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 소비에 대처하는 법
갖고 싶은 건 꼭 사야 직성이 풀려요
얼마 전 원목 테이블을 샀습니다. 저렴한 테이블을 살 수도 있었지만, 큰 마 음먹고 갖고 싶던 질 좋은 테이블을 선택했습니다. 테이블 덕분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바깥에서 쓰는 소비가 줄어들었어요. 밥도 집에서 해 먹고, 커피도 집에서 내려 마십니다. 이런 건 욕망 소비의 긍정적인 효과가 아닐까요?
필요 소비와 욕망 소비,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필요 소비와 욕망 소비를 잘 구분해서 필요 소비 중심으로 지출계획을 세우고, 욕망 소비나 충동 소비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라고들 많이 이야기합니다. 뭐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되묻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필요 소비와 욕망 소비가 잘 구분 되십니까?”
계절이 바뀌자 당장 출근길에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자켓을 하나를 산다면 이것은 분명 필요 소비겠죠. 그런데 올봄 유행하는 스타일의 자켓을 입고 싶어서라면 이것은 욕망소비가 되는 걸까요? 점심식사는 필요 소비, 그렇다면 식후 커피 한잔은? 아메리카노 정도는 필요 소비, 스페셜티 커피는 욕망 소비로 구분 지어야 할까요?
현대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로 인해 어느 정도의 ‘필요’는 거의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향이나 욕망, 트렌드 등이 붙어서 새로운 ‘필요’를 창출해냅니다. 그래야 계속 소비가 이루어지고 경제도 돌아가게 되니까요. 아울러 우리는 물건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나 원하는 모습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건강을 위해 요가를 배우고, 명상센터에서 마음수련을 하기도 하죠.
이처럼 물건에서부터 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영역이 더욱 확장되면서 돈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기분 좋게, 좀 더 근사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이미 포기하기 어려운 삶의 가치가 되어버려서 마치 의식주와 같은 ‘필요’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필요’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죠.
내 욕망에 노력과 정성을 들입시다
그렇기에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더이상 소비를 필요 소비와 욕망 소비로 구분하고 욕망 소비가 나쁜 것처럼 스스로를 단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보유한 시간과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차근차근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한 현명한 전략이 필요한 거죠.
자전거 일주를 하기 위해 몇백 만 원 하는 MTB를 사고 싶다고 가정해봅시다. MTB를 사는 것이 필요 소비인가 욕망 소비인가를 저울질하기보다, 현재 내가 가진 돈과 버는 돈으로 어떻게 하면 정해진 시간 내에 MTB를 살 수 있는지 전략을 짜는 것이 더 중요하단 얘깁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목표는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습니다. 10만 원씩 모아서 6년 후 할 수 있는 일은, 20만 원씩 모은다면 3년 후로 당겨집니다. 내 욕망에 노력과 정성을 들여주는 것이 스스로를 긍정하는 일입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은 결정들과 그에 따른 성취가 자존감과 정체성이 되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큰 힘이자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가진 돈이 많다면 훨씬 더 빨리 달성할 수 있을 것이고, 가진 돈이 적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쉽게 달성하는 목표보다 어렵게 이뤄낸 성취가 더 큰 자존감을 형성한다면, 모든 것이 단순히 돈의 문제만은 아니란 얘기기도 합니다.
저는 그냥 돈을 더 내고, 보증된 브랜드 상품을 사는 게 속 편한데요. 주변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똑똑한 소비를 못 하는 것 같아 제 자신이 게으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손실은 ‘후회’
가성비가 좋다는 건 가격도 싸고 품질도 좋은 걸 의미하는데, 과연 그런 게 있을까요? 대개는 가격이 싸지면 품질이나 디자인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반대로 품질 좋고 디자인 좋으면 가격이 올라가기 마련이죠. 말씀하신 대로 ‘브랜드’는 신뢰에 기반하여 선택을 보증하는 역할을 하죠. 모든 제품을 다 비교 검토해보고 구매할 수는 없기에 이런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비용이 바로 브랜드 비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더라도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소비를 결정할 수 없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쓴 돈이 아깝지 않을 때, 우리는 소비의 행복을 느낍니다. 반대로 쓴 돈이 아까울 때는, 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오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손실은 ‘후회’가 아닐까요? 돈은 돈대로 썼는데 물건은 물건대로 만족스럽지 못하니 일종의 ‘이중 손해’가 일어나는 셈이니까요.
