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효과가 있다
ㆍby 토스증권
‘Part 3.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효과가 있다’ 에 들어가며 :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는 건 달러를 보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외투자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 주식을 사려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즉, 애플 주식을 1주 샀다면 그만큼의 달러를 보유한다는 의미인데요. 자연스럽게 달러 자산을 보유할 수 있다는 건 미국 주식에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입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우리의 자산은 원화에 쏠려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투자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산을 대부분 ‘원화’로 쌓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외 주식 투자자들이 늘면서(2019년 436억달러에서 2023년 1,042억달러로 증가) 자연스럽게 달러 보유 비중도 늘고 있지만, 아직 해외 주식 투자자는 300만명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내주식은 1,400만명)
다양한 자산군을 갖는 게 왜 중요할까요? 무엇이든 ‘지나친 쏠림’에는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특정 투자상품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으면 그만큼 특정 위험에 크게 노출됩니다.
한 가지 투자상품에 올인하는 것이 위험하듯, 통화 역시 한 가지만 보유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모든 자산을 원화로만 보유하고 있다면, 국내 경기가 안 좋거나 세계 경제 상황이 바뀌어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경우 자산가치 또한 크게 하락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산배분을 위해 ‘통화 다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2. 어떤 통화가 자산배분에 좋을까?
통화 다변화의 관점에서 한국 투자자에게는 어떤 통화가 필요할까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분산투자할 때와 비슷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2-1) 원화와 반대로 움직이는 통화를 찾아라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르면, 두 자산의 상관계수가 낮을수록 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커집니다. 쉽게 말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을 동시에 보유함으로써 위험을 낮추는 거죠.
극단적으로 두 자산이 정반대로 움직여 상관계수가 -1이라면, 완전히 위험을 없애는 것도 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참고로 해리 마코위츠는 포트폴리오 이론을 통해 재무경제학의 시초로 인정받아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이라면 여럿 보유해도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자산을 국내주식과 부동산으로 나눠 보유한다면 자산배분 효과를 얻기 힘듭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두 자산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완전히 똑같이 움직일 때 두 자산의 상관계수가 1인데요. 국내주식과 부동산의 상관계수는 무려 0.93에 이릅니다. 많은 경우 주식이 오를 때 부동산도 오르고, 부동산이 내릴 땐 주식도 떨어진다는 뜻이므로 두 자산은 사실상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주식에 투자할 때도 같은 산업에 속한 종목들을 여럿 매수한다면 이를 ‘분산투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산업에 속한 만큼 주가 움직임도 비슷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분산투자의 핵심은 위험을 줄이는 것이므로, 서로 성격이 다른 종목을 담고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통화 다변화도 핵심은 같습니다. 원화 자산 비중이 높은 한국 투자자들이 자산배분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원화 자산과 반대로 움직이는, 즉 상관계수가 가장 낮은 통화를 함께 보유해야 합니다.
2-2) 국내주식, 부동산과 반대로 움직이는 통화는 달러다
한국인이 보유한 대표적인 원화 자산은 부동산과 국내주식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평균 자산 규모는 약 5억원으로, 금융자산과 비금융자산의 비중이 각각 23%, 77%라고 합니다. 비금융자산에서는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이고, 금융자산에서는 현금(예금) 바로 다음이 국내주식입니다.
국내주식이나 부동산과의 상관계수가 가장 낮은 통화를 보유하면, 당초 우리의 목적이었던 자산배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차트는 국내주식(코스피 지수), 부동산(주택 매매가격 지수)과 원화 대비 주요국 통화 환율의 상관계수입니다.
상관계수가 가장 낮은 조합은 [국내주식&달러]로, 유일하게 마이너스인 -0.07을 기록했습니다. 그다음으로 [국내주식&엔화], [부동산&엔화], [부동산&달러] 조합이 뒤를 이었고 중국 위안화는 국내주식/부동산 모두 상관계수가 0.5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달러는 국내주식과 반대로 움직였고, 위안화는 비슷하게 움직인 겁니다.
