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줄이면 삶이 평온해질까?
ㆍby 주소은
마음이 평안해야 덜 쓰고, 덜 쓰면 한 줌 더 평온해지는 삶에 관하여
휴가와 이사가 동시에 다가오면서 지갑에 구멍이 났습니다. 돈을 쓰는 감각이 무뎌져 카드 내역서를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소비의 바다에서 성난 파도만 만나는 것 같은 이 시기에, 카드 한도 초과 위기를 넘기고 꾸준히 소비 단식을 실천한 뒤 ⟪소비단식 일기⟫를 펴낸 서박하 작가를 만났습니다. 사실 ‘꾸준히'라고 하기에는 소비의 바다에 휩쓸린 방황 썰을 아주 많이 들어버렸지만요. 코인 투자가 잘 돼서 소비 단식 멈췄다가 큰일 났던 대목에서는 웃어도 되는지 잠시 작가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고, 조금씩 변했다는 점이에요. 그는 ‘내가 왜 자꾸 과한 수준까지 소비하는지’ 마음을 살폈고, 이전보다 덜 쓰는 습관도 몸에 익혔고, 그러자 자본주의와의 거리감을 느끼며 삶이 한없이 가벼워졌다고 말합니다. 당장 오늘부터 안 쓰기만 하면 되는 소비 단식이야말로 아무것도 공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해볼 수 있는 가장 쉬운 재테크라고도요.
소비 단식의 끝은 결국 예산 내에서 적절히 쓰는 생활 리듬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렇게 아낀 돈을 저축하며 투자나 노후 대비 등 원하는 인생 목표를 이뤄가는 것이기에, 여전히 스스로 작은 미션들을 주고 매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서박하 작가의 소비 단식 여정과 팁을 소개합니다.
‘소비 단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소비를 끊어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돈을 하나도 쓰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와는 다를 것 같은데, 소비 단식이란 무엇인가요?
원래 소비 단식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음식과 옷, 난방비 이외에는 일절 돈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해요. 제가 실천해보면서 정의한 소비 단식은 “(반드시 생명 유지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제외하고는 소비하지 않는 것”이에요.
소비 단식을 시작한 계기는 ‘카드값 500만 원 임박'이었다고요? 그때의 상황과 심정이 궁금합니다.
겨울이었어요. 오랫동안 하던 공부가 끝나고 허무함이 몰려왔고, 그 바람에 쇼핑을 엄청 많이 했어요. 나를 위한 선물을 하고 싶었거든요. 명품 같은 걸 크게 지른 건 아니고 컬리에서 좋은 식재료 시키고, 지나가다 예쁜 소품 사고, 인스타그램 광고에 뜬 옷 사고… 그 정도였죠.
어느 날 휴대폰으로 또 뭔가 보다가 할부로 결제를 했는데 갑자기 메시지가 온 거예요. 한도 90%를 썼다고, 한도 상향하겠냐고요. 육성으로 “미쳤어 미쳤어" 했어요. 카드앱을 열어서 내역을 봤는데 다 제가 쓴 거였죠.
한도 임박은 처음이었나요?
그전에도 있었어요. 기분에 따라 소비 수준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편이에요. 신혼 초에는 살림 장만이라는 명분으로 마구 쇼핑하다가 리볼빙까지 갔었고, 그 충격으로 소비를 줄였다가 우울함에 빠지는 시기가 왔을 때 또 막 지르기도 했어요.
소비 단식을 시작할 때 어떤 걸 준비했나요.
준비할 것은 없어요. 딱 내일부터 시작하면 돼요. 결심했을 때 바로 시작하지 않고 ‘다음 주부터, 다음 달부터'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았어요. 바로 시작한 것은 ‘자잘한 소비 끊고, 꼭 필요한 것만 사기', 그리고 ‘매일 돈 쓰는 곳 기록하기'였어요.
돈 쓰는 곳을 기록해두면 내가 어디에 돈을 많이 쓰는지 딱 보이거든요. 기록 없이 짐작하는 것과는 달라요. 그중에 꼭 필요한 것은 뭐였는지, 그냥 사고 싶어서 산 건 뭐였는지 구분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 무작정 소비 끊는다가 아니라 옷이면 옷, 식재료면 식재료 등 줄여야 하는 분야가 눈에 보여요.
솔직히 소비를 줄이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얼마나 쓰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라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대부분 귀찮기도 하고 가책을 느끼고 싶지 않으니 소비 내역 꼼꼼히 보고 분석하는 걸 회피하게 되는데, 그 일을 어떻게 해내셨나요?
저는 소비 단식에 관한 일지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숙제처럼 마주한 것도 있었어요. 소비 단식에 대해 영감받은 애나 뉴얼 존스의 ⟪나는 빚을 다 갚았다⟫에서도 어딘가에 기록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방법을 추천하더라고요.
하지만 몇 달 치 카드명세서를 펼쳐보고 분석하는 일은 진짜 하기 싫고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딱 오늘부터 써보기'를 추천해요. 굳이 뭘 줄이려고 하지 않고 오늘 하루 어디에 얼마 썼는지 쓰기만 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한 달 정도 쓰다 보면 소비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요. 어제를 돌아보는 일은 실천하기가 너무 힘들지만 결심한 순간부터 기록은 조금 더 쉬워요.
