편 써보도록 하겠다.
최선의 선택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 흐름을 되짚어보자.
2020년 말 기준, 최근 5년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98.8%, 전세가격은 52.3% 상승했다. 2015년 기준으로 중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3억 7,522만 원이었는데 2021년 9월 기준 6억 2,680만 원으로 2억 5,158만 원 상승했다. 만약 같은 기간 동안 비슷한 수준의 아파트에서 꾸준히 전세로 살며 재계약했다면 전세보증금이 2.5억 원 정도 더 필요했을 것이다. 한편, 2015년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5억 2,444만 원이었고 2021년 9월 기준 10억 6,000만 원으로 5억 3,556만 원 상승했다.
△ 서울 아파트 5분위 평균 매매가격과 상승률 추이 (자료: KB국민은행, 유진투자증권)
물론 일련의 주택가격 상승 흐름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2009년부터 2013년 사이에는 주택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거나 하락하는 시기도 있었다.
△ 서울 아파트 5분위 평균 전세가격과 상승률 추이 (자료: KB국민은행, 유진투자증권)
하지만 같은 기간 전세가격을 살펴보면 매매가격이 정체된 동안에도 전세가격은 꾸준히 상승했다. 전세로 거주하는 비용이 상승하면서 전세 거주자의 주거 비용도 상승한 셈이다.
2020년 7월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주거 비용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는 현실이다. 금리도 상승 추세로 바뀌면서 주거 비용을 산출하는 방식은 더 복잡해졌다. 게다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함께 요동치고 있다.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에는 무리해서 집을 사라는 말이나, 너무 올랐으니 팔고 전세를 살라는 말 모두 의미가 없다. 각자 본인의 주거 비용을 계산해보고 리스크와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집값은 비싸지만 소득 범위 내에서 저금리를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오래 거주할 목적이라면 매수를 고려할 수 있다. 자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지 않아도 거주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가 거주의 효용이 높다. 목돈이 없어도 요건을 갖춘다면 월세보다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로 거주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다만, 1주택자인데 집값이 너무 올라서 팔고 전세를 살다가 하락하면 다시 사겠다는 생각은 말리고 싶다. 전 재산을 전세보증금으로 묶어두고 살면 집값이 하락해도 여유자금이 없어 매수할 방도가 없다.
전세보증금은 은행 예금이 아니다. 아무 때나 찾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택 매도, 매수에는 거래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집을 살 때와 팔 때 내는 중개수수료와 취등록세 등 각종 세금 등을 감안하면 본인의 기대보다 상당폭 집값이 떨어져야만 원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모아둔 돈이 없으니 월세 살아야지 별 수 없어요. 빚은 위험한 거 아닌가요?”
사회초년생, 신입사원 후배들에게 종종 듣는 얘기다. 정책지원으로 저금리 전세대출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꽤 많다. 처음부터 부모에게 지원받고 시작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할 시간에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부터 찾아보자.
돈이 없으면 월세를 살아야 한다거나, 돈이 있어도 집값이 하락할 것 같으니 전세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오랜 편견이다. 개인의 상황이 다르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집을 살지 말지 고민할 때, 필요한 건 막연한 질문보다 현실 파악이다. ‘집값이 더 오를까요?’라고 불확실한 미래를 묻는 대신, 스스로 처한 상황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고 활용 가능한 금융을 먼저 찾아보자. 전세, 월세, 자가라는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옳고 누군가에게는 그르다.
부동산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요즘처럼 급변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 글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기를, 어느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화를 마친다.
Edit 손현 Graphic 김예샘, 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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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꿈을 안고 건축과에 갔다가 건설사와 컨설팅을 거쳐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되고픈 월급쟁이. 숫자와 스토리, 꿈과 현실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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