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표지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액자식 구성으로 그려져 있음

토스 커뮤니케이션 헤드가 말하는 브랜드 프로모션과 프로텍션

by 손현

1. 불신의 시대에 ‘신뢰’는 중요한 자원이다

2023년 7월에 진행된 보안 캠페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요. 캠페인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크게 외부적 상황과 더불어 토스 내부의 니즈가 있었어요. 작년 말, 국내에서는 IT 기업의 데이터센터 화재, 글로벌 차원에서는 FTX 거래소 파산*이 큰 이슈였어요. 금융이나 IT 등 현대 사회의 인프라를 좌우하는 기업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때였죠. *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였던 FTX는 지난해 11월 자산을 부풀리고 고객 자산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며 대규모 인출 사태가 일어나고 유동성 위기로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현재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회사 내부 상황은 어땠나요? 주기적으로 토스 브랜드 지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선호도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신뢰’나 ‘보안’ 항목에서는 기대보다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어요. 기술 측면에서는 이미 보안에 대한 수준이 탁월한 데도 말이죠. 마침 비디오 콘텐츠팀에서 토스팀 화이트해커인 종호 님을 소재로 영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제가 이참에 브랜드 차원의 캠페인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판을 키웠죠.

얼핏 ‘보안’은 수동적으로 방어해야 할 주제 같은데 반대로 접근한 계기가 궁금해요. 판도라의 상자를 잘못 열었다가, 캠페인 중에 문제가 생기면 더 곤란해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캠페인을 준비하면서 토스팀이 그동안 보안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며 잘해오고 있다는 근거들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적어도 토스팀에게 보안은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었던 거죠. ‘그래, 한 번 해보자’는 쪽으로 확신을 가진 이후에는 브랜드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시대 문법에 맞는 콘텐츠로 잘 수용되게끔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요리를 해야 하는데 이미 원재료가 훌륭한 상황이군요. 1인 소셜 미디어가 보편적인 시대에 여전히 기업 차원에서 정제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토스가 하는 사업의 본질이 금융이기 때문이에요. 금융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이는 전통 금융권뿐 아니라 저희처럼 새로운 금융을 표방하는 기업에게 훨씬 더 중요한 요소예요. 토스의 서비스 중에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게 많죠. 그런데 그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의외로 신뢰감을 주고 안정감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게 양립한다면 훨씬 강력한 무기가 될 거예요.

2. 창과 방패 역할을 하는 두 조직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같다

토스에는 어떤 계기로 오셨나요? 2017년 7월 지인들과 놀러 갔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둘째 날로 기억해요. 토스 채용 담당자에게 링크드인 메시지가 왔어요. 토요일 밤 10시였죠. ‘채용 담당자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니, 흥미로운 회사임은 분명하다’가 첫인상이었어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 정리가 잘 되어 있었어요. 페이팔 등에서 투자를 유치한 유망한 회사라는 점을 어필하면서, 회사 차원에서 대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시점이고 적임자를 찾고 있다고 했어요. 호기심이 생길만한 내용이었죠.

바로 답장했나요? 다음 날인 일요일에 회신했어요. 그날 채용 담당자와 1시간가량 통화를 했고, 다음 화요일에 바로 토스팀 리더 승건 님과의 인터뷰가 잡혔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치과의사 출신이라는 흥미로운 대표와 이야기나 나눠보자는 생각으로 갔다가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고 귀가했는데, 바로 합류 제안을 받았어요. 모든 과정이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전 오히려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했고요. 스타트업은 너무 새로운 세계라 큰 도전이기도 했으니까요.

고민 끝에 합류를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승건님과 인터뷰할 때, 제가 질문을 더 많이 했어요. 새로운 인터넷은행이 론칭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때였거든요. 토스는 무엇을 꿈꾸는지, 기존 금융사와 어떻게 다른지 꼬치꼬치 물었는데 희미하게나마 (현재와 같은) 금융 플랫폼의 꿈을 꾸고 있더군요. 그 설명을 들으면서 납득이 됐어요. 돌아보면, 회사가 저를 원했던 시기와 저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원했던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당시 글로벌 PR 회사의 디렉터까지 갔으니 사장이 되지 않는 이상 끝에 다다른 거였거든요. 토스가 미래에 크게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닐지 당시엔 전혀 예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껏 쌓아온 경험을 통해 새로운 곳에서 제 일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포지션이라는 점에 온전히 끌려서 합류했어요.

