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걸그룹이 시청률 1% ‘음방’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by 유성운

얼마전 보이그룹 빅톤 출신 도한세는 팬들과의 소통 플랫폼인 버블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음방(음악 방송) 너무 좋지. 그런데 그거야말로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2세대 선배님들처럼 홍보 효과가 엄청난 것도 아니고 1주 돌면 1,000만 원이 든다. 거기다 컴백하려면 멋있어야 되니까 세트 짓고 이러면 플러스 알파다. 헤어 메이크업비, 스타일링비, 현장 스태프들 식비, 간식비, 음료비 하면 2,000만 원도 든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홍보해야 되니까 하는 거다.”

실제 기획사 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도한세의 지적대로 비용 문제를 힘들어했다. 특히 부담이 되는 것이 무대 의상 비용이라고 했다. “방송국마다 다른 의상을 입어야 해요. MBC에 입고 나간 옷을 SBS에도 입고 가면 PD들이 싫어하거든요.”

한 벌에 수십에서 수백만 원이 드는 의상을 멤버당 4벌씩은 갖춰야 하니, 트와이스처럼 9인조로 활동하는 경우라면 만만히 볼 문제가 아니다. 그에 비해 받는 돈은 팀당 5~20만 원 수준으로, 20년째 고정이다. ‘거마비’라고도 불리는 교통비다.

사실 돈은 정작 큰 문제가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 출연을 망설이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바로 시청률이다. KBS의 간판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의 평균 시청률은 1%를 넘지 못한 지 오래다.

2024년 5월 24일 기준 〈뮤직뱅크〉의 시청률은 0.4%. 소위 애국가 시청률 수준이다. 2세대 걸그룹들이 활동하던 2007~2012년, 시청률이 20~30%를 넘나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그럼에도 이들이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을 끊을 수 없는 이유, 도한세가 “그런데 그렇게라도 홍보해야 되니까 하는 거다”라고 말한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그의 입에 한번 오르기만 하면 뜬다 버핏 효과

신문 경제 기사에 간간이 등장하는 ‘버핏 효과(Buffet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이 투자 대상에 대해 낙관적인 발언을 하거나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식 가치가 급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과거 애플도 버핏 효과로 기사회생한 적이 있다.

“애플 주가는 지난달 중순 이후 19%나 떨어졌다. 아이폰 판매 부진으로 지난 분기 매출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데다 지난달 28일에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이 애플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고 밝히는 등 악재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워런 버핏의 주식 매입이라는 새로운 호재가 등장하면서 애플 주가는 증시 개장 직후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16일(현지시간) 버핏 회장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투자했다는 소식에 전날 대비 3.71% 오르며 93.88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3월 1일 이후 2개월 15일 만에 일일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중앙일보>, 2016년 5월 17일

워런 버핏은 지난 2000년부터 심지어 자신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를 경매에 붙이는 기막힌 짓을 했는데, 이게 또 히트를 쳤다. 경매 낙찰자는 미국 뉴욕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 ‘Smith& Wollensky’에서 버핏과 세 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 자리에는 동반자를 7명까지 데려갈 수 있다.

첫 해 2만 5,000달러로 시작한 이 점심은 매년 가격이 상승하더니 올해는 익명을 요구한 낙찰자가 267만 9,001달러(약 37억 원)를 내고 기회를 잡았다. 버핏은 이 수익금을 모두 홈리스 자선단체 글라이드파운데이션에 전달했는데, 지금까지 기부한 액수가 2,000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한다.

제아무리 물가가 높은 뉴욕이라지만 스테이크 가격은 기껏해야 100~200달러 수준일 테니 이 식사의 가격은 거품이 잔뜩 낀 셈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원래 가격의 수만 배를 지불하면서까지 버핏과 식사하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식사를 통해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중국인 자오단양(趙丹陽)은 211만 달러를 내고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낙찰 받았다. 그는 버핏에게 자신의 슈퍼마켓 체인점 ‘우메이상업’에 대해 조언을 구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이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알려지면서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말 자오단양은 우메이상업의 지분을 매각하고 1,600만 달러 가량의 이득을 얻었다. 버핏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린 것만으로 1,400만 달러(약 193억 원) 차익을 거둔 셈이니 진정한 버핏 효과를 누린 셈이다.

걸그룹들의 버핏,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걸그룹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버핏과 밥 한 끼 먹으려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무대에 오르고 순위에 들어 한번이라도 더 이름이 언급되는 데서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케이블 TV와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의 위력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강력했다. “1위에 오른 다음 날 음반사에서 대금을 회수해 가라는 전화를 받고 갔다가 1만 원이 가득 든 쌀자루를 트렁크에 담고 돌아왔다”라는 무용담이 회자될 정도였다.

물론 그런 무용담은 더이상 먹히지 않지만,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은 여전히 걸그룹들에게 ‘버핏’ 같은 존재다. 가요계 관계자에 따르면 가요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행사 출연료가 3~4배씩 뛴단다.

게다가 요즘에는 해외 팬들도 국내 가요 프로그램을 챙겨 보고, 그 순위를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로 삼으면서 버핏 효과는 더 커지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가요 프로그램 1위와 ‘아는 형님’ 같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가운데 어느 쪽의 버핏 효과가 더 클까?

기획사들은 열이면 열, “가요 프로그램 1위가 훨씬 힘이 세다”고 했다. 한 기획사의 이사는 “지상파에서 1위를 하면 행사비가 10배는 올라요”라며 가요 프로그램이 가진 파워를 수치로 말해주었다.

2021년 3월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SBS ‘인기가요’ 1위에 오른 브레이브걸스는 이후 광고를 스무 편 넘게 찍었다.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라는 영예는 금전적 측면뿐 아니라 가수로서의 ‘존엄’이 더해지면서 이후 롱런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무리 예능에 많이 출연한다고 하더라도 가요 프로그램에서 순위가 좋지 않으면 한계가 있어서 오래 가지 못해요.”

이 역시 브레이브걸스가 증명했다. 브레이브걸스는 2021년에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에서 9차례나 1위에 올랐다. ‘롤린’으로 6차례, ‘치맛바람’으로 3차례였다. 하지만 2022년부터는 다시 1위에 오르지 못했고, 광고도 역시 급감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여러 번 출연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근 무섭게 치고 올라온 걸그룹 QWER도 마찬가지다. QWER은 5월 4일 MBC ‘음악중심’에서 1위 후보에 올랐다. 이들이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 유튜버 김계란이 만든 ‘최애의 아이들’이라는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걸그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QWER은 5월 대학 축제 섭외 1순위 걸그룹으로 떠올랐는데, 그럼에도 구글 트렌드에서 검색량이 최고치에 올랐던 것은 역시 5월 4일, 그러니까 MBC ‘음악중심’에서 1위 후보에 오른 날이다.

가요 프로그램 시청률이 아무리 바닥을 기어도, 걸그룹들이 가요 프로그램 출연으로 파생되는 버핏 효과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Data 바이브컴퍼니 김종민 Edit 정경화 Graphic 조수희 함영범

유성운 에디터 이미지
유성운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1997년 11월, TV에서 본 SES의 I'm your girl 데뷔 무대는 강렬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후 25년간 줄곧 K걸그룹을 좋아했으며, 걸그룹과 경제학의 관계를 데이터로 들여다보는 글을 썼다. 2017년 책 '걸그룹 경제학'을 공저했다.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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