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를 버리려면 얼마를 내야 할까?
ㆍby 사소한 질문들
현대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버리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는 쓰레기봉투를 사고, 대형 폐기물을 버리기 위해서는 스티커를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돈을 내지 않고 버려온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산화탄소’ 입니다.
1초에 원자폭탄 네 개
18세기 중반, 대영제국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이 석탄이라는 지질학적 예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며 문명의 발전이 가속됐습니다. 수천만 년 동안 퇴적되고 수억 년 동안 화석화된 – 고대 생물의 유해가 품고 있었던 – 엄청난 양의 태양에너지가 산업혁명의 연료로 쓰였고, 그 연소과정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버려졌습니다. 문명은 지금까지 석탄, 석유, 천연가스, 그리고 전 세계의 원시림을 연료 목록에 추가하며 쉼 없이 가속했고, 그렇게 3세기가 지난 2017년 말까지 인류가 버린 이산화탄소의 양은 약 2조 2,000억 톤으로 추산됩니다¹.
쉽게 와 닿지 않는 이 숫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은 그의 저서 「파란하늘 빨간지구²」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증가한 이산화탄소로 인해 1초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네 개의 폭발 에너지, 즉 하루 동안 약 35만 개의 원폭 에너지가 대기에 방출된다.
인류에 의해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일으킴으로써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를 지구 시스템에 더하고 있습니다. 지난 70년 사이 배출량은 7배 가까이 늘어나 2017년 한 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420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고,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은 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약 7억 톤이었습니다³.
산업혁명 이전 280ppm이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제 420ppm에 육박합니다. 행성 전체의 평균기온은 지난 250년간 1°C가 상승했고, 육지는 그보다 가열속도가 빨라 1.5°C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속도는 이미 자연적인 변동에 비해 20~25배 빠른 전례 없는 수준이지만, 지구가열은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으로 지금과 비슷했던 3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지구 평균기온이 지금보다 최대 3.6°C 가까이 높았기 때문이죠⁴. 다시 말해, 대기 중에 추가적인 이산화탄소가 입력되고 그것이 기온 상승이라는 결과로써 출력될 때까지 그사이에는 지연시간이 있고, 일어났지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지구가열이 있습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50ppm이 넘었을 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 조별 과제
국제사회는 이러한 지구가열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위협적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유엔 기후변화협약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을 중심으로 여러 초국가적 약속을 만들어 왔습니다. 결국 지난 2015년에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C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1.5°C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은 파리협정이 전 세계 197개국의 서명과 함께 채택되기도 했죠. 이후 파리협정을 이행하는 데에 있어 더욱 강력한 근거와 동기를 제공한 「지구온난화 1.5°C 특별보고서1」가 2018년 10월에 인천에서 발표됐는데요, 보고서는 1.5°C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류에게 남아있는 탄소예산*과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제안했고, 이를 통해 피할 수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추가적인 위험과 기회비용 등을 광범위하게 분석했습니다.
비록 파리협정에서 기후재앙을 막을 문턱값을 2°C로 상정했지만, 온실가스의 지연된 효과와 기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 사이 양의 되먹임 등으로 인한 예측의 불확실성을 고려했을 때, 전 세계가 2°C 목표에 맞춰 탄소예산을 짜고 움직이더라도 어느 순간 지구가 되돌릴 수 없는 대안적인 평형 상태인 ‘찜통 지구(Hothouse Earth)’로 이행될 수 있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게 기후학자들의 견해입니다⁶. 바로 그런 이유로 1.5°C 특별보고서가 2017년 말 기준으로 남아있던 전 지구적 탄소예산 4,200억 톤을 최대한 늦게 소진하면서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순영(net zero)’이 되는 탄소중립 상태로 최대한 빨리 – 늦어도 2055년까지는 – 이행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던 것이죠.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여러 불확실성으로 인해 보수적으로 제안됐던 이 탄소예산조차 앞에 언급했던 전 세계 국가의 연간 배출량인 420억 톤으로 나눴을 때 고작 10년이면 소진될 아주 적은 양이었고, 그 어떤 국가도 섣불리 이 전례 없는 규모의 전 세계적 조별 과제 앞에서 희생양이 되길 자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인류가 이제까지 배출해온 양을 생각했을 때 잔여 탄소예산 2,949억 톤은 정말 작은 양입니다. 이를 조금 더 와 닿는 숫자로 만들려면, 이 값을 현재 전 세계 인구수로 나누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까, 78.5억 인구에게 공평하게 분배해본다는 관점이죠. 그렇게 계산하면 일 인당 약 38톤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일 인당 씀씀이로는 3년도 채 되지 않아 소진될 양이고, 평균적인 지구 시민의 씀씀이라면 8년 정도 쓸 수 있는 양입니다. 그리고 그게 3년이든 8년이든, 에너지 소비의 85%가 석탄, 석유, 그리고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에 기반하는 사회⁸의 전반적인 체질이 바뀌기에는 정말 빠듯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정부와 기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에 투자하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그 목표치를 상향조정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시장에 더 확실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개인 혹은 기업이 이산화탄소를 1톤씩 배출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면 어떨까요? 사회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게 하는 유인이 될 뿐만 아니라 이렇게 걷어진 세금을 재생에너지 확대나 그 밖의 기후위기 대응에 쓸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논리에서 제안되고 있는 제도가 탄소세*, 탄소국경조정제*, 그리고 배출권거래제*인데요, 아직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협의가 존재하지 않지만, 국가 수준에서는 이미 널리 실행되고 있거나 논의되고 있죠.
