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카드를 쓰는 것: 정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카드를 쓰는 것: 정혁

by My Money Story

토스 / 유니클로에서 아르바이트하셨던 걸로 유명해요. 다른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보셨던 것 같은데 맞나요?

정혁 / 어렸을 때 꽤 많은 일을 했어요. 집안 사정이 어렵기도 했고, 저보다 3살 위인 형이 중학생 때부터 돈 버는 걸 어렸을 때부터 봤거든요. 엑스트라 단역, 전단 아르바이트, 서빙 아르바이트, 심지어 키다리 아저씨도 해봤어요.

내 시간을 쓴 노력에 대해 가장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보상 중 하나가 ‘돈'이잖아요. 제가 번 돈으로 갖고 싶었던 걸 샀을 때 되게 만족스러웠어요. 그때부터 ‘내가 필요한 건 내가 얻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실속 없는 일은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실속이란 게 돈이든, 명예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죠. 일을 한다는 건 시간을 쓴다는 거잖아요. 시간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을 할수록 커지는 건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돈을 더 벌 수 있거나, 직업적으로 더 채워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방향으로 쓰려고 알아보는 것 같아요.

서울패션위크에 도전 후 데뷔했다는 이야기는 많은데, 그 과정이 자세히 밝혀진 적은 많지 않더라고요. 모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래서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데?”가 궁금할 것 같아요.

제가 유니클로에서 꽤 오래 일했고 일도 생각보다 잘 맞았어요. 계속 일했다면 모델로 커리어를 쌓은 만큼 뭔가를 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히려 힘든 건 인간관계였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건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일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았어요. 제가 서른 살까지 1억 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매달 나가는 고정비를 생각해 봤을 때 그만두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계속 하면서 고민했고, 모델이 되자고 결심한 후에는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주변에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허풍처럼 들리는 것도 싫고, 모델 준비한다고 일을 대충 한다고 보이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4시간씩 자면서 오전엔 출근하고 오후에는 학원 가서 수업을 받았죠.

포트폴리오도 따로 만들었어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쉬는 날이면 직접 옷을 준비하고 로케이션을 찾아보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사진 찍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어요. 로케이션도 돈 안 드는, 어디 공터 같은 데에서 찍고. 제가 알기로 지금까지 오디션 볼 때 포트폴리오를 낸 사람은 유일무이할 거예요.

당시에 제가 24살인가 25살인가 그랬거든요. 모델 도전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경험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더 다르게,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포트폴리오 만들 때도 사진을 배우거나 VMD(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일했던 것들이 다 도움이 됐어요. 항상 모든 경험과 일에는 배울 게 있다는 게 인생의 모토가 됐어요.

30살까지 1억 원을 모아야겠다는 목표도 있었고, 어찌 됐든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에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걸로 바뀌는 건데요. 모델이 되기를 결심하고 나서 돈 관리는 어떻게 했나요?

돈은 계속 모으고 있었고, 그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할지 생각했어요. 제가 당시에 100만 원을 벌면 80만~85만 원을 저축했던 걸로 기억하고요. 배고플 때 라면만 먹으면 영양실조 걸리잖아요. 그래서 대형마트 폐점 전에 싸게 파는 것들 사다가 냉동해 두거나, 직접 해 먹으면 더 싸니까 할인 쿠폰으로 식재료를 사곤 했어요.

그렇다고 돈을 무조건 아낀 건 아니예요. 어쨌든 내가 쓴 만큼 벌 수도 있다는 생각이거든요. 모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곳에는 아낌없이 썼어요. 대신 허투루 쓰기 싫어서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얼마나 드는지 많이 찾아보고 결정했죠. 저는 지금도 그래요. 돈을 벌면 명품을 살 수도 있고, 차를 살 수도 있지만 제가 원하는 건 삼시세끼 잘 먹는 거라서 친구들과 밥 같이 먹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밥 사는 것 외에는 돈을 잘 안 써요. 제가 확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면 돈을 잘 안 쓰는 것 같아요.

자산을 지키기 위해 돈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투자죠. 내가 가지고 있는 1억 원이 1년 뒤에 똑같은 1억 원일 수가 없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사고 싶었던 스피커가 120만 원이라고 할게요. 1월부터 10만 원씩 모아서 1년 뒤에 사려고 했지만, 그 스피커는 물가 상승으로 125만 원이 되어 있을 거예요. 1억 원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오르고, 내가 가진 현금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때부터 돈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킨다는 게 잘 저금해 모아 놓는 개념이 아닌 거네요.

가만히 두는 게 지키는 게 아니라, 그 돈을 어디에 써야 물가 상승과 함께 가치를 올릴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해요. 그게 투자인 거고.

재테크 공부도 따로 하세요?

많이 하고 있어요. 워낙 제도나 시장이 계속 변하니까… 재테크는 트렌드라고 생각하거든요. 빨리 트렌드를 캐치해야 재테크를 할 수 있고 제 돈을 지킬 수 있어요.

막연하지만, 소비하는 돈 중에는 패션에 지출이 가장 많을 것 같아요. 맞나요?

지출 중에 패션이 차지하는 비율이요? 거의 없어요. 가끔 사면 6개월에 30~40만 원어치 사는 게 전부인 것 같고, 그것도 운동복 아니면 기본 티, 아니면 아웃렛 가서 80% 할인된 상품들을 주로 사요. 같은 돈이 있으면 옷을 한 번 맞추기보다는 스타일리스트 분에게 드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같은 돈으로 스타일리스트 분과의 관계를 챙기는 거죠.

