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제도의 구조적 모순
ㆍby 채상욱
최근 전세사기와 관련한 뉴스들이 많습니다. 인천, 서울 강서구 등에서 시작한 ‘빌라왕’, ‘건축왕’류로 대표되는 사건과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드라마보다 더 냉혹한 부동산 시장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가 발생한 주택의 유형을 보면, 아파트가 아닌 비(非)아파트*가 대부분입니다. 즉, 단독, 다가구, 다세대, 연립, 오피스텔 등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어요. * 주택 용도별 차이점과 기준(단독, 다가구, 다세대등 구분)은 이 링크에서 확인. 흔히 말하는 빌라는 법령상 다세대주택이거나 연립주택에 해당한다.
대출은 건물 단위로, 계약은 가구 단위로
단독주택 중 다가구주택의 경우는 19세대 이하로 구성된 1개의 건축물을 의미해요. 여러 가구가 사용하는 3층 이하의 주택이지만, 1층이 주차장인 필로티 구조인 경우 4층까지 가능하고요. 다가구주택은 가구별 소유권 등기가 불가능하기에 단독주택에 해당하고, 통상 ‘원룸주택’으로도 불립니다. 임대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므로 모든 가구가 소유주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죠. 이런 주거 유형의 임대차 관련 문제는 대부분 대출은 건물 단위로, 계약은 가구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발생해요.
예시를 들어볼까요. 다가구주택 A의 시세가 40억 원입니다. 19가구로 구성되어 있고요. 소유주가 이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20억 원을 빌리고자 합니다. 은행은 등기부등본에 근저당 24억 원(120%)을 설정해요. 그리고 19세대 모두 순차적으로 임대차계약을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각 호당 전세 1.5억 원으로 계약한다면, 19세대 모두 계약 후 총 28.5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제 부채는 48.5억 원이고 이는 건물 가치 40억 원보다 더 높죠. 자연스럽게 나중에 들어온 임차인들은 해당 건물이 매각되더라도 자신에게 매각대금이 돌아오지 않는 피해를 입을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방어하려면 단독, 다가구 임대차보증금이 등기부등본에 기록돼야 해요. 은행이 근저당을 설정한 것처럼, 각 임차인마다의 임대차계약 금액이 순차적으로 기록되었는지, 등기부등본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후순위 임차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거예요.
소형주택의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서 추진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전세보증보험 상품을 신청하면 선순위 임차보증금의 규모와 순위를 모두 조사해 가입 가능 여부를 체크하거든요. 깡통전세로 우려되는 경우, 상품 가입 자체가 불가능해져요. 따라서 임차보증액에 대한 우선권이 등본에 기록되는 것만으로도 사기 피해 방지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관련 아티클) * 2023년 2월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방지 대책에 따라, 5월 1일부터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90% 이하(종전 100%)인 주택만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조직적인 전세사기 유형
다세대주택(빌라)이나 오피스텔에 나타나는 사기의 유형들은 조직적입니다. 총 100세대로 구성된 공동주택 B를 모두 소유한 건물주의 상황을 가정할게요. 세대당 가격은 3억 원, 건물의 가치는 300억 원입니다.
건물주도 대출이 필요하겠죠? 공동주택 B를 준공하고 각 세대별로 담보를 설정해 대출을 받았습니다. 60% LTV를 적용하여, 세대당 1.8억 원씩 대출을 받았다고 할게요. 그렇다면 부동산 시세 3억 원 대비 1.8억 원의 대출을 이미 실행한 셈이죠. 근저당이 잡힌 각 세대에 임차인들이 전세 2억 원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이때 전세사기 조직은 피해자의 부주의를 노려요.
1) 선순위 차입금을 상환하지 않음 선순위 은행 차입금 1.8억 원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전세 2억 원으로 계약하고 세입자에게 잔금을 받습니다. 하지만 잔금을 받고, 선순위 차입금을 갚지 않는 경우예요. 차입금이 있는 은행과의 협조를 통해 이것이 처리되는 게 아니라, 공인중개사 말만 믿거나, 혹은 임대인 말만 믿는 부주의를 이용하는 수법이에요.
2) 자전거래를 통해 시세 조작 건물주가 자전거래*를 통해 각 세대의 매매가격을 3억 원이 아닌 4억 원으로 높여버리는 경우입니다. 이 수법은 주택가격이 강세로 치솟던 2020~2021년에 더욱 활발하게 사용된 걸로 보여요. 시세가 4억 원으로 조작된 부동산의 근저당 비율이 낮아지게 돼요. 원래 시세였다면 근저당 1.8억 원이 과거에 60%였지만 이제는 45%로 내려온 거죠. 여기에 전세 2억 원을 넣는다 한들 어쨌든 4억 원은 되지 않아요. * 자전거래는 원래 대량으로 주식을 거래할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부동산 거래에서도 쓰여요. 매도자가 높은 실거래가로 허위 계약해 시세를 올린 뒤, 취소하는 걸 뜻하죠. 해지신고를 하지 않으면 신고가격이 그대로인 점을 악용했어요.
매매시세가 4억 원으로 된 경우, HUG 등의 전세보증보험 보증한도*에도 들어와요. 그러니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상태로 후순위 전세도 들어올 수 있겠죠. 나중에 공동주택 B의 시세가 3억 원으로 밝혀지면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하거나, 혹은 가입한 전세보험의 보증기관이 먼저 돌려주고, 해당 임대인에게 소구하게 돼요. * HUG 보증 대상 전세보증금은 수도권 7억 원, 그 외 지역 5억 원 이하.
