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 어떤 복지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까?
ㆍby 금혜원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연령대는 어디일까요? 바로 80세 이상 고령층입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났고,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핵심 키워드가 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죠.
이러한 사회 흐름에 맞춰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복지 정책'입니다. 이전에는 보살핌과 요양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복지 정책이, 최근에는 슈퍼 에이지(super age)* 엘더노믹스(eldernomics)* 같은 키워드를 반영하며 일자리와 교육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해요.
* 슈퍼 에이지(super age):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청년의 수를 넘어서는 시대, 즉 초고령화 시대를 뜻하는 말로 인구통계학자 브래들리 셔먼이 제시한 개념 * 엘더노믹스(eldernomics): 노인(elder)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말로 취업과 창업, 소비와 생산 등 다양한 경제생활 속 주체가 주로 노년층이 되는 현상을 조명하는 신조어
노후대비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인 만큼, 국가의 노력도 필수적일텐데요. 초고령화 시대에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안정적으로 그리고 행복하게 유지되려면 어떤 복지 정책이 필요한지 알아보려 합니다. 주거, 의료, 보육, 교육 등 다양하게 분류되는 카테고리 중 교육과 일자리 중심으로 4개국 스페인, 영국, 싱가포르, 일본의 사례를 소개할게요.
1. 🇪🇸 스페인의 아에품 (AEPUM)
노인을 위한 대학 ”배워야 산다. 결코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말라"
아에품(AEPUM: Asociación Estatal de Programas Universitarios para Mayores)은 어떤 단체인가요?
스페인의 ‘주립 노인대학 프로그램협회'로 비영리 노인대학 단체입니다. 공립 및 사립 대학 뿐 아니라, 목적에 따라 노인을 위한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도록 기타 지방자치단체들의 참여로도 구성됩니다.
2004년에 설립 후 노인을 위한 질 높은 교육을 위해 25년 간 힘써왔는데요. 중장년층 대상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노인 집단의 교육 및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나요?
인문학, 사회과학, 언어학, 심리학, 역사학, 자연과학 등 기본 학문이 수업으로 제공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일반 대학 신입생들이 듣는 전공 기본 혹은 교양 과목 정도의 수준이지요.
또한 세미나 및 컨퍼런스 개최, 연구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해 ‘노인을 위한 대학 프로그램에서의 ICT 활용’, ‘세대적 다양성을 위한 노력’ 등 심도 깊은 주제로 토론할 수 있고, ‘디지털 격차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시니어 IT 학습법' 등의 주제로 주변 EU 국가 내 협회들과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아에품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고령자들이 ‘쉼'보다는 ‘활동'을 추구하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요. 아에품은 고령화 사회에 대해 ‘문제'가 아닌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 생각하며, 이들이 훗날 사회의 필수 인력이 될 수 있게끔 하고자 수준 높은 교육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고자 합니다.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있나요?
55세 이상의 중장년층을 ‘노인'이 아니라 ‘준비된 인재'로 본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 커리큘럼과 양질의 교육 노하우를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중장년층이 삶의 새로운 원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2. 🇬🇧 영국의 씨티릿(City Lit)
런던 시민들을 위한 열린 배움터 연중무휴 365일 운영중
씨티릿은 어떤 기관인가요?
1차 세계대전 후 성인 노동자에게 여가, 문화 등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설립된 7개 기관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있는 기관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씨티릿은 다양한 인종과 중·고령자로 구성된 런던 시민들의 각기 다른 생애 단계와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주 7일, 오전 8시~오후 10시까지 폭넓은 시간대에 공간을 운영하는데요. 팬더믹을 기점으로 온라인 교육도 활성화 되었습니다.
어떤 교육 과정이 제공되나요?
‘배움을 통해 시민의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인문, 예술, 역사, 문화, 기술·과학, 건강, 언어, 일상기술, 전문기술 등 광범위한 주제의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총 5천여 개에 달하는 클래스가 진행됩니다.
시민들이 더 나은 학습 환경과 일자리를 유지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역량 개발 또한 지원하는데요. 단순 흥미로 가볍게 시작했거나 생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강한 교육 과정일지라도, 새로운 직업이나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네트워킹 기회가 제공됩니다.
