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문제는 가격
ㆍby 커피팟
미국 환경보호청(이하 EPA)이 지난 4월 12일, 강력한 수준의 탄소배출 규제안 초안을 발표했어요. 한 줄로 요약하면 ‘2032년까지 승용차와 소형 트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마일(약 1.6킬로미터)당 82그램 이하로 제한시킨다’는 내용이에요. 이는 9년 뒤 각 자동차 회사가 판매하는 신차의 67%가 전기차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물론 67%가 이상적 목표라며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있어요.
전기차 보급 목표 67%, 가능할까
EPA가 제시한 승용차, 소형 트럭의 전기차 보급 목표 67%는 상당히 공격적 수치예요. 앞서 바이든 정부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보급 목표를 50%로 제시했었고, 블룸버그NEF는 2030년 미국의 전기차 보급률을 52%으로 예측했거든요. 두 수치와 비교하면 큰 차이죠. 참고로 2022년 기준 미국 내 신차 판매 중 전기차의 비중은 5.8%예요.
백악관 국가 기후 고문인 알리 자이디는 충전소 및 전기차 세금 인센티브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출이 급증하고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무공해 모델을 더 많이 판매하려는 계획을 고려해 기준을 강화했다고 설명했어요. GM, 벤츠, 볼보, 현대차의 제네시스, 도요타의 렉서스는 2030년까지 100% 전기차 전환을 약속했지만, 포드,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BMW, 현대차, 도요타 등은 대부분 50%를 목표로 삼고 있어 전통 제조사들에게 공격적인 목표치를 제시한 셈이에요.
경제성이 가장 중요
파이낸셜타임스가 심도 있게 다룬 미국 소비자들의 기후 태도 설문조사를 보면 미 행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전기차 전환율 달성은 쉽지 않아 보여요. 시카고대학교 에너지 정책 연구소에서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 혜택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전기차로 갈아타는 걸 여전히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을 받더라도 미국인 10명 중 2명만이 다음 차로 전기차를 구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답했어요. 전기차 채택을 꺼리는 이유는 높은 초기 구입 비용과 부족한 인프라 때문이에요.
이 설문조사에 참여한 10명 중 8명 이상이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는 이유로 ‘비싼 가격’을 꼽았고, 부족한 충전소도 문제로 지적했어요. 전기차 구매를 고려한다면 휘발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고, IRA의 세금 감면 혜택은 위 이유들에 비해 중요도가 비교적 낮았어요.
정부는 IRA를 통해 세금을 줄이기도 하지만 탄소세를 매기기도 해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쓰는 거죠. 탄소세도 전기차 전환을 앞당기는 방법이지만 쉽지는 않아요. 조사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 미국인의 38%가 한 달에 오직 1달러를 추가로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어요. 이는 전년 대비 14% 감소한 수치로, 조사 이래 최저 금액이라고 해요.
전기차 보급률이 12.1%로 미국보다 높은 유럽연합(EU)에서도 사실 구매력(PPP)*이 높은 국가들 위주로 전기차를 많이 채택했어요. 신기술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보다는 전기차는 아직 비싸서 대중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 Purchasing Power Parity, 구매력평가 지수를 기반으로 계산한 GDP.
2022년 EU 국가별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보급률 상위 10개국은 노르웨이(86%), 아이슬란드(64%), 스웨덴(47%), 덴마크(35%), 핀란드(32%), 네덜란드(30%), 독일(27%), 스위스(22%), 룩셈부르크(21%), 몰타(20%)예요. 참고로 2022년 기준 전기차 평균 가격은 6만 1,448달러(약 8,000만 원)였어요.
아직 혼란스러운 시장
EPA의 초안은 60일 동안 공공 의견을 모은 뒤 최종 확정되어요. 이 기간 동안 시장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지도 따져봐야 해요.
2032년까지는 9년이 남았지만, 제조사들에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어요. 통상적으로 한 개의 신차 모델은 수명이 6년이라고 해요. 지금의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안정화된 구조와 비용 생산 체계를 갖추고 한 자동차 회사 판매량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모델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딱 한 번의 사이클만 남은 셈이에요. 이를 위해 단기간에 막대한 비용투자를 진행해야 하고요.
