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 무역은 항상 적자일까?
ㆍby 김경곤
에디터 G (이하 G): 최근 뉴스를 보니, 반도체 업황 부진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고 하네요.
박사 K (이하 K): 네, 아래 그래프처럼 줄곧 흑자를 보이던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2021년 말부터 적자로 돌아섰고, 그 때 이후로 무역적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지속되고 있는 무역적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나라가 기록하고 있는 15개월 연속 무역적자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나라가 있습니다. 무려 몇 십년에 걸쳐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혹시 어딘지 아시겠어요?
G: 글쎄요…. 미국? 중국? 영국? 어디인가요?
K: 바로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입니다. 아래 그래프의 1992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의 미국 무역수지 데이터를 보면, 기간 내내 계속 마이너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무역수지가 이렇게 마이너스라는 것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다는 의미이고요.
G: 도대체 무슨 이유로 미국의 무역수지는 이렇게 계속 적자일까요?
K: 거시경제 관점에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래의 ‘국민소득 항등식’을 이용해 보도록 할게요. (지난 시즌의 경제변동이 뭐지? 라는 글에서 별표를 열 개 정도 그리고 싶다고 말했던 바로 그 식입니다.)
이 식의 가장 끝에 오늘의 주인공인 ‘순수출’이 있는데요. 순수출은 아래와 같이 계산됩니다.
이 식에 따르면, 수출이 수입보다 클 때 순수출은 0보다 큰 값이 되는데요. 이렇게 순수출이 플러스 값을 갖는 경우가 바로 ‘무역흑자’입니다. 반대로 수출이 수입보다 작으면 순수출은 0보다 작아서 마이너스가 되겠죠. 순수출이 마이너스 값이 되는 경우가 바로?
G: ‘무역적자’겠군요!
K: 맞아요. 여기까지 잘 이해되시죠? 이제 국민소득 항등식을 살짝 바꿔 볼게요. 아래와 같이, 국민소득 항등식의 양변에서 각각 소비, 투자, 정부지출을 빼줄거에요.
이렇게 하면 우변에 있던 소비, 투자, 정부지출이 사라지고 ‘순수출'만 남게 됩니다.
이 식을 순수출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지고요.
자, 여기서 편의상 파란색으로 표시한 소비, 투자, 정부지출을 묶어서 ‘지출 3형제’라고 부르기로 하죠. 이제 우변에 있는 생산과 지출 3형제의 크기를 서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생산이 지출 3형제보다 큰 경우를 생각해 볼게요.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 생산한 총 생산량이 100인데, 지출 3형제의 양은 80인 상황입니다. 이 경우 100과 80의 차이인 20만큼이 순수출 양으로 남겠죠? 이렇게 남은 20은 어떻게 할까요?
G: 다른 나라로 수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K: 그렇죠. 국내에서 생산한 것 중 쓰고 남은 것들은 다른 나라로 수출을 할 수 있어요. 이 숫자를 위의 식에 대입해 보면 다음과 같아지는데요. 이처럼 국내 생산량이 총 지출보다 크면, 여유분을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순수출이 0보다 커져서 ‘무역흑자국’이 되는 겁니다.
G: 그렇군요. 반대로 생산량이 여유롭지 않은 경우도 생각해봐야겠어요.
K: 좋습니다. 이번에는 생산이 지출 3형제보다 작은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어떤 나라의 총 생산량은 100인데, 지출 3형제의 양은 120이라 한다면? 20 만큼 모자라겠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G: 부족하니까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와야 할 것 같아요!
K: 맞습니다. 모자라는 20 만큼을 다른 나라로부터 공수해와야 해요. 이 숫자도 식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데요. 국내 생산량이 총 지출보다 작기 때문에, 모자라는 양 만큼을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하게 되고, 그 결과 순수출이 0보다 작아져서 ‘무역적자국’이 되는 것입니다.
G: 정리하면 그 나라의 총 생산량이 총 지출보다 많으면 무역흑자국, 총 생산량이 총 지출보다 적으면 무역적자국이 되는거군요.
K: 좋아요. 잘 따라오셨습니다. 자, 이제 하이라이트예요. 거시경제에서는 한 나라의 소득에서 ‘소비’와 ‘정부지출’을 하고 남은 부분을 ‘총저축(national saving)’이라 정의하는데요.
GDP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의 소득은 그 나라의 생산량과 똑같습니다. 한 나라에서 생산된 것들이 국내 시장에서 소비될 경우,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그대로 소득이 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빵돌이씨가 10만 원 치의 빵을 만들면 국내총생산은 10만 원 만큼 증가할 것입니다. 이 때, 이 베이커리의 단골 고객인 빵순이씨가 이 빵을 전부 구입하게 되면 빵돌이씨의 소득은 10만 원이 되는데요. 생산 관점에서 본 10만 원이나, 소득 관점에서 본 10만 원이나 동일한 10만 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거시경제에서는 한 국가의 생산량은 곧 그 나라 사람들의 소득의 합과 같다고 가정한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우리는 기존의 순수출 식에 있는 ‘생산’의 자리에 ‘소득’을 대신 넣어줄 수 있어요. 자, 앞에서 알아봤던 총 저축을 나타내는 식이 보이죠? 이번엔 ‘소득 - (소비 +정부지출)’ 자리에 ‘총저축'을 대신 넣어줍시다.
