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재건(축)해 주세요
ㆍby 이영균
아파트의 창조주 르 코르뷔지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서울을 재건(축)해 달라고. 욕심을 위한 건 아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한 영상을 보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오래전 영국 B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죠. 영상은 우리가 다 아는 건축가의 삶을 다룹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적을 갖고 파리에서 꿈을 펼치다 훗날 세계로 뻗어 나간 르 코르뷔지에, 바로 선생님의 삶입니다. 그냥 위대하다고 하기엔 뭐 할 정도로 위대한 선생님의 궤적을 거의 해부학 수준으로 다루는 덕에 저는 영상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앗, 잠시만요. 마침 마르세유에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이 나오네요. 선생님이 만든 현대식 아파트의 모태요. 맙소사, 어쩜 저렇게 유려한 색감을 쓰셨어요? 황금비를 적용한 모듈러 시스템은 또 어떻고요. 독창적인 동시에 복합적이며 기술인 동시에 예술입니다. 아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술혼으로 가득한 선생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 편지의 전개가 어딘가 이상해진다면 그건 모두 선생님과 BBC 탓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사실 이 편지는 꿈 얘기를 하기 위해 씁니다. 정확히는 선생님께서 생전에 꾸신 꿈이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이 말씀 기억하시죠? 선생님은 집도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인간 삶을 편리하게 하는 기계라고 믿으셨습니다. 100여 년 전, 파리 한복판에 고층 아파트촌을 지으려 한 ‘부아쟁 계획’을 내놓으면서도 이 말씀을 하셨죠. 이 고층 아파트 아파트를 통해 선생님은 지하층에 사는 하층민 300만여 명에게 햇빛을 공급하려 했고요. 짐작하셨지만 이 계획은 망했습니다. 선생님 사후에도 평가가 나빴어요. 부르주아 계급들이 싫어했거든요. 그들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대단지 공동주택을 천박하다고 했습니다. 합리성으로 무장한 모더니즘 건축을 이해 못 했죠.
하지만 언짢아하지 마세요. 선생님 꿈을 반세기 만에 이룬 나라가 있으니까요. 어디냐고요? 한국입니다. 1964년 6층 10개 동으로 지은 마포아파트가 시작이었죠. 박정희 대통령은 선생님이 창조한 현대식 아파트를 보급해 근대화를 이루려 했습니다. 이 아파트 준공식에서 “혁명 한국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며 기대감을 보였죠. 고무신에 나일론양말을 신고 한 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 한국인에게 이 아파트의 등장은 정말이지 충격의 도가니였습니다.
다만 마포아파트도 시작은 좋지 않았어요. 혁명적인 주거 형태인 탓에 처음 몇 년간은 말도 많았죠. 연탄가스 위험이 있다는 괴소문이 돌아 입주를 꺼린 일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 소장이 모르모트가 돼 아파트에서 며칠 밤을 보내고 멀쩡하다는 걸 증명한 후엔 인기를 끌었습니다. 입주 3년 후 분양가가 3.3㎡(약 1평)당 4만2000원이었는데, 고급 주거 공간으로 인식돼 국내 아파트 역사상 최초로 ‘피’가 붙어 거래되기 시작했죠.
마침 서울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여기저기에 아파트가 생긴 데다 일자리까지 증가해서였죠.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1960년대 중반 서울은 블랙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개천에서 용과 붕어, 개구리, 가재가 되고자 한 이들을 전국에서 빨아들였거든요. 어찌나 인구가 불어났는지 당시 윤치영 서울시장이 국회에서 ‘지방민의 서울 이주 허가제’를 요구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이 바람을 누가 막나요? 1970년대부터 선생님이 염원한 대단지 고층 아파트, 필로티로 1층을 띄운 빌딩, 넓은 아스팔트 도로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뽕밭이던 강남과 서초에도 도로가 깔렸고요. 그에 맞춰 현대자동차가 포니 1세대를 출시한 것도 절묘한 타이밍이었죠. 그러고 보면 훗날 ‘마이카 시대’가 온 것도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이 ‘주거 기계’라고 명명한 아파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죠. 하여간 선생님께서 과거 도시 하나로 주장한 부아쟁 계획을 국가 단위로 실현한 그 시절 한국을 보셨다면 아마 이렇게 한마디 하셨을 겁니다. “아 쎄봉 모더니즘!”
