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어떻게 기축통화가 됐을까?
ㆍby 김경곤
에디터 G (이하 G): 박사님 오랜만이에요. 작년에 연재하셨던 <매일 뉴스에 나오던 그 단어> 시리즈가 책 <경제의 질문들>로도 나왔더라고요. 축하드려요!
박사 K (이하 K):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올해는 <에브리데이 경제학> 시리즈를 준비했어요. 매일 겪는 일상, 하루를 시작하는 뉴스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제학 원리를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시리즈 기획 과정에서 에디터님이 뽑아주신 일상 속 경제학 질문들 30여 개 중 10개를 추렸어요. 개인, 가계, 기업 같은 주체들의 경제활동과 관련있는 미시경제 원리는 물론, 국가 단위로 이뤄지는 경제활동과 관련있는 거시경제 원리까지 다뤄보겠습니다.
G: 좋아요. 이번 화는 어떤 이야기를 다루게 될까요?
전세계 어디에서나 반기는 화폐
K: 지난 시리즈에서 두 화에 걸쳐 환율을 다뤘잖아요. 환율을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 ‘달러'가 등장했고요.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key currency, reserve currency)’라 하는데, 말이 좀 어렵긴 하지만.. 전세계 어디에서나 반기는 화폐라 생각하면 돼요.
G: 해외여행 가면 우리나라 돈은 안 받아도 미국 달러는 받잖아요. 아무래도 많은 나라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화폐라 그런 것 같아요.
K: 맞아요, 미국 달러 위상은 어마어마하죠. ‘킹(king)달러'라 부를 정도로 달러 강세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요. 이번 화에서 미국 달러가 지금과 같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해요.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22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의 달러 인덱스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이를 확인할 수 있어요.
G: ‘달러 인덱스’가 뭐예요?
K: 미국 달러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변수인데요. 전세계적으로 기축 통화 역할을 할 만하다 평가받는 6개 통화 유럽연합의 유로(EUR), 영국의 파운드(GBP), 캐나다의 달러(CAD), 일본의 엔(JPY), 스웨덴의 크로네(SEK), 스위스의 프랑(CHF)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계산한 지표예요. 달러 인덱스의 그래프를 보면 2022년 1월부터 달러 인덱스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요. 달러 인덱스에 포함되어 있는 6개 통화들에 비해 달러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했다 이해하면 됩니다.
전쟁과 화폐의 역사
G: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측정할 필요가 언제부터, 왜 있었던걸까요?
K: 달러 인덱스의 탄생 배경을 보면, 달러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1차 세계 대전까지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보죠.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각국의 화폐는 금본위 제도를 기반으로 발행됐습니다. 금본위 제도는 화폐의 가치를 ‘금’에 연동시키는 건데요. 영국 화폐 파운드를 기준으로 보면, 4.25파운드의 가치를 금 1온스에 고정시키는 것이죠.
G: 왜 화폐 기준을 금과 연결시켰던 거예요?
K: 이때는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높지 않았거든요. 사람들이 화폐를 믿고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선 언제든지 화폐를 은행에 가져가면 그 화폐 가치에 해당하는 만큼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주어야 했습니다. 이때의 화폐는 ‘금 교환권’이었던 셈이죠.
금본위 제도는 금의 양을 기준으로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화폐 가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화폐를 발행할 때 그만큼 제약이 따른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특히, 전쟁처럼 갑자기 많은 돈이 필요할 때는 더욱 그렇죠.
G: 전쟁이 화폐에 큰 영향을 미친 거군요.
K: 맞아요.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참전국들은 무기와 물자를 대규모로 구입하기 위해 큰 돈이 필요해졌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금본위 제도를 폐지해 버리죠. 금본위 제도라는 제약이 사라지자 화폐의 양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G: 시장에 갑자기 돈이 많이 풀리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을 텐데요? 지난 시리즈 인플레이션이 뭐지? 화에서 봤어요.
K: 기억력 좋으시네요. 화폐 양(통화량)이 많아진다는건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린다는 거죠. 시장에 돈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해요. 인플레이션율이 플러스(+)면, 우리가 보통 ‘인플레이션이다'라 말하는 물가 상승 상황이 펼쳐지고요.
대표적인 예가 1920년대 초반의 독일인데요. 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어마어마한 양의 배상금을 갚아야 했습니다. 독일은 이 배상금을 갚기 위해 화폐를 계속 발행했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율이 무려 400%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발생하게 됩니다.
G: 그런데 1차 세계 대전 전후엔 미국의 힘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잖아요. 이때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건 영국 파운드화인거죠?