소비 단식 4년 차인 저도 여전히 풀어지는 때가 오거든요. 다시 조일 때마다 같은 방법을 쓰고 있어요. 소비 기록을 보면서 “뭘 이렇게 많이 썼지? 올리브영 왜 이렇게 많이 갔지?” 이것만 해도 소비가 줄어들어요. 안 사도 되겠네, 지금도 충분하다 하면서요.
시작하고 난 뒤 특별히 힘들었던 점과 의외로 쉬웠던 것이 있다면요?
쉬웠던 건 없어요! 돈 안 쓰는 것 자체가 그냥 다 힘들었어요.(웃음) 편의점, 다이소, 쿠팡, 올리브영에서 소소하게 자주 하던 소비를 못하게 되니까 인생에 낙이 없더라고요. 아이 재우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쿠팡 보면서 뭐 하나씩 사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그러면서 점점 체감된 것은 제가 소비를 꼭 필요해서보다도 습관처럼, 혹은 게임처럼 재미로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줄이기가 더 힘든 거죠. 3천 원짜리도 필요치 않으면 안 사야 하고, 30만 원짜리도 진짜 꼭 필요하면 사는 건데, 물건 사는 기준을 바꿔가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그걸 참으면서 무작정 안 쓰다가 ‘소비 요요'가 왔어요. 한 달 만에요! 다시 쓸데없는 걸 엄청 사들였죠. “짧은 인생 재밌게 살아야지!” 하면서요.
언제쯤 이 정도는 할 만하다 싶은 시기가 왔는지 궁금해요.
소비 요요가 왔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난 뒤 3개월쯤 흘렀을까? 그때부터는 습관이 잡혔어요. 집에 2개 이상 있는 것은 할인한다고 미리 쟁이지 않고, 체크카드 위주로 사용하고,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쇼핑몰 안 보고, 책 보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빌리고, 음료는 미리 텀블러에 싸다니고요.
그렇게 소비 단식 시행착오가 끝나고 지금껏 쭉 이어져 온 건가요?
그럴 리가요. 언젠가 이 간소한 삶이 완전히 체화되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지만, 다이어트도 유지가 힘들다고 하는 것처럼 소비 생활도 평생 마음 다스리며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진짜 위기였다" 했던 순간이 있나요.
두 가지가 기억 나는데요, 하나는 엄청 사소한 거예요. 어느 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탄산수가 너무 마시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편의점 앞에 한참 서 있었어요. ‘큰돈도 아닌데 그냥 사마실까’ 하는 마음과 ‘참고 친구 만나러 가서 밥집에서 물 마시면 되잖아’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면서요. 그때는 작은 예외를 두면 또 결심이 깨진다 싶어 참았어요. 그래놓고 나중에 큰 사고를 쳤지만요…
사고요?
네, 두 번째는 코인 투자거든요. 소비 단식을 하던 중에 암호화폐 관련 회사에 입사하게 됐고, 업무상 알아야 하니까 코인을 사봤는데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었었어요.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되냐면, 영끌해서 코인 사고 주식 사고 그렇게 돼요. “코인으로 돈을 많이 벌면 되지 무슨 소비 단식이야!?” 하면서요.
모두가 알다시피 코인도 주식도 떨어지는 시기가 왔고, 매일 다시 오르지 않을까 희망을 걸면서 엄청나게 마이너스로 가기 전에 정리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정신 차리고 돈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야 했죠.
정신 차린 뒤 “이것만은 지키자"는 게 있다면요?
할부를 안 하는 거예요. 무이자 할부가 엄청난 유혹이거든요. 그런데 할부로 물건을 사기 시작하면 돈에 대한 감각이 이상해져요. 총액은 똑같은데 12개월로 나눈 숫자만 따지게 되기도 하고… 지금은 신용카드를 쓰더라도 할부만은 안 하고 있어요. 대부분 체크카드를 쓰고요.
돈을 쓰는 건 참 쉽고 즐거운데, 어느 정도가 나에게 적절한 만족감을 주는 소비 수준인지 알기 어려운 거 같아요. 소비 단식을 하고 나면 어떤 것들을 얻게 되나요?
나와 돈의 관계를 알게 되고, 내가 하는 소비가 어디서 오는 건지 알게 돼요. 롱패딩 있어도 숏패딩 사야 할 거 같고, 인스타그램 광고에 뜬 마스크팩 있어야 얼굴이 촉촉할 거 같은 것처럼 주입식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진짜 원했다기보다 그때그때 그리 중요하지 않은 외부 자극에서 영향받았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사람들 시선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그럴 때 안 써도 될 돈을 쓰더라고요. 대학원 친구들과의 약속이 생각나는데, 대학원에서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늘 똑같은 옷에 밤 늦게까지 같이 공부했으니까 다들 편한 옷차림으로 만나거든요? 그런데 저 혼자 항상 옷을 새로 사서 입고 나가곤 했어요. 친구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격려해주는데 저는 저를 그렇게 꾸미고 싶어 한 거죠. 이런 마음을 인지하는 게 돈과 소비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줬고, 예산 안에서 내가 선택하는 소비를 하는 쪽으로 변하는 만족감이 컸어요.