국내주식과 달러가 반대로 움직인다? 만약 국내 증시 움직임에 익숙한 투자자라면 이 데이터에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달러 약세(=원화 강세)와 코스피 상승은 종종 함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이익을 얻기 위해 달러 약세(=원화 강세)일 때 국내 주식을 더 많이 매수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산배분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달러를 원화와 함께 보유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엔화 역시 국내주식/부동산과의 상관계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원화와의 자산배분 효과를 얻기에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통화정책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일본은 장기 불황에 대응해 초저금리 정책을 펼쳐왔지만 올해 들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통화정책의 구조적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엔 환율 움직임에도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3. 실제로 달러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앞서 제안한 대로 국내주식 비중이 높은 한국 투자자가 달러를 함께 보유했다면, 실제 수익률은 달라졌을까요? 리스크는 최소화할 수 있었을까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익률과 리스크를 비교해봤습니다.
3-1) [only 코스피] vs. [코스피+달러]
같은 투자금을 코스피에만 100% 투자하는 경우와 코스피&달러에 절반씩 나눠 투자하는 경우를 비교해봤습니다.
먼저 수익률을 살펴보겠습니다. 수익률 측면에서는 코스피에만 투자하는 편이 더 나았습니다. [only 코스피]가 2.8배 오르는 동안 [코스피+달러]는 2.2배 상승에 그쳤고요. 연평균 수익률도 [only 코스피] 4.4%, [코스피+달러] 3.4%로 [only 코스피] 쪽이 1.0%p 더 높았습니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달러를 같이 보유하면 오히려 손해 아냐?’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산배분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당장의 높은 수익률이 아니라 ‘리스크 최소화’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아래 그래프를 보면, [only 코스피] 는 위아래로 크게 출렁이는 반면 [코스피+달러]는 안정적으로 우상향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이번엔 리스크를 비교할 차례입니다. MDD(Maximum Draw Down)는 전고점 대비 하락률로, 투자자가 겪게 될 위험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데요. [only 코스피]의 경우 MDD가 -53%였습니다.
만약 투자를 시작하는 시점을 잘못 골랐다면 최악의 경우 투자금이 절반 넘게 감소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래 차트를 보면, [only 코스피]는 종종 크게 손실을 보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로 돈을 잃지 말라.” 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이 강조하는 투자원칙이죠. 일단 한 번 손실을 보면 원금 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53%의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00%가 넘는 수익률을 거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투자금의 절반이 날아간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본전을 찾으려는 심리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다 보면 실수할 가능성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코스피+달러]의 경우 MDD는 -30%까지 낮아집니다. 물론 -30%가 작은 손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only 코스피]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위험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3-2) [코스피+달러] vs. [코스피+S&P500] vs. [only S&P500]
그렇다면 달러를 사서 그냥 갖고 있지 않고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요?
MDD는 -30%에서 -35%로 리스크가 더욱 커졌지만, 미국 주식의 높은 수익률(연평균 5.3%) 덕분에 수익률 측면에서는 확실히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코스피와 미국 주식에 함께 투자하는 [코스피+S&P500]은 [코스피+달러](3.4배)는 물론이고 [only 코스피](4.4배)보다도 더 높은 수익률(5.6배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S&P500에만 투자하는 것보다 코스피와 S&P500에 같이 투자할 때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 2000년부터 지금까지 24년간 [only S&P500]이 [코스피+S&P500]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낸 건 불과 2년 남짓입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미국 빅테크가 초강세를 보이며 [only S&P500]의 수익률이 치솟은 영향입니다.
4. 달러는 왜 원화와 반대로 움직일까?
달러는 국제 거래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은 원화와 반대로 움직이는 이유인 동시에, 자산배분 수단으로서 달러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합니다.
4-1) 기축통화라서 반대로 움직인다?