네, 선생님. 압니다, 저도 알아요. 지금 한국의 모습은 선생님이 추구한 주거 철학과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요. 선생님께선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능한 많은 주거 기계를 선물하려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선 인간이 기계입니다. 특히 평범한 사람이 기계처럼 일해도 서울 아파트를 사는 게 쉽지 않죠. 그런데도 모두가 아파트 갖기를 꿈꾸는 탓에 부동산 시장은 8년째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에 지금 서울 아파트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주식처럼 거래되고 있고요.
부동산 시장엔 ‘무릎에서 사 어깨에서 팔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어디가 무릎이고 어디가 어깨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목에서 팔았다고 잔치를 벌인 제 외삼촌은 그게 기린 목인 줄 모르고 심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이젠 정부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뛰었는데 서울에 더는 집 지을 땅도 없습니다. 재건축·재개발이 답이라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내기가 쉽지도 않고요.
아파트값 상승은 직장문화도 바꿨습니다. 과거 성공의 척도는 일을 잘해 승진하고 두루두루 인간관계를 잘 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업무능력과 성품까지 완벽하지만 알고 보니 무주택 부장님’보다 ‘존재감은 없지만 알고 보니 다주택 건물주인 과장님’을 더 높이 쳐주죠. 심지어 제 또래는 이제 ‘건축’이라면 ‘부동산’을 떠올립니다. ‘건축’보다 ‘재건축’이 통용된 탓이겠죠. ‘건축=재산’이라는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게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풍토는 심한 것 같아요. 부동산적 시각으로만 건축과 세상을 바라보는 탓에 당최 사람이 주인공이 되질 못하니까요.
아니, 어쩜 이렇게 도시계획과 주거문화에 관심이 많느냐고요? 부끄럽지만 제 꿈도 건축가였습니다. 렘 콜하스를 보면 이토 토요가 떠오르고, 리차드 마이어와 피터 아이젠만 중 누가 더 훌륭한지를 판단하며 밤을 지새웠죠. 하지만 몇 년 전 이 꿈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과연 ‘건축계의 대가가 될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까’하는 부담감과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건축하는 행위 자체에 기쁨을 느끼면 되지 않는가’하는 자족감 사이의 갈등 때문은 아니었고, 망할 아파트 투자로 큰돈을 벌어 최근 빌딩 투자로 옮겨 탄 동네 친구 녀석이 너무 부러워서였습니다.
지금 제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요? 선생님께서 서울을 재건(축)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라면 시민 대통합을 이뤄내 재건축·재개발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쉽게 풀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로써 낡은 주거를 싹 밀고 서울 전역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겁니다. 이를 통해 집이 부족해 생기는 서울의 주거 문제 해결과 선생님 꿈도 동시에 이루고요. 집은 인간 삶을 편안하게 하는 기계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기술과 합리성으로 밀어붙인 선생님의 그 꿈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제가 구상한 청사진은 어떠세요? 저는 지금 머릿속으로 서울 25개 구 전체를 아우르는 재건축조합장이 된 선생님을 상상합니다. 제가 꿈꾸는 ‘르 코르뷔지에 서울’의 백미는 300층 500개 동으로 이뤄진 초고층 아파트촌입니다. 최첨단 커튼월룩을 적용한 스카이브릿지가 빛을 반사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일 겁니다. 이 아파트촌 전체 면적의 97%는 녹지로 만들 겁니다. 비슷한 돈을 버는 층위만 살 수 있는 지금 서울 아파트 구조도 싹 바꿀 거고요. 대신 선생님이 주창한 아파트의 사회 공공재적 가치는 실현할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선생님은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 기존 재건축아파트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해주셔야 합니다. 제가 가진 서울 변두리의 재건축아파트를 포함해서요. 아마 선생님이라면 궁극의 기술과 합리성을 추구해 모든 이에게 감동을 줄 21세기판 부아쟁 계획을 실현하실 수 있을 겁니다.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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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피처 에디터이자 뉴스레터 부딩 대표. Noblesse, artnow, GEEK 등을 거쳐 현재 부딩에서 밀레니얼을 위한 부동산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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