K: 맞아요.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세계의 패권국은 영국이었고, 국제무역에서 주로 사용됐던 화폐도 영국 파운드화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금본위 제도를 폐지하는 와중에도 영국은 꿋꿋하게 금본위 제도를 유지했습니다. 파운드의 가치가 흔들리면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무너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금본위 제도로 인해, 영국은 필요한 만큼의 화폐를 발행하지 못하게 돼요. 전쟁으로 인해 어딘가에서 부족한 돈을 빌려와야만 했던 영국은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이를 계기로 파운드의 힘은 점차 약해지게 됩니다.
G: 미국은 어떻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위치가 되었던 거죠?
K: 전세계가 두 번의 큰 전쟁을 거치는 동안, 미국은 전세계에 다량의 전쟁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참전국들이 미국에 지불한 결제 수단은 바로 ‘금’이었고요. 전세계의 금들이 점점 미국으로 이동해, 미국의 금 보유량은 계속 증가하게 돼요. 금본위 제도를 폐지한 나라들과 달리, 미국은 점점 쌓여가는 금 보유량을 기반으로 금본위 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거죠.
그러던 중 기축통화 지위를 위해 꿋꿋하게 금본위 제도를 유지하던 영국이 더 이상 파운드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는 여력이 없어지자, 1930년대 초반에 금본위 제도를 폐지하게 됩니다. 이로써 파운드가 국제 무역을 위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이 때부터 화폐의 패권은 미국의 달러로 넘어가게 됩니다. 사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20년대 초에 이미 미국의 경제 규모는 영국을 추월한 상황이었어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건 예정된 수순이었죠.
파운드에서 달러로, 기축통화가 바뀌다
G: 그러고 보면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게 된게 오래된 일이 아니네요.
K: 맞아요. 달러가 기축통화로 공식 인정된 것은 1944년이니까요. 미국 뉴헴프셔 주에 있는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에 44개국의 대표들이 모여서, 앞으로 각국의 통화는 미국 달러의 가치에 연동된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금 1온스를 35달러의 가치에 고정시켜요. 미국이 전세계 최대 금 보유국이었기에 금본위 제도를 통해 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고요.
이제 세계 각국은 영국 파운드 대신 미국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미국에 가져가면 달러의 가치만큼 금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해요.
[사진] 1944년 브레튼 우즈에서 열린 회의 모습
자료: Associated Press (Photographer: Abe Fox)
G: 브레튼 우즈 체제 이후 미국 달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전세계 유일 금 교환권이 된 셈이군요.
K: 맞아요. 이때부터 세계 각국은 ‘금 대신 달러’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보통 세계 각국이 달러를 보유할 때, 현금의 형태가 아니라 약간의 이자까지 받을 수 있는 ‘미국 채권’의 형태로 보유하곤 하는데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었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돈이 필요해서 채권을 발행하면 시장에는 늘 미국의 채권을 구매하려는 대기 수요까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G: 엄청난 지위를 가지게 된 거네요. 그런데 미국이 그 역할을 문제없이 지속할 수 있었나요? 미국도 시장에 돈을 많이 풀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잖아요.
K: 이번에도 역시 전쟁이 문제였어요.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통화량을 엄청나게 늘리게 됩니다. 시장에 대규모의 달러가 풀리자, 미국의 달러를 믿고 보유하고 있던 나라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하죠. ‘혹시 미국에 달러를 가져가 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을 달라 요구해도 못 받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요. 실제로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미국에 요구하게 됩니다.
달러의 전화위복
G: 혹시 못 바꿔주는 상황이 생겼나요?
K: 네, 예상하신대로… 시장에 엄청나게 풀려버린 달러의 규모는 이미 미국이 보유한 금의 가치를 넘어섰습니다. 다른 나라가 달러를 가지고 오더라도 금으로 바꿔주지 못하는 상황이 된 거죠.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에 전격적으로 금본위 제도를 폐지한다 발표합니다.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 한거죠. 또한 지금까지는 달러의 가치를 금에 고정시켜 왔는데, 이제부터는 달러의 가치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G: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달러 가치가 자유롭게 결정된다면… 누가 어떻게 측정하는지에 따라 달러 가치가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잖아요.
K: 서두에서 살펴본 ‘달러 인덱스’가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미국 연준은 달러 인덱스를 만들어요. 이를 통해 금 대신 세계 주요국 화폐들에 대한 달러의 교환 비율을 가중 평균으로 계산해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측정한 것이죠.