전혀 아프지 않은 채찍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에는 완벽하게 실패했는데, 이는 기업에 할당된 배출권이 너무 자비로웠던 나머지 배출량을 줄일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뉴스타파의 2021년 3월 보도⁹에 따르면, 현재까지 배출권 거래제 대상 425개 기업 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지 않았는데 배출권이 남은 기업은 109개에 달합니다. 이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30% 가까이 차지하지만, 이들은 지난 수년간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서도 오히려 남아도는 배출권을 다른 기업에 팔아 수익까지 창출했다는 겁니다.
이는 국내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는 탄소세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지난 3월 12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대표발의한 ‘탄소세법안’과 ‘탄소세의 배당에 관한 법률안’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그 세입을 온 국민에게 탄소세배당으로 균등 분배하는 것¹º”을 골자로 하는데, 이 법안에서 온실가스에 대한 과세는 2021년에 1톤당 4만 원으로 시작해 매년 1만 원씩 인상, 2025년에 8만 원에 도달¹¹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용혜인 의원의 발의안과는 별개로, 정부에게는 이제 곧 유럽연합에서 결정될 – 톤당 약 5만 원 정도로 가시화되고 있는 – 탄소국경세 만큼의 탄소세를 국내에서 거두자고 제안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이 생겼습니다. 외국에 관세로 누출시킬 바에는 세금으로 걷어 사회에 재투자하는 게 낫다는 합의가 쉽게 이뤄질 테니까요.
하지만, 과연 1톤당 5~8만 원 정도의 세금이 확실한 채찍으로 작용하면서 전환의 마중물 될 수 있을까요? 톤당 8만 원을 과세할 시 걷을 수 있는 세금은 연간 56조 원 정도입니다. 이 정도의 자금이면 앞으로 30년 안에 모든 석탄화력발전소, 가스발전소, 그리고 내연기관차를 없애고 노후화된 건물과 사회기반시설을 높은 에너지 효율 기준과 새로운 기후조건에 맞게 리모델링하고 화석연료 ‘0’ 사회로 이행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전혀 아프지 않은 채찍을 멋쩍게 휘두르며 얼마 남지 않은 탄소예산과 시간을 허비하고, 기껏해야 미국과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에 의해 억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당한 뒤 아무 보람도 없이 2°C 이상의 찜통 지구를 맞이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산화탄소에 얼마를 매기는 것이 옳냐’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분명 경제학 관점에서 정답이 있을 만한 질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얼마 정도면 될 거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15년 1월 1일, 흡연율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담배 한 갑의 가격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80% 인상됐습니다. 과연 흡연율은 줄었을까요? 소득 최하위 계층은 12%가 줄었고, 최상위 계층은 3%가 줄었습니다¹⁴. 자, 담뱃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야 최상위 계층까지 100% 금연을 하게 될까요? 마지막까지 담배를 필 수 있는, 마지막까지 탄소를 배출해낼 수 있는 경제력은 이제까지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며 부를 축적한 국가에게 있을 것 같습니다.
나가는 글
갓 태어난 고양이와 2년을 지내게 된다면 그건 고양이의 시간으로 24년이 지나는 것과 같다는 ‘고양이 나이 환산표’를 보고 정말 큰 책임감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구조된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을 임시보호하기 시작한 직후였는데, 환산표에 의하면 제가 이 생명들을 1시간이라도 덜 돌봤을 때 이들의 관점에서는 12시간이 날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동시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왔던, 1시간을 보내면 지구의 시간으로는 7년이 흐르는 거대한 파도가 치는 행성도 떠올렸습니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삶이 마치 이 영화에서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다가 재회한 우주인들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저는 지금도 매번 고양이들을 마주할 때면,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던 이 존재들이 제 인식보다 훨씬 많이 늙어있을 것임을 상기합니다.
뜬금없게 느껴지는 고양이와 영화 이야기로 글을 마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식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기후위기 문제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모님이 태어나신 1960년에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당 탄소발자국*은 0.5톤이었지만, 2021년을 사는 우리의 일 인당 탄소발자국은 12톤에 이릅니다. 저는 단지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1960년 한국에 살았던 한 사람이 일 년에 걸쳐 지구가열에 기여한 같은 양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건 단지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850년 2톤이었던 전 세계 일 인당 탄소발자국은 2020년 5톤까지 증가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지구상 모든 이의 ‘탄소시계’는 과거보다 최소 2.5배, 우리나라의 경우 24배까지 빠르게 흐른다는 말입니다.
몇 배나 가속화된 탄소시계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째깍거립니다. 이미 버려졌고 지금도 버려지고 있는 이산화탄소에 대한 이자가 기후위기라는 이름으로 무섭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파편화된 개인이 텀블러 안에 담아내거나 더 비싼 비행기 삯을 냄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0년 후, 몰려드는 기후난민 앞에서는 더 이상의 숙의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사치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모여서 심각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이런 중요한 일 대신 하라고 뽑은 사람들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dit 송수아 Graphic 이은호, 이홍유진 Writer 노건우 노건우는 학부에서 산림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생태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쇠퇴하던 마을숲을 시민과 함께 재건하는 ‘바이로이트 기후숲’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공동으로 기획하여 독일연방환경청 주최 ‘푸른 나침반’을 수상했다. 동료들과 함께 ‘1.5도클럽’을 꾸려 기후해법을 찾고 있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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