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초사회, 도파밍, 디토소비 등 2024년 소비 키워드가 적힌 카드모음

2024년, 우리는 어떤 소비를 하게 될까?

by 한다혜

2023년은 ‘평균 실종'의 시간이었습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고경제’로 시장은 크게 압박받았고 소비자들의 소비전략도 알뜰살뜰한 실속 소비와 프리미엄 소비로 양극화되었죠. 예를 들어 평소에는 가파르게 오른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가성비 있는 식사를 하고, 특별한 날에만 비싼 외식을 즐기는 식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겁니다.

선택과 집중, 양자택일의 전략인 거죠. 여러분은 2023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준비하며, 우리의 더 나은 소비생활을 바라는 마음으로 《트렌드 코리아 2024》를 펴냈습니다. 2024년, 우리는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내년 소비 키워드 5가지를 미리 살펴봅니다.

반차를 넘어 반반차, 1분 1초가 귀한 ‘분초사회’

2024년, 가장 먼저 눈여겨볼 변화는 바로 ‘시간’에 있습니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는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이제는 분초를 다투며 살만큼 1분 1초가 귀해졌습니다. 시간을 압축적으로 관리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삶을 운용하는 시간의 단위가 ‘시(時)’가 아닌 ‘분(分)’으로 변하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시간 대비 가치, 즉 ‘시성비’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시간효율성을 극도로 높이려는 사회 경향성을 ‘분초사회’라고 소개합니다.

분초사회의 특징은 시간의 단위가 조각나 더 작아진다는 점입니다. 반차를 넘어 반반차를 쓰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PT를 받는 등 사람들은 시간을 금쪽같이 아껴 씁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영상 콘텐츠를 1.5배로 빠르게 보는 배속시청을 선호하고, 유튜브에서 드라마나 영화의 결말이 포함된 요약본 영상도 많이 보입니다. 스포일러를 엄격히 금지했던 과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죠.

온라인 쇼핑에서도 시성비를 중시하는 현상이 늘고 있습니다. 최저가를 찾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믿을만한 쇼핑몰에서 적당한 가격에 제안된 상품을 선택하고 빠르게 배송을 받는 것을 택하는 소비자가 많죠. 오히려 형편없는 상품 때문에 교환이나 환불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피하고 싶은 소비자들은 다년간 축적된 자신만의 노하우로 상품을 확인합니다.

구매 후기를 낮은  평점순으로 정렬해 치명적인 단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모델의 착용 사진보다는 다른 구매자들의 리뷰 사진을 참고하는 식으로 쇼핑 실패를 방지하는 것이죠. 요즘 소비자에게 가장 아까운 것은 ‘실패한 시간'인 겁니다.

‘분초사회'는 단순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바빠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소유경제에서 경험경제로 옮겨갔다는 것을 뜻하며, 경제 패러다임을 ‘시간의 관점’으로 재정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이번 주말 꼭 가 봐야 할 핫플레이스’, ‘지금 가면 가장 좋은 숨겨진 명소'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소개하는 게시물들이 가득하죠. 나의 시간을 들여서 경험해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 시간의 밀도를 높여 효율적이고 응축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 겁니다.

무수히 많아진 선택지 앞에서 ‘디토소비’

바야흐로 과잉의 시대입니다. 상품·정보 제공·구매 채널이 모두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수많은 선택지에 직면하게 된 소비자들은 새로운 소비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탐색하거나, 평가하는 구매 의사 결정 과정은 생략하고 그냥 “나도(ditto)”하고 특정 사람이나 콘텐츠, 커머스를 추종해 구매하는 방식이죠. 특정 대리체가 제안하는 선택을 추종하는 소비가 ‘디토소비'입니다.

디토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추종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인플루언서의 공동구매에 참여하거나, 좋아하는 영화 리뷰 유튜버가 추천하는 영화라면 자신 있게 소비하죠. 상품이나 서비스의 품질보다도 그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장님의 취향이 나와 일치한다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방문하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유명 스타들이 착용한 상품을 따라 사는 팬덤소비가 대세였다면, 최근 디토소비는 유명하지 않아도 나와 취향이 잘 맞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나 감각이 뛰어난 주변 지인 등 자신의 뾰족한 취향을 잘 나타내는 사람을 찾아 뿔뿔이 흩어집니다. 내가 누구를 따라 하는지가 곧 나를 대변하는 시대니까요.

두 번째로는 좋아하는 콘텐츠를 디토하는 겁니다. 좋아하는 콘텐츠의 캐릭터가 굿즈화되면 자연스럽게 지갑이 열리고, 특정한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를 여행지로 정하기도 하죠. 마지막 추종은 상품을 구매하는 경로인 커머스에서 일어납니다.

패션이면 패션, 뷰티면 뷰티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버티컬 커머스에서 제안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의류로 예를 들자면, 과거에는 다양한 채널을 둘러보며 정보를 탐색하고 고민하며 구매의사결정을 했다면, 최근에는 29CM나 무신사 등 패션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에 들어가 해당 커머스에서 맞춤 제안하거나 상위 랭킹에 올라간 옷들 중 나와 맞는 취향의 옷을 바로 구매하는 식으로 의사결정이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디토소비가 늘어나는 이유는 소비자의 FOBO(Fear of Better Option)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구매의사결정을 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디토소비의 확산은 앞으로 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제품력으로만 승부하기 보다는 브랜드의 미학을 담은 ‘시그니처 상품’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죠. 소비자가 상품을 오래 탐색하거나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더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어야 살아남는다, 도파밍

최근 온라인상에서 나의 혈중 도파민 농도가 얼마나 높은지 살펴보는 ‘도파민 중독 테스트'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도파민은 새롭고 재밌는 것을 경험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요즘 10~20대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소비에서 재미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현상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트렌드 코리아 2024》는 짜릿하고 재미있는 행동을 할 때 분비되는 도파민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요즘 사람들의 행동을 ‘도파밍'이라는 키워드로 소개했습니다. 도파민(dopamine)과 파밍(farming)을 결합한 용어인데요. 파밍은 게임용어로, 플레이어가 게임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작물을 수확하듯 아이템을 모으는 행위를 말합니다.

