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있는 소비: 김소영
ㆍby My Money Story
토스 / 사람들과 돈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인가요?
김소영 / 사실 별로 안 하는 편이에요.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버는 것에는 관심이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이번이 처음?
이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랑 좀 안 맞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크게 보면 사업을 하는 것도 돈을 쓰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소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산다’는 개념을 주로 떠올릴 것 같아서 거기에 치우치지 않고 돈 얘기를 해볼 수 있다면 그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도 개인적 소비와 사업적인 소비 이야기를 모두 듣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비플랜트’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죠.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비플랜트는 사람들의 삶의 밀도를 높여주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어요. ‘책발전소’라는 큐레이션 서점과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함께 제안하는 큐레이션 커머스 ‘브론테’를 론칭했고, 책 구독 서비스인 ‘책발전소 북클럽’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삶의 밀도를 높여준다’라는 의미를 한 번 더 풀어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소비에 시간 쓰는 걸 안 좋아하면서도, 아무거나 쓰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에요. 수많은 책과 물건들 중 좋은 것을 누군가 근거 있게 제안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죠. 내 마음에 들고, 취향에 맞고, 삶의 밀도를 높여주는 제품이 무엇인지 일일이 찾아다니기엔 현대인들은 너무 바빠요. 그래서 브론테에서는 좋은 것을 선별해서 제안하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저희가 큐레이션한 제품을 선택하면 조금 더 쉽게 삶의 밀도를 높일 수 있기를 바라요.
실제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구성하고 싶어 하고, 내가 쓰는 물건이 나를 나타낸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로 저희의 고객으로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굳이 더 설명해보자면 나에게 맞는 물건을 누구보다 잘 고를 수 있는 사람보다는 ‘나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에게 근거 있는 좋은 것들을 알려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저희들의 선택들을 좋아해 주신다고 생각해요.
퇴사 후 차린 서점 ‘당인리책발전소’가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소영 님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서 ‘사업가’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렸는데요. 스스로를 사업가라고 인지하게 된 건 언제쯤부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자주 받는데 저는 항상 그 시점을 ‘올해’라고 대답해요. 작년에는 작년이라고 느꼈을 텐데, 올해는 또 올해라고 느끼는 거예요. 퇴사 후 차린 서점의 매장을 넓혀가고, 본격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론칭하고, 우리가 하는 업을 큐레이션 커머스로 정의하고, 그에 따라 많은 동료들이 합류한 후에도 한동안 제가 뭘 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이게 사업이라는 걸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사업자를 낸 지 5년이 됐는데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업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의미 있고, 즐겁고, 확장 가능한 일을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다면 이제는 “내가 이 많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 조직을 잘 이끌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조직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비즈니스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커졌고, 비즈니스적 성공에는 돈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돈과 관련한 고민도 올해는 많이 하고 있어요.
‘비즈니스가 성공했다'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영 님이 생각하는 책발전소와 브론테의 비즈니스 성공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단계에서는 ‘김소영'이라는 사람에 기대기보다 회사가 자체적인 동력을 얻어 스스로 나아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돈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의외로 많은 재테크 고수 분들이 말하는 방식대로 하지는 않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조건이 좋은 계좌에 그냥 넣어두고 사용하는 편이에요. 저는 프리랜서 방송인이다 보니까 월급처럼 매달 일정한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달에는 수입이 많을 수도 있지만, 어떤 달에는 수입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돈을 묶어 두기보다는 가용할 수 있는 계좌에 넣어두는 거죠. 아예 쓸 일이 없을 것 같을 때만 저축해 두고요.
사업을 하시기 때문에 소비의 형태는 좀 더 다양할 것 같아요. 소영 님이 하는 소비의 형태를 분류해 볼 수 있을까요?
사업 시작 전에는 돈을 쓰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태어나서 해 본 가장 큰 소비도 퇴직금으로 책발전소를 차린 거예요. 돈을 쓰는 것에 대한 관심도, 경험도 부족했는데 사업을 하다 보니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규모의 돈을 매일매일 어떻게 쓸 것인지 결정하는 게 사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특히 저희가 온라인 커머스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잖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결정하는 일 중 거의 대부분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와 관련 있어요. 이를테면 가진 자금으로 브론테의 프로덕트를 개발할 것인지, 고객들에게 마케팅 프로모션을 제공할 것인지,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상품을 만들 건지, 자제 제작 상품을 기획하고 만들어 판매할 인력을 새로 고용할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죠.