환율이란, 각국 통화의 상대적인 가치를 뜻합니다. 즉,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특정 통화가 많이 발행되면 그만큼 그 통화의 가치는 떨어지겠죠.
그런데 달러만큼은 예외입니다.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달러를 추가 발행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는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고요. 실제로 2020년의 달러 발행 규모는 2008년 대비 5배에 달했습니다.
발행량이 크게 늘었으니 달러의 가치는 떨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올랐습니다. 2008년이나 2020년의 경우 세계 경제가 위기를 겪던 시기였죠. 세계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달러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기 때문에 발행량이 늘었음에도 달러가 오히려 강세를 보인 것입니다.
반면,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한국은 세계 경제 상황 변화에 민감합니다. 국내 상황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세계 경제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기도 하죠. 그래서 달러와 원화의 상관계수가 낮았던 것입니다.
4-2) 기축통화라서 위기에 강하다?
미국 경제가 좋을 땐 좋아서 달러 가치가 올라가고, 미국 경제가 나쁠 땐 또 나빠서 달러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을 ‘달러 스마일’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아래 그래프 모양이 웃는 입을 닮았죠?
앞서 살펴본 달러 인덱스 차트에서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가 장기적인 흐름에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달러 강세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아슬아슬 불안한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죠.
실제로 유럽 재정위기, 중국 위안화 위기, 코로나19 위기 등 글로벌 경제의 다양한 불안 요인들이 발생할 때마다 각 나라의 통화가치는 크게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한국의 원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1,1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2022년 한때 1,400원을 넘어서기도 했는데요. 위기에 강한 달러를 함께 보유하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5. 앞으로도 달러일까?
지금까지 자산배분 차원에서 한국 투자자가 미국 주식을 보유하면 어떤 이점이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그럼 자산배분 차원에서 달러는 앞으로도 효과적일까요?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앞으로도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달러가 기축통화 자리에서 내려올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지금부터 왜 그런지 차근차근 설명드리겠습니다.
5-1) 영국 파운드가 달러에 기축통화 자리를 빼앗긴 이유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한데요. 일단 발행량이 많아야 합니다. 기축통화는 국제거래에서 사용되는 통화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양이 발행되어야 하는 거죠.
또한 기축통화가 되려면 해당 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야 합니다. 요즘 국가 신뢰도는 ‘달러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느냐’로 판단하곤 하는데요. 금본위제를 채택하던 과거에는 ‘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느냐’가 국가 신뢰도를 결정했습니다.
달러 전까지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였습니다. 기축통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영국은 파운드를 충분히 많이 발행해야 했고, 누군가 중앙은행에 파운드를 가져왔을 때 그만큼의 금을 내주려면 충분한 양의 금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영국은 당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나라였죠. 사실상 대부분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파운드를 발행하기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파운드는 당시 세계 교역량의 약 60%, 외환보유액의 약 50%를 차지할 정도로 널리 사용됐습니다.
신뢰가 깨지기 시작한 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발발한 이후입니다. 전쟁에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각국은 화폐를 발행해 비용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행된 화폐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금의 양을 넘어섰죠.
그나마 영국의 상황이 나았지만, 영국 역시 세계대전의 비용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즉, 다른 나라에서 파운드를 가져와도 바꿔줄 금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영국은 금 부족을 이유로 1931년 금 태환 중단을 공식 선언했고 이미 흔들리고 있던 파운드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영국의 대안은 미국, 파운드의 대안은 달러였습니다. 미국의 금 보유량은 1900년대에 이미 영국을 뛰어넘었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이후엔 전 세계 금의 약 70%를 미국이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1944년, 주요 44개국은 다음과 같이 합의합니다. “달러와 금의 교환비율을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하고, 다른 국가들의 화폐는 달러와의 교환비율을 고정한다.”
이로써 파운드 중심의 금본위제를 달러 중심의 금환본위제가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합의가 이뤄진 장소의 이름을 딴 ‘브레턴우즈 체제’가 시작되면서, 달러는 공식적으로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합니다.