G: 그렇군요. 그런데 금본위 제도가 폐지됐다면, 전세계에서 근본적으로 통하는 금과 연동되는 달러의 역할이 흔들릴 것 같은데요. 어떻게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계속하게 되는 거죠?
K: 실제로 미국이 금본위제도를 폐지하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어요. 지금까지 달러를 언제든지 금으로 바꿔준다는 말만 믿고 달러를 모아왔는데, 더이상 바꿔줄 수 없다니. 배신감 느낄 만 하죠? 이 결정이 발표되자 미국의 달러 가치는 점점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 때 달러에게 구원자가 등장하는데요. 누구일까요?
G: 석유...?
K: 정답! 금이 떠난 후 비어버린 달러의 옆 자리를 석유가 채워줬어요. 달러와 석유의 밀접한 관계는 2차 세계 대전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전쟁을 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석유의 공급이 필수겠죠. 비행기나 배를 띄우려면 연료가 꼭 필요하니까요. 전쟁에 참가한 미국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처로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주목합니다.
G: 사우디 아라비아 입장에서 미국과 동맹을 맺을 이유가 있었나요?
K: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립국이었어요. 그런데 이탈리아로부터 산유 시설에 대한 공격을 받는 등 다양한 군사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죠.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나라가 필요했던 미국과, 자신들의 석유 생산 시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나라가 필요했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해관계가 일치한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던거죠.
이 때부터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동맹이 시작됩니다.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안전을 보장해주고, 대신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에게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이죠. 이렇게 미국(달러)과 사우디 아라비아(석유)의 전략적 유대 관계가 시작됩니다.
한편,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국 사이에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OPEC(석유 수출국 기구)는 원유 금수 조치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오일 쇼크’가 발생하고 석유 가격이 급등하게 되죠.
특히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이 타격을 입게 되는데요.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옛 친구’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손을 내밉니다.
- 미국🇺🇸 : 사우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 우리 예전부터 친한 친구였잖아. 내가 이스라엘에게 잘 이야기 할 테니까, 석유 금수 조치 풀어주라. 대신 우리가 앞으로 아무도 널 공격하지 못하도록 잘 지켜주고 무기도 많이 지원해줄게.
- 사우디🇸🇦 : 미국, 네 말 믿어도 되는 거지? 약속만 잘 지켜주면, 앞으로 너희한테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게.
[사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 (1974년 사우디 아라비아)
자료: Associated Press (Photographer: Dirck Halstead/Liaison)
G: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동맹 이후 협상까지, 성공적이었네요.
K: 그뿐만이 아니에요. 미국은 이스라엘을 설득해 욤키푸르 전쟁을 마무리 짓게 했고, 그 결과 석유 금수 조치도 해제됩니다. 또한 OPEC의 리더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영향력으로 인해, 국제 원유 거래에 오직 달러만 사용하게 되는데요. 이를 통해 ‘페트로 달러(petro-dollar)’가 본격화 됩니다.
G: 페트로 달러요?
K: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전세계 생산활동은 석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석유에 대한 수요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니까요. 만약 산유국들이 생산하는 원유의 결제 수단으로 오직 달러만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G: 아마 모든 나라들이 원유를 사기 위해 달러를 가지고 싶어하겠죠?
K: 맞아요. 달러가 있어야 원유를 구입할 수 있으니, 달러에 대한 수요도 끊이지 않게 될 겁니다. 미국이 금본위 제도를 폐지한 후 달러의 가치가 흔들렸는데도 빠르게 진정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페트로 달러’예요.
산유국들에게도 좋은 상황이었어요. 이들은 석유를 팔며 엄청난 양의 달러를 모으게 되는데요. 이렇게 확보한 페트로 달러로 미국 국채를 구입하거나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s)를 통해 주식 시장에 재투자하게 됩니다.
G: 미국.. 진짜 똑똑하네요.
K: 그러게요. (웃음) 금이 부족해지자 전세계가 필요로 하는 재화로서 석유를 택했고, 달러가 국제 원유 시장에서 명실상부한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지금까지 기축통화로서 살아남게 된 것이죠.
그런데, 최근 달러가 독점하던 원유 거래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어요. 중국 위안화가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거든요. 과연 페트로 달러 체제의 균열로 이어질 것인가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연준의 급격한 기준 금리 인상 이후, 달러는 안전 자산으로서 사람들에게 더욱 선호되고 있고요. 과연 달러는 앞으로도 계속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보도록 하죠.
Edit 금혜원 Graphic 조수희, 엄선희
해당 콘텐츠는 2023.2.22.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