2017년 9월 토스로 오신 직후, 1인 홍보 담당자로서 새롭게 해야 할 일이 꽤 많았겠어요. 혼자라는 점이 한계가 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모든 걸 해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입사한 지 1주일 정도 됐을 때 승건님께 기자간담회를 해보자고 했더니 “해보세요”란 답이 돌아왔어요. 그리고, 마침 토스에서 신용등급조회 서비스가 나왔을 때라 이걸 TV 뉴스 소재로 활용했어요. 뉴스로 나간 직후, 놀랍게도 고객 문의와 서버 트래픽이 즉각적으로 늘었어요. 뉴스를 보고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입했던 거죠. 덕분에 팀 차원에서는 PR 직군의 존재 이유를 인지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회사에 필요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겠구나’란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고요.

실무를 하는 동시에, 필요한 팀을 세팅하며 역할을 확장해 왔어요. 6년이 지난 지금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 중인 홍보, 콘텐츠, 영상, 브랜드 마케팅, 브랜드 디자인, 대외협력까지 모두 기열 님이 담당하고 있고요. 몇 년 전 어느 외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스타트업 홍보 담당자의 최고 덕목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정의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해요. 결국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거든요. 🔊제가 처음 맡은 역할은 언론홍보였어요. 그런데 이걸 기업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다 넓게 정의하면 언론홍보뿐 아니라 텍스트 콘텐츠, 영상 콘텐츠, 브랜딩까지 모두 같은 범주에 들어가요. 언론홍보만으로는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거든요.

스스로의 일과 역할을 정의하면서 문제를 발견하셨군요. ‘어떻게 하면 우리 이야기를 우리답게 잘 전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온드 미디어(owned media)와 소셜 채널 등을 구상했고 관련 팀을 정비하거나 통합하는 과정이 뒤따랐어요. 브랜드 미디어를 넘어 콘텐츠 플랫폼으로 크고 있는 ‘토스피드’가 그렇게 탄생했죠. 유튜브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걸 보면서 팀에 콘텐츠 PD들을 모시게 됐고, 이들이 지금의 토스 유튜브와 머니그라피 채널을 책임지고 있고요.

토스는 콘텐츠를 활용한 브랜딩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해요. 학생 때부터 문학이나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제 자신을 콘텐츠에 정통한(content-savvy)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제 일을 하는 동안 온드 미디어를 잘 활용한 기업들의 사례를 많이 봤고 관련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콘텐츠의 가치를 실감했어요. 실제로 2017년 토스에 와 보니 다른 회사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이 많음을 느꼈어요. 콘텐츠로 활용할 브랜드 자산이 많은 회사랄까요? 그 자산을 기반으로 토스가 지금까지 기업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새롭게 도전을 지속할 수 있었고요. 회사와 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거나 《유난한 도전》이라는 책도 발간했고, 올해에는 토스피드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토스 머니스토리 공모전 DRAFT 2023’을 열기도 했었죠.

요즘은 토스의 영상 채널, 특히 ‘머니그라피’의 성장세가 눈에 띄어요. 기업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으로서 제가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습득하고 소비하는지만 봐도, 지금은 영상 콘텐츠의 시대임이 분명해요. 이제는 검색도 유튜브에서 하고, 기업 정보도 자체 채널뿐 아니라 다양한 영상을 통해 소비하고 있고요. ‘머니그라피’는 취향을 바탕으로 한 금융 콘텐츠 채널을 표방하고 있어요. 토스가 서비스를 통해 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면 이 채널은 콘텐츠를 수단으로 문턱을 낮추고 있어요. 매 영상들에 달린 댓글들을 읽다 보면 열렬한 팬이 많은 게 느껴져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토스가 내보내는 콘텐츠 곳곳에 토스 팀원이나 대표가 직접 나오는 모습도 인상적이에요. 글로벌 PR 회사 에델만에서는 매해 신뢰도 지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2019년 보고서 내용 중 하나가 ‘사람들이 어떤 정보 출처를 신뢰하는가’였어요. 나와 같은 타인(a person like yourself) 또는 일반 임직원(regular employee)의 목소리를 기업의 CEO나 저널리스트보다 신뢰한다는 통계 결과가 놀라웠어요. 그동안 기업의 CEO가 나와서 멋있게 얘기하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나와 같은 동료들이 더 설득력이 있는 거죠. 이렇게 ‘팀원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 회사를 알리고 일하는 문화에 대해 말하는 게 유효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 후 많은 기업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류의 콘텐츠들이 많이 나오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고요.

