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비행기 기내식에 닭고기만 나오는 이유

러시아 비행기 기내식에 닭고기만 나오는 이유

by 장하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리법이 존재하는 닭고기

불쌍한 닭. 닭을 심각하게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힌두교에서 소를 숭배하듯 닭을 숭배하는 문화도 없고,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 돼지를 금기시하듯 닭을 폄하하는 문화도 없죠. 심지어 정식으로 미움받지조차 못합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특정 육류를 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 닭고기는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닭고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닭이라는 동물 자체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일지 몰라요.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닭이 다양한 방법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맛도 중립적인 데다 조리도 비교적 쉽기 때문일 거예요.

튀김(미국 남부식 프라이드 치킨, 한국식 양념치킨 등), 구이(유럽식 다양한 닭구이 요리, 남아시아의 탄두리 치킨), 삶기(찹쌀과 인삼 뿌리를 넣고 닭을 통째로 삶는 한국식 삼계탕 요리, 유대식 치킨 수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리법이 존재하니까요.

이런 면에서 항공사들이 닭고기를 애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예요. 제한된 공간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음식 취향과 금기 사항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러시아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Aeroflot)는 소련이 붕괴하기 전 이 원칙에 극도로 충실했던 듯합니다.

1980년대 말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내 인도인 친구 하나는 고국을 방문할 때 늘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아에로플로트를 이용했어요.

그 친구에 따르면 거의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창백하고 식어 빠진 닭고기 요리가 유일한 기내 식사였다고 해요. 그런 비행 중 한번은 내 친구가 같은 비행기를 탄 다른 인도인 승객이 자기가 채식주의자라면서 승무원에게 닭고기 말고 다른 식사를 줄 수 없는지 묻는 것을 들었는데요. 승무원은 곧바로 이렇게 쏘아붙였다고 해요.

“안 돼요, 손님, 아에로플로트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요. 사회주의 항공사잖아요. 특별 대우란 건 없습니다.”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건 불공평이다

그 승무원의 반응은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소련의 원칙을 극단까지 몰고 간 것이었어요.

평등과 공평성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동일한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난 후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너무나 각양각색이어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원칙은 금세 문제가 되고 맙니다.

많은 사회에서 주식으로 먹는 빵을 예로 들어 볼까요. 심각한 식량난이 벌어진 상황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하루에 한 번씩 같은 양의 빵을 나누어 주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 빵이 효모를 써서 만든 밀가루 빵이라면 공평하지 않아요. 밀가루 단백질인 글루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복강병을 겪는 사람처럼 그런 빵을 먹지 못할 수도 있고, 유월절 관습을 지키고 있는 유대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유대교인은 유월절 기간에는 발효한 빵을 먹지 않는다

요컨대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일이에요. 아에로플로트 승무원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특별 대우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평함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죠.

흥미롭게도 사회주의와는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극단에 선 사람들, 다시 말해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도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평등과 공평함에 관해서는 사회주의자들 못지않게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발명가, 투자 은행가, 신경과 전문의, 연예인 등은 경제에 막대한 공헌을 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일을 그럭저럭 잘 하는, 심지어 매우 기초적인 일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해요. 때문에 모든 사람에 대한 보수 격차를 매우 좁게 유지해 불평등을 줄이는 건 재난을 부르는 일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각 개인이 자기 능력을 모두 발휘해서 경쟁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록 그것이 어떤 시각에서 볼 때는 지나친 소득 불평등을 낳는다 해도 말이죠.

공헌도에 따라 보상을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이 타당성을 획득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해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다시 말해 ‘기회의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기회의 평등에 더해 결과의 평등이 필요하다

어떤 미래의 사회가(너무 먼 미래는 아니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이루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거기에 더해 모든 사람이 같은 규칙 아래 경쟁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런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회에서마저 불평등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어요.

달리기를 할 때 어떤 사람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거나 다리가 하나밖에 없다면 모두가 출발하는 지점이 같다고 해서 그것을 공평한 경주라고 할 사람은 없겠죠. 경쟁에 참여하는 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경쟁은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비교적 높은 수준의 ‘결과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요. 결과의 평등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것은 시장 규제로 성취할 수도 있어요.

어떤 규제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요. 가령 스위스와 한국은 영세 농민(농산물 수입을 제한하는 방법으로)과 영세 소매업자(대형 소매업체를 규제 하는 방법으로)를 보호함으로써 소득 불평등을 낮추죠.

금융 규제(높은 이윤을 낼 가능성이 있지만 위험 또한 높은 투기성 금융 행위 제한 등)나 노동 시장 규제(적절한 최저 임금제 시행, 병가 수당 인상 등)를 통해서도 불평등도를 낮출 수 있어요.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개인의 필요와 역량은 무시한 채 결과와 기회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이죠. 개인 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균등하기 위해서는 부모 세대가 상당한 정도로 결과의 평등을 누려야 가능한데, 그렇게 되려면 소득을 (하향) 재분배하고,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을 규제해야 해요.

채식주의자에게 닭고기 기내식을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하는 항공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승객들의 여러 가지 취향과 필요를 모두 맞추어 주는 다양한 기내식을 제공하지만 표가 너무 비싸서 극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 또한 원치 않아요.


Edit 이지현 Graphic 조수희

– 해당 콘텐츠는 2023.07.28.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3년 03월 출간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발췌해 토스피드에서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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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임용됐고, 2022년 SOAS 런던대로 옮겼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다. 전세계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비롯해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책 17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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