또한 더 깊이있는 학습을 원하는 경우 대학, 전문기관 등과 연계하여 수준별 교육과정을 제공하여, 해당 분야의 경력 개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요.
중장년층도 잘 이용하고 있나요?
씨티릿의 전체 이용자 중 64%가 45세 이상으로 중장년층의 이용률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일수록 젊은 시절 시도하지 못했던 인문·예술 분야의 관심과 열정이 크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현재 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 작가, 화가 중에는 씨티릿을 통해 인문·예술 분야의 커리어로 진입한 사례가 많습니다.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있나요?
양질의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대학 및 전문기관과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는 점, 수강료가 최대 천만원에 이르지만 기준을 세워 교육비를 차등 지원하는 점, 그리고 직원 및 강사진들의 성과평가 체계를 구축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육의 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들이 돋보였습니다.
3. 🇸🇬 싱가포르의 스킬스퓨처(SkillsFuture)
모든 국민의 취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평생 직업훈련 시스템
스킬스퓨처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싱가포르 국민이라면 모두 고용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입니다.
이 정책은 학생부터 사회초년생, 전문 기술을 보유한 숙련된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에게 바우처(S$500로 시작해 성과 달성 여부에 따라 추가 금액 지원 여부가 결정됨)를 제공하여 평생 학습에 참여하도록 독려합니다.
평생 학습 프로그램이라면 40~50대 이상 경력자들에게도 해당되나요?
네, 40대 이상 경력자들의 고용 유지 및 직종 전환을 돕기 위해 운영되는 대표 프로그램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1) Career Conversion Program
전문가, 매니저, 경영진 대상으로 좋은 전망과 기회가 있는 새로운 분야로 전직을 돕습니다. 기술 전환이 필수라 새로운 직무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재교육이 필요한데요.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업계에서 인정하는 교육을 받게 됩니다.
2) Career Transition Program
고용 기회가 많아진 산업에서의 일자리를 파트타임/풀타임 형식으로 제공합니다. 교육 과정비 70%까지 기본 지원금을 활용할 수 있으며, 40세 이상의 근로자들은 중간 경력자 혜택을 받아 90%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점과 관심사에 맞는 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따로 자문도 제공됩니다.
프로그램을 통한 실제 전환 사례도 있나요?
홈페이지에 다양한 성공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47세의 그래픽 디자이너 Fabian Chan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며 직업을 잃었습니다.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100여 곳에 지원했지만 실패만 거듭했죠.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회를 다 놓쳤구나' 하고요. 대부분의 디자이너 채용 공고에는 3D, 애니메이션, 인터랙티브 웹 디자인 기술이 필요했는데, 그는 신기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거든요.
그때부터 스킬스퓨처를 통해 애니메이션 프로그래밍 학위 과정을 시작했고, 졸업 후 광고대행사 모션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2의 직업으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뤄낸 셈이죠.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있나요?
특정 계층이 아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라는 점, 교육이 실제 고용으로 연결되어 국가와 기업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고령화 문제를 국가 경쟁력과 관련된 위기로 인식하고, 생애 주기적 관점에서 평생 학습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4. 🇯🇵 일본의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 프로그램
고경력·고학력 시니어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능력을 앞으로도 잘 살릴 수 있도록
시니어 중소기업 서포트 인재 프로그램은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대기업·중견기업 등에서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시니어(55세 이상)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조정 능력, 협상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종합관리 능력을 살려 중소기업 재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수강자 대상으로 중소기업 관련 교육이 진행되며, 수료 후 구직 활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직무 유형이 있나요?
경영, 인사노무, 재무경리, 해외, 영업, IT시스템 관련, 기술관리 등 다양한 직무 유형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2007년대 일본 베이비붐 세대가 대량 퇴직을 하며, 수많은 이들이 은퇴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요. 고학력/고경력 시니어들이 중소기업에 재취직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가 잘 해결되었나요?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니어는 거의 100%가 수료 후 중소기업에 성공적으로 취업합니다. 시니어와 중소기업 모두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에, 지속적으로 유지될 전망으로 보여요.