후회 없는 주체적인 소비결정을 위해 일단, 소비 예산을 정해보세요. 예산을 정하면 선택의 기준이 생기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한 달 옷 구매 예산을 월 20만 원이라고 합시다. 20만 원짜리 옷을 한 벌 살 수도있고, 10만 원짜리 옷을 두 벌 살 수도 있죠. 아니면 1만 원짜리 옷 20벌을 사는 선택지도 생깁니다. 40만 원짜리 옷이 사고 싶다면 2달 동안 다른 옷은 살 수 없는 거고요. 정해진 예산을 기준으로 소비를 결정하다 보면, 자신의 소비 성향이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쌀수록 좋다거나 돈을 적게 쓸수록 좋다고 생각 할 필요는 없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해 스스로 게으르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요. 자신의 소비 기준과 성향에 맞는 소비를 찾아 나가는 것이 최고의 가성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충동적 소비습관,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
소비 예산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그걸 지키는 게 어렵잖아요.
내 소비여력 점검하기
우리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소비를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상사에게 이유 없이 깨진 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 어느 날, 지원했던 회사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은 어느 날…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공허해지고, 내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집니다. 이럴 때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달달한 간식과 커피를 마시거나, 망설이던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죠. 돈이 있으면 임시방편으로라도 편리하고 빠른 위로를 얻을 수 있죠. 물론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요.
공허감을 위로하든, 충동을 표출하든 우리가 택하는 소비 뒤에는 ‘소비 여력’ 이란 것이 있습니다.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어도 우리는 늘 소비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신용카드’죠. 특히, 평정심을 잃고 있을 때 소비를 하게 되면 ‘돈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 사고란 결국 자기 여력 이상으로 돈을 써버리는 일이죠. 그래서 ‘돈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대개 신용카드를 수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동소비를 제어하고 싶다면 백만번의 결심보다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인심 후한 소비여력을 제어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혜택에 눈멀어 만든 신용카드를 정리하고, 주로 쓰는 신용카드 한 두 가지만 남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할부 역시 원칙을 세우는게 중요합니다. 하나의 할부가 끝난 후에, 또 다른 할부를 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워 나도 모르는 사이 할부금이 누적되는 일을 막아야합니다.
스스로 충동소비를 제어할 수 없다면, 가급적 한도가 분명한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죠. 소비여력을 남용해 일단 저지르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경제적 손실에 자존감도 낮아지지만, 지갑에 보유한 돈으로 소비하는 습관을 기르면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이 줄어들 겁니다.
신용카드가 좋다 나쁘다 식의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신용카드가 갖고 있는 ‘충분한 소비여력’이 내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아보세요. 지금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곳에 쓰는 돈은, 나중에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나 사고 싶은 곳에 써야 할 소중한 돈이니까요.
우리의 소비에는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이 이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행복만을 생각하자니 미래가 부실해지고, 미래의 행복을 준비하자니 현재의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결국 자신의 철학대로 적절한 배분율을 결정해야 합니다. 정답이 어딨겠습니까.
현재를 즐기는 욜로 베짱이파는 8:2, 미래를 준비하는 개미파는 6:4,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사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보다 현재의 행복이 훨씬 중요합니다. 지금 행복할 줄 알아야 그 삶이 그렇게 미래로 이어져가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얼마를 모아야겠다는 ‘저축을 위한 저축’보다, 현재 지출의 만족도를 높여나가는 소비습관이 훨씬 중요합니다. 현재를 조금씩 줄여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박탈감’이 아닌 ‘가슴 설레는 기대’가 되어야 하니까요.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이홍유진
– 해당 콘텐츠는 2020. 03. 25. 기준으로 작성되고, 2024년 03월 02일 기준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