모델 갓 시작하셨을 때도 비슷하셨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당시에는 제가 옷 입은 걸로 보여줘야 했죠. 그래도 그냥 사진 않았어요. 최대한 싸고 개성 있게 보일 방법을 고민했고, 동묘에서 구제 옷을 많이 샀어요. 당시 제가 옷 잘 입는 모델 중 한 명으로 꼽혔는데 구제, 빈티지라는 수식어가 붙었거든요. 모델에게 캐릭터가 잡힌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에요. 덕분에 남들은 한 벌 맞추는데 30~40만 원이 필요했다면, 저는 5~6만 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어요. 당시에도 보여주는 시즌이 정해져 있으니까, 예를 들어 패션위크가 일주일이라고 하면 일주일간 어떻게 입을지 생각해서 그것만 딱 샀어요.

저희는 지출 대부분을 패션에 쓰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그렇진 않네요.

오히려 옷에 있어서는 돈을 더 안 써요.

그러면 지금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카테고리는…

투자, 취미생활, 그리고 직업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경험들.

취미생활이나 경험에 돈을 쓰는 기준이 있나요?

일단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고 투자해요. 특히 요즘에는 연기를 같이 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연기는 경험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니까, 웬만한 것들은 다 경험해 보려고 노력해요.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전혀 아끼지 않죠. 피부 관리 같은 것도 좋지만, 무언가를 배워서 그걸로 대화를 하는 게 제게 더 도움이 되더라고요.

취미로 돈을 쓸 때도 이 취미를 배워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생각해 봐요. 취미로 생각하다가도 좋아하는 일이 되면 업으로 삼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때를 상상하면서 돈을 더 투자할지 체크해 보는 거죠.

지금도 뭔가를 배우고 계실 것 같은데요.

제가 수족관을 하고 있잖아요. 브리딩해서 팔면 돈을 벌 수 있거든요. 소매를 넘어 도매, 더 크게는 창업까지도 생각을 해봤는데 물고기뿐만 아니라 수조 안에 들어가는 요소들을 배워서 아쿠아리움 카페를 만들면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기대되네요. 갑자기 500만 원이 생기면 어디에 쓰실 거예요? 저축하거나 투자하는 건 안 돼요.

그러면 제가 뭔가를 사서 그걸로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건 돼요?

그건 괜찮을 것 같아요.

진짜요? 그럼 너무 괜찮은데. 저는 500만 원 있으면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의 아이템을 사서 그걸로 돈을 벌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제가 물방에 관심이 있잖아요. 물방에 축양장을 살 수도 있고, 겨울이 오니까 붕어빵 장사를 해봐도 되는 거고. 무슨 붕어빵이야 할 수도 있는데, 붕어빵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배울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절대 500만 원으로 평소에 갖고 싶었던 걸 사겠다고는 안 할 것 같아요. 사고 나서 뭐가 안 남잖아요. 저는 그게 싫은 것 같아요.

100만 원, 150만 원 정도였으면 아이폰을 샀을 것 같아요. 좋은 기종을 사서 다른 사람들 웨딩 사진 찍어주면서 돈을 벌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결혼식장에서 따라다니면서 아이폰으로 사진 찍어서 SNS로 업로드해주는 직업도 있으니까요.

반대 질문인데요. 아까는 500만 원이었다면 이번엔 무제한의 돈이 주어질 거예요. 그런데 딱 한 번만 쓸 수 있어요. 어디에 쓰실 거예요?

너무 좋다. 저 바로 나왔는데, 저는 불로소득이 나오는 저작권을 사고 싶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는, 감기 치료제 같은 것들 있잖아요. 감기 치료제의 저작권을 사는 거죠. 사람들은 평생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는데 해열제나 진통제의 라이센스가 딱 하나만 있다면, 저는 그거 사고 싶어요.

버킷리스트 얘기하셔서, 독자분들 중에서도 돈을 모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요?

보통 많은 분들이 돈을 모으는 데에 대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목표가 있어야 계획의 최소 30%~50%는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30살에 1억 원을 모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목표를 세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목표로 향하기 위한 디테일한 계획이 필요해요. 계단 100개를 올라가려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가야지, 한 번에 100개 계단을 올라갈 수는 없거든요. 목표가 생겼다면 그 사이사이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나를 나답게 하는 소비'를 정의해 볼까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밥을 먹을 때 내 카드를 쓸 수 있는 게 가장 나다운 소비다.

아무리 우리 집이 가난하고 힘들어도 부모님이 제 밥은 절대 안 굶기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밥을 먼저 사주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많이 받기도 했고요. 이제 제가 그걸 해줄 수 있는 거잖아요. 좋은 차를 사고, 시계를 사는 것도 좋지만 제가 베풀었을 때 느껴지는 행복하고는 비교할 수 없었어요. 제가 좀 더 잘 되면 무료 급식소 같은 걸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팬클럽 분들과 봉사를 많이 가는데 그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이 있어요. 그래서 베푸는 게 저에게 가장 큰 소비이자 나다운 소비라고 생각해요.

Interview 송수아⋅김수지, Edit 송수아, Visual 심석용, Title Design 권영찬, Video 김창선, Photo 성의석, Assist 정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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