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할까?
ㆍby 김경곤
에디터 G (이하 G): 교수님,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교수 K (이하 K): 실제 부자 순위는 매년 달라지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라고 하면 역시나 ‘빌 게이츠’의 이름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막대한 부를 쌓았는데요. 2024년 기준으로 그의 재산은 약 1,056억 달러로, 원화로는 무려 145조 원에 이른답니다.
G: 정말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해낸 부자네요. 세계 최고의 부자들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도 빌 게이츠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K: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빌 게이츠가 특별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다양한 기부 활동을 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빌 게이츠와 전 부인인 멀린다 게이츠는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설립하여, 전 세계의 질병 퇴치, 빈곤 문제 해결, 교육 기회 확대 등을 위해 수백억 달러를 기부해 왔어요.
워런 버핏도 빌 게이츠와 손을 잡고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캠페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했으며, 이후에 많은 부자들이 동참하게 됩니다.
G: 많은 부를 쌓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자발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니까요.
K: 맞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유층의 기부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일부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부유층의 자선 활동이 세금 감면 등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이뤄진다는 거예요. 기부가 공익보다는 부유층의 개인적 선호와 영향력 확대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환원인지’를 묻는 것이죠.
G: 아하, 기부나 자선 사업의 근본적인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이겠군요. 실제로 연예인이나 공인이 기부를 했다는 기사가 뜨면 “세금 회피가 목적이겠네”는 댓글이 종종 보이더라고요.
K: 에디터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부를 축적한 개인이나 기업이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두 입장으로 나누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할게요.
1. 찬성 입장: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은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K: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공공재의 이용에 따른 사회적 책임’입니다. 현재의 경제 체제 하에서는 어떤 개인이나 기업도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부를 쌓았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공공 인프라를 이용해서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 일부를 환원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G: 그렇겠네요. 개인이든 기업이든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만든 인프라의 덕을 보는 것이니까요.
K: 이 논리의 핵심은 바로 공공재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재화를 경합성(rivalry)과 배제성(excludability)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사용해 분류하곤 하는데요. 여기서 ‘경합성’은 특정 재화에 대한 나의 소비가 다른 소비자의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의미하고요. ‘배제성’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그 재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배제할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이용하면, 아래 그림과 같이 재화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G: 들어본 것도 있고 처음 접하는 것도 있네요. 각 재화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K: 그럼요. 먼저, 사유재(private goods)는 개인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상품, 서비스를 말해요. 내가 돈을 주고 사면 다른 사람은 못 쓰는 물건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사고 파는 상품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해요.
사유재는 개인이 완전히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재화라서, 한 사람이 사용하면 다른 사람의 사용이 제한되는 등 경합성이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가격을 지불해야만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배제성도 강해요.
두번째로 공공재(public goods)는 사유재와 완전히 반대예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상품, 서비스죠. 아무나 이용할 수 있고, 그 누가 사용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원, 정부가 국민을 위해 제공하는 국방 등이 공공재에 해당하죠.
공공재는 누군가 소비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동일한 재화를 소비하는 데에 제한이 없습니다. 경합성이 약해요. 또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배제성 또한 약합니다. 시장에서는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로 정부가 제공하게 돼요.
G: 사유재, 공공재는 일상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재화네요. 이해가 쉬워졌어요. 클럽재, 공유자원은 어떤건가요?
K: 그 둘도 설명을 들어보시면 익숙한 개념일 거예요. 클럽재(club goods)는 제한된 일부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말해요. 클럽에 속한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서비스 같은 건데요. 티빙이나 넷플릭스 같은 유료 OTT 서비스, 헬스클럽이나 골프장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클럽재는 경합성이 약하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모든 사람들이 꽉 채워 사용하지 않는 이상 회원들이 다같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즉,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용해도 서비스나 재화의 질이 크게 저하되지 않아요. 그러나 일정 비용을 내야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용 권한이 제한되어 있어요. 누구나 사용할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 배제성은 강합니다. 공공재와 사유재의 중간쯤 되는 재화라 보시면 돼요.
