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할까
ㆍby 최광석
대규모 ‘무자본 갭투자’* 전세사기 사건을 계기로 전세 시스템의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시세가 명확하지 않은 빌라, 다세대 주택을 대상으로 시세를 속여 보증금을 가로채는 범죄는 오래전부터 만연해왔지만 그 피해 규모가 요즘처럼 크지는 않았다. 현재는 피해금액이 한 해 1조 원을 넘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임차인 개인의 피해는 물론, 보증금 반환 보증기관의 피해금액도 상당히 커서 천문학적 숫자의 국민 세금이 낭비될 처지다. * 자신의 돈은 들이지 않고 전세보증금으로 매매 대금을 내는 것.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이상한 제도
대한민국 주택 전세 시스템은 이 사고를 계기로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집을 빌리는 임차인 입장에서, 집값에 육박하는 거액의 보증금을 지급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시세 파악이 정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을 임차인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다.
집을 빌려주는 임대인 입장에서도 이 제도는 비상식적이다. 집값보다 더 낮은 보증금만 받고 집을 빌려주는 일은 비상식적이다. 예를 들어, 1억 원에 산 집을 8,000만 원에 임대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임대인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경제원리에 전혀 맞지 않다.
세계적으로 드문 전세 제도가 유독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건 무슨 까닭일까. 이는 매우 적은 자기 자본만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 때문이다. 즉, 갭투자를 통한 재산 증식이 가능한 구조였다. 집값보다 적은 보증금을 받고 임대하는 손해는 ‘집값상승’이라는 이익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런 구조가 수십 년간 지속되다 보니 ‘전세’라는 레버리지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수단으로 잘못 활용되었고, 엄청난 집값 거품이 발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23년 3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주택 전세보증금 규모는 1,058.3조 원으로 최근 5년 만에 37.3%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공식적인 가계부채 약 1,900조 원과 합산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156%를 넘어 OECD 31개국 중 가장 높다. 이런 과도한 부채는 집값이 하락할 경우 가계와 국가경제 악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이 점에 대한 근본 인식이 부족했다. 서민의 주거안정을 돕겠다는 목적으로 전세보증금 대출을 쉽게 했다. 심지어 주택담보대출보다 훨씬 쉽도록 했고, 보증금 대출에 대한 정부 공기관의 보증 역시 대폭 완화했다. 주거 복지가 명분이지만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전세 제도 비중은 축소되기는커녕 더 늘어났고 전세사기 범죄의 쉬운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더 심각한 사실은, 이런 이유로 인해 발생한 천문학적인 보증금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당국의 인식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2월 2일에 발표된 전세사기 정부대책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세사기를 막겠다는 대책 중 하나로, 보증보험 가입대상을 기존 집값 100%에서 10% 낮춰 집값 90%까지만으로 제한하겠다고 하지만, 집값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집값을 속이고 뻥튀기하는 수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따라서, 이런 안일한 대책만으로는 전세사기를 근절할 수 없다.
임대차시장에서 전세비중은 대폭 낮추어져야 한다는 정책의 대전제 아래 전세사기를 대폭 근절하려면, 보증보험 가입대상은 집값의 70% 이하로 대폭 줄여야 한다. 그로 인해 서비스받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지만, 개인과 우리 사회에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서다. 월세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설득과 이해를 통해 전세비중을 대폭 줄이는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 발표 과정에서 보인 정부당국자의 태도는 보증가입대상이 줄어드는 불편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데 머물고 있었다. 전세 제도의 위험성과 축소 필요성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어 미흡한 대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를 일벌백계하는 소위 ‘원스트라이크 아웃’ 역시, 전세사기에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지극히 평범한 대책일 뿐이다. 임대차 시장의 주류가 월세 아닌 전세라면, 보증금을 노리는 전세사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막대한 범죄 수익 앞에서는 전문가라도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강력한 처벌은 이미 범죄가 벌어진 후에 작동하므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안심전세앱’을 통해 주변 시세를 파악하는 대책에도 한계는 있다. 거래가 많지 않은 빌라, 다세대의 경우 10~20% 정도의 시세는 얼마든지 조작가능하다는 점에서 미흡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앱을 통해 마치 정확한 시세파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줄 수 있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보증금 반환을 보장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
전세 제도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 즉 안전한 보증금 반환을 보장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보증금 반환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대항력, 우선변제권을 위해서는 ‘전입신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효력 발생 시점이 전입신고 ‘다음날 0시’라는 점이 문제다. 잔금을 지급하고 이사 당일에 아무리 빨리 전입신고를 해도, 당일 설정된 저당권보다 후순위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아래의 주민등록법 제1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래 주민등록(전입신고)은 인구 동태를 파악한다는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 제정 당시, 세입자 보증금 보호를 편리하고 저렴하게 하는 수단으로 ‘주민등록’ 요건을 도입했다. 따라서 보증금 확보기능으로는 법적으로 불완전하다.
