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작가님의 해피엔딩을 위한, 출판계약서 잘 읽는 법
ㆍby 심건욱
작가님, 계약서 확인 후 회신 부탁드립니다!
맘에 드는 출판사와 책을 출판하기로 이야기를 잘 마치고, 이제 출판계약서 체결을 앞두고 있나요?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만들어진다는 들뜬 마음은 잠시 가라앉히고, 잠시 출판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볼 때입니다. 오늘은 출판계약서 체결 전 꼭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계약의 전반적인 구조 이해하기
이름이 ‘출판계약서’여도, 그 내용은 천차만별일 수 있어요. 이 글에서는 다음 4가지 구조를 전제로 할게요.
- 작가는 자신의 비용과 책임으로 원고를 작성해요.
- 출판사는 자신의 비용과 책임으로 원고와 책의 방향에 대한 제안, 책의 제작, 유통, 홍보 등을 담당해요.
- 작가는 완성된 원고의 출판권*을 출판사에 부여해 출판사가 책을 출판해요. *출판권이란 저작물을 인쇄 등의 방법으로 문서로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해요.
- 이렇게 출판된 책 판매수익의 일정 비율을 작가가 인세로 지급받아요.
‘표준계약서’라고 해도, 반드시 조항을 하나씩 직접 살펴봐야 해요
출판계약서에 ‘표준계약서’라는 표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서의 내용이 공정할 것이라고 덜컥 믿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표준계약서’라는 표현의 사용이 법으로 규제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출판계약서에 대해서는 표준계약서라는 표현의 사용에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이에요. *대표적 예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공표한 표준약관과 다른 내용을 사용하면서 ‘표준약관’이라는 표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어요.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시를 통해 2021년 출판분야 표준계약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표준계약서는 비교적 작가의 권리 보호에 충실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하지만 2024년 시행 예정인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은 문체부에 표준계약서 제작·보급 책무를 부과할 뿐, 문화체육관광부 고시와 다른 내용의 출판계약서에 ‘표준계약서’라는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따라서 표준계약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정말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작가에게 유리한 내용이리라 믿는 것은 위험합니다.
실제로, 출판사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도 ‘출판계 표준계약서’라는 명칭의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배포하는 표준계약서는 문화체육관광부 고시 표준계약서와 비교할 때 작가에 불리하고 출판사에 유리한 조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요.
계약은 결국 각 당사자의 상황에 맞게 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 또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중 어느 한 쪽의 계약서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표준계약서’라는 이름만 믿고 작가에게 유리한 내용이리라 막연히 짐작해서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도록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 ‘표준계약서’라는 명칭은 신경쓰지 말고, 계약 조항 하나하나를 반드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출판계약서의 개별 조항 살펴보기
1. ‘출판권’ 또는 ‘배타적 발행권’의 범위 규정을 살펴보세요
작가(저작권자)는 저작물을 발행, 복제, 전송하려는 자에 대하여 출판권 또는 배타적 발행권(저작물을 발행, 복제, 전송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뜻해요)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저작권법 제7절 및 제7절의2. 이하로는 편의상 배타적 발행권과 출판권을 합하여 ‘출판권’이라고만 합니다).
개념상 출판권이 반드시 배타적으로 부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무적으로는 출판사가 배타적 출판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출판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고, 있다 하더라도 대단히 드물어요.
출판권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세요.
1) 저작물의 양도 vs 출판권 설정 저작권자의 저작물에 대하여 출판사에 ‘출판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저작물의 저작권은 계속하여 저작권자에게 귀속하고, 저작물을 ‘출판’할 권리만 출판사에게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요.
비교하여, ‘저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을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저작권 자체가 출판사에 넘어가는 것이에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하여 작가는 저작재산권을 모두 출판사에 넘기는 것이므로, 대가가 충분한지 등을 고려해서 그 수용 여부를 면밀히 고려해 봐야 합니다.
2) 출판권 설정 기간 출판사가 출판권을 보유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영상화를 위한 배타적발행권의 경우에는 발행으로부터 5년, 그밖의 경우는 발행으로부터 3년으로 정하고 있는데요. 당사자들의 합의로 다르게 정할 수 있어요.
3) 그밖에 살펴봐야 할 출판권의 설정 범위 출판권이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무엇의 발행에 대한 것인지, 국내를 범위로 하는지 외국에 대한 출판권도 포함하는지 살펴보세요.
2. 출판과 관련한 작가와 출판사의 권리, 의무를 살펴보세요
1) 출판사의 역할은 출판사가, 작가의 역할은 작가가 출판사는 통상 책의 방향에 대한 제안, 원고의 편집, 책의 제작, 유통, 홍보 등의 역할을 담당해요. 같은 이유로 출판계약서는 통상 출판사가 저작물의 편집, 제작, 배포 및 전송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어요. 다만 이러한 규정이 있더라도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상당히 많은 부수를 구매할 의무를 부담한다면, 이는 사실상 출판사가 담당하는 위 영역에 필요한 비용을 작가가 부담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출판계약을 체결하는 시점에는 출판 이후 출판사가 부담할 홍보의무의 구체적 내용까지 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작가에게 홍보와 관련한 일정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면, 그러한 내용을 살펴보고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출판사가 책을 내지 않는 상황에도 대비하기 작가가 출판계약에 따라 약속된 원고를 모두 출판사에 전달하면, 출판사는 그로부터 일정한 기간 내에 책을 출판할 의무, 그리고 출판권 부여기간 중 책을 유통·판매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해야 하고, 이러한 의무가 이행되지 않는 경우 작가는 출판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정하지 않는 경우, 작가는 출판사에 부여한 배타적 발행권에 출판권 부여기간 내내 묶여, 책이 출판 또는 판매는 되지 않으면서 다른 출판사를 통한 출판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저작물과 관련한 작가와 출판사의 권리, 의무를 살펴보세요
1) 출판사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관련된 권리를 부여하고 있나요? 있다면 어떤 내용인가요? 저작권자는 저작물을 번역ㆍ편곡ㆍ변형ㆍ각색ㆍ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제작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를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라고 합니다. 작품을 이용해 웹툰,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그 대표적 예시입니다.