과거 영국의 사례를 봤을 때, 달러가 기축통화 자리를 뺏기려면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기존의 기축통화가 신뢰를 잃고 흔들려야 하고 둘째, 기존의 기축통화를 대체할 대안이 등장해야 합니다.
전쟁 이후 영국 파운드의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미국 달러가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죠.
5-2) 달러가 신뢰를 잃을 위험은 없나?
달러가 처음 흔들렸던 사건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중단을 선언한 ‘닉슨 쇼크’입니다.
영국이 금 태환 중단을 선언할 때와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은 돈 들어갈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유럽 재건을 돕는 ‘마셜 플랜’, 냉전 체제에서의 군사비 확대, 길어지는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해 미국은 보유하고 있던 금보다 더 많은 양의 달러를 발행해야 했죠. 미국의 금 보유량은 70%에서 25%로 급감했고, 쏟아지는 금 태환 요청을 다 받아줄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미국 역시 금 태환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달러는 파운드와 달리 위기를 극복하고 기축통화 자리를 지켰습니다. 금 태환 중단으로 인해 신뢰도는 떨어졌지만, 국제 거래에서 계속 달러를 사용하게끔 유도했거든요.
대표적으로 1974년 ‘석유 거래는 달러로만 할 것’을 골자로 한 협정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체결한 것입니다. 그렇게 ‘페트로 달러’가 탄생했습니다.
석유는 모든 국가들이 필요로 하고, 지금도 글로벌 교역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주요 품목입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과 미국을 합하면 글로벌 산유량의 68%에 이를 정도였죠. 페트로 달러 덕분에 달러는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달러가 흔들릴 일이 있을까요?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그중 잠재적 위험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정부부채입니다.
2024년 1분기 기준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35조달러에 이릅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더라도,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3번째입니다. 이탈리아가 유럽 재정위기 당시 가장 문제가 됐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의 정부부채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1980년대부터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쌍둥이 적자’라 불렸지만, 그럼에도 달러의 지위는 굳건했습니다.
심지어 정부부채가 미국 정부의 파산(디폴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던 2023년 1월에도, 달러 가격은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기축통화가 바뀔 정도의 큰 충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시장은 판단했던 거죠.
그만큼 기축통화가 바뀌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5-3) 달러의 대안이 나타날 가능성은?
기축통화가 되려면 세계 여러 나라가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할 만큼 선호하는 화폐여야 합니다.
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기준이 바로 외환보유고인데요.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60%가 달러입니다. 2위 유로화나 최근 몇 년간 비중이 급증한 위안화나, 기축통화 자리를 넘보기엔 달러와의 격차가 큽니다.
달러는 무역뿐 아니라 국제 금융거래에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주목하는 것도, 미국 기준금리는 곧 달러의 이율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더 큰 영향을 받을 만큼, 달러는 이미 세계 경제 체제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보유량 측면에서나 거래량 측면에서나 여전히 달러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강력한 대안이 등장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5-4) 앞으로도 한동안 달러일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기축통화에는 강력한 관성효과(Economic Inertia)가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축통화의 변경은 경제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죠. 대부분의 국가들은 혼란을 원하지 않고, 그만큼 기존의 것을 사용하려는 힘 또한 강합니다.
가령, 기축통화가 바뀐다면 달러는 큰 폭으로 하락하겠죠? 그런데 문제는, 앞서 말했듯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60%가 달러입니다. 달러 가치가 30%만 하락하더라도 한국의 GDP 규모와 맞먹는 금액이 사라지는 셈이니까,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기축통화가 실제로 바뀌든, 기축통화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오든 글로벌 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부작용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극소수일 테고요.
달러가 기축통화로 사용된 것도 어느덧 100년, 오랜 관성을 되돌리려면 그만큼 큰 충격이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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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이영곤, 이지선, 한상원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