△ “임직원의 목소리를 더 들려주자” (자료 출처: 2019년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 결과 Edelman Trust Barometer 중 한국 파트 25페이지)

반면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이 일을 막 시작하려는 회사나 담당자들이 참고하면 좋을 점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너무 큰 포부와 목표를 갖고 시작하기보다는 각 회사의 사정과 상황에 맞는 계획이 필요해요. 토스피드 역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걸 기획했던 2017년, 토스에서는 사업적으로는 ‘다다다다’ 전략*으로 전체 탭에 여러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었어요. 모든 서비스가 언론에 소개될 순 없으니 우리만의 톤 앤 매너로 소개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목표를 가졌거든요.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고, 그 회사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한 다음 시작하면 좋겠어요. 당장은 절대로 결과가 보일 수 없어요. 그러니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 규모는 작더라도 수익이 날 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천천히 하나씩 시도할 여유가 없으니 모두 다 빠르게 실험해 보자는 뜻에서 붙은 이름. 《유난한 도전》 123페이지 참고.

3. 리더는 그 자체로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한다

팀 리더에서 커뮤니케이션 헤드가 되면서 주도하신 변화가 있다면요? 팀 리더의 역할이 해당 팀이 더 잘 기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면, 헤드의 역할은 회사 내에서 그 기능의 최종 책임을 지는 거예요. 헤드가 되면서 제 영역에서 무엇이 최선일지를 큰 틀에서 먼저 고민했어요. 제 경우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자로서, 당시 제가 담당하고 있던 홍보, 콘텐츠 조직에 더해 개별 팀으로 분리되어 있던 여러 브랜딩 관련 조직을 통합하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토스 브랜드 전체를 위한 일관되고 통합된 브랜딩을 위해 조직 통합이 왜 필요한지 제 나름의 생각과 방향성을 담은 자료를 만들고 팀원들을 찾아가 1:1로 대화를 나눴어요.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다행히 대체로 비슷한 니즈를 느끼고 있었어요. 그 공감을 토대로 2022년 초에 브랜드 조직을 통합했어요. 20명 넘는 인원이 한 팀으로 있다가 2023년부터 브랜드 마케팅, 브랜드 디자인, 콘텐츠, 비디오 콘텐츠 이렇게 4개의 팀으로 구분했고, 브랜드 조직 안에서는 팀을 넘어 활발히 협력하고 있어요. 시너지도 점점 체감하고 있죠.

각자 개성이 뚜렷한 다양한 직군과 함께 하시면서 특별히 노력하신 게 있다면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캐주얼한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매주 한 번 브랜드 조직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콜라보 런치를 하고 있고, 반기에 한 번씩 플레이샵을 하는 식으로요. 한 달에 한 번씩 조직 전체 미팅 때는 제가 회사의 전반 사항 중 꼭 같이 고민해봤으면 하는 부분을 공유해요.

이질적일 수도 있는 기업 커뮤니케이션 조직과 브랜드 조직을 함께 챙기느라 어렵진 않았나요? 기업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두 기능 조직이 물리적으로 꼭 함께 해야 한다고 보진 않아요. 일의 성격이나 팀 구성, 팀원들의 캐릭터 등을 보면 이질적인 조합이 사실입니다. 다만 기업 관점에서 저는 두 기능 조직의 목적이 같다고 판단해요.

그게 무엇인가요? ‘토스’라는 서비스와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사랑받는 거요. 이걸 달성하는 데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 두 조직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2022년 상반기 얼라인먼트 위크에서 이 과정을 프로모션과 프로텍션이란 두 축으로 설명하기도 했죠.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하면서, 늘 프로모션(promotion)과 프로텍션(protection)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했어요. 기업 관점에서는 둘 다 매우 중요해요. 하나만 잘해서도 안 되고요. 단순히 언론홍보나 대외협력은 프로텍션만 하고, 전방위적인 브랜드 활동은 프로모션만 한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양쪽을 계속 경험하며 생각해 보니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어요.