테슬라도 전기차로 수익을 내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만큼, 아직 기존 차량 제조사들은 전기차 사업을 수익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일례로 포드는 2022년 전기차 부문에서 21억 달러(약 2조 7,0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올해는 30억 달러(약 3조 9,000억 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안정적인 공급망 필요
불안정한 공급망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자동차 업계는 이제 막 원자재 확보에 나섰는데요. 전 세계 전기차 사용량이 목표대로 증가한다면 이 수요를 받쳐줄 충분한 리튬 등 원자재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에요. 급격히 바뀌는 원자재 가격 또한 불안정한 수급의 원인이고요.
지난 2년 동안 급등하던 리튬 가격은 올해 들어 30% 이상 급락했어요. 코발트와 니켈 등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금속 가격도 동반 하락 중이에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차량 가격이 인하될 수 있지만, 모두 갑작스럽게 가격이 오르고 내렸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높은 변동성은 투자를 지연시키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최근 호주의 광산업체 저보이스 글로벌은 낮은 원자재 가격을 이유로, 미국 아이다호 코발트 프로젝트를 중단했어요. 프로젝트 착수 당시 계획했던 수익성이 나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마리는 있답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소개한 소비자 태도 설문조사 결과를 거꾸로 생각해 볼까요? ‘가격’ 문제를 해결하면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어요.
테슬라는 지난 1월, 전 모델의 판매 가격을 최대 20%가량 내렸어요. 포드도 자사의 대표 전기차종인 마하-E의 가격을 최대 9% 낮추기로 했고요. 두 회사의 대형 배터리 공급 업체인 중국의 CATL은 일부 고객에게 배터리 가격을 할인해 준다는 뉴스도 있었어요. 아직 다른 제조사들이 가격 인하 전략을 쓰고 있지 않지만 가격 인하 전략이 제대로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높은 전기차 판매율 달성을 위해 지금의 가격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거예요.
전기차 전환의 두 번째 장애 요인으로 꼽힌 충전소 부족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에요. 백악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는 현재 약 13만 개의 충전소가 있어요. 그리고 S&P글로벌의 조사에 따르면, 2030년에는 200만 개 이상의 충전소가 필요해요.
미 정부에서는 75억 달러(약 9조 8,000억 원)를 들여 50만 대의 전기차 충전소를 만들 계획이에요. 공적 자금이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지만 민간 영역에서도 전기차 충전 사업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고요. 충전소 부족 문제는 점점 개선될 걸로 보여요. 최근 미국 패스트푸드점 치폴레, 서브웨이, 세븐일레븐, 월마트 등에서도 당사 지점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어요.
전기차 판매 비중 67% 달성. 미 행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선언으로 끝날지 실현가능한 목표로 남을지 예측하려면 정치, 경제 등 여러 방면을 차근히 살필 필요가 있어요. 트럼프 정부가 지난 오바마 정부에서 수립한 100건이 넘는 기후 관련 정책을 원복한 이력을 생각하면, 이번 미 정부의 강력한 환경 규제가 얼마나 오래 힘을 받을지 장담하긴 어려워요. 2024년 미 대선 결과도 미지의 영역이고요. 불투명한 미래는 차치하더라도, 가격 인하 후 테슬라의 자동차 판매 추이와 미 정부의 지체 없는 충전 인프라 사업 투자, 민간 영역의 충전소 사업 진출 계획은 앞으로도 중요한 지표가 될 겁니다.
Writer 캐롤라인 언론사와 스타트업을 거쳐 현재는 전기차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요. 커피팟에서 최신 전기차 트렌드와 그 후방산업인 배터리 비즈니스 이야기를 전합니다.
Edit 손현 Graphic 함영범
본 글은 2023년 4월 18일에 발행된 커피팟 뉴스레터에 기반해 2023년 5월 2일(화) 기준으로 재편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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