임대차보호법 제정 이전에는 보증금 확보 수단으로 전세권이나 저당권 같은 물권이 이용됐다. 임대차목적물인 부동산등기부에 ‘접수번호’로 표시되어 등기부상 권리의 순위를 명백히 할 수 있어, 적어도 안전이라는 면에서는 제도적 문제가 없었다.
반면, 주민등록은 등기부에 표시되는 권리는 아니다. 등기부에 기재되는 다른 권리와의 혼동을 방지하고, 거래질서 안정을 위해 주민등록한 다음날 0시를 임대차 대항력(우선변제권) 발생시점으로 정했기 때문에, 세입자 보호에 근본적 한계가 노출된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노력을 해왔지만, 같은 날 이루어진 저당권과 전입신고 시점의 선후를 따져 권리 순위를 정하는 현행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구멍 난 기본 구조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제도 자체에 허점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임대인 선의에만 의존한 채, 전재산에 맞먹는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는 무모한 거래를 해왔던 셈이다.
모든 피해는 결국 개인에게 돌아간다
지난 3월에는 국토교통부, 5대 시중은행, 한국부동산원이 전세사기를 방지하기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주 내용은 오는 7월부터 이들 은행이 대출 대상 담보주택의 확정일자와 보증금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실행하게 하여,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대출받는 일을 막을 수 있도록 보완조치를 시도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개선책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확인 시스템을 모든 금융회사나 대부업체 등으로 전면 개방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작정하고 저지르는 임대인 부당행위를 원천차단하기에는 역시 어려움이 따른다.
결국 현행법에서는 전입신고, 확정일자에 의존하지 않고, 임대차보호법 제정 이전으로 돌아가 저당권 또는 전세권 설정이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임대인의 부당행위를 염려해, 적지 않은 설정비용을 들이는 방법이라 적극 권유하기가 쉽지 않다.
거액의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법률 검토 비용, 보증금 반환 보증 보험료 등까지 감안하면, 지금의 전세 제도는 결코 저렴하다고도 볼 수 없다. 제도 자체의 위험과 비용을 감안하면 비록 반전세 또는 월세 계약이 당장은 더 부담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훨씬 정상적이고 안전하다.
이런 연장선에서,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이 말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을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이 있는 집주인을 돕는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대출을 확대하자는 의견인데, 임기응변식으로 쉽게 대출하면 전세가 계속 유지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6월 1일 제정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보호대상자에 대한 판단이 애매할 수밖에 없어 앞으로도 시행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염려된다.
전세 제도는 하루빨리 대폭 축소, 폐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임대차 시장에서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보증금 사고를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하고, 서민의 주거안정이라는 이유로 전세금 대출까지 쉽게 해 주면서 말이다. 전세 제도가 주택 갭투기의 주요 수단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전세보증금 대출제도는 역으로 대폭 축소하고, 서민 주거안정은 저렴한 월세 임대주택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글 최광석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 부동산 법률 분쟁의 지혜로운 해결을 돕고 싶어, 25년간 부동산 전문 변호사의 외길을 걷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한국전력공사,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한국피자헛, 트라움하우스 등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했고, 민사 문제 특히 부동산 소송이 전문이다.
Edit 손현 Graphic 함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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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전문 변호사. 부동산 법률 분쟁의 지혜로운 해결을 돕고 싶어, 25년간 부동산 전문 변호사의 외길을 걷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한국전력공사,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한국피자헛, 트라움하우스 등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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