프로그램 시작 후 13년 간 매년 120명을 교육했고 2019년까지 약 1,500명이 배출되었는데요. 프로그램 수료자들에 대한 기업 내 평판이 매우 좋아서, 다음 사람도 해당 프로그램 수료자들로 채용하고 있으니 긍정적인 성과로 보입니다.
🇰🇷 그리고 지금 한국의 시니어 복지 방향은
그동안 재단에서 조사해오신 자료를 보니, 재단이 설립될 때부터 해외 사례를 꾸준히 조사해오셨더라고요.
맞아요. 저희 재단이 2016년 4월에 설립되었는데요. 바로 다음 해인 2017년에 ‘50+ 해외동향 리포트' 자료집을 발간했어요. 그때부터 해외통신원을 운영해왔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7년 넘게 시니어 복지의 흐름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도 체감할 수 있었네요.
아시겠지만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수많은 변화가 있었잖아요. 10년 전과 지금은 또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의 ‘노인'은 예전의 ‘노인'이 아니라는 건데요. 교육 수준도 완전히 다르고, 활동적인 분들도 정말 많으세요. 신중년의 등장과 동시에 은퇴 나이도 점점 빨라지면서 50+ 라는 표현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어요.
서울시50플러스 재단도 그런 취지에서 시작된거군요.
맞습니다. 저희 재단 이름도 중장년층부터 조명해야 한다는 의미로 지어졌어요. 고령에 진입하는 50~60대 초반 대상에게 ‘복지 공백'이 발생하면서 이들을 위한 것들이 많이 필요해진 거예요.
실제로 작년에 새로운 중장년종합지원대책이 서울시 차원에서 발표됐고, 이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 “길어진 노후를 잘 준비하세요" 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넘어서, 직업 전환도 잘하고 빨라진 사회 변화에 적응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복지 정책도 변화하고 있어요.
‘은퇴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계신 셈이네요.
아직 한국에는 은퇴 관리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았어요. 저희 재단에서 운영되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관리사, 경력 컨설턴트, 노후설계 컨설턴트 같은 분들이 육성된다 보고 있어요. 이런 과정이 결국 시장의 기반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될테고요.
그렇군요. 은퇴 후 어떤 일을 주로 하시고 싶어하시나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부터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제작까지 IT 기술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은데요. 여기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교육자가 되시는 케이스가 제일 많아요.
시니어 모델 활동을 하러 가시는 분도 계시고, 개인 방송이나 유튜브에도 관심이 많으세요. 나를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아, 웹소설이나 이모티콘 작가에 도전하는 분들도 많으시답니다.
이제 정말 직업의 경계가 없어졌나봐요.
딱 맞는 말입니다. 점점 더 시니어와 청장년 간 직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아요. ‘노인'이라 인지하는 컨셉과 개념을 바꿔 인식해야 될 때가 온 것이죠.
고령화, 저출산,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개편되었으니, 이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지가 우리에게 남은 큰 숙제일테고요. 아직 정답은 없겠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결국 ‘일자리 창출' 입니다.
이전과 달리 기운이 넘치는 중장년층은 노인층이 되더라도 여전히 활동적일 거예요. 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훨씬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하고요. 개인은 사회적으로 새로운 것들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지평을 계속 넓히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존재로 성장해야겠죠.
References 서울시50플러스 재단 Interview·Edit 금혜원 Graphic 이은호
참고자료
⎼ [50+정책동향리포트] 2023년 2호 - 싱가포르 SkillsFuture의 성과와 시사점: 중간경력자 지원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 [50+정책동향리포트] 2023년 3호 - 씨티릿(City Lit), 런던 시민들의 직업역량과 일상기술 강화를 위한 열린 배움터 ⎼ [50+리포트] 2021년 2호 v.26 - 글로벌 50+ : 스페인 노인을 위한 대학, 주립 노인대학 프로그램협회 아에품(AEPUM) ⎼ [2019년 연구보고서] 해외 50+정책 사례 분석 리포트
– 해당 콘텐츠는 2023.10.2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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