어떤 깨달음인가요? 관점을 달리 하니 🔊브랜드가 탄탄하면 그 자체로 확실한 프로텍션이 되고, 언론홍보팀이나 대외협력팀에서 만드는 솔루션은 기업 비즈니스의 펀더멘털 차원에서 프로모션을 가속화할 수 있더라고요. 가령 대외협력팀에서 현재 토스가 추진하려는 사업에 장벽이 되는 이슈를 해결하면, 그때부터는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는 거예요. 각 팀이 매일 하는 일, 만나는 대상, 발신하는 메시지 등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이 모든 게 제대로 함께해야만 브랜드가 탄탄해질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커뮤니케이션 조직은 어떤 일을 하나요?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고 우리가 만든 혁신과 문화를 ‘널리 알리고’ 이슈와 위기 상황을 ‘예측 및 대응’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일 Reputation + Branding Promote + Protect — 윤기열, 2022년 상반기 토스 얼라인먼트 데이 발표 자료 중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더 해보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이미 준비 중이거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많아요. 토스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를 통해 금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긍정적인 신호겠죠. 토스가 금융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면,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명감도 필요해요. 금융은 사회의 근본적인 인프라 중 하나이니까요. 앞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이니셔티브도 필요해질 거라고 느껴요. 자연히 브랜드 선호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팀을 구성할 때 고려하는 원칙이 있나요? 팀의 다양성을 중요시해요. 그리고 팀원의 강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요. 이 두 가지 원칙은 함께 가요. 가령 팀원 A에게 강점 a가 있고, 팀원 B에게 강점 b가 있다면, 새로운 팀원을 모실 때에는 가능한 새로운 배경과 강점을 지닌 분을 찾아요. 그래서 의외의 경력과 경험을 가진 분이 오시면 우리 팀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줄 것 같아서 반가워요. 한 명의 완벽한 플레이어라는 게 존재하지 않잖아요. 팀으로서 각자가 가진 강점을 토대로 일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려고 해요.

리더로서 본인의 강점은요? 리더로서의 강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거의 안 해요. 어떤 일을 하든, 난관에 부딪혀도 잘 될 거라 생각해요.

의외군요. 프로텍션에 있어선 전문가이신데요.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예측과는 별개로, 저만의 마인드셋 같아요. 그래서 지난 일에 대해 별로 후회하지도 않아요. 만약 매일매일 초조하고 불안해했다면, 이 일도 오래 못했겠죠.

위기는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죠. 위기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 헤드로서 중요한 원칙이 있을까요? 🔊리더는 그 자체로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해요. 보통 그게 없어서 다들 우왕좌왕하느라 대응할 시간을 놓치거든요. 사실 위기 상황에서는 100% 옳은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요. 너무나 많은 변수와 다른 의견들이 존재하니까요. 그럼에도 리더가 컨트롤 타워가 되어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정리하고 대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기준도 궁금해요. ‘지금 내리는 결정이 충분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기업 차원에서 사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볼게요. 그럼, 사과문에 충분히 납득할 만한 모든 요소가 담겼는지, 우리가 사과해야 되는 대상과 회사의 공식 입장 사이의 모든 요소가 충분히 상식적인지 판단하려고 해요. 이 상식이라는 게, 그간의 많은 경험과 교훈을 통해 계속 다듬어지고 있고요. 기업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판단은 고객의 몫이에요. 간혹, 물론 외부로 충분히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운 때가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도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는 게 마지노선이 아닐까 합니다.

4. 역할이 아닌, 일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한동안 1990년대 미국 졸업 앨범 컨셉의 AI 프로필 사진이 인기를 끌었어요. 이때보다 더 어린 시절의 기열 님은 어떤 아이였나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스스로 선택하게 하셨어요. 옷가게에 가서도 “네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라”고 하시고 계산만 하실 정도였죠.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꽤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어떤 옷이 나한테 어울릴지 모르고, 나중에 싫증이 날 수도 있잖아요.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니까요. 저에겐 그런 선택들이 당연했는데, 나중에 보니 친구들은 다들 엄마가 사다준 옷을 입고 다니더라고요. 작은 선택부터 직접 해온 것이 제가 성장해 오는 데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줬어요.

신입사원 때도 주도적인 편이었나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PR 회사인데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안정된 회사라 포지션에 따라 할 수 있는 일도 정해져 있었어요. 저는 빠르게 다음 단계로 가고 싶었던 사람이었어요. 단지 사원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답답했어요. 빨리 승진해서 과장님, 차장님들처럼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1년쯤 다니다가 저희 팀 리더였던 분이 홍보 회사를 직접 창업했는데, 제가 첫 번째 멤버로 합류했어요.

신입을 본인 회사의 첫 번째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 같군요. 그때만 해도 제가 특출난 재능과 역량을 보여줄 기회는 없었어요. 대신 뭐든 빨리 해보고 싶은 마음과 성장에 대한 욕망을 읽으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사장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덜한 채용이었을 테고요. (웃음)

그분은 어떤 리더였나요?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이 있고, 어떤 문제든 해결해 줄 것 같은 유형의 리더였죠. 그래서 팀장님이 저에게 합류를 제안했을 때, 전혀 고민하지 않았어요.