출판계약 중에서는 (1) 2차적 저작물 작성권에 대하여는 별도로 정한다고 정하는 경우도 있고, (2)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그 자체를 출판사에 배타적으로 부여하거나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관련한 협상의 대리·중개권을 출판사에 배타적으로 부여하며, 2차적 저작물에서 발생한 수익에 관한 저작권자와 출판사 사이 분배 비율을 미리 정하는 경우도 있어요. 통상 출판계약 체결 시점에는 저작물의 흥행 여부를 알기 어렵고, 2차적 저작물 작성이 논의되는 시점이라면 이미 저작물이 흥행한 이후인 경우가 많은 점에서, 위 (1)은 작가에게, (2)는 출판사에게 유리한 조항이에요.
2) 출판된 책이나 전자책의 ‘편집본 데이터’에 대한 규율도 살펴보세요 저작물이 저작권자의 소유인 것과 별개로, 출판된 책 또는 전자책의 판본 파일은 출판사가 교정, 편집 등의 노력을 기울여 생산한 것이에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회협회의 표준계약서는 각각 이러한 산출물을 ‘판면파일’ 또는 ‘출판데이터’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는 한 출판사와의 출판권계약이 종료된 뒤에도 동일 원고를 두고 다른 출판사와 협업하기 위해, 기존 출판사의 ‘판면파일’ 또는 ‘출판데이터’를 얻을 필요가 있는데요, 이 경우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저작권자가 이를 넘겨받을(양수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는 경우가 많아요.
4. 작가에 대한 보상의 내용을 살펴보세요
저작권자는 출판사에게 원고와 관련한 일정한 권리를 부여합니다. 앞서 살펴본 ‘출판권의 부여’, ‘저작물의 양도’, ‘2차적 저작물 관련 권리의 부여’ 모두 저작권자가 출판사에게 부여하는 권리의 일종이에요.
저작권자가 출판사로부터 받는 보상이, 저작권자가 출판사에 부여하는 권리를 고려할 때 만족할 만한 것인지 살펴보세요. 예를 들면, 출판사에 2차적 저작물을 둔 대리·중개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여하지 않는 것보다 작가에게 불리한 것이 맞지만, 작가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그러한 불리함을 상쇄할 정도라면 출판사에 그러한 대리·중개권을 부여하는 것이 꼭 불공정하다거나 불합리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미 인지도를 얻은 작가가 아닌 한 출판계약을 체결하는 시점에는 출판사에 대해 충분한 협상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고, 그런 점에서 불리한 조건의 계약을 체결할 위험이 높은 점 역시 현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만족할 만한 보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작품의 장래 흥행 가능성과 흥행 시의 경제적 효과를 고려할 때도 충분하고 합리적인 보상인지는 꼭 신중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저작권 자체를 양도하는, 이른바 ‘매절계약’의 경우에는 해당 저작물로부터 발생하는 저작재산권, 특히 2차적 저작물 작성권까지 모두를 출판사에 넘기는 중대한 효과가 발생하므로, 그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정말로 합리적이고 충분한 것인지는 반드시 시간을 두고 차분히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출판이라는 여정의 해피엔딩을 위하여
나의 원고를 중요하게 여겨 출판·홍보에 각별히 힘써주는 작은 출판사, 명성과 탄탄한 유통망을 가진 유명 출판사, 제작 과정에서 진심으로 함께 제작 방향을 고민하는 편집자, 완성된 작품을 더욱 빛내 줄 출판 마케터 등, 성공적인 출판을 향한 여정에서 출판계약서의 존재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약서의 존재는 기쁨의 순간보다는 분쟁적 상황에서 비로소 드러납니다. 성공적인 출판을 가속하는 연료로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계약서는 늘 그 자리에 있고, 만약 잘못 체결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드시 걸림돌이 되는 것이지요.
때문에, 출판계약서를 출판 과정에서의 형식적인 사항으로 여기거나 논의하기 불편한 주제로 여기기보다는, 계약 당사자 모두가 출판계약서를 면밀히 살펴보며 서로의 희망사항을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품의 결말은 새드엔딩일 수 있지만, 작가님의 출판은 해피엔딩이어야 합니다. 이 글이 그러한 해피엔딩으로 작가님을 이끄는 데에 도움이 되었길 바라봅니다.
Edit 송수아 Graphic 함영범
- 이 원고는 2023년 11월 30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제공만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며, 구체적 사안에 대해 법률적 의견을 드리는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에서 스타트업, 기술기업과 관련된 기업자문/M&A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혁신가들의 마음을 닮은 변호사이고자 늘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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