도파밍 행동은 무척 다양한데, 랜덤 상황이 선사하는 재미를 즐기는 소비자가 늘었습니다. 오늘 입을 옷을 랜덤으로 골라 코디를 완성하는 ‘랜덤코디 챌린지’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엉뚱한 옷들이 매칭되어도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요즘 SNS에서 많이 보이는 ‘색상 테마 홈파티'와 같은 이색적인 재미를 즐기는 소비자도 눈에 띕니다. 손님들은 배정받은 색상의 옷을 입고, 같이 챙겨올 과자나 음료도 해당 색상에 딱 맞추어 준비합니다. 다 함께 모여 소셜미디어에 올릴 인증샷까지 찍으면 완벽한 홈파티의 완성입니다.

이처럼 도파밍 트렌드가 늘어나는 이유는 숏폼콘텐츠가 대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영상언어 시대에는 재미가 더 빠르고 직관적이어야 살아남죠. 쇼츠와 릴스 같은 짧은 콘텐츠가 더욱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놀이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시각적이고 직관적이며 강렬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달라지는 가격체계, 버라이어티 가격전략

엔데믹 이후 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를 뽑으라면, 바로 ‘물가’죠. 상품의 원가가 오르고 인건비가 상승하면 상품의 가격 역시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는 줄어들기 마련이고요. 물가는 오르고 소비는 위축되는 위기의 2024년,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현명한 가격전략은 무엇일까요? 이에 답하기 위해 《트렌드 코리아 2024》는 ‘버라이어티 가격전략’을 제안합니다. 버라이어티 가격전략은 같은 상품이라 할지라도 ①언제, ②어디서 ③누가, ④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가장 전통적인 가격전략은 ①언제, 즉 시간에 따라 상품가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시간은 소비자가 상품의 가치를 다르게 지각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죠. 영화관의 조조할인이나 레스토랑의 해피아워, 호텔의 성수기와 비수기의 가격이 다른 것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해진 규칙 없이 수요와 공급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혹은 실시간으로 가격이 변동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의 발전으로 고객의 지불용의*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실시간 가격변동이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상품 구입을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고 금액

한편 최근 불경기 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가격전략은 ④어떻게 사느냐, 즉 ‘옵션’ 입니다. 비결합 가격(Unbundled Pricing)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스템은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이나 사용 수준을 다양하게 쪼개서 옵션화로 가격을 달리하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저비용 항공사들이 비행기 티겟의 기본요금을 낮추는 대신 위탁수하물,조기탑승,기내식을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그만큼의 추가비용을 부과하고, 같은 일반석이라고 하더라도 노키즈존을 이용하고 싶다면 추가금을 받는 식이죠.

호텔 업계에서도 재미있는 사례가 속출합니다. 4시간 동안만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반차캉스 패키지’를 선보인다거나, 호텔 투숙이 부담스러운 소비자를 위해 숙박 기능은 빼고 수영장이나 사우나 등 부대시설 기능만 즐길 수 있는 ‘숏캉스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죠. 앞서 ‘분초사회’에서 시간의 단위가 잘게 쪼개진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가격 역시 이 논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불경기에는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기 때문에,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고객을 유인할 수 있고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024년은 가격을 일률적으로 인상하기보다는,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내고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법을 찾아 함께 윈윈(win-win)하는 가격전략 수립이 절실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은 상품의 다양한 가격을 인지하고 그중 어떤 가격을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을지 세밀한 소비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겠죠.

돌봄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다, 돌봄경제

돌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등 노약자가 먼저 떠올랐다면 이제는 그 관점에 변화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돌봄이란 타인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최근 돌봄의 개념이 극적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4》는 마지막 키워드로 ‘돌봄경제’에 주목했습니다.

한 사회의 수준을 보려면 그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보살피는지 보면 된다는 말이 있죠.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환자, 영유아, 고령자 등 혼자서는 생활이 불편한 사람들의 신체적 어려움을 챙겨줄 수 있는 돌봄 서비스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돌봄 인력을 매칭해주는 서비스는 물론이고, 원격 돌봄을 지원해 주는 기술도 시장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죠. 한편, 요즘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돌봄은 마음을 돌보는 일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여 도움을 받기도 하고, AI 스피커를 통해 고립감을 해소하는 방법들도 확산되고 있죠.

돌봄의 경제적 효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일상도 돌봄의 대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최근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지역사회 내 느슨한 유대관계가 중요해지고 있죠. 예를 들어, 매일 배달하는 우유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골목의 작은 카페나 독립 서점에서 주민들을 알아봐 주며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기능을 하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돌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단순히 아이돌봄을 넘어서 부모의 커리어를 돌보는 일이며, 직원을 돌보는 것은 조직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될 수 있는 거죠.

2024년, 분초사회의 분주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서로의 안녕을 묻고,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2024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dit 이지영 Graphic 이은호

한다혜 에디터 이미지
한다혜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의 소비자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트렌드 코리아》시리즈의 공저자이자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소비자가 구매 시 느끼는 다양한 소비감정들과 데이터를 통한 소비행동 분석 등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KBS1 Radio <성공예감> 고정 출연, KBS <사사건건>, YTN <뉴스라이더> 출연과 《트렌드 코리아 2024를 비롯해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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