보증기관인 HUG 집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 보증사고가 발생한 금액이 1조 1,726억 원이 넘고 그중 HUG가 대위변제를 한 금액이 9,241억 원이라고 해요. 또한 올해 4월까지 전세 보증 사고 금액은 1조 830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사고 금액에 맞먹는 피해가 불과 4개월 만에 발생했음을 의미해요.
아파트 전세사기는 상대적으로 덜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기 유형이 있어요.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날, 동시에 담보대출을 실행시켜 금융기관의 대출액을 선순위로 놓고, 임차인의 권리를 +1일차로 두도록 하는 ‘동시진행’의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이는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 개정에 거론되는 단골 사안 중 하나입니다.
하반기로 갈수록 피해는 더 커질 것
다세대주택(빌라)은 앞으로 보증사고가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전세보증보험 제도의 변화와 전세가격 하락이 맞물리기 때문이에요.
2020년부터 비 아파트 주택임대사업자는 임차인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해요. 매매 실거래가 거의 없는 다세대주택의 경우, 전세보증보험에 사용하는 기준 금액은 공시가격의 150%를 100% 인정했어요. 소위 150%-100% 조합으로 전세금의 한도를 인정해 주었죠.
수년째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다세대주택 C를 예시로 계산해 볼게요. 공시가격이 2억 원인 경우, 다세대주택의 전세보증보험 한도액은 3억 원(2억 원×150%×100%)입니다. 해당 주택의 시세가 2.6억 원이면 어떻게 될까요? 이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고 계약한 임차인의 주택은 가입 순간 깡통전세(매매가격이 전세가격보다 낮은 주택)가 되어, 보증금을 되찾지 못할 위험에 놓여요.
지난 2020~2021년 동안 임차료가 급상승한 기간에는 공시가격도 크게 올랐어요. 전세보증금도 계속 높여서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공시가격의 150%를 인정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2022년부터 전세보증제도가 문제가 되자, HUG는 이 한도를 140%-100%로 조정했다가 현재는 140%-90%로 다시 조정했어요. 즉, 공시가격의 126%를 인정하는 거죠. 이제는 공시 가격 2억 원인 다세대주택 C에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경우, 2.52억 원까지만 전세보증이 가능해졌어요.
제도의 변화로 인해 과거 3억 원에 보증보험 가입을 했던 경우는 이제 2.52억 원에 강제로 보증보험 가입을 해야 하고, 이는 곧 4,800만 원의 역전세가 무조건 발생함을 뜻해요.
HUG의 조정(150%→126%)은 현재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어요. 특히 주택임대사업자는 임차인의 보증보험가입이 의무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주택임대사업자가 이 영향에 노출돼요.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역전세 및 보증금 미반환, 나아가 전세사기급에 해당하는 피해도 커질 걸로 보여요.
전세는 정말 저렴할까
전세는 20년치 임차료를 현재 기준으로 계산한 가격으로 앞당겨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개념입니다. 문제는 그런 전세금을 제공하더라도 실제로 20년 거주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이죠. 2년 혹은 2+2년이 전부예요. 우리는 왜 20년치 보증금을 미리 주면서까지 2년 임대차를 선택하는 걸까요? 정말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보증금 한도는 이론적으로 4년치 월세와 비슷한 수준*이 되어야 정상 아닐까요? 우리가 20년 보증금**을 전세로 보증하는 이유는 그 금액을 은행 대출을 통해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 때문입니다. * 가령 월세 200만 원이라면 4년치 보증금 한도는 1억 원. ** 위와 같은 월세 200만 원 조건이라면, 20년치 전세보증금은 4.8억 원.
그러나 이렇게 보증금을 조달하는 게 정말 저렴한지 곰곰이 따져봐야 해요. 조달 금리 수준에서 쌀뿐이지, 피해를 볼 확률, 보증금 미반환에 따른 현금흐름 문제, 월세 세액공제 여부 등까지 모두 고려한다면 결코 싼 게 아닐 수도 있거든요. ‘전세는 싸다’는 달콤함을 퍼뜨리는 사람은 이 시스템에서 이득을 취하는 집단일 가능성이 높아요.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자가 급증하는 요즘, 피해구제와 더불어 피해유형을 구분하고 전세라는 제도가 어떻게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원인을 분석하는 게 중요해요. 또한 이제는 ‘전세는 싸다’는 막연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글 채상욱 (애널리스트, 작가)
유튜브 <채상욱의 부동산 심부름센터(채부심)> 운영자, 국토부 대체투자위원회 위원. 지난 10년간 하나금융투자 건설/부동산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부동산과 관련된 다양한 조사와 분석을 해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2000년대 초 건설업계에 발을 들인 이후 자본시장에서 건설/부동산 기업들과 산업을 분석하는 자료를 발표하며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
Edit 손현 Graphic 함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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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 작가. 유튜브 <채상욱의 부동산 심부름센터(채부심)> 운영자, 국토부 대체투자위원회 위원. 지난 10년간 하나금융투자 건설/부동산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부동산과 관련된 다양한 조사와 분석을 해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2000년대 초 건설업계에 발을 들인 이후 자본시장에서 건설/부동산 기업들과 산업을 분석하는 자료를 발표하며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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