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책이 뭐지?
ㆍby 김경곤
오늘은 숫자로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607,700,000,000,000원
0이 너무 많다보니, 숫자를 세는 것도 힘드시죠? 607.7조 원인데요. 이 금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시 아시겠어요? 바로 2022년 대한민국 정부의 총지출 규모입니다. 600조 원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좀처럼 마주칠 수 없는 액수라서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감이 잘 안 올 것입니다. 이럴 때는 다른 숫자들과 상대적인 크기를 비교해 보는 게 도움이 되는데요.
우리나라의 명목 GDP가 대략 2,000조 원 정도라고 가정해보면, 정부가 한 해 동안 지출하는 금액의 총합은 GDP의 약 1/3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아래 그래프에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인 526조 원*과 비교해보면, 정부 총지출은 607억 원으로 삼성전자 시가총액보다 약 14% 정도 더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22년 1월 7일 종가 기준으로 보통주와 우선주를 합산
607조 원이라는 정부의 총지출 규모에 대해 어떤 분들은 크다고 느끼실 것 같고, 또 어떤 분들은 작다고 느끼실 텐데요. 정부의 지출 규모에 대해 사람들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오늘의 주제인 재정정책 (fiscal policy)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양립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재정정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저도 늘 조심스러운데요. 정치적 이슈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거시 경제 관점에서 알아두면 좋을 내용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정정책’ 이란?
‘재정(public finance)’은 정부의 수입과 지출에 관련된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요. 정부는 국민들에게 부과한 조세(국세 및 지방세)나 국채의 발행 등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이용해 보건, 복지, 고용, 교육, 국방, 행정, 공공안전 등에 지출하게 됩니다.
이 때 세금을 얼마나 걷을 것인지, 그리고 이렇게 걷힌 세금으로 어느 분야에 얼마 만큼의 돈을 지출할 것인지, 또는 조세를 통해 확보한 재원보다 써야 할 돈이 더 많을 때는 어떻게 차액을 충당할지 등에 대해 정부가 만드는 정책을 재정정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기로 결정할 때
이 중에서 지출에 대해 먼저 살펴볼게요. 혹시 제가 <경제변동이 뭐지?> 편에서 별표 열 개 정도 그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국민소득항등식 기억하고 계신가요? 국민소득항등식은 아래와 같이 경제의 총수요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단순화해서 보여주고 있는데요. ’정부지출’은 소비 및 투자와 더불어 수요측면의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소비와 투자가 꽁꽁 얼어붙었던 것 기억하시죠? <경제변동> 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단기적으로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게 되면 경제에는 부정적 수요충격(negative demand shock)이 발생하게 됩니다. 부정적 수요충격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했었죠? 생산이 줄어들고, 실업률이 올라가는 불황(recession)이 올 수 있습니다. 이 때 불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안정화 정책(stabilization policy)을 써야 합니다. 이를테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재정정책 같은 것들을 통해서 말이죠.
코로나19에 따른 부정적 수요충격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적극적인 안정화 정책을 실제로 펼친 바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신속하게 인하하는 통화정책으로 대응했고요. 정부는 지출을 대폭 늘리는 확장적(expansive) 재정정책을 통해 대응했습니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정부지출을 증가시키게 되면 소비와 투자의 감소에 의해 발생한 부정적 수요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정부가 새로운 장비의 구입이나 공공 시설물의 건축 등과 관련된 지출을 늘릴 경우, 관련 분야에 고용된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게 될 것이고 이들의 소득 증가는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요. 국민소득항등식에 들어가 있는 ‘정부지출’에는 일반적으로 정부가 재화와 용역을 구입하는 것만 포함됩니다. 예를 들면, 정부가 사용할 물품을 구입하거나, 도로 등의 사회기반시설을 짓거나 공무원들을 고용하는 것 등이 정부지출이죠.
반면 이 식에 들어가지 않는 지출 항목도 있어요. 바로 ‘이전지출’인데요. 재화나 용역 등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돈을 지급하는 형태의 지출이 포함됩니다. 추경 편성 등을 통해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이 이에 해당되겠죠. 지원금, 보조금 같은 이전지출도 사람들의 소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총수요를 늘리는 효과가 분명히 있지만, 이론적으로 국민소득항등식 상의 정부지출을 계산할 때는 제외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 재정지출 증가가 GDP를 얼만큼 증대시키는지 측정하기 위한 개념으로 ‘재정승수’라는 것을 활용하는데요. 재정승수가 1.5라면 재정지출을 1조원 늘렸을 때 GDP가 1.5조원만큼 늘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같은 재정지출이라도 정부의 소비지출, 투자지출, 이전지출이 GDP에 미치는 효과, 즉 재정승수의 값이 서로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부가 ‘수입’을 줄이기로 결정할 때
재정은 정부의 수입 및 지출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시죠? 그렇다면, 부정적인 수요 충격으로 인해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가 사용할 수 재정정책에는 방금 소개한 지출 늘리기 외에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맞습니다. 정부는 지출 말고도 수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조세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종류의 세금이 있는데요. 일례로 국세청의 홈택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신고/납부] 탭을 눌러보시면 부가가치세, 법인세, 원천세,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 등 여러 종류의 세금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세금들의 세율을 인상하거나 인하함으로써 개인이나 기업들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
예를 들어 볼게요. 직장인분들은 매달 받는 급여명세서에 ‘소득세’가 원천적으로 공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납세자로서 당연히 내야 하는 돈임에도 불구하고 명세서에 찍혀 있는 소득세 금액을 보면 왠지 기분이 허전해지죠.
어느 날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소득세율을 일시적으로 인하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아니면 조금 더 현실적으로 연말정산의 소득 공제 항목을 확대하고, 공제율도 대폭 상향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이 경우, 여러분들의 월급통장에 찍히는 실수령액이 바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가요? 연봉은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세금이 줄어드니 왠지 돈을 더 번 것처럼 느껴지죠. 그럼 그 다음 단계는? 그동안 사고 싶었지만 차마 못 사고 장바구니에만 담아 놓았던 상품들을 주문하러 가겠죠. 이런 식으로 정부가 소비자들의 조세 부담을 감소시키면, 전반적인 소비가 늘어날 것입니다. 기업의 경우에도 법인세 인하는 투자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요.
경기가 위축되었을 때 정부는 이와 같이 세율 인하 등을 통해 조세를 감면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는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비용(지출) 늘리기 vs. 세금(수입) 줄이기. 뭐가 더 낫지?
공공 사업 시행을 통해 정부의 지출을 늘리는 것, 세금을 삭감해 수입을 줄이는 것. 두 가지 재정정책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랍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더 많은 지출을 해야한다는 입장도 있고요. 반대로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는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오히려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도 있습니다.
양측의 주장 모두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과 근거가 있는데요. 지출 증가 및 조세 감면 자체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 드렸으니, 이제는 각 정책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두 가지 개념을 추가적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구축효과 (crowding-out effect)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늘린 정부의 지출이 이자율의 상승을 통해 오히려 경제 전반의 투자를 감소시킨다는 논리입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지출을 대규모로 늘리려는 결정을 했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조세를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는 계획한 만큼의 지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네요. 그렇다면 국채의 발행을 통해 돈을 조달해야 합니다. 즉, 소득보다 지출 규모가 커서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와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정부가 이렇게 재원 조달을 위해 채권을 다량으로 발행하게 되면 이자율이 올라가게 됩니다. (지난 <통화정책> 편에서 다뤘던 ‘양적완화’ 기억하시죠? 양적완화를 위해 Fed가 채권을 다량으로 매입하면 이자율이 떨어진다고 했는데요. 반대로 정부가 다량의 채권을 발행할 때는 이자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장 이자율이 올라가면 투자는 어떻게 될까요? <이자율>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투자 결정은 ‘이자율’과 ‘기대수익률’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자율이 올라가면 투자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과 이자율의 격차가 점점 줄어들게 되겠죠. 그 결과, 사람들은 위험(risk)을 수반하는 투자보다는 안정적인 저축을 선호하게 되어 결국 시장의 투자 규모는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 국민소득항등식을 보시면, 수요 측면의 정부지출이 증가하고 다른 변수들은 다 그대로일 경우 GDP가 증가하게 되는데요. 만약 이때 정부지출의 증가가 투자의 감소로 이어지는 구축효과가 발생하게 되면,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GDP가 증가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구축효과 때문에 정부 지출의 증가가 당초 기대한 만큼의 경기부양 효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답니다.
2. 리카디언*의 등가 (Ricardian equivalence)
경기 부양 및 소비 진작을 목적으로 시행한 정부가 조세 감소가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소득세율이 일시적으로 인하된 상황을 예시로 들어볼게요. 인터넷 뱅킹 앱을 열어 급여 계좌의 잔고를 확인하고 있는 오경제씨(32세, 직장인)가 있습니다. 오경제씨는 소득세율의 인하로 인해 월급의 실수령액이 늘어난 것을 확인했습니다. 실제 연봉은 그대로이지만, 내야 되는 세금이 줄어들어 왠지 돈을 더 번 것처럼 느껴지는 오경제씨는 바로 인터넷 쇼핑몰의 앱을 켭니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고이 모셔 두었던 한정판 상품의 결제 버튼을 누르려는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오경제씨의 뇌리를 강하게 치고 지나갑니다.
“잠깐. 진정하고 생각해보자. 이거 조삼모사 같은데? 이번에 정부가 일시적으로 소득세율을 인하해 주긴 했지만, 이렇게 세율을 깎아주면 정부의 세입은 줄어들게 될 거고, 정부의 부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나지 않을까? 그럼 나중엔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세율을 다시 올리는 거 아냐?”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오경제씨는 쇼핑몰 앱의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상품의 결제 버튼 내신 [삭제] 버튼을 누릅니다. 어차피 나중에 다시 내야 하는 세금이니 굳이 지금 소비해서 없애는 것보다는 그냥 통장에 넣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소비자들이 장래에 증가하게 될 조세를 미리 예상하고 소비를 당장 늘리지 않는 것이 바로 리카디언의 등가입니다.
* 이 이론을 처음 제시한 영국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재정정책 실제 사례 살펴보기
아래 <표 1>과 <표 2>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조 바이든 후보의 재정정책을 비교한 것입니다.
두 후보 모두 네비게이션에 ‘경제 성장과 실업률 감소’를 목적지로 입력한 것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 목적지까지 이르는 경로가 서로 달랐는데요. 트럼프 후보는 조세 감면과 규제 완화라는 길, 즉 수입을 줄이는 방법을 말했고요. 반면 조 바이든 후보는 정부 소비와 투자의 증대라는 루트, 즉 비용을 늘리는 방법을 말했죠.
그 결과, 2021~2030년 기간에 트럼프 후보의 정책은 조세 수입을 약 2.9조~4조 달러 감소시키고 정부 지출은 약 1.3조~3.2조 달러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반면 바이든 후보의 정책은 같은 기간 동안 조세 수입을 3.5조 달러 증가시키고, 정부 지출은 약 5.6조~6.6조 달러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같은 경제 목표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서로 상반되는 재정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RaboResearch)
통화정책, 재정정책 두 회에 걸쳐 소개해 드린 경제 안정화 정책은 여기서 마무리 짓고요. 다음 시간에는 개방경제(open economy)로 넘어가서, 환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dit 금혜원 Graphic 이은호, 엄선희
– 해당 콘텐츠는 2022. 7. 11.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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