G: 오, 순수출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식이 등장했네요.
K: 맞아요. 이제 우리는 이 식을 바탕으로 ’총저축’과 ‘투자’의 차이를 통해서도 순수출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G: 앞에서는 순수출을 설명하는 식을 ‘생산’과 ‘지출'을 가지고 살펴봤는데, 새로 등장한 식은 ‘총저축'과 ‘투자’를 가지고 살펴봐야 하네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K: 예를 들어볼게요. 만약, 어떤 나라의 총저축이 100인데, 투자는 80이라 해보죠. 이 경우 총저축 중 20은 투자에 사용되지 못하고 그냥 남아 있겠죠? 이렇게 남아있는 20을 어떻게 할까요?
G: 아까 남은 생산량을 다른 나라에 수출했으니… 남은 저축은 다른 나라에 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K: 맞습니다. 다른 나라에 빌려줄 수 있어요. 이 상황을 식에 넣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식에 따르면 ‘한 나라의 총저축이 투자보다 커서 남는 돈을 외국에 빌려주는 것’과 ‘무역흑자’는 같은 의미가 돼요. 즉, 수출이 수입보다 커서 무역흑자가 된다는 것은 남는 돈을 다른 나라에게 빌려주는 채권자(lender)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거죠!
G: 그렇겠군요. 아까도 반대 경우를 살펴봤으니 이번에도 반대 경우를 보면 될까요?
K: 좋습니다. 만약, 어떤 나라의 총저축이 100인데 투자는 120이라고 한다면, 투자를 위해 20의 돈이 더 필요하겠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G: 다른 나라로부터 20을 빌려와야 해요.
K: 맞아요. 이 상황을 앞과 동일하게 순수출 식에 넣어볼게요. 어떤가요? 이번엔 순수출이 마이너스가 됐죠? 이를 통해 ‘무역적자’는 모자라는 돈을 다른 나라로부터 빌려오는 채무자(borrower)가 된다는 의미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G: 식이 많아 조금 어렵긴 했지만… 무역 수지는 채권자와 채무자 중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와도 연결된다는 사실이 핵심이겠군요.
K: 그렇죠. 무역수지는 단순히 상품이 국경을 넘어서 오고 가는 것 뿐만 아니라, 자본의 이동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 이제 이 사실을 바탕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먼저, 생산과 지출 3형제(소비, 투자, 정부지출)의 비교를 통해 순수출을 계산했던 공식을 이용하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고 있음을 의미해요.
그리고 총저축과 투자의 비교를 통해 순수출을 계산했던 식을 이용하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미국이 국내 저축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기 때문에 부족한 돈을 다른 나라로부터 빌려오는 채무자라는 것을 의미하고요.
이 두 가지를 종합해보면 무엇을 알 수 있죠?
G: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실제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해왔고, 이를 위해 다른 나라로부터 계속 돈을 빌려왔다는 것이겠군요.
K: 네. 맞습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해왔고 계속 돈을 빌려왔어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힌트는 <에브리데이 경제학>의 1화에 있는데요. 바로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G: 와… 기축통화 지위의 힘이 정말 크군요.
K: 현재 세계 경제는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는 언제나 달러에 대한 수요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은 늘 인기 상품이 되는 것이죠.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 지위를 이용하여, 미국은 지금까지 낮은 이자율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싸게 빌린 돈으로 미국은 외국에서 상품을 수입해서 자국에서 생산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지출을 할 수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국가들은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죠. 미국이 수입을 많이 해주면 해줄수록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그만큼 미국 달러도 전세계적으로 더 많이 유통될 수 있고요. 이른바 미국은 ‘글로벌 경제의 최종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G: 그런데… 만약 미국이 갑자기 무역적자를 없애고 무역흑자국으로 변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K: 좋은 가정이에요. 지금까지 다른 나라들이 생산한 상품들을 사주는 역할을 해주던 ‘큰 손’이 사라지는 건데요. 미국에 상품을 팔아왔던 국가들의 수출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들의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글로벌 경제도 이전만큼 활기를 띄지 못할 거예요. 미국의 무역적자는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짊어져야 할 ‘왕관의 무게’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늘은 기축통화가 제공하는 “엄청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무역적자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앞으로도 미국의 무역적자가 과거처럼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좋을 것 같네요.
Edit 금혜원 Graphic 함영범
해당 콘텐츠는 2023.6.29.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