마지막으로 공유자원(common resources)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지만, 사용할수록 줄어드는 재화를 말해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덮어놓고 사용하면 부족해질 수 있는 자원이에요. 어업 자원(물고기)나 공공 목초지나 숲, 바다, 강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공유자원은 경합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소비하면 양이 줄어들어요.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그리고 배제성은 약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돈을 내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재화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 불리는 과잉 소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 개입이나 규제가 필요할 때가 많아요.
G: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재화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군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특히 ‘공공재’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K: 맞습니다. 부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공재이기 때문인데요. 공공재의 주요 예시로는 교통 인프라, 법과 치안 시스템, 공교육 제도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공재는 개인이나 기업이 별도의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공공재를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형 전자상거래 기업은 물류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로와 공항 등의 교통 인프라를 필수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인프라는 정부가 유지하고 관리하는데요. 기업은 이 공공재를 통해 물류 비용을 절감하고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통망이 없었다면 물류 비용은 크게 증가했을테고, 소비자와의 접근성이 떨어지니 경쟁력 또한 낮아졌을 것입니다.
G: 그렇겠네요. 이미 정부가 깔아둔 도로나 교통 인프라 덕분에 기업의 물류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K: 또한 많은 기업들이 법적 시스템을 통해 지적 재산권을 보호받고 있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은 연구 개발의 성과를 특허로 보호받음으로써, 경쟁력 있는 기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기업의 혁신과 기술 보호에 꼭 필요한 안정적인 법과 치안 시스템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공공재입니다.
공교육 제도 또한 넓게 보면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라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기술 혁신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필수적인데요. 한 명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과정에서 공적 재원이 투입된 공교육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G: 공공재 관점에서 보면, 부자가 된 개인이나 기업은 무상으로 제공된 교통 인프라, 법과 치안 시스템, 교육 제도 등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해 왔다고 할 수 있겠군요.
K: 이러한 공공재는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전체를 위해 제공되는 자원이죠. 따라서 부유층이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자신들이 얻은 이익을 다시 사회에 투자하는 것은 공공재 활용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경제적 안정성과 소득 불평등 관점’에서 부의 환원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습니다.
이 때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이 자신들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면, 단기적으로는 자산이 줄어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득의 재분배를 통해 중산층의 소비 능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경제적 불안정성을 줄이고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게 되면, 나중에는 부자들에게 긍정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입장인 것이죠.
2. 반대 입장: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이 사회에 환원할 필요는 없다.
G: 찬성 입장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됐어요. 반대 입장은 어떤 관점에서 살펴보면 될까요?
K: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에게 사회적 환원을 강제하는 것은 자유 시장 경제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개인과 기업이 자신의 노력과 창의성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장려됩니다. 강제적 환원은 경제적인 동기 부여를 약화시키고,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예전에 ‘왜 세금은 소득에 따라 달라질까?’ 아티클에서 살펴본 것처럼, 부자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납부한 세금은 공공재 투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죠.
G: 아하,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에게 사회적 환원을 강제하는 것은 일종의 이중 과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네요.
K: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는 부의 사회적 환원이 도덕적·윤리적 의무로 간주될 수는 있지만, 법적·경제적 의무로 강제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자산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는 다른 세계적인 부자들과 비교했을 때 공개적인 방식을 통한 자선 활동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플을 통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경제 성장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사례는 굳이 개인적인 기부가 아니더라도 기업 활동을 통해 얼마든지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나 기업이 사회에 반드시 환원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살펴봤는데요.
정리해보면 찬성 입장은 (1)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과 (2) 불평등 완화 등을 강조하며 환원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반면, 반대 입장은 (1) 자유 시장 원칙과 이중 과세, (2) 자발적 기부의 중요성 등의 이유로 사회적 환원을 강요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결론적으로, 부의 사회적 환원 문제는 단순히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로 나뉠 수 없는 까다로운 경제적·윤리적 논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Edit 금혜원 Graphic 조수희 이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