예전에 제가 했던 소비와 지금 하는 소비의 단위가 너무 다르다 보니, 오히려 제가 필요한 물건을 산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일상의 소비에는 관심을 더 많이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업에 필요한 소비를 결정해야 할 때, 소영 님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나요?
담당하시는 분들이 소비를 해야 하는 배경이라든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주시면 적합도와 시의성을 따져서 골라요. 가격보다는 이 소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가져올 수 있는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정말 적은 돈도 까다롭게 쓸 때가 있어요.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소비를 못 하게 되는 거예요. 생각보다 큰돈이라도 필요하다면 집행하는 거고요.
최근에 했던 소비 중 가장 가치 있었던 소비 하나만 골라주실 수 있나요?
최근은 아니지만 사업적으로 가장 모멘텀이 됐던 건 사무실을 만든 거예요. 사무실이 없던 시절에 직원들과 팀원들은 각자의 지점에서 근무했던 반면,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했어요. 직원들과 소통은 잘 됐지만 사업을 한다는 느낌은 받기가 어려웠죠.
그런데 코로나가 찾아오고 책발전소 사업을 온라인으로 확장할 계획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무실을 얻게 됐어요. 처음에는 브론테라는 사업이 얼마나 커질지도 모르겠고, 직원이 몇 명이 될지도 모르겠는 반신반의한 마음이라 고민이 됐지만, 사무실을 얻은 게 많은 걸 바꿨다고 생각해요.
붙박이로 업무하는 공간이 생기고, 상시로 소통하는 동료가 눈에 보이니까 우리 조직이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일을 해내야 하는지 저한테 계속 상기하게 돼요. 사무실을 내고 최근 2년 사이에 동료가 2배 가까이 늘어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거의 다 찼거든요.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소영 님에게 500만 원이 생긴다면 어디에 쓸 것 같나요?
진짜로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생각이 안 났어요. 제가 돈 버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치고는 쓰는 것에 관심이 많지 않거든요. 물론 브론테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다 직접 사서 써본 것이긴 하지만 ‘이게 없으면 죽을 것 같아’ 이런 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인지 500만 원 질문을 받았을 때부터 계속 생각해봤는데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평소에 소비를 거의 안 하시는 편인가요?
그건 아닌데, 괜찮고 필요할 것 같다면 고민하지 않고 사는 성향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너 왜 이게 없어?”라고 말해도 저한테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안 사요. 다음 주에 인터뷰가 있는데 이런 색의 옷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 고민 없이 사기도 하고요. 목적이 있을 때는 주저함이 별로 없어요.
그렇다면 반대로 무제한의 돈으로 딱 한 번의 소비를 할 수 있다고 해볼게요. 무엇을 사고 싶나요?
만약 무제한의 돈이 주어지면… 솔직히 말하면 시간을 살 것 같아요. 일하는 게 너무 즐겁긴 한데, 잠깐 멈춰서 생각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지금은 계속 뛰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 무제한의 돈이 주어지면 방법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까 말씀드렸던,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지표가 나오면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자기 사업을 하고 싶은데 초기 자본금이 없어서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최초의 초기 자본금은 ‘나'인 것 같아요. 사업을 하려는 나의 몸뚱이가 최초의 자본금인 거죠. 저도 당인리책발전소를 내는 데 생각보다 돈이 적게 들었어요. 회사 생활 5년 정도 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차린 거잖아요. 초기에는 무조건 돈이 많을수록 좋다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잘 활용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초기 자본금이 굉장히 중요한 비즈니스라면 자본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 규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으면 초기에 투자를 받아도 흐지부지 금방 없어질 거예요. 내가 한 달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돈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과 ‘내가 돈이 어느 정도 있으니 6개월 정도 사업을 해봐야지’ 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루하루 내가 얼마가 필요하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nterview 송수아⋅김수지, Edit 송수아, Visual 심석용, Title Design 권영찬, Video 김창선, Photo 성의석, Assist 정윤아⋅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