우리는 왜 자꾸 이렇게까지 돈을 쓸까요?
‘홧김비용' 같은 말이 있는 것처럼 소비는 심리적인 문제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요. 소비중독도 결국 정신건강이랑 이어지잖아요. 소비는 곧 사소한 성취이기 때문에 물건을 사서 받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기쁨을 끊어내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요.
소비를 줄여나간 기록을 담은 책 ⟪소비단식 일기⟫에서 “소비를 끊었다. 삶이 가벼워졌다"는 말이 참 좋았어요.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가벼움이 느껴지는 것인가요?
소비를 줄인다고 갑자기 부자가 되지는 않지만, 하루에 몇백 원, 몇천 원 아낀 것들이 쌓이다 보니 6개월 뒤에는 카드값이 50만 원 아래로 내려왔어요.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10분의 1로 줄어든 거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금하는 금액이 늘어요. 예전보다 돈이 남으니까요.
가벼워진 카드값보다 더 날아갈 듯 가벼운 것은 ‘자본주의와의 거리감'이에요. ‘와 나 이만큼만 쓰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네? 돈 많이 버는 것에만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되겠네?’ 싶은 희열이 찾아와요. 한 달에 쓰는 생활비가 줄어들면 얼마쯤 더 일찍부터 일을 안 해도 되는지, 잔고로 몇 살까지 먹고살 수 있는지도 계산해보게 되거든요. 그러면 조금씩 경제적 자유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없어도 되는 게 많고, 삶의 비용이 줄어들수록 선택지는 늘어난다고 생각해요. 월 500만 원 써야 하는 사람은 연봉 6000만 원 직장이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지만 한 달에 100만 원 쓰는 사람은 돈을 덜 줘도 업무 강도 낮은 곳을 찾아볼 수 있겠지요.
소비 단식의 그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소비 충동이 올라올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만약 소비 단식을 하다가 ‘내가 이런 것도 못 사고 참아야 되나,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드는 지경이면 사야 해요. 물론 거기까지 가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서, 마음을 그때그때 확인해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계좌 잔고를 확인합니다. 조금씩 모아둔 비상금 내에서 너무 사고 싶을 때는 사요. 그러고 나면 사길 잘 했다 싶을 때도 있고 괜히 샀다고 후회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를 잘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소비 단식은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재테크를 하고 싶은데 통장 쪼개기, 풍차 돌리기 같은 기초적인 것부터 엄두도 안 나고, 가계부 쓰는 것도 귀찮고, 카드 명세서는 보기도 싫은 사람들이 시작하기 좋아요. 소비 단식은 ‘그냥 오늘부터 쓰지 않는다'이기 때문에 아주 단순하니까요. 소비 단식의 끝은 결국 예산 내에서 적절히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래서 저축을 시작하고 이후 재테크로 이어지는 게 목표이기도 하고요.
이제 막 시도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요?
무지출 데이요.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해봐도 좋아요. 직장인이라면 걸어서 갈 수는 없으니 교통비 정도만 쓰고, 나머지는 사무실 커피를 마시고, 도시락을 싸가고, 간식 거리처럼 작은 소비 유혹을 이겨내고 집에 돌아오면 어디 스티커라도 하나 붙이는 거예요. 돈을 안 써도 살아지는구나, 자유롭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소비 단식 4년 차인 지금은 어떤 것들을 실행하고 있나요?
이제 습관이 되었나 보다 했는데, 해외에 살다가 몇달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또 풀어졌었거든요. 이것저것 정리하고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배달 음식을 아주 많이 시켜 먹었어요. ‘배달 음식=의식주=꼭 필요한 것=써도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한 번 시키면 3~4만 원은 기본으로 나오다 보니 씀씀이가 또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돈에 대한 감각을 살리기 위해 한 달 동안 집밥만 먹는 챌린지를 해봤어요. 놀랍게도 3인 가구의 식비는 40만 원 정도가 줄었고, 생활비 전체는 80만 원이 줄어들었죠. 다른 것에 대한 감각도 살아나면서 다시 원래의 합리적 소비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이 정도면 챌린지의 달인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런 챌린지들을 이어나갈 계획인가요.
네, 저는 충동성이 강한 편이라서 목표가 있는 게 좋아요. 작은 챌린지로 저 자신에게 퀘스트를 계속 주는 게 잘 맞더라고요. 12월에는 일주일간 장 보지 않고 냉장고 파먹기를 해볼 거고, 새해에는 1년 동안 옷 안 사기에 도전할 계획이에요.
다이어트를 할 때 요요가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다시 또 빼면 되지'라는 생각 때문이잖아요. 힘들게 줄인 과정의 고통을 잊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거요. 그러지 않기 위해 평생 셀프케어하면서 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한 것처럼 소비생활도 똑같아요. 소비 단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온전한 나',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용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Interview・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홍가영
– 해당 콘텐츠는 2023.12.15.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