사장님과 사원만 있는 회사라니, 일하는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군요. 사무실을 알아보러 다니고 유선 전화 놓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사장님과 잠재 고객 미팅을 다니며 영업 활동도 함께 했죠. 다시 말해, 팀원이 저 혼자니까 사장님만이 할 수 있는 일 외에는 다 해볼 수 있는 거예요. 사장님이 예전에 썼던 제안서 자료들을 들춰 보며 혼자 낑낑대며 처음으로 제안서를 써보기도 했고요. 이후 회사는 탄탄하게 성장했는데, 4년 정도 있다 보니 큰 규모의 프로젝트들을 해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규모가 가장 큰 글로벌 PR 회사로 이직했어요.

주로 담당했던 산업이나 부문이 있었을까요? 제가 속한 팀은 테크 부문의 기업 홍보를 주로 맡았어요. 전 세계 오피스와 함께 올림픽 캠페인, 해외 사업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한 프로젝트 등 평소 경험하기 힘든 일들도 해볼 수 있었고요. 그곳에서 약 7년을 일하는 동안 다양한 범위와 깊이, 성격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었어요. 일의 성격이 다르면, 문제를 정의하는 것과 솔루션도 다르잖아요. 이때 경험이 없었으면 제가 지금까지 토스에서 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커리어의 오랜 기간을 이미 리더로 일해오셨어요. 토스에서 리더로 일하는 건 어떻게 다른가요? 보통의 회사에서는 ‘이사님’, ‘전무님’이란 자리만으로 권위가 어느 정도 확보돼요. 토스의 리더는 포지션으로 권위가 확보되기보다 실제 팀원들에게 받는 신뢰가 곧 권위이죠. 리더 또한 조직에 실제로 기여하는 바와 만들어내는 가치로 평가받아요. 그만큼 부담도 크고요. 토스에 있는 팀원분들은 다 업계 전문가이자 훌륭한 플레이어잖아요. 저는 각자의 전문성과 고유 영역을 존중하면서, 어떻게 전체 차원에서 시너지를 내게 할지 고민해요. 어려운 숙제입니다.

이제 막 리더가 되었거나, 리더십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도 있을까요? 🔊‘리더라는 역할 자체에 너무 집중하지 마세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내 일을 탁월하게 잘하는 걸 목표로 삼으면 역할이 확장될 수밖에 없거든요. 탁월하게 잘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과 아이디어들이 생길 거예요. 그렇게 일에 몰입하다 보면, 리더는 그저 역할이 확장되어 조금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포지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일의 본질에 집중하는 게 가장 명료한 솔루션입니다. 그러면 조금 심플해지지 않을까요.

탁월함이란 무엇인가요? 탁월함이란 오늘의 상태를 뛰어넘어 더 성장하려는 노력입니다. 특정 상태가 아니라 최정상에 가까워지려는 의지 그 자체죠. 탁월함은 출중한 능력 그 자체가 아니던가요? 아닙니다. 타이거우즈가 말했어요. 자신이 언제나 완벽한 스윙을 하는 완벽한 골퍼가 될 수 없음을 안다고. 최선을 끌어내고자 할 뿐이고, 그게 직업적 탁월함이라고요. 탁월함은 능력보다 습관에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불완전해도 과감하게 시도해보고, 모른다고 인정하고, 타인의 요구에 반응해서 방향을 수정하는 등 모든 형태의 포용 능력입니다. 우리가 지닌 최고의 보물이죠. (중략) 탁월함이 높은 경지의 성취가 아니라 투지와 자제력 그 자체라면, 평범한 우리 모두 제 각자의 탁월함을 경험 중이겠군요. 물론입니다. 어제의 나를 넘어섰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 거예요. 설사 높은 연봉, 지위, 유명세 같은 큰 성공이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탁월함은 삶을 변화시켜요. 한 발 더 나가기로 결정할 때, 당신은 이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 도리스 메르틴, 《엑셀런스》 저자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인터뷰 중 (조선비즈, 2022.4.2.)

마지막으로 신입 시절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미래의 윤기열에게 아무것도 듣지 마. 네가 지금 생각한 대로, 선택하는 대로 해.” 그냥 그렇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현재에 충실하며 일의 본질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윤기열은 글로벌 PR 회사를 거쳐 2017년 9월, 비바리퍼블리카(토스)의 홍보 담당자로 합류했다. 언론홍보를 전담하며, 2018년 브랜드 미디어 ‘토스피드’를 론칭하고 콘텐츠 조직을 확대해 토스의 콘텐츠 브랜딩을 이끌었다. 지금은 토스의 커뮤니케이션 헤드로서 언론홍보/대외협력 조직 및 브랜드 조직을 총괄하며 탁월한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Words 윤기열 Interview 손현 Graphic 이은호

손현 에디터 이미지
손현

토스팀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토스가 더